이럴 땐 그리운 얼굴들이 생각난다
- Details
- Category: 목사님 칼럼
- Published on Wednesday, 06 March 2013 15:54
- Hits: 1593
이럴 땐 그리운 얼굴들이 생각난다
11년의 부교역자 생활과 15년의 담임 목회자 생활을 통해서 참으로 세월이 빠르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어쩌면 그렇게도 26년을 하루 같이 한 사랑으로 인도해 주시는지? 하나님의 그 놀라우신 사랑에 또한 감격하지 않을 수 없다. 믿지 않는 가정에서 혼자서 예수 믿고 신학까지 하게 됨을 독특하신 하나님의 소명으로 믿고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으리라’는 확신 하나로 오늘까지 왔는데 과연 그와 같은 하나님의 소명만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런데 이 즈음에 와서 강하게 느끼는 하나의 서글픈 현실은 더욱 더 뜨거워져야 할 영적인 영향력이 시간이 갈수록 자꾸만 더 냉랭해 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사실이다. 쉽게 한 마디로 말하자면 그만큼 경험하고 부딪혀 보았으면 매사에 더 확신이 넘치고 자신이 있어야 하겠는데 그렇지를 못하다는 말씀이다. 아직도 남들은 젊다고 부러워들 하는데 혼자서 早老(조로)해 버린 탓인지 이 즈음에는 조용한 시간이 있을 때마다 노인네들처럼 그리운 얼굴들이 떠오르곤 한다. 그런 보고픈 얼굴들이 영상 되어 떠오를 때면 새로운 소망과 자신의 나약함이 한꺼번에 오버랩 되어 혼돈스럽게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주님의 은덕으로 이렇게 새로운 내일을 기대하며 자신을 돌아 볼 수 있는 복된 기회를 갖게 되는 것 같아 감사 하기도 하다.
세례 요한이 생각난다
모든 목사가 다 그렇듯이 필자도 보수에 둘째 가라면 서러운 사람이다. 신학교에서 언제나 듣고 마음에 새겼던 “순교정신”은 지금도 가슴에 새파랗게 살아 있다. 그리고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 사상도 물론 넘치도록 내 가슴에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컬하게도 늘 못난 자신이 예수님 보다 앞서 가는 것 같아 자꾸만 세례 요한이 생각나는 것이다. 그 분은 예수님을 향하여 고백하기를, “나는 그 분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할 수 없노라”고 하였었다. 과연 내가 하나님 중심으로 목회를 하였을까? 그리고 성경 중심으로 양떼들을 이끌고 왔을까? 더 더욱 교회의 유익을 위해 나의 모든 유익을 포기하며 그렇게 교회 중심으로 목회를 해 왔을까? 하고 되돌아 보면 왠지 얼굴이 화끈거려 옴을 금할 수가 없다. 어떤 경우에 가서는 철저하게 “나 중심”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때나 우리 교인 하나가 내가 잘 아는 목사가 목회 하는 다른 교회로 떠나가도 ‘하나님의 뜻이면 그것도 가능하겠지’한다던가 ‘그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양이 아닌가 보다’하면서 초연해 질 수 있겠는지? 자신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사실 이민교회는 교인 하나가 그렇게도 귀하다). 교인 하나가 내가 섬기는 교회를 떠나 가면 몇 날 밤을 가슴을 아파하며 그렇게 아픈 가슴을 달래기 위해서는 그 교인을 엄청 미워하고 배신자로 매도해야만 간신히 그 고통에서 해방 되어 왔던 지난 날들이 그렇게도 오직 주님만을 위해 살았던 세례 요한 앞에 부끄럽게 여겨지기에 이처럼 못난 자신의 모습으로 인해 가슴 아픈 일이 있을 때 마다 세례 요한이 생각나는 것이다. 그는 그의 제자들이 찾아 와서 “당신의 많은 제자들이 예수님에게로 가고 있습니다”고 보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가 아니면 내게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초연하게 대답하였었다. 말로는 ‘주님의 뜻대로’ 하면서도 실제적인 삶의 깊은 내면에서는 슈퍼마켓 주인처럼 교인들을 자신의 소유물인냥 치부할 때가 너무나도 많았던 것이다. 어디에 가든지 바른 신앙생활만 한다면 그는 다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실 양들인데도 말이다. 주님의 양떼들을 자신의 소유물로 착각하고 그것이 많은고로 어깨에 힘을 주고 교만해 한다면 참으로 그런 목자에게 양을 맡겨 두신 주님의 마음이 그 얼마나 아프실까? 행여나 나 자신이 그런 유의 목사가 아닌지? 두려운 마음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곰곰이 생각해 본다. 세례 요한처럼 그 분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할 수 없다는 자세로 오직 그 분만을 위해서 헌신하는 참 목자가 되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사도 바울이 그립다
