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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20일 주일낮설교 (어느 도망자의 감사)

어느 도망자의 감사

추수감사주일

11. 20, 2016

本文:창세기28:10-22

:

 

5천만 대한민국 백성들 중에서 자살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았다는 사람은 6.4%로 거의 3백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살을 심각하게 생각하게 된 배경은 그 첫 번째가 경제적인 어려움이라고 대답하여 생활고로 자살하려는 사람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빈부의 격차는 갈수록 심해져 이와 같은 불행한 자살의 늪에서 헤어 나오기는 더욱 더 어려워질 전망입니다. 그렇잖아도 OECD 국가들 중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라는 오명을 쓰고 하루에도 43-46명이 자살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서도 이와 같은 처절한 삶의 한 단면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식구도 많지 않아 4식구밖에 안 되는데 아버지는 첫째 아들을 사랑하고 어머니는 막내아들을 사랑하는 편애가 극심하다가 결국에는 장남이 차지해야 할 축복까지 가로챘다가 살인극이 벌어질 정도로 상태가 심각해지자 어머니는 막내를 몰래 빼돌려 머나먼 곳에 있는 친정 오라비에게 부탁하고 도망을 시키게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그렇게도 형의 축복을 다 빼앗고 도망가는 그 막내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나타나시고 엄청난 축복을 보장하시게 됩니다. 그와 같은 기적을 본 어린 아들은 자신의 먼 여정에 꼭 있어야만 하는 여행 경비인 기름병을 열고 자기에게 나타나신 하나님 앞에 부어드리며 감사와 경배를 드리게 됩니다. 오늘은 이와 같은 역사적인 사건을 통해서 우리 인생의 본질과 감사에 대한 진리를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특별히 오늘은 2016년도 추수감사주일을 맞아 우리들의 인생을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으며 우리들의 인생과 하나님의 임재에 관한 측량할 수 없는 은혜를 어떻게 보답하며 살아가야 할는지, 말씀을 통해 공감해 보고 사는 날 동안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짧은 인생을 행복하고 소망이 넘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그 방도를 함께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느 도망자의 감사

