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2일 주일낮설교 (안아주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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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02 October 2016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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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아주시는 하나님
10. 2, 2016
本文:이사야40:6-11
說敎:崔 仁 根 牧師
우리 교회가 자체 성전을 건축하기 전에는 UW 앞에 있는 미국 감리교회를 빌려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7년 만에 우리 교회가 들어서 있는 이곳에 땅을 사고 아름답게 교회를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미국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 그 교회에 가서 그 동안 귀한 교회를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어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미국인들의 예배 시간을 통하여서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예배를 다 마치고 나오는데 길게 줄이 늘어서 있고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것입니다. 웬일인가 하고 나중에 보았더니 그 교회에 담임목사인 Rebeca 목사님이 문 앞에서 일일이 모든 성도들과 포옹을 하면서 인사를 나누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의 차례가 되자 예외 없이 “이렇게 찾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고 하면서 저를 꼭 안고 인사를 하는데 태어나서 백인 여성의 품에 처음으로 안겨본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때 한 가지 마음에 와 닿는 성령님의 감동이 있었습니다. 목사는 목자장이신 예수님을 닮아 성도들을 저렇게 감싸 안고 사랑하며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는 것이로구나!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힘들고 어려운 이민목회를 35년 동안 해 오면서 그 초심을 지키지 못하고 성도들보다 목사가 먼저 지쳐서 사랑보다는 인간의 이성과 경험으로 목회를 해 오지 않았나 하는 안타까움이 앞서는 것을 숨길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어리석고 철없는 성도들을 양을 돌보듯 그렇게 따뜻하게 품어 안으면서 옳은 길 복된 길로 인도해야 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다져봅니다. 오늘 본문인 이사야 40장에는 우리는 과연 어떠한 존재이고 우리 하나님은 또한 어떠하신 분이신지가 정확하게 기록 되어져 있습니다. 오늘 우리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남겨 두신 이와 같은 변개할 수 없는 진리를 가슴에 품고 또한 우리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에게 어떤 분이신지 바로 알아 흐트러짐이 없는 바른 신앙생활과 인생의 길을 승리하며 걸어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선 우리들의 본질이 무엇이며 하나님은 누구신지 성경이 증거 하는 그대로 한 번 가슴에 새겨보도록 하겠습니다.
(사40:6-8)
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신 우리 인생들의 본질입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제아무리 잘나도 하나님은 우리들을 풀과 같다고 하셨고 그 풀의 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는 것입니다. 누구라서 이 말씀 앞에서 “아니라”고 반문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뭐래도 우리들의 본질이 이와 같다는 사실 앞에서 부인할 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하나님은 과연 이와 같은 우리들 앞에서 어떠하신 분이신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40:10-11)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이 말씀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 풀과 풀의 꽃 같은 우리 인생들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풍성하신 모습입니다. 그것은 곧 은총이요 능력이요 사랑입니다. 이 말씀을 가감 없이 그대로 “아멘”하고 받으면 복이 될 줄 믿습니다.
안아주시는 하나님
가세끼(化石)라는 일본 영화가 있습니다. 50대의 한 사나이를 클로우즈업 해서 자세하게 그 내면을 묘사한 그런 영화입니다. 이 사람은 빈손으로 사업을 시작하여 재벌이 됩니다. 그러나 유럽 여행 중에 자신이 심각한 병에 걸려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신을 수행하고 있는 비서에게 결려 온 병원에서의 전갈을 엿듣게 됩니다. 자신은 지금 말기 암에 걸려 있으며 길어야 1년도 채 살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그는 자포자기와 허무와 절망과 좌절에 빠져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모든 것들이 순간에 다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파리의 한 공원에서 만난 한 여인의 사랑이 그러한 그에게 다소간의 위로와 힘이 되어줍니다. 마지막 남은 생명이 1년 밖에 없는 그 순간에서야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잘못 살아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비록 재벌은 되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자신이 살아 왔던 방식들은 결코 자랑할 만한 것들이 되지 못했습니다. 돈은 얻었지만 사람들과 소중한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그른 참으로 오랜 만에 자신을 키워 주었던 계모를 찾아가 깊이 고개를 숙이고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이 땅에 단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찾아 한 밤을 함께 보내면서 형제의 정을 나눕니다. 그리고 군대에서부터 만나 친구가 되었던 그리운 친구를 찾아 회포를 풉니다. 그의 귓전에는 먼저 이 세상을 떠난 아내가 남겨 주었던 성경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전1:2)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2:11)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
