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빌립보장로교회

-- 성령의 열매맺는 교회 --

Sat11232024

Last update12:00:00 AM

Font Size

Profile

Menu Style

Cpanel
Back You are here: Home 말씀과예배 설교 읽기 2016년 8월 14일 주일낮설교 (풀과 꽃 같은 인생)

2016년 8월 14일 주일낮설교 (풀과 꽃 같은 인생)

풀과 꽃 같은 인생

8. 14, 2016

本文:이사야40:1-8

:

 

[오리건주의 앨런 베이츠(민주, 메드포드) 상원의원이 향년 71세로 사망했다. 베이츠 의원은 지난 5일 아들과 함께 크레이터 레이크 인근 230 하이웨이 인근의 로그 리버에서 낚시하던 중 숨졌다. 베이츠 의원은 낚은 물고기를 씻으려고 강으로 내려갔지만 10여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고, 그를 찾으려고 강으로 내려온 아들에 의해 물에 잠겨 숨진 채 발견됐다. 더글라스 카운티 셰리프국은 일단 베이츠 의원의 사인을 심장마비로 추정했다. 베이츠 의원의 유가족은 성명을 통해 갑작스런 사망에 전 가족이 매우 충격을 받았지만 그가 평소 좋아하는 낚시를 즐긴 후 숨을 거둔 것으로 위로를 삼고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 참전용사이며 30년 경력의 의사인 베이츠 의원은 지난 2000년 주 하원에 당선된 이후 2004년 주 상원에 입성했다. 베이츠 의원은 지난해 회기 중 갑자기 심장마비 증세를 일으킨 공화당의 앨랜 올슨 상원의원의 생명을 구해줬었다. 케이트 브라운 주지사는 오리건주에 큰 발자취를 남긴 그의 빈자리가 매우 클 것.”이라며 주내 모든 관공서에 조기 게양을 지시했다.](시애틀 N News에서 발췌)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다 가장 좋은 것을 추구하며 가장 소중한 것들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진짜 가장 소중한 것은 놓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젊어서는 얼른 나이를 먹어버렸으면 좋겠다 하고 늙으면 젊은이들을 부러워합니다. 돈을 벌기 위해 건강을 돌아보지 않다가 병들면 건강을 잃는 줄도 모르고 벌어 놓은 그 귀한 재물을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다 투자합니다. 절대 안 죽을 줄로 알고 죽음은 상상조차도 하지 않다가 죽음이 눈앞에 닥쳐왔을 때에야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었는데...’ 하고 눈물을 흘립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우리들의 삶을, 아니 우리들의 인생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되짚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후회는 항상 늦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홍자성

나무는 가을이 되어 잎이 떨어진 뒤에야 꽃피던 가지와 무성하던 잎이 다 헛된 영화였음을 알게 되고, 사람은 죽어서 관 뚜껑을 닫을 때에야 비로소 자손도 재물도 다 쓸데없었음을 알게 된다.

엘버트 공(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

나는 재산도 지위도 권력도 다 가졌다. 그러나 이것이 내가 가진 전부라면 나는 얼마나 비참한가?

프랑스 격언

당신은 태어난 그 날부터 사는 일뿐 아니라 죽는 일도 시작한 것이다

김경선

우리 인생은 세월이란 물 위를 믿음이란 배를 타고 소망의 항구를 향해 쉬지 않고 달려가는 것이다.

시편 기자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103:15)

솔로몬

대저 사람은 자기의 시기를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가 재앙의 그물에 걸리고 새가 올무에 걸림같이 인생도 재앙의 날이 홀연히 임하면 거기 걸리느니라(9:12)

오늘 본문 또한 우리 인생이 무엇인지 소상하게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40:6-8)

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는 단순하게 이사야서를 통해서만 나오는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의 전 사상이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선포하신 진리입니다. 대표적인 신, 구약 성경의 가르침을 소개해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103:15)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벧전1: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라는 말씀들이 한결 같이 인생을 풀과 풀의 꽃에다 비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예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인생들을 의지하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2:22)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

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 인생의 현주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는 끊임없이 사람을 의지하고 그 사람들이 가진 돈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진정 오늘 우리들이 거듭난 신앙인이라면 그런 것들이 부질없음을 가슴으로 깨닫고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가치를 쫓아가야 하겠습니다.

