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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You are here: Home 말씀과예배 설교 읽기 2017년 2월 12일 주일낮설교 (너 자신을 알라!)

2017년 2월 12일 주일낮설교 (너 자신을 알라!)

너 자신을 알라!

2. 12, 2017

本文:고린도전서15:1-11

: 仁 根

 

[도박 빚을 갚으려고 이웃집에서 금품을 훔치다 잠에서 깬 주인 부부를 잔혹하게 살해한 소방관이 쓴 자필 메모가 법정에서 공개됐다. 수원지법 평택지원 형사1(재판장 김동현)8일 강도 살인, 특수 강도미수, 현주건조물방화 등 혐의로 기소된 최모(51)씨에 대한 5차 공판에서 최씨의 자필 메모를 공개했다. 최씨가 작성한 이 메모 첫 장에는 충동 괴물 빚 노름 책임’, ‘거짓된 모습’, ‘내가 누구인지등 당시 괴로운 심리상태가 나열됐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 ‘너무 무서워’, ‘사람일까 괴물일까’, ‘내 마음속에는 악마가 있는 걸까등의 내용도 보인다. 공개된 메모 두 번째 장에는 나를 아끼는 모든 사람에게 미안’, ‘갑자기 찾아온 충동’, ‘그동안 참으려고 애썼는데 마지막에 참을 수가 없었다등 뒤늦은 후회감도 썼다. 법정에서 메모 글을 읽던 재판장은 최씨에게 왜 저런 표현을 한 것이냐범행 전 마음속에 어떤 충동 같은 것이 있었나라고 질문했다. 최씨는 작은 목소리로 그냥 그 단어가 생각이 났다고 답했다. 재판장은 “‘충동을 참으려 했고 마지막에는 참을 수가 없었다라고 썼는데 이건 무슨 말이냐그 전에 범죄의 충동이 있었던 건 아니냐고 최씨를 향해 재차 물었다. 최씨는 다시 충동을 느껴 본 적은 없었다고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재판장은 변호인과 상의해서라도 뭔가 설명을 해줬으면 한다. 정확한 것을 알려줘야 이 사건에 맞는 형을 정하는데,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고 범행의 정확한 동기를 밝힐 것을 최씨에게 요구하면서 결심공판 기일을 내달 8일로 잡았다. 이날 재판을 방청한 유족들은 법정을 나서는 검사에게 왜 판사님이 아직도 뭔가를 궁금해 하시는거냐며 흥분된 어조로 항의했다. 이에 검사는 아마도 (판사님은)피고인이 금품을 훔칠 목적으로 들어갔다가 살해 범행을 저지른 것인지, 아니면 그냥 살해를 목적으로 들어가 범행한 것인지를 궁금해 하시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최씨는 지난해 81일 오전 3시쯤 경기도 안성시 당왕동 2층짜리 단독주택에 침입해 금품을 훔치려다 잠에서 깬 A(63)와 부인 B(56)를 흉기와 둔기로 수차례 찌르고 때려 살해한 뒤 불을 지른 혐의로 기소됐다. 최씨는 범행 직후 직접 119에 전화해 우연히 화재를 목격해 신고한 것으로 꾸몄으며, A씨 부부의 장례식장까지 찾아 조문하는 등 치밀함을 보였다. 최씨는 이 범행 이전에도 지난해 7월 또 다른 이웃집에 침입해 금품을 훔치려다 미수에 그쳤다. 최씨는 26000만원에 달하는 도박 빚으로 매월 550만원을 갚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자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조사됐다. 최씨는 안성시 아양동의 한 아파트 15층에서 농약을 마시고 투신을 시도하다 가족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체포됐다.(조설일보 28일자)

이 사건을 보면 우리는 우리들 자신을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 사도였던 바울도 자신 속에 있는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고 통탄하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7:18-24)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앞서 말씀 드린 살인자 최모씨와 사도 바울의 고백은 거의 맥을 같이 하는 공통분모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누구입니까? 오늘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겸허히 우리 자신을 한 번 생각해 보고 신선한 깨달음과 변화를 추구해 가는 하나님의 사람들로 거듭나시기를 소망합니다.

너 자신을 알라!