는 말씀들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컸으면 이렇게도 나밖에 모르며 돈에만 눈이 멀어 세상 모든 사람들 앞에서 안아무인이었던 나를 지금까지 살펴주시고 더할 수 없는 풍성한 축복을 주셨을까? 생각하면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얼마 안 남은 나의 생명을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을 골똘히 생각하면서 이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 영화의 주인공만 이렇게 세상을 떠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우리 모두가 그렇게 잠시 잠깐 후면 이 세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이와 같은 우리 인생들을 향하여 풀이요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진다고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이셔서 이와 같은 우리들을 그냥 불쌍하게만 보시지 않고 삶에 깊이 개입하셔서 말할 수 없는 은총으로 앞날을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은 그것이 과연 무엇인지 오늘 본문이 증거 하는 대로 살펴보면서 은혜와 축복을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아무런 공로도 없이 오로지 우리 자신만을 위해 그 소중한 시간과 재물과 축복들을 낭비하며 살아가는 부족한 우리들인데도 하나님은 아랑곳 하지 않으시고 우리들에게 다가 오시고 마치 목자가 양을 치듯 엄청난 사랑과 은총으로 역사해 주십니다. 그것이 과연 무엇인지 살펴보면서 함께 들을 귀를 가지고 말씀에 풍성한 위로와 소망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먹여주시는 하나님
오늘 본문 말씀 속에 등장하시는 하나님은 참으로 은혜와 사랑이 가득하신 실제적인 하나님으로 나타나십니다. 정신을 차리고 오늘 본문에서 증거해 주시는 하나님을 가슴으로 받는다면 우리들의 삶에 놀라운 반전이 될 것입니다. 우선 성경 말씀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40:11)
그는 목자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하나님은 목자같이 양무리를 먹이신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친히 먹이신다는 뜻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이미도 우리 예수님께서 이를 손수 모범을 보이시며 실천하셨던 진리입니다.
(요21:12-13)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저희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는 말씀이 그 생생한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허기진 제자들을 먹이신 그 배경은 무엇입니까? 우리들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잡히셨을 때 그 면전에서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맹세하고 저주까지 하고 떠나 가버린 후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조차도 버리고 갈릴리로 되돌아가 물고기를 잡고 있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친히 그 자리에 찾아가시어 아침상을 마련하시고 먹이신 사건입니다. 무엇입니까? 배신자를 친히 용서하시고 떡을 구우시고 생선을 구워서 아침상을 마련하시고 그들을 먹이신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돈을 벌고 밥을 지어 먹고 사는 줄 알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돈을 번다고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몸이 건강하다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 또한 아닙니다. 우리들에게 돈을 벌 수 있도록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요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건강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양무리를 먹이시듯이 먹이신다는 말씀을 맞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감사하며 그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줄 아는 사람이 바로 성도들입니다. 우리는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들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자손들도 친히 먹여주시기를 간절히 소원해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우리들이 능력이 있어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AP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이 지구촌에서는 24시간 만에 3만 여명이 굶어서 죽고 10만 내지 12만 명이 영양실조에 의해 병들고 있다고 합니다. 전 세계의 80%가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배고픔에 허덕이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주지의 사실입니다. TV에서는 이와 같은 사실을 입증이라도 해 주듯 앙상한 뼈만 남은 어린아이들, 배만 불룩하게 나온 사람들, 퀭하게 눈이 들어간 채 해골 같은 얼굴을 하고 힘없이 누워 있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심심찮게 브라운관을 채우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래 전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비록 그가 군인 출신이었지만 이와 같은 비참한 인간상을 걱정하며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씀을 남겼습니다.
“총 한 자루가 만들어 질 때마다, 군함 한 척이 만들어져 진수할 때마다, 로켓트 하나가 발사 될 때마다 굶주린 인간들은 도둑을 맞는 것입니다”
고 말입니다. 당장 북한 김정은이를 한 번 모십시오. 산에 나무 한 그루가 없는 고로 지난 홍수로 산사태가 나서 동네와 군대가 있는 막사를 그대로 밀고 지나가 사람이 얼마나 죽었는지도 모르는 처참한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죽은 시신이라도 찾아내야 할 통수권자가 거기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고 흙탕물에 묻히고 떠내려간 소
충과 무기를 찾으라고 명령하여 밤새도록 땅을 파고 진흙을 뒤져 무기와 소총을 찾았다는 보도는 처참한 지도자의 참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나라의 백성들이 3백만 명이라 굶어 죽어 가는데도 핵무기를 만드는 데만 혈안이 되어 천문학적인 돈을 거기에 쏟아 부어 왔던 사실이 들어나 전 세계가 공분하고 있습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우리들을 먹이고 살리는 것은 결코 나라도 지도자도 아닌 하늘의 우리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바바라 워드는 전 세계가 군비에 투자하는 돈을 단 5%만 줄여도 불과 10년 이내에 지구촌에서 굶어서 죽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보고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이야 굶어 죽든 말든 전 세계는 무기 생산에 목숨을 걸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매년 미국이 술을 만드는데 쏟아 붓는 곡식만도 6억 달러가 넘는다고 하니 이 술만 안 만들어도 굶어 죽는 사람들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풀과 같은 우리 인생들을 먹여 살리는 것은 하늘의 하나님뿐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서 친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는 목자 같이 양무리를 먹이신다.”고 말입니다. 할렐루야!