풀과 꽃 같은 인생

미국에서 대통령을 만들고 그 대통령의 옆방에서 대통령을 움직이는 정도라면 세계적인 권세를 가진 사람이라 할 것입니다. 바로 찰스 콜슨이라는 사람이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닉슨을 대통령으로 만든 King Maker였고 그와 같은 무소불위의 권세로 닉슨을 재산에 또 다시 당선시키려고 정치적 음모를 꾸미고 상대당의 사무실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적발되어 터진 워터게이트의 핵심 인물로 결국은 감옥으로 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닉슨 또한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직에서 하야해야 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습니다. 찰스가 감옥에 가자 평소 그를 위해 기도하던 분들이 C. S 루이스 교수의 단순한 기독교라는 책과 성경을 감옥으로 넣어 주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다 순간에 감옥의 나락으로 떨어진 그는 그 외로운 감옥소에서 성경과 기독교 서적을 읽으면서 점차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문자 그대로 성령으로 거듭난 인물이 되었습니다. 차디찬 감옥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로 회개하며 진정한 예수님의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출옥한 다음 해인 1976Born Again(백악관에서 감옥까지)라는 책을 써내어 세상에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2년 뒤인 1978년 이 책은 영화로 만들어졌고 백악관에서 감옥까지 간 그의 변화된 인생은 사회에 놀라운 충격과 소망을 만들어 냈던 것입니다. 이 후 찰스는 감옥에서 온 몸으로 겪으며 보았던 불쌍한 수인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겠다며 감옥선교에 선신하게 되었고 이후 그는 종교노벨상이라 일컫는 탬플턴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렇게 살아야 풀과 같고 꽃과 같은 허망한 인생의 정의를 뒤엎고 이 땅에 발자취를 남기는 멋들어진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을 외치는 대선지자 이사야에게 큰 소리고 외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인생은 풀이요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고야 만다.”고 말입니다.

인생의 본질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Thaad(사드) 즉 고고도미사엘방어체계를 둘러싼 논쟁과 투쟁이 장난 아니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설치하기로 결정된 지역인 경북 성주에서는 야당의원들과 데모하는 군중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촛불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북한이 핵탄두까지 보유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미사일을 발사하며 고귀한 생명과 재산을 파괴하겠다고 호헌하고 있는데 그것을 사전에 막아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막아보겠다고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미국이 이와 같은 무기를 배치해 주겠다고 하는데도 이를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는 데모꾼들의 진실을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인생들의 사고와 가치가 이 정도인데 과연 자신의 생명이 무엇인지, 자신의 삶이 무엇인지,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고도의 영적인 세계를 어떻게 알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와 같은 안타까운 백성들에게 외치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40:6-8)

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고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로 지금까지도 추앙을 받고 있는 모세는 고달픈 자신의 삶을 다 살고 다음과 같은 한 마디로 인생을 정의해 놓았습니다.

(90: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라고 말입니다. 우리들 중에는 지금 아주 행복한 사람도 있고 그 반대로 아주 고달픈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의 이와 같은 인생에 대한 정의는 다 같이 공감할 것입니다. 천년이 하루와 같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인생의 70-80은 참으로 한 순간에 불과한 짧은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지난 금요일 KBS-TV 아침 마당에는 연세가 지극한 연예인들이 출연하여 노후 인생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에 대한 대담을 하였습니다. 한결 같이 늙으면 외롭고 쓸쓸하니 친구를 많이 사귀고 같이 노후를 보내야 한다고 입을 보았습니다. 전원주씨가 그 말을 듣고 있다가 한 마디 하는데 공감이 갔습니다. “친구들이랑 같이 하는 것도 물론 좋은데 때로는 늙어서 꼬부라진 친구들을 보면 마치 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싫다.” 고 하면서 하루는 친구들이랑 뷔페식당으로 갔는데 자신이 음식을 가지러 가려고 일어나는데 옆 자리에 앉아 있던 친구가, “, 너 일어난 김에 내 것도 머머머 좀 갖다 주라, 일어나는 것도 영 귀찮다 야...”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단 한 사람도 예외가 없이 프랑스의 격언과 같이 태어났으면 살아가야 하는 일도 있지만 죽어야 하는 일도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짧은 한 평생을 후회하지 않고 바로 살아가려면 무엇보다도 자신의 존재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삶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삶의 마지막에는 어떻게 되는지? 에 대한 기본적인 식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제아무리 건강해도 100200세를 사는 이가 없고 제 아무리 젊어도 한 순간에 꽃이 뚝 부러지고 떨어지듯 이 세상을 떠나야 하는 순간이 오기 때문입니다.