불행하게도 오늘 우리는 우리 자신을 너무나도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탓하기 전에 남을 먼저 탓하며 원망하는 어리석은 우를 범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모든 문제가 나 자신에게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은 성경 속에서 이와 같은 인물들을 찾아보고 그분들을 거울로 삼아서 우리들의 삶을 새롭게 변화시켜 가는 은총을 체험해 보려고 합니다. 겸손한 자세로 말씀의 거울에 우리 자신을 비쳐보고 문제가 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속해 있는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 우리 자신에게 있음을 깨닫고 근본적으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지혜를 터득하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어느 날 소크라테스는 강의 준비를 하고 강 건너에서 기다리고 있는 제자들에게 가려고 나룻배를 타고 무료하게 가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가다가 말없이 노를 젓고 있는 사공에게 말을 걸어보았습니다. “이보게 사공, 자네는 철학이 무엇인지 아는가?” 한참을 기다려도 사공은 아무 대답도 않은 채 묵묵히 노만 젓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물이 깊고 물살이 거친 강 한 가운데쯤 갔을 때 그는 갑자기 배를 기우뚱 흔들어 넋을 놓고 멍하니 앉아 있던 소크라테스를 강물에 빠뜨려버렸습니다. 갑자기 강물에 빠진 소크라테스는 허우적거리며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거의 익사 직전에야 노를 내밀어 그를 건져 올렸습니다. 그리고 한 마디 퉁명스럽게 던졌습니다. “이보시오. 수영 하나도 못해 자신의 목숨도 보존하지 못하는 주제에 철학은 무슨 개똥철학이오?” 하고 말입니다. 문자 그대로 물에 빠진 생쥐가 된 그가 제자들에게 가서 첫 성으로 가르친 말씀이 바로 너 자신을 알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기록한 놀라운 부활의 진리입니다. 그는 이 놀라운 부활장을 기록하면서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내 놓고 있습니다.

(고전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이 말씀은 신, 구약 성경 31,101절의 말씀 중에서 이처럼 자기 자신에 대해 정확하게 고백하는 이 보다 더 확실한 말씀도 없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는 이 한 마디를 오늘 우리들도 가슴 깊이 새기고 교만하지도 말고 또한 비굴하지도 말아서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드리는 그런 멋들어진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못할 때 우리는 잘 되어도 망하고 못 되어도 망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이제 성경으로 돌아가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해 망하는 어리석은 위대한 인물들을 함께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에는 보통 사람들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놀라운 축복을 받아 놓고도 그 축복으로 하나님께 영광은커녕 자신의 삶조차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한 채 망한 안타까운 인물들이 의외로 많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살인마였던 사도 바울이 그렇게도 더욱 돋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실로 악마 같은 인물이었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사도 중의 사도가 되어 하나님께 풍성한 영광을 돌려드리고 자신의 한 평생 또한 오고 오는 세대의 귀감이 되는 아름다운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자들을 살펴보면서 어리석지 않는 미래를 살아가는 우리 모든 심령들이 되시기를 거듭 축복 드립니다.

자신을 몰랐다가 망한 삼손의 경우

우리들이 잘 아는 대로 삼손은 태어나는 일부터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간섭해 주셨던 특별한 인물이었습니다.

(13:2-5)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 마노아라 이름 하는 자가 있더라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생산치 못하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잉태하지 못하므로 생산치 못하였으나 이제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러므로 너는 삼가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지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지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삼손이라는 사람은 그 존재부터가 하나님으로부터였고 그러므로 그는 평생을 그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거룩하고 복되게 목적을 성취하는 삶을 살았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뜻대로 거룩하게 구별된 나실인답게 살지 못하고 이방 여인을 가까이 하며 거룩하게 구별하시고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도록 구별하신 하나님의 참 뜻을 제대로 이루어 드리지 못한 채 하나님께서 주신 전무후무한 힘을 육신을 위해 사용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14:1-3)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딸 중 한 여자를 보고 도로 올라와서 자기 부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 중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취하여 내 아내를 삼게 하소서 부모가 그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의 딸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취하려 하느냐 삼손이 아비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를 데려오소서 하니

(16:1-2)

삼손이 가사에 가서 거기서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혹이 가사 사람에게 고하여 가로되 삼손이 여기 왔다 하매 곧 그를 에워싸고 밤새도록 성문에 매복하고 밤새도록 종용히 하며 이르기를 새벽이 되거든 그를 죽이리라 하였더라

(16:4-5) 이 후에 삼손이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 이름하는 여인을 사랑하매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 여인에게로 올라와서 그에게 이르되 삼손을 꾀어서 무엇으로 말미암아 그 큰 힘이 있는지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를 이기어서 결박하여 곤고케 할 수 있을는지 알아보라 그리하면 우리가 각각 은 일천 일백을 네게 주리라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리고 너무나도 안타까운 것은 들릴라 라는 여인이 기를 쓰고 삼손의 힘의 출처를 알아 적들에게 전해주려고 하는데도 그 여인을 뿌리치지 못하고 끝내는 그 여인에게 자신의 힘의 비밀을 알려주었다는 사실입니다.

