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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4일 주일낮설교 (만남의 축복)

만남의 축복

12. 4, 2016

本文:창세기41:37-45

:

 

지금 우리 조국 대한민국은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불안 속에 휩싸인 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대통령까지 되었으나 박근혜 대통령은 사람 하나 잘 못 만나 개인은 물론이고 한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려서부터 만나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받았던 최태민과 그의 딸 최순실씨로 인해 국정문란이라는 엄청난 올가미를 뒤집어쓰고 대통령 자리도 내 놓아야 할 정도로 국민의 공분을 싸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대통령이라는 아버지로 인해 친구도 제대로 사귀지 못한 체 불운한 시절을 보내고 막상 대통령까지 되었으나 그와 함께 할 좋은 사람을 그는 만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녀가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니며 좋은 신앙인들을 만났다면, 그리고 더 나아가 지혜의 왕 예수님을 만났다면 저렇게 허망한 인생으로 낙인을 찍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남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그렇게도 중요한 것입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성공적일수도 있고 이처럼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는 망하는 길로 들어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교의 불가경에서는 우리 기독교의 사랑과 정 반대의 말을 남겨 두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만나지 못해 슬프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는 것이 사랑하지 말아야 할 이유라고 합니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일말의 공감도 되는 말입니다. 하지만 기독교에서 하나님은 사랑은 물 흐르듯 좋은 사람을 만났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원수일지라도 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바른 신앙생활이 어려운 것입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만남이 잘 이루어진 사람은 행복하게 살아가게 되나 반대로 이 만남이 잘못 되면 평생을 불행하게 살아야 하고 심지어는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만남입니다. 평생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그 수많은 사람들이 다 좋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그 많은 사람들이 다 나쁘지만도 않을 것입니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들을 다 만나고 살아가는데 그런 환경 속에서 어떻게 성공적이고도 멋들어진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것이 바로 삶의 지혜요 믿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들에게 이에 관한 아름다운 교훈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인생 여정에 만나는 그 숱한 사람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사랑하여 인생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해답을 제공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요셉입니다. 그는 태어남으로 좋은 부모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의 아버지는 14년이라는 긴 세월을 투자하고 얻었던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통해서 첫 아들을 얻게 됩니다. 그가 바로 요셉이었습니다. 야곱은 네 아내들을 통하여 12명의 아들을 두었지만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여인이 낳아 준 요셉을 가장 총애하고 사랑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태어나자 말자 사랑의 보금자리를 품에 안고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으며 자라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화근이었습니다. 배다른 형제들이 그를 시기하여 아버지의 그와 같은 사랑에서 그를 빼앗아 내고 머나먼 타국으로 팔아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여 요셉의 파란만장한 생의 새로운 역사가 펼쳐지게 됩니다. 하지만 요셉은 그 많은 좋고 나쁜 사람들을 통해 승리하는 인생을 획득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환경과 악한 사람들의 영향에서 오히려 승리하고 성공하는 자리에 오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렇게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누구를 탓하면서 소중한 우리들의 인생을 낭비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남의 축복

오늘 말씀의 주인공인 요셉은 좋고 나쁜 사람들을 만나며 성공한 가장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요셉과 같이 짧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좋고 나쁜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 누구도 평생토록 좋은 사람만 만날 수 없고 반대로 나쁜 사람만 만나며 살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만나는 사람들 때문에 성공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반대로 인생을 망쳐버리는 사람들도 또한 많이 있습니다. 교회에 나갔다가 나쁜 사람을 만나 피해를 보았다고 평생 교회를 등지고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민 와서 한국 사람에게 사기를 당하고 손해를 보았다고 평생 한국 사람을 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가 엄청난 고통과 피해를 입은 여성이 평생토록 남자를 안 사귀며 살아가는 여인들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교회 순이야 권사님은 교통사고를 당하고 무서워 평생 핸들을 놓고 운전을 하지 않은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과연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다 잘못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형들입니다. 오늘 본문의 요셉을 통하여서 우리는 오늘 우리들의 그릇된 고정관념을 뛰어 넘어 요셉처럼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배워야 하고 그래서 우리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두 마리의 개를 키우며 살아간다고 합니다. 그 두 마리의 개 이름은 편견과 선입견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가슴에 품고 있는 한 우리는 결코 요셉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 두 마리의 개를 과감하게 던져버리고 요셉을 통하여서 신선하고도 멋들어진 인생을 새롭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요셉은 좋은 사람 악한 사람들을 통하여서 오히려 성공의 길로 다가서게 되었고 오늘 본문의 내용과 같이 결국에는 당대 최고의 나라였던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어 왕의 바로 다음 자리에까지 당당하게 설 수 있었던 인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방년 서른 살에 말입니다. 함께 공부하면서 우리들도 편견과 선입견을 버리고 악하고 선한 사람들로 인해 우리들의 인생이 더욱 풍요롭고 멋들어진 삶이 될 수 있도록 지혜와 믿음을 터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을 선용하라!