이삭과 리브가는 참으로 이상형으로 만나 누구보다 따뜻한 가슴으로 서로 사랑하며 잘 살았습니다. 하지만 가장 소중한 자식이 없어 그들은 늘 허전하게 살아가야 했으며 이를 위해 참으로 간절하게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지성지감천이라 하나님은 그들의 그 간곡한 기도를 들으시고 쌍태를 허락해 주셔서 쌍둥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형은 에서로 동생은 야곱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어쩐지 형은 사내답고 활동적이어서 사냥에 관심을 가지고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는 아들이 되었고 동생은 그 반대로 여성스럽고 조용하며 집에만 맴도는 내성적인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끼고 돌았고 아버지 이삭은 용맹한 큰아들을 총애했습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고 이삭도 많이 늙어 앞을 잘 보지 못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정신이 온전할 때 큰아들을 축복하기 위해 에서에게 명령을 하였습니다. “에서야, 이제 이 애비도 많이 늙었고 언제 세상을 떠나야 할지 모르겠구나. 조금이라도 정신이 온전할 때 너를 축복하기 원하니 너는 정성껏 사냥을 하여 이 애비에게 성의를 다 하거라. 그리하면 내가 너를 축복하겠노라.” 고 말입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버지 이삭의 이와 같은 분부를 그 아내 이브가가 엿듣고 자기가 총애하는 아들 야곱이 아버지의 그 축복을 받도록 꾀를 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 리브가는 눈이 어두운 남편 이삭의 약점을 이용하여 동생 야곱을 형처럼 꾸며 에서 대신 아버지의 축복을 받도록 하였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이삭은 동생 야곱을 형 에서인줄 알고 모든 축복을 다 하게 됩니다. 나중에 이와 같은 사실을 안 아버지 이삭과 장남 에서는 기절초풍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미 축복은 다 끝나버린 다음이었습니다. 이에 격분한 큰아들 에서는 자기의 축복을 다 빼앗은 동생 야곱을 죽이기로 결심합니다. 이 사실을 안 어머니 리브가는 신속하게 아들 야곱을 빼돌리고 아무도 모르게 머나먼 곳 하란에 있는 자신의 친정 오라비에게 아들 야곱을 보냅니다. 그렇게 부모형제를 떠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먼 여행길에 오른 야곱이 그 첫 밤을 들판에서 유숙하게 되는데 그 때의 상황이 우리들이 함께 읽은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서너 가지의 교훈을 배우게 됩니다. 함께 가슴으로 말씀을 받으며 감사절의 매세지로 오래토록 간직하시고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삭의 가정을 통해 우리 인생의 본질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땅에는 무려 70억이라는 천문학적인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연 이렇게도 많은 사람들은 선하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아니면 악하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우리는 이에 대한 해답을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이삭의 가정을 통해서 얻어 보려고 합니다. 가정은 사회의 구성단체 중에서 가장 작으면서도 가장 기본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4식구 밖에 안 되는 가장 작은 단위로 구성된, 한 몸을 이룬 부부이고 한 피를 받은 형제이며 부모와 자식으로 꾸려진 이삭의 가정을 들여다보면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본질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들은 형편없는 가정이었습니다. 이삭이 늙고 눈이 어둡다는 약점을 이용하여 자기가 좋아하는 아들을 하나씩 끼고 벌이는 쟁투는 참아 가정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장남을 좋아하고 어머니는 막내를 좋아하며 부부는 남남처럼 되어 있는 이 집안의 모습이 바로 오늘 우리들의 숨길 수 없는 삶의 본질입니다. 서로의 약점을 이용하여 서로의 유익만을 챙기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이 모습이 바로 오늘 잘 숨겨진 우리 인생의 본연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결국에는 살인극이 벌어지기 직전까지 가버렸고 피하고 추격하는 끔찍한 결론을 만들어 내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외삼촌댁으로 피신 가서 거기에서 생활하는 야곱의 삶에도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도 아닌 외삼촌이 피신 와서 불쌍하게 살아가는 조카의 품삯을 열 번이나 속였고 참다못한 야곱 또한 외삼촌의 재산을 교묘하게 자신의 것으로 빼돌리고 끝내는 야반도주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와 같은 때를 중심으로 수천 년이 지난 오늘 우리들의 모습을 한 번 살펴보도록 하십시다. 우리 대한민국에서는 최순실이라는 게이트로 박근혜 대통령이 밤낮으로 물러나라, 하야하라, 탄핵하라는 대모와 불신과 매도로 나라가 파산 직전까지 굴러가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미국도 전혀 예외가 아닙니다. 힐러리와 트럼프는 대선 유세 때부터 사자와 호랑이처럼 서로를 잡아 죽이지 못해 아우성들이었고 대선이 끝나고 난 다음에도 트럼프는 우리의 대통령이 아니다!”고 아우성치며 고등학생, 대학생들을 막론하고 전국적으로 대모를 하고 난리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입니까? 오로지 자기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하는 이삭의 가족들의 모습을 그대로 재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인생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간단하면서도 이 세상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삶의 원칙과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당당하게 선포해 주셨습니다.