(16:6-9)

들릴라가 삼손에게 말하되 청컨대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있으며 어떻게 하면 능히 당신을 결박하여 곤고케 할 수 있을는지 내게 말하라 삼손이 그에게 이르되 만일 마르지 아니한 푸른 칡 일곱으로 나를 결박하면 내가 약하여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마르지 아니한 푸른 칡 일곱을 여인에게로 가져오매 그가 그것으로 삼손을 결박하고 이미 사람을 내실에 매복시켰으므로 삼손에게 말하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미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그 칡 끊기를 불탄 삼실을 끊음같이 하였고 그 힘의 근본은 여전히 알지 못하니라

이 사건에서 우리는 들릴라가 왜 삼손에게 그토록 집요하게 힘의 근원을 알려달라고 조르는지 그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블레셋 용사들을 매복시키고 삼손을 잡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입증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손은 끝내 그 여인 들릴라에게 자신의 힘의 비밀을 알려주고 맙니다.

(16:15-17)

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당신이 어찌 나를 사랑한다 하느뇨 당신이 이 세 번 나를 희롱하고 당신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있는 것을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며 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 삼손이 진정을 토하여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우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하여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이렇게 하여 그는 결국 들릴라에게 진정으로 자신의 힘의 근원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며 머리를 밀어버리면 그 힘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그러자 순식간에 매복 시켰던 군사들이 들이닥쳐 삼손을 사로잡고 맙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삼손은 아직도 자신에게 힘이 남아 있는 줄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16:18-20)

들릴라가 삼손의 진정을 다 토함을 보고 보내어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을 불러 가로되 삼손이 내게 진정을 토하였으니 이제 한번만 올라오라 블레셋 방백들이 손에 은을 가지고 여인에게로 올라오니라 들릴라가 삼손으로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하고 사람을 불러 그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 힘이 없어졌더라 들릴라가 가로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미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여도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아무리 하나님으로부터 풍성한 축복을 받았을지라도 그 복을 믿음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유지하지 못하게 되면 결국은 다 잃어버리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육신에 젖어 영적인 일에 게을리 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육신을 위해 사용하며 하나님을 떠나게 될 때 들릴라에게 자신의 비밀을 알려주면 자신이 바로 죽는다는 사실조차도 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경고하고 계십니다.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라고 말입니다. 불행하게도 삼손은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태어났고 하나님의 은총으로 기적 같은 힘을 누리고 있음을 망각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자신을 잊어버리면 또한 하나님도 잊어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불행하게도 그는 끝내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들이 과연 누구인가를 말입니다.

이렇듯 남자가 실패하는 데는 꼭 여인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반대로 남자가 성공하려면 멋진 여인을 만나야 합니다. 전임범 전 특수전사령관이 문재인대선캠프에 합류하였으나 부인인 성신여대 심화진 총장이 교비 횡령 혐의로 법정 구속되므로 책임을 지고 물러난다고 선언하게 된 것이 그 단적인 실례입니다. 이는 교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인이 덕이 있고 믿음이 있어야 남편이 훌륭한 장로에 피택 될 수 있고 또한 장로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은 문서화 되지 않은 모든 목회자들의 고백인 것을 볼 때도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젊은 청년들은 결혼을 잘 해야 한다는 것을 참고로 삼으면 유익이 되리라 믿습니다.

자신이 변절하였다가 망한 사울의 경우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은 참으로 겸손한 사람이었고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으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인류 최초의 왕으로 선택 될 수 있었겠습니까?

(삼상9:15-17)

사울의 오기 전 날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알게 하여 가라사대 내일 이맘 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삼으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내 백성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아보았노라 하시더니 사무엘이 사울을 볼 때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이는 내가 네게 말한 사람이니 이가 내 백성을 통할하리라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사울을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선택하시고 세우신 이는 하늘의 하나님이시셨습니다. 이는 그가 그만큼 겸손하고 사람됨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삼상9:21)

사울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오며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라고 대답할 만큼 그는 겸손하였고 자신의 처지가 어떠함을 그 누구보다 더 분명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가 왕으로 피택 되었을 때 그는 쓰레기더미 뒤에 숨을 만큼 나서지 않았고 겸비하였던 인물이었습니다.

(삼상10:20-22) 사무엘이 이에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가까이 오게 하였더니 베냐민 지파가 뽑혔고 베냐민 지파를 그 가족대로 가까이 오게 하였더니 마드리의 가족이 뽑혔고 그 중에서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혔으나 그를 찾아도 만나지 못한지라 그러므로 그들이 또 여호와께 묻되 그 사람이 여기 왔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그가 행구 사이에 숨었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지만 그는 초심을 잃어버리고 자신을 왕으로 세워주신 하나님의 말씀도 무시해버리는 어리석은 우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자들을 하나님을 떠난 자들과 동일시하며 심판을 하십니다.