인생여정은 전기의 생성과졍과도 같습니다. 전기는 플러스 마이너스가 교차하면서 엄청난 동력을 만들어 냅니다. 플러스와 플러스끼리는 서로 밀어내고 플라스와 마이너는 서로 잡아당기는 원리를 이용하여 모터가 돌아가고 엄청난 동력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도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하는 대상이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라면 이것을 역 이용하여 우리들의 인생에서 성공의 저력으로 삼아 동력으로 이용하면 되는 것입니다. 요셉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의 인생 역정을 뒤돌아보면 악하고 선한 사람이 전기의 플라스와 마이너스처럼 교차하여 나타나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좋은 부모님을 만나 온갖 사랑을 독차지 하고 살았으나 악한 형들을 만나 그 부모님으로부터 격리 되고 어린 시절에 타국의 종살이를 해야 하는 말할 수 없는 고난의 자리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 좋은 주인 보디발을 만나 가정 총무로까지 승진하며 다시 총애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 주인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하며 다가 왔습니다. 믿음 좋고 선량한 요셉은 극구 그와 같은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뿌리치다가 그 악한 여자의 모함으로 결국 엄청나고 파렴치한 누명을 뒤집어쓰고 감옥에까지 가는 불행을 겪게 됩니다. 하지만 요셉은 그와 같은 감옥에서까지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당대 최고의 나라 애굽의 왕 바로의 술을 맡았던 고위층의 인물을 만나 그의 억울함을 듣고 장래의 일을 예언하여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리는 호기로 삼습니다. 그로 인해 먼 훗날 요셉은 바로 앞에 서게 되고 그의 인정을 받아 마침내 애굽의 총리가 되는 영광을 얻게 됩니다. 만약에 요셉이 오늘 날 우리들이 흔히 보는 바 와 같이 속 좁은 사람들처럼 누구에게 상처를 입었다고 교회를 등지고 사람들과 원수가 되고 미래의 꿈을 접어버리고 낙심과 좌절의 늪에 빠져버렸다면 애굽의 총리가 되는 성공의 가도를 걸을 수 있었겠습니까? 만약 요셉이 사사건건 고통의 때마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공의로우신 분이라면 어떻게 죄를 짓지 않으려고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친 나를 감옥으로 까지 보내버릴 수가 있겠는가?” 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떠나버렸다면 과연 그는 오늘 우리들이 아는 요셉이 될 수 있었을까요?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요셉을 통해 속 좁은 우리들의 초라한 모습을 회개하고 절대전능하신 하나님을 끝까지 바라보고 승리의 자리에 우뚝 서는 그날까지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믿음으로 요셉처럼 환경을 이겨내야 하겠습니다. 천국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침노하는 자에게만 침노를 당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11:12)

세례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와 같은 요셉의 인생 역정을 역사적인 차원에서 재조명 해보고 악한 사람을 만났을 때는 자신의 모난 부분들을 깎아내는 기회로 삼고 좋은 사람들을 만났을 때에는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아 겨울과 여름을 통해 더 풍성한 열매를 맺는 과일나무와 같이 묵묵히 더위와 추위를 이겨내는 그런 멋들어진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녀들이라면 그 모든 일들을 통하여서 풍성한 하나님의 역사가 반드시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는 말씀처럼 말입니다.

 

악한 사람으로 인해 하나님을 만나라!

요셉은 비록 형들의 무자비한 시기심과 악한 미움으로 그 어린 나이에 머나먼 타국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려가고 말았습니다. 그 얼마나 외롭고 무섭고 힘들었겠습니까? 그가 그와 같은 환경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오직 하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절대적인 하나님께 기도하며 의지하는 것 말입니다. 우리들이 충분히 이렇게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요셉을 기억하시고 때를 따라 그에게 풍성한 지혜와 축복을 내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39:1-3)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애굽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그를 사니라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가시적으로 요셉에게 임재하시고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셨으면 제 삼자에 불과한 그 주인 보디발이 다 알아차릴 정도였겠습니까?