이 종이 한 번은 먼저 이 세상을 떠난 집사님을 그리워하며 그 집사님을 장사지냈던 묘지를 찾아 가 보았습니다. 간 김에 이 사람 저 사람 묘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던 중 아주 예쁜 10대 소녀의 칼라 자신이 비석에 들어 있는 묘지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렇게 이쁘고도 화사하게 웃고 있는 소녀가 왜 이렇게도 빨리 죽어서 여기에 장사 되었는지?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교통사고로 그렇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직도 가슴 짠하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인생의 현실입니다. 그 누구도 90세까지 보장 받아 놓은 사람이 없고 그 누구도 죽지 않는다는 라이센스를 받아 놓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 누구도 내일 자신의 앞에 무슨 일이 닥칠는지 아는 사람 또한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주위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영원히 죽지 않을 것 같이 그렇게 아옹다옹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70이 넘어서도 재산도 많건마는 돈 버는데 올인하여 밤낮으로 돈을 찾아 허둥대며 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 돈 언제 다 쓰고 죽을지 걱정이 되어 잠이 오지 않습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은 지금 말씀하십니다. “네 인생이 무엇이냐, 너는 풀이요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듯 네 인생도 그렇게 되느니라!”고 말입니다. 백 번 천 번 옳은 말씀입니다. 그렇게 푸르던 풀이 한 순간에 베임을 당하고 몇 분 만에 시들어가고 말라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도 화려하고 아름답던 꽃도 어느 순간에 꺾이어지고 떨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난 주일에 김순례권사님이 순이야 권사님 댁에서 장미를 꺾었다면서 화분에 가득히 담아 제 사무실로 가지고 왔습니다. 참으로 하릅답고 향기가 진하여 좋았습니다. 그런데 한 주간도 지나지 않아 수요일 밤에 보니 고개를 푹 숙이고 시들어 있었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것이 오늘 우리들의 인생입니다. 깊은 깨달음과 생각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영원한 것과 연합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이 풀과 같고 풀의 꽃과 같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삶이 풀처럼 연악하고 유한다다는 뜻이요 꽃처럼 아름다우나 오래가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이처럼 허무하고 유한한 생명을 어떻게 오래오래 간직하며 유지할 수 있을까요? 중요한 것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에 대해서 사도 베드로가 의외로 소중한 해답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벧전1:24-25)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비록 유한하고 보잘 것 없지만 우리들이 잡아야 할 영원한 것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베드로가 말한 주의 말씀은 곧 하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로고스이기 때문입니다.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고 영원한 것이 단 한 가지도 없지만 하늘의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와 같은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렇게만 되면 하나님의 영원하심이 우리들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모래는 약합니다. 바람에도 날리며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시멘트도 마찬가지입니다. 거의 모래와 같이 바람에 날리고 푸석하여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모래와 시멘트가 물과 자갈을 만나 뭉쳐지면 100년을 버치는 강력한 콘크리트가 됩니다. 이처럼 오늘 유약하고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과 같은 우리 인생들이 영원하신 하나님과 만나게 되면 엄청난 변화를 만들어 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어디에 계십니까? 바로 우리 하나님은 말씀이 되시어 우리와 함께 하시고 계십니다. 성경 말씀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역으로 이와 같은 말씀이 없는 곳에는 언제나 인간들의 추하고 유한한 냄새가 날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 성도들에게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라고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지금부터 200여 년 전에 실제 이와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영국에서 몹시도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Fletcher Christian이라는 지도자를 단장으로 모시고 Bounty라는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그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남태평양에 있는 Pitcairn(피트컨)이라는 섬으로 이주를 하여 그곳에서 살고 있는 원주민들을 설득하여 공동사회를 만들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구속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와 평화가 있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였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이 땅의 유토피아를 기대하며 진정한 자유와 평등과 행복을 꿈꾸며 새 나라를 만들어 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9년이 채 지나지도 못해 Bounty집단 사회는 붕괴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도 평화와 자유를 부르짖었건만 그와 같은 작은 집단 사회에서 12건의 살인, 폭력, 알코올중독, 자살과 같은 범죄가 일어나기 시작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범죄의 중심에 그들이 지도자로 세웠던 바로 Fletcher Christian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의 지도자들은 상실감을 감추지 못했고 결국은 서로의 길을 찾아 흩어지는 초라한 몰골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중에 John Adams라는 지도자 중 한 사람도 영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창고를 정리하다가 우연히 책 한 권을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은 아직 한 번도 읽지 않은 새 성경책이었습니다. 쟌 아담스는 자신을 태울 배가 오기를 기다리는 2개월 동안 그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자신의 연약하고 초라한 모습을 회개하며 절대자이신 예수님을 다시 찾아 영접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자신들을 태울 배가 왔습니다. 하지만 쟌 아담스는 그 배를 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섬을 복음으로 다시 한 번 변화시켜 보겠노라며 그곳에 남았습니다.