(삼상15:26-29)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사무엘이 가려고 돌이킬 때에 사울이 그의 겉옷자락을 붙잡으매 찢어진지라 사무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서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사울은 자신을 잊어버린 가장 어리석은 왕으로 역사에 길이 남는 우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어버리면 이처럼 오만방자하다가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언제나 자신의 근본을 똑바로 알고 비록 남보다 더 잘나고 풍성해진다고 할지라도 사도 바울과 같이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고 선포하며 하나님께 끝까지 영광을 돌려드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울을 거울로 삼고 교만하여 자신을 잊어버리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도록 도전이 되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본성을 바꾸지 못해 망한 가룟 유다

우리는 신약성경에서 또 한 사람 자신의 본성을 바꾸지 못한 채 끝까지 그 본성을 따르다가 망한 가룟 유다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는 원래 예수님의 제자로 선택을 받을 만큼 축복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는 돈에 욕심을 내는 자신의 본성에서 벗어나지를 못했습니다. 그는 언제나 돈에 관심을 가지고 돈을 탐내어 예수님의 돈까지도 도적질 하고 그것도 모자라 끝내는 예수님을 팔아서까지 돈을 챙겼던 인물이었습니다. 성경이 증거 하는 유다의 본성을 잠깐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2:4-6)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이 한 마디가 가룟 유다의 모든 것을 다 말해주고 있습니다. 성경이 저는 도적이라고 표현하였다면 더 이상 그 어떤 증거도 필요하지 않을 만큼 충분히 그가 어떤 사람이었던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예수님의 돈 궤에 손을 넣고 훔쳐 갈 정도이면 그 얼마나 사악한 도적이겠습니까? 그러다가 그는 끝내 예수님까지도 팔아먹는 파렴치한 인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26:14-16)

그 때에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저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줄 기회를 찾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가룟 유다는 이렇게도 돈을 좋아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었고 그는 사는 날 동안 자신의 본성을 따라 그렇게 어리석은 삶을 살아갔던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오늘 우리들의 자화상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다 이렇듯 돈의 종이 되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말은 믿음 믿음 하면서도 실상은 돈을 따라 주님을 등 뒤에 세워놓을 때가 너무나도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이와 같은 본성을 죽이고 하나님께 헌금하고 이웃들을 도우며 선교사님들과 주의 종들을 섬겨 왔습니다. 이는 지극히 당연하고 그렇게 해야만 합니다. 변화와 행동으로 연결 되지 못하는 믿음은 그 자체로 죽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와 같은 본성을 뛰어 넘어 신령한 가치로 변화를 만들어 가지 못하는 교인들도 많이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그런 부류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결국 자기 본성에만 충실하다가 돈은커녕 그 보다 더 소중한 생명까지도 잃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그와 같은 자를 결코 그냥 버려두지 않으시고 엄하게 심판하시어 오고 오는 세대의 귀감으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또한 하나님만 경외하여야 합니다.

(27:3-5)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여기에서 우리는 비로소 처참한 가룟 유다의 최후를 보는 것입니다. 오로지 돈만 있으면 다 될 것 같았지만 지금 그에게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손발이 잘 맞아 예수님을 잡아 죽이는데 하나가 되었던 그들이었지만 지금 그들은 모든 책임을 가룟 유다에게 떠넘기고 오히려 그를 비웃음거리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가룟 유다는 그들에게 돈을 던져 주고 스스로 목을 매고 죽었습니다. 이것이 본성을 넘어서지 못한 육신의 한계를 지고 사는 인생들의 최후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우리 자신이 정녕 누구인지, 무엇을 목적으로 인생을 살아가는지, 삶의 최후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깊이 생각하며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하겠습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경으로 돌아가 성령 충만을 받게 되면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령님이 우리 속에 찾아오시면 가장 먼저 우리는 우리 자신의 초라하고 부끄러운 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들로 하여금 이처럼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시고 모든 자들 중에 가장 별 볼일 없는 작은 자임을 인식하게 해 줍니다. 사도 중에 대 사도였던 바울이 자신을 고백하는 모습을 바라보면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고전15:8-9)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바울은 여기에서 자신을 만삭이 되지 못해 난 자와 같다고 했고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고 하였습니다. 이렇듯 성령 받고 나면 자신을 바로 깨달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역사적인 인물이었던 삼손이나 사울 왕이나 가룟 유다는 그 평범한 자기 자신 하나 제대로 발견하지 못한 고로 역사적인 비참한 인물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들의 본질을 똑바로 깨닫고 하나님의 마음에 속 드는 멋들어진 성도들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쪼록 아름답고 귀한 주일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우리들의 영원한 영혼의 양식인 말씀을 받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을 깨닫고 발견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는 진정한 신자들로 거듭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7212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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