(39:3)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엄청난 축복으로 요셉에게 쏟아 부어 주셨던 것입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요셉이 비록 타국으로 종이 되어 팔려갔지만 극진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며 기도하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처럼 악한 사람으로 인해 물심양면으로 고통을 당하게 될 때, 낙심하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고난의 때를 요셉과 같이 하나님을 만나는 호기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애매하게 고통을 당하거나 악한 사람들로 인하여 요셉처럼 위기에 빠지게 될 때 더 더욱 임재하시고 도우시며 우리들보다 더 마음 아파하시고 일어나시는 분이십니다. 성군 다윗이 시기와 질투로 자신을 잡아 죽이려는 사울의 칼날을 피해 도망 다닐 때 하나님은 특별히 그를 생명싸개로 보호하시고 더욱 큰사랑으로 위로해 주셨습니다. 이것을 믿음의 눈으로 보았던 다윗은 그와 같은 극한 상황 속에서도 여유롭고 담대하게 하나님을 자랑하고 고백하였으니 그것이 바로 시편 23편의 말씀입니다.

(23:1-4)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라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이처럼 고난과 고통의 때에 오히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호기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결코 원망하거나 낙심하거나 주님의 품을 떠나는 어리석은 자리에 빠지지 않도록 오늘 말씀과 요셉을 거울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고난을 통하여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고 감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140:12)

내가 알거니와 여호와는 고난 당하는 자를 신원하시며 궁핍한 자에게 공의를 베푸시리이다

(119: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보다 더 귀하게 연단하시고 악한 시대에 강하고 담대하게 나설 수 있도록 악한 자들을 우리들에게 붙여 주시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고통을 축복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도록 요셉처럼 끝까지 이겨내고 견뎌내는 믿음이 오늘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미국 어느 식당에서 30대의 웨이터가 선천성 치아문제로 엄청난 고통을 겪으며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빨이 거의 절반이나 썩어 시커멓게 탈색이 되어 말할 때 징그러울 정도로 흉해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편이 어려워 치과 진료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그렇게 고통을 달래며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식당을 찾는 손님들에게 환하게 웃으며 정성을 다해 서브를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지역에서 살고 있는 딸을 만나러 온 부부가 딸과 함께 그 식당으로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들렀습니다. 그런데 서브를 하는 그 웨이터가 특이했습니다. 몹시 징그러운 이빨을 드러내면서 환하게 웃으며 섬기는 그 모습이 무척 경이롭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빨이 저 정도가 되면 엄청 아플 텐데, 그리고 저렇게 보기가 흉하면 웃을 수가 없을 텐데, 그럼에도 그는 마냥 밝고 친절하게 최선을 다해 자신들을 섬겨주었습니다. 그 사람은 메니저를 불렀습니다. “내가 저 웨이터의 이를 고쳐주고 싶은데 괜찮을지 좀 물어 봐 주겠소?” 메니저는 곧 그 웨이터를 찾아가, “저 손님이 치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데 어떻겠나?” 하고 물어 봤습니다. 그러자 그 웨이터는 곧 손님께로 달려 와 눈물을 글썽이며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도와주십시오! 사실은 너무나도 아프고 불편한데 형편이 어려워 치과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 손님은 그 자리에서 25천불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한 마디 해 주었습니다. “그러한 아픔이 있는데도 손님을 감동시킬 만큼 밝고 맑게 섬기는 것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빨을 고치고 더 밝게 웃으십시오!” 라고 말입니다. 고통을 넘어 자신의 사명을 최선을 다해 감당할 때 사람도 감동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이처럼 우리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환경을 초월하여 감당해 나갈 때 하나님께서 감동 받으시고 풍성한 은총으로 보상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요셉이었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라!