조금만 더 죽을 수 있다면 참으로 존경 받는 목회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늘 마음에 남는다. 성도들이란 자기의 목사가 조금은 모자라는 듯 그렇게 죽어 지내기를 원하는 것 같다. 한번은 부흥회를 하는데 강사가 참으로 못생겼다. 같은 남자지만 저렇게 못생길 수도 있구나 하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그 강사가 성경 공부시간에 자신이 생각해도 자기가 참 못생겼다고 느낀다는 말을 해서 한 바탕 웃은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 부흥회 기간동안 성도들이 가장 은혜를 많이 받은 때가 바로 그 때였던 것 같다. 지금도 설교를 하다가 무슨 실수를 하게 되면 성도는 엄청 은혜를 받고 좋아들 하는 것 같아 참으로 이상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왜 교인들은 그 신선한 구원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말씀을 통한 은혜 보다도 목회자의 작은 실수에 더 큰 은혜를 받는 걸까? 그것이 다 심리적인 요인에서 오는 것이고 더 구체적으로는 목회자에 대해 평소에 눌려 있었던 감정이 그와 같은 것을 통해 대리 만족하게 되는 것은 아닐는지? 그런데 사도 바울이 그리운 것은 그는 자그마치 “날다가 죽는다”고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이야 말로 이 종이 따라가기에는 평생을 쫓아도 안 될 훌륭한 인물이 아닌가? 그러한 그가 수 없는 죽음의 위험과 태창과 고통으로 평생을 살고 그것도 모자라 날마다 죽는다고 하였으니 부끄러움을 안고 그 분을 그리지 않을 수가 없다. 진짜 죽는 것이 사는 길임에도 그렇게 죽는 것이 어려우니 입만 가지고 설교하는 나 자신을 어떻게 고백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오늘날 사람들은 죽는다는 말을 너무나도 쉽게 하는 것 같다. 복음성가의 가사에도 죽는다는 말이 너무나도 남용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죽어야 할 환경에 처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상대적으로 더 죽지 않고 강하게 살아나는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
교회를 개척해서 겨우 2-3년이 지났을 때 참으로 악한 장로로 인해 엄청난 시련을 겪어야만 하였다. 어느날 집회를 갔다오니 박장로라는 분이 교회의 개척 멤버들을 모아 놓고 “우리 목사는 신학교 문 앞에도 가지 않았는데 그 양반이 세례도 주고 직분자도 세웠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문제를 만들고 “그러한 무자격자이니 당장 오는 주일부터 강단에 세워서는 안된다”고 선동해 놓고 있었다(그래도 이 종이 총신 신대원을 졸업 할 때는 3년 성적 우수상을 받았는데도 말이다). 토요일 늦게 집회에서 돌아오자 몇몇 집사들이 찾아 와서 이와 같은 황당한 소식을 전해 주었다. 그러나 나는 믿지 않았다. 평소에 내가 아버지처럼 모셨던 장로이고 교회에 큰 문제가 일어날 만한 아무런 조짐도 없었는데다 내가 정상적으로 신학을 잘 마친 나름대로의 긍지를 가진 목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교하러 강단에 올라가는 목사를 어떻게 끌어 내릴 정도의 최악을 행할 수 있겠는가?고 반신반의 하였다. 그러나 이튿날 교회에 나가보니 현실은 전혀 딴판이었다. 그 박장로 일당은 경찰까지 동원한 채 교회 입구를 가로 막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시련은 무려 3년이나 계속 되었다. 가짜 목사라고 이민국에다 고발을 하고 건축헌금으로 모아 두었던 3십여만불의 돈을 자기들이 차지하기 위해 민사 법원에 소송까지 해 놓았으니 그렇게 긴 세월이 흐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나를 부르시고 나를 목사로 만드시어 양들을 맡겨주신 하나님의 승리로 끝나고 말았다. 주의 종과 교회를 헐뜯고 악을 행하며 대적하였던 주동자들이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한결 같은 하나님의 형벌을 받으면서 깨끗이 끝났다. 박장로는 골수암에 다른 한 집사는 위암에 들어 오래지 못하여 죽었으며 한 집사는 가게에 원인 모를 불이 나서 몽땅 망하였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아들이 마약으로 투옥되고 부인과 이혼한 후 사업이 망하여서 남의 집 셋방에서 사는 비참한 처지가 되었고 마지막 다른 한 사람은 이혼하고 아들이 백혈병에 걸리는 무서운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 그와 같은 결과에 난 얼마나 쾌재를 불렀는지 모른다. 당연히 악한 그들은 망하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모든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부질없는 생각이었는지를 깊이 깨닫게 된다. 나 자신이 죽지 못한 악한 심사였기에 형제의 망함을 당연시 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목회자가 나와 같은 아픔 없이 교회를 맡고 양들을 맡아 이끌어 가고 있겠는가?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목회자의 가슴은 온갖 고통으로 얼룩져 있음을 부산, 서울, 미국의 교회에서 26년 동안 겪은 경험으로 능히 알 수가 있다. 그러나 그렇게 어려움이 있을 때 더욱 죽고 또 죽어 하나님의 선하신 은혜를 기다리면 하나님은 반드시 복된 역사로 새롭게 해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날마다 죽는다 하지 아니하였던가? 그러나 반대로 목회자가 죽지 못하면 대신 양들이 죽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잘 죽지 못하면 더욱 힘들고 괴로운 것이 현대의 목회가 아닌가 싶다.