(10: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 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고 말입니다. 이렇게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 인생들이 예수님의 이와 같은 말씀을 그 곁에서 3년씩이나 따라다니며 보고 배웠던 제자들조차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자신들의 곁을 떠나 자꾸만 죽으러 가신다는 예수님께 단도직입적으로 따지고 들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19:27-29)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타락한 인생들의 본질인 것입니다. 오로지 자기 자신의 유익만을 먼저 챙겨야 하는 습성 말입니다. 이와 같은 마음에는 결코 감사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챙겨야만 당연하고 챙기지 못하면 망한 것으로 아는 한 감사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정 반대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16:24-25)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누가 이렇게 살아갑니까? 누가 자신을 부인합니까? 누가 십자가를 지려고 합니까? 누가 제 목숨을 버리려 합니까? 아무도 그렇게 하려고 흉내조차 내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원망과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어떻게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감사절이 수십 번이나 우리 앞을 지나갔지만 그 감사절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들의 본질이 바뀌어야 합니다. 나 중심, 나의 유익, 나의 자아를 부인하고 우리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피를 쏟으시며 죽어 가신 예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희생하신 주님과 하모니를 이루고 주님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절은 우리들의 본질을 발견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먼저 선험 되어야 하는 계절인 것입니다. 진정한 감사는 외면적으로 무엇을 하는 가가 아니고 내면적인 속사람이 변화를 받아 하나님을 향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야곱에게 엄청난 축복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참으로 놀라운 광경을 목도하게 됩니다. 그것은 야곱의 행위와 전혀 상반 되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축복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28:10-15)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아버지를 속이고 형을 속이고 아버지의 약점을 이용하여 엄마랑 합작하여 형의 축복을 다 빼앗고 도망가는 그 사기꾼에게 어떻게 하나님은 이렇게도 놀라운 축복을 아무런 조건도 없이 내려주셨을까요? 성경 어디를 살펴보아도 야곱이 왜 이렇게 조건 없는 축복을 보장 받았는지 그 해답이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이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감사주일을 맞아 이렇게 하나님의 전에 올라와 예배를 드리고 예물을 드리는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야곱이 받는 것과 동일한 축복입니다. 장차 우리들이 들어가 살 천국은 황금보석으로 꾸며진 입이 떡 벌어질 그러한 곳입니다. 우리들에게 무슨 공로가 있어 이렇게도 놀라운 미국, 그것도 살기 좋은 시애틀에서 이처럼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축복을 누리고 있습니까? 그리고 이 세상 떠날 때 무슨 공로로 황금보석으로 꾸며진 천국을 상속 받게 됩니까? 이것은 야곱이 받은 것과 비교도 되지 않는 엄청난 축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만 사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무조건 범사에 감사를 드려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께 범사에 감사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원하시는 거룩한 뜻인 것 또한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들에게 이처럼 넘치는 축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우매하고 욕심 많은 우리들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상의 인격이요 신앙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제정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단편소설로 하나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그 앞에서 지음 받은 사람은 무엇인지? 에 대한 해답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천사에게 명령하십니다. “지금 너는 지상으로 내려가 방금 아기를 낳고 그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한 어머니를 내게로 데리고 오너라.” 하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고 지상으로 내려와 그 집을 찾은 천사는 너무나도 놀랐습니다. 그 집은 너무나도 가난하여 방금 아기를 낳은 산모가 밥도 먹지 못하고, 방에 불을 때지 못해 방은 어름장같이 차가운 그런 자리에서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었습니다. 먹은 것이 없어 젖이 나오지 않자 아이는 배가 고파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얼굴은 부어서 푸석푸석하고 먹지 못해 허기진 그 여인을 천사는 도저히 하나님께로 데리고 갈 수가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방금 태어난 그 아이가 엄마가 없어지면 금방 죽을 것만 같아서 더 더욱 그 불쌍한 엄마를 데리고 가지 못한 체 그냥 빈손으로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하지만 그 천사는 하나님의 명령을 다시 받아 지상으로 내려 왔고 결국에는 그 어머니를 데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왔으나 명령을 어긴 죄로 지상으로 추방이 됩니다. 그리고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지? 그 해답을 3가지로 찾으면 그 때 천상으로 올 수 있도록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명령을 또한 받았습니다. 순간에 세상으로 쫓겨나온 천사는 너무나도 외롭고 배고프고 힘들었습니다. 거리를 기웃거리다가 돋보기안경을 쓰고 구두를 수선하는 한 구둣방의 할아버지를 보고 천사는 생각했습니다. ‘저렇게 인자해 보이니 사정을 말하고 부탁하면 거두어 줄 것 같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 가게로 들어가 사정을 이야기 하고 열심히 일 할 터이니 오갈 데 없는 불쌍한 자신을 거두어 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할아버지는 내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지만 오갈 데가 없다니 함께 살아보자고 하시며 선선히 받아 주었습니다. 너무나도 감사하여 그 천사는 최선을 다해 그 할아버지를 섬길 것을 다짐하며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지 그 첫 번째 해답을 찾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어느 날 아주 거만한 왕자 한 사람이 많은 신하들을 거느리고 구두를 맞추러 왔습니다. 