요셉은 최악의 경우를 맞아 결국은 감옥에까지 가는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타국에서 종살이를 하던 초라한 소년이 주인의 부인을 겁탈한 파렴치범으로 몰려 감옥에까지 갔으면 더 이상의 희망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결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며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는 기회를 잡게 됩니다. 왕의 최측근에서 왕을 섬기던 두 사람이 자신이 갇혀 있는 감옥으로 들어 왔기 때문입니다. 왕의 떡을 맡은 자와 술을 맡은 자들이 바로 그들이었습니다. 요셉은 그 중에 술 맡은 자가 모함으로 감옥에 들어 왔으나 결국에는 왕의 곁으로 돌아가게 됨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당사자에게 가르쳐 줍니다. 시간이 흐르자 요셉의 예언대로 술 맡았던 자는 오해를 풀고 왕의 곁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때 요셉은 잊지 않고 한 가지 부탁을 하게 됩니다. 훗날 왕 곁에 있을 때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말입니다. 요셉의 이와 같은 모습이 오늘 우리들이 배워야 할 소중한 믿음의 비밀입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대하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인내,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를 다시 회복하는 가장 소중한 믿음의 덕목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들은 요셉과 같은 이런 끈질긴 믿음과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대하는 열정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낙심하고 포기하고 좌절하고 맙니다. 실제로 사람의 심리는 스스로를 가두어 죽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시드니 쉘든의 소설에 등장하는 한 가지 실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악당들이 한 사람은 납치해서 대형 냉장고에 던져 넣고 바깥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사라져 버립니다. 그러자 칠흑같이 캄캄하고 추운 냉동실에 갇힌 그 사람은 스스로 죽게 되었음을 인지하게 됩니다. 자신은 지금 차가운 냉동실에 갇히게 되었고 하나 밖에 없는 문이 바깥에서 굳게 잠겼으니 곧 얼어 죽게 될 것이라는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자 그때부터 추위와 두려움에 떨며 그의 몸이 서서히 굳어져 갔습니다. 나중에 범인들이 그 문을 열었을 때 그는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 냉동실은 고장 난 것으로 오히려 바깥보다 더 포근하였습니다. 그런데도 그 사람은 그 속에서 얼어 죽은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이 스스로 자신을 그렇게 죽인 것입니다. 신앙을 떠나 사람의 생각은 이처럼 자신의 삶을 움직이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산에 있는 복음병원장이었던 장기려 박사님이 환자들을 상대로 임상실험한 결과가 있습니다. 하얀 밀가루를 환자들에게 주면서 이 약은 일본에서 직수입한 당신을 위한 특효약입니다.” 하고 먹였더니 병이 호전되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들이 배워야 할 소중한 진리입니다. 여기에서 믿음을 더하고 실제적으로 하나님께서 도우신다면 우리는 잘못 만난 악한 사람으로 인해 요셉과 같이 성공하고 승리하는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 낼 수가 있습니다. 요셉이 감옥에서 자신의 미래를 예언해 주고 그렇게도 절박하게 부탁해 두었으나 왕의 곁으로 되돌아 간 술 맡았던 자는 감옥에 있는 작은 이방인의 초라한 모습을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모시고 있는 왕이 알 수 없는 꿈을 꾸고 번민하고 있자 문득 자신의 미래를 정확하게 알아 맞춰 주었던 감옥 속의 요셉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왕에게 그 요셉의 이야기를 비로소 들려주게 됩니다. 그러자 왕은 당장에 그 소년을 데리고 오라고 하였고 그것으로 인해 요셉은 감옥에서 애굽의 총리가 되는 전화위복의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어떻게 요셉이 한 순간에 감옥의 죄수에서 당대 최대의 강국이었던 애굽의 총리대신이 될 수 있었는지를 소상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기대하는 자를 결코 외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를 결코 무시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평생을 통해 온 몸으로 체험하였던 성군 다윗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오늘 우리들에게 권면해 주고 있습니다.

(37:5-6)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37:9)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생명 있는 사람이 우리들에게 감히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가슴으로 확신하고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끝까지 의지하고 기대해야 합니다. 그렇게 기다리면 감옥에서 요셉을 이끌어 내셨던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도 악한 자의 손에서 이끌어 내시고 광명한 승리의 길로 친히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들을 만나시려고 악한 세상 구유에까지 내려오신 예수님을 새롭게 만나는 성탄의 계절입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오 만남에 관한 진리를 배웠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노라면 좋은 사람, 악한 사람을 막론하고 우리는 끊임 없이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을 만남으로 인해 인생이 파탄 나고 고통으로 신음하는 케이스가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주인공이었던 요셉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악한 이들로 인해 한 순간에 인생이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고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비참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지만 그는 그와 같은 환경을 오히려 성공의 발판으로 삼고 끝끝내 승리자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처럼 험한 세상에서 악한 자들로 인해 고통과 손해를 볼 때가 많이 있지만 요셉처럼 전화위복을 만들고 승리할 수 있도록 삶의 교훈으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탓하지 않고 환경을 탓하지 않는 오히려 그와 같은 사람과 환경을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실패에서 성공으로 치닫는 지름길로 삼을 수 있는 축복의 기회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사람의 작은 선입견과 편견을 넘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크신 하나님을 가슴으로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저절로 이루어지는 축복이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통 속에서 오히려 구유에 오신 예수님을 만나고 고통 속에서 고난당하는 이웃들을 발견하며 보다 더 성숙한 삶으로 변화를 받는 그런 멋들어진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성탄의 달 12월 첫 주일에 힘을 다해 하나님 앞으로 나아온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도 오늘 요셉과 진리의 말씀을 가슴에 품고 거울로 삼아 짧은 인생을 승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는 멋쟁이들이 다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6124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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