안아주시는 하나님
우리 인생들은 밥만 배불리 먹었다고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실제로 실험을 해 보았다고 합니다. 고아원에 있는 아이들을 선별하여 가정집과 꼭 같은 환경으로 먹이고 입이고 공부하는 여건을 충분히 제공하여 주고 일반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과 무엇이 다른가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의 심리상태는 가정집에서 자라는 아이들과 확연하게 다르더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는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겠습니까?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환경이나 먹는 것이나 입는 것이 아무리 충족되어도 그들은 엄마와 아빠로부터 받는 사랑이 결핍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일찍이 이와 같은 사실을 잘 아시고 우리들에게 믿음도 필요하고 소망도 좋지만 그 중에서 제일은 사랑이라고 선언하셨던 것입니다.
(고전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은 과연 어떻게 우리들을 먹이시고 인도하시는지 그 구체적인 모습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안아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사40:11)
그는 목자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안아주시는 사랑이십니다. 그것도 아무런 조건도 없이 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지극하신 하나님의 이와 같은 사랑에 감동 되어 일생을 그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는데 헌신하고 바쳤던 것입니다. 그가 가장 하나님의 그와 같은 사랑에 감동 되었던 내용을 그가 쓴 편지에서 찾아 볼 수가 있는데 바로 다음과 같은 말씀입니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는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사랑해 주시되 아무런 조건이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우리가 이직 되인 되었을 때에” 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참으로 이 말씀은 묵상하면 할수록 가슴이 뭉클해지는 고귀한 말씀입니다. 어떻게 죄를 짓고 형편없는 나락에 떨어져 있는데도 가슴에 품어 안고 사랑해 줄 수가 있겠습니까?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 방식입니다.
우리는 자기가 낳은 아이도 울면 안 보려고 합니다. 거의 대부분의 아빠들은 생글생글 웃을 때는 아이를 잘 보다가도 보체고 울면 그만 엄마에게 넘기고 맙니다. 그것은 양무리를 대리로 맡아 사랑해야 할 목사인 저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말썽 안 부리고 하나님 잘 섬기고 충성하는 일꾼들은 사랑하고 이뻐해도 말썽부리고 예배에 잘 안 나오고 헌금도 안 하고 봉사도 안 하면 쳐다도 안 보려고 했던 어린 시절의 목회를 뒤돌아보면 부끄럽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을 사랑하시되 아무런 조건도 없었고 오히려 죄인 되어 있는 그 때에도 하나님은 다가와 주시고 두 팔을 벌리시고 우리들을 품어 안아 주셨습니다. 눈물 나도록 감동 되는 말씀이라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그랬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처럼 푸근한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이 미국까지 와서 스스로 살아가려고 몸부림치다가 아이들도 제대로 못 키우고 이웃들과 인간관계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한 채 그렇게 세월을 다 보내버린 우리들의 모습이 오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식들에게조차 인정을 받지 못한 채 그렇게 속속들이 상하고 찍힌 채 외로운 나그네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들이 이 땅에 와서 흘린 눈물을 알아주겠습니까? 누가 우리들의 텅 빈 가슴을 채워줄 수가 있겠습니까? 어쩌면 아무도 없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렇게 저마다 가슴에 작은 산을 하나씩 안고 혼자서 싹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주 작은 문제만 생겨도 그것을 이겨내지 못한 채 폭발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들을 조용히 찾아 와 한 마디 말도 없이 아픈 가슴을 어루만지시며 꼭 안아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그 분이 우리들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들에게 조용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잠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고 말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우리 하나님을 떠나면 안 됩니다. 그 사랑을 소홀히 여겨서도 안 됩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 줄 사람이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찾으면 만나 주시고 구하면 응답하시며 우리 곁에 머물고 계십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비록 외롭고 힘든 삶이지만 끝까지 승리해야 합니다.
인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기분 좋은 때 어쩌다가 한 번 안아주시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을 이 땅에서 천국까지 인도하시고 천국에서도 영원토록 함께 하시는 그런 하나님이십니다.