R. B Nicholson이 쓴 쟌 아담스의 실화전기 [The Pitcairners](피터컨 사람들)에 이런 글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피터컨 섬사람들은 문명한 영국인들의 영향으로 불과 9년 사이에 술주정꾼들이 되었고 폭행자와 성적인 문란자들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쟌 아담스가 발견한 한 권의 성경책이 아담스 자신뿐만 아니라 섬 전체가 소생하는 계기가 되었다.”라고 말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존경 받는 대통령으로 남아 있는 16대 대통령 에이브라함 링컨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최대의 선물은 성경이다.”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아들처럼 사랑하였던 제자 디모데에게 다음과 같은 고귀한 말씀을 남겨두었습니다.

(딤후3:15-17)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비록 풀과 같고 풀의 꽃과 같은 유한하고 허무한 존재들이지만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전혀 다른 피조물로 태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로 하여금 이와 같은 진리를 깨닫게 하시려고 우리들에게 연약함의 한계를 주시고 또한 고귀한 성경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들은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행여 성경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오로지 돈과 세상만을 쫓아가고 있지는 않는지요? 이제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오히려 돈과 세상이 좇아 올 수 있도록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번역본 가운데 King James Version이라는 성경이 있습니다. 영국의 제임스 왕이 만들었다고 이렇게 이름이 붙여진 것입니다. 이 성경이 제임스왕의 명령으로 새롭게 출판이 되었을 때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 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던 죄수 하나가 간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최근에 제임스 왕께서 성경을 새롭게 만들어 내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성경을 한 번 읽어 볼 수 없겠습니까? 이 죄수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드리는 소원입니다.” 간수는 고민하다가 상부에 이 사실을 알렸고 결국 이 소식이 제임스 왕에게까지 보고가 되었습니다. 왕은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자신이 만든 성경을 사형수까지도 보고 싶어 한다는 보고였기 때문입니다. 왕은 기꺼이 그 성경을 넣어주라고 재가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성경을 다 읽을 때까지는 형 집행을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재수는 하루에 한 절씩 아껴서 읽기로 하였습니다. 그 성경을 다 읽으려면 31,101일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다 읽으려면 최소한 100년이 걸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황당한 보고를 받은 제임스 왕은 참으로 지혜롭고 기특한 놈이로군, 감옥에 두지 말고 출옥시켜 생활 속에서 그 성경을 읽도록 하라!” 하여 사형수가 성경 때문에 출옥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은 참으로 방대하여 하루에 한 절만 읽는다면 1년에 36510년에 3,650, 100년이 되어야 겨우 한 번 읽을 수 있는 정도의 방대한 수준입니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성경 읽고 그 속에서 지혜를 얻어 영육이 구원을 받고 이 땅에서도 천국을 누리며 사는 그런 복된 심령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비록 풀과 같은 허무하고 유한한 존재이나 성경과 연합하여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영원을 사는 기적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헌신의 달 8월에는 인생의 본질을 찾아보고 인생의 바른 도를 찾아 살같이 빠르게 지나가는 세월에 떠내려가지 아니하고 되돌아보며 후회 않는 삶을 위한 바른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을 질그릇과 같다고 하시고 질그릇을 만드는 이는 토기장이고 그릇은 그 토기장이의 마음에 따라 만들어 진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인생은 풀이요 풀의 꽃과 같다는 말씀을 받았습니다. 풀이요 꽃이면 비록 푸르고 아름답다 할지라도 유한한 존재이며 잘리고 꺾이면 그 순간에 소멸되는 허무한 존재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영원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허무하지 않도록 유한하지 않도록 영원을 추구하고 참 생명을 소유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 길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다 부패하고 인본주의로 변절되어버렸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도 살았고 그 말씀은 우리들의 썩은 영혼을 쪼개고 변화시켜 새롭게 거듭나도록 역사하시는 기적의 주체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들을 때 산이라도 옮길 수 있는 믿음을 만들 수 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세상에서 돈에서 마음을 돌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기적과 같은 믿음을 만들 수 있도록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다른 방도는 없습니다. 지름길 또한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경고하시는 말씀을 떨리고 두려운 마음으로 가슴에 새기고 풀과 같고 꽃과 같은 우리 허망한 인생이 헛되지 않도록 말씀으로 믿음을 만들며 영원을 사모하고 취득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모쪼록 귀한 날 하나님의 집으로 나아와 예배와 경배로 영광을 돌려드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에게 하나님의 선하시고 풍성한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멘

주후 2016814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

Add comment


Security code
Refre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