그런데 천사가 보니 그 왕자는 곧 죽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할아버지를 윽박지르며 최고급 가죽으로 3년을 신어도 떨어지지 않도록 단단하게 잘 만들라고 거만하게 굴었습니다. 그때 천사는 두 번째 해답을 발견하였습니다. “사람은 내일을 모르고 사는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또 열심히 일하는데 어느 날은 아주 고귀한 귀부인이 천사 같은 딸의 손을 잡고 구두를 맞추러 왔습니다. 그런데 천사가 보니 그렇게 고운 천사는 자기가 그 어머니를 데리고 가고 혼자 이 땅에 넘겨졌던 몇 년 전의 그 아이였습니다. 순간 천사는 깨달았습니다. “, 사람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이로구나!”하고 말입니다. 바로 그 순간 천사의 어깨에 날개가 돌아나고 하늘나라로 훨훨 날아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삽니다. 결코 우리들의 돈이나 명예나 성공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야곱처럼 조건 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 앞에 겸손히 엎드려 감사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야곱은 모든 것을 다 바쳐 감사를 드렸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참으로 놀라운 어린 야곱의 모습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는 비록 어렸지만 그리고 그 누구도 곁에서 충고나 가르침을 주지 않았지만 하나님 앞에서 놀라운 결단을 하고 엎드려 감사를 드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8:16-22)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 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본 이름은 루스더라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야곱은 비록 어렸지만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그 풍성한 은혜를 결코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가장 소중한 것, 여행할 때 화폐가 없었던 그 때는 작은 분량으로 값이 비쌌던 기름을 소지하고 다녔는데 생명과 같은 그 기름을 다 부어드리고 하나님께 감사제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고 지어 자신이 엎드려 경배 드리고 감사드렸던 그 지역을 하나님의 집으로 명명하였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결심이요 결단입니까?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야곱은 그곳에서 다짐하고 결단하고 서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여기에 기름을 부어 드렸던 돌은 하나님의 성전이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십분지 일을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고 하였습니다. 그 옛날에 그렇게도 어린 나이에 이처럼 서원하고 결단한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어도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렇게도 어리고, 또한 낯설흔 곳에서 혼자 체험한 하나님 앞에 이렇게도 똑 부러지게 결단하는 것을 보면 과연 그는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여기에서 약속하신 그대로 야곱을 품안에 품으시고 사는 날 동안 축복을 아낌없이 쏟아 부어 주셨던 것입니다. 그의 열 두 아들이 이스라엘의 뿌리가 되었고 어디로 가든지 그를 눈동자 같이 보호하시어 외삼촌 라반에게서 그리고 그의 형 에서에게서 보호하시고 인생 말년에는 그가 가장 사랑했던 요셉으로 인해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고 보람된 삶을 보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결코 우리 힘으로만 우리들의 인생을 유복하게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눈에도 보이지 않는 우리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지켜주심과 풍성케 하시는 은총을 덧입어야만 우리 인생을 유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고귀한 축복을 기대한다면 오늘 우리들도 한 가지로 야곱과 같이 진심어린 감사와 예배를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복된 삶을 살아가는 팁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고 말입니다. 목회를 오랫동안 하면서 느끼는 하나의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서까지 진실하지 못한 체 자꾸만 하나님을 속이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온전한 십일조와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지켜보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한 가지 중요한 팁을 또 가르쳐 주셨는데 그것은 바로 신령과 진정입니다.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머리털만큼이라도 숨김이 없어야 합니다. 유리알 같이 맑고 투명하여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들이 심은 대로 거두도록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은 2016년도 추수감사주일입니다. 그저 절기로, 행사로 보내서는 안 되겠습니다. 진심으로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들의 본연의 모습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자신을 모르고서는 하나님은커녕 남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본질을 알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축복이 그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의 축복이 고귀하고 감격하게 느껴질 때 비로소 감사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잘 되면 자기 탓이고 못 되면 남의 탓으로 원망이나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신 은총을 덧입을 수가 있겠습니까? 야곱이 그렇게 야비하고 사기꾼처럼 행사하고서도 하나님의 조건 없는 놀라운 축복을 체험하고서야 변하는 것을 보면 오늘 우리들도 하나님의 진정한 은혜를 깨달아야만 감사로 변화를 받을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눈을 열어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면 지금 이 땅에 건강하게 살고 있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죽도록 감사하며 충성해야 할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고상한 인격자는 감사하는 사람이요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불평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들만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야곱처럼 결단하고 가장 소중한 그것으로 감사제를 드리는 진실이 있는 심령들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모쪼록 2016년도 감사주일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에게 야곱에게 나타나셨던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풍성한 축복이 가득하게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61120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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