예수님이 보고 싶다
예수님이 보고 싶다. 그분은 하나님이시기는 하지만 우리들과 같은 성정을 지닌 완전하신 사람이실진데 아무리 생각해도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을까? 싶어 진다. 자기 자신을 팔아 돈을 챙기고 군호를 짜서 입을 맞추던 유다를 향해 “친구”라고 부르시던 그 모습에서 할 말을 잊어버린다. 목회자가 이 정도는 되어야 참 목자란 소리를 들을 수 있을텐데... 어디 그뿐인가? 소위 수제자란 베드로가 주께서 친히 보시는 면전에서 3번씩이나 부인하고 맹세하고 저주까지 했음에도 부활하시고 제일 먼저 그를 찾아 갈릴리로 가셨으니 더 할 말이 없다. 목사는 이 예수님을 가르치는 자다. 그러면서도 목사 자신은 그 예수님을 닮지 않고 있으니 그놈이 바로 나다. ‘예수 닮은 교회’라 해서 ‘예닮교회’도 많더구만 이 시대에 우리 예수님의 이 사랑과 인내를 닮은 목사는 과연 얼마나 될까? 자기를 사랑하는 성도들 앞에서는 왕처럼 군림하고 자기를 따르지 않거나 혹 반대하는 자들에겐 저주 받기를 원하는 마음이 목사 속에 있다면 예수님과는 상당한 거리에 있는 목사가 아닐까 싶다. 지난 봄에 부산에 있는 친구 목사가 시무하는 교회에 가서 집회를 하는데 그 친구는 성도들에게 나를 소개하면서, “시애틀의 황제가 왔다”고 하였다. 참으로 그 친구 목사는 나의 얼굴을 순식간에 뜨겁게 하고 말았다. 바로 내가 그런 목사였던 것이다. 목사가 황제란 소리를 들을 정도이면 하루 속히 옷을 벗어야 할텐데 아직도 이렇게 목사란 이름으로 칼럼을 쓰고 있으니 나도 보통은 넘는가 보다. 그러나 이렇게 부족한데도 이 종을 붙들어 주는 손길이 있으니 그저 눈물이 앞을 가리울 뿐이다. 그 분은 나를 낳으신 부모님도 형제도 친구도 성도도 아닌 우리 좋으신 예수님이시다. 그 분이 정말 보고 싶다. 우리 주님께서 이 세상 끝에 가 계신다 할지라도 빚을 내고 민박을 하면서도 찾아가 나의 주님을 뵙고 싶다. 빌립처럼 무슨 주님을 육신적으로 보려고 하느냐?고 핀잔을 주어도 좋다. 참으로 그 분의 손을 만져보고 그 분의 품에 기대어 보고 싶다. 그래서 지친 나의 목양길의 외로움과 서러움을 그분에게만 숨김 없이 털어 놓고 밤이 새도록 말씀 드리고 싶다. 나이 스무 살에 전도사가 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의 가는 그 길을 진정으로 이해해 주고 등 떠밀어 준 사람은 나에겐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나의 신학교 졸업 사진이나 목사 안수식을 할 때를 막론하고 그 어떤 교회와 관련된 사진에도 우리 부모형제가 함께 한 사진은 단 한 장도 없다. 그러한 세월을 과반세기 보내게 되니 이제는 어린 아이처럼 외로워짐을 느낀다. 남자가 여인의 해산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듯 성도는 언제까지나 목사를 이해하지 못하는 법이다. 그러니 나의 참 좋은 친구 예수님을 영적으로는 말할 필요도 없지만 육신적으로도 길이 만나보고 싶음은 나의 간절한 소망이 아닐 수 없다. 그분이 나의 연약함을 아시고 지금까지 은혜를 베풀어 주시어 개척 4년만에 약 2천평 이상의 부지를 시애틀의 가장 중심지에 주시고 7년만에 아담한 본당과 27개의 교실 및 부속실이 달린 교육관과 젊은 청년들이 운동하며 교제할 수 있는 체육관을 지어 교민 사회에서 칭찬 듣는 교회를 이룩하게 해 주셨다. 그리고 지난 8월 15일엔 아프리카 기니에 단독선교사를 파송하는 복된 은총도 허락 받았다. 이렇게도 부족하고 미련한 것 밖에 없는데도 우리 주님은 한결 같은 사랑으로 오늘도 다가 오시니 눈물 없이 내 어찌 그 분을 대할 수 있으랴! 앞으로 선교 센터도 지어야 하고 노인 아파트도 지어야 하며 크리스챤 스쿨도 오픈 하여야 한다. 그러나 26년을 하루 같이 인도해 주신 우리 좋으신 나의 보고픈 주님께서 반드시 이 일도 인도해 주시리라 믿는다. 하나님께서 쓰시려고 나 같은 죄인도 뽑으셨는데 안 쓰시면 하나님 손해이실테니까 반드시 한 시대가 다 가기 전에 역사해 주시리라 믿는다. 그 분은 바로 나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