(시121: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사40:11)
그는 목자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은 지금까지도 인도해 주셨지만 앞으로도 영원히 인도해 주십니다. 이것은 사람도 아닌 하늘의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이므로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들의 삶을 이와 같은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 시간에 내비게이션에 대해 말씀 드렸습니다. 참으로 낯선 길을 처음 갈 때는, 그것도 저와 같이 예배 설교를 위해 시간에 꼭 맞추어서 가야만 할 때에는 매우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만약에 길을 잃어버리기라도 한다면 보통 낭패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주소를 쳐 넣고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라 가면 거의 99% 목적지에 정확하게 도착하게 됩니다. 하늘 높은 위성에서 내려다보고 길을 안내하기 때문에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의 내일은 참으로 아무도 모릅니다. 언제 무슨 일을 만나게 될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TV 프로가운데 “Black Box"라는게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인고 하니 한국의 모든 차는 블랙박스가 붙어 있어서 사고 당시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 프로는 이와 같은 자동차 사고만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누가 잘못하였고 보상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실제상황이기에 재미도 있고 유익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영상을 보면 가장 무서운 사고가 바로 졸음운전이나 음주운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고들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도 이웃도 거의 사망에 이르게 되고 자동차는 휴지조각처럼 박살이 나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들을 보고 있노라면 인생이라는 게 참으로 아무 것도 아니게 순간에 죽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매한 우리 인생들은 순간에 닥치는 이와 같은 사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오늘과 내일을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보장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목자로 비유해서 목자가 양을 지키고 인도하듯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인생을 지키시고 인도하신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시23:1-3)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고 말입니다. 실제로 다윗의 일생은 그의 고백대로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가 들판의 목동에서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 되었던 것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고 사울 왕의 손아귀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으며 아들 압살롬의 반역에서도 폐하지 아니하고 왕권을 회복 받을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인도하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도 많은 전쟁터에서 적의 손에 죽지 않고 살아남을 뿐 아니라 백전백승할 수 있었던 것 또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이렇듯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녀들의 불투명한 내일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인도해 주셔야만 안전하게 살 수 있고 승리하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놀라운 축복을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시고 인도하시니 우리 성도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안전하고 건강하고 행복하다고 안일무사하게 살아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만큼 더 긴장하고 감사하고 충성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목회 일선에서 경험하는 바로는 숱하게도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이처럼 엄청난 축복을 받아 놓고 그만이야 망하고 마는 경우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캐나다에서 서식하는 수십만의 오리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 미국 남쪽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그들은 내려오는 도중에 쉬기 위해 나이아가라 강에 내려앉습니다. 그곳은 거의 유속도 없고 먹을 것도 풍부하여 그들의 중간 기착 점으로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그곳에서 잠시 머물다 떠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곳에서 엄청나게 많은 오리들이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나이아가라 강에서 먹을 것도 많고 좋은 온도와 잔잔한 유속에 여유작작하며 방심하다가 순식간에 나이아가라 폭포로 떨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일진데 미련한 우리 인생들이 그것을 망각하고 돈 좀 벌어 두었다고 세상에서 좀 출세께나 했다고 남보다 나은 것이 좀 있다고 교만하고 방심하다가는 큰일 나는 것입니다. 나이가라 폭포의 오리들과 같이 순식간에 망하는 길에 떨어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잠시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말고 깨어서 기도하고 말씀으로 무장하여 하나님을 섬기되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이웃을 섬기되 변덕이 없어야 합니다. 인간관계를 유지하되 겸손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값없이 하나님으로부터 넘치는 사랑을 받았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거룩한 손으로 이 순간까지 인도하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어느 덧 10월 상달을 맞았습니다. 2016년도의 마지막 분기를 맞은 것입니다. 이제 석 달만 지나면 올 해도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 모두 정신을 차리고 풍성한 영육간의 열매를 맺혀야 하겠습니다. 열매 없는 나무보다 더 초라한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들을 오늘날까지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고 그 사랑에 화답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보람된 앞으로의 삶을 위해 오늘은 하나님의 그 풍성하신 사랑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먹여주신다고 하셨고 사랑의 품으로 안아주신다고 하셨으며 영원히 우리들의 삶을 인도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이 보다 더 큰 축복도 없을 것입니다. 이것을 작은 것으로 여기고 소홀히 여기거나 잊어버리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리석은 인생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기며 그렇게 헛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고백하며 지금까지 먹여주시고 안아주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순간도 잊지 말고 그 사랑에 화답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모쪼록 복된 10월 첫 주일에 예배자로 하나님 앞에 나아온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하나님의 이와 같은 놀라운 사랑에 화답하고 그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그런 귀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좋으신 우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멘
주후 2016년 10월 2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