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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You are here: Home 말씀과예배 설교 읽기 2017년 3월 5일 주일낮설교 (은혜입니다!)

2017년 3월 5일 주일낮설교 (은혜입니다!)

은혜입니다!

3. 5, 2017

本文:사도행전27:9-20

:

 

헨드릭스 교수는 어느 날 가족을 데리고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에 여행을 간적이 있었습니다. 공원 정문에서 안내원이 전단을 한 장 주기에 받았더니 곰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란 글이 쓰여져 있었습니다. 공원 속으로 몇 킬로 운전해 들어가니까, 큰 간판에 같은 경고가 쓰여져 있는 것을 또 보게 되었습니다. 헨드릭스 교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곰에게 빵 한 조각, 아니 과자 한줌 던져준다 해서 그게 뭐 그리 위험할까?’ 인쇄물과 간판 내용이 의아했던 헨드릭스 교수는 경비원에게 물었습니다. “곰들에게 먹을 것을 던져주는 게 왜 위험합니까? 저 곰들은 우리 인간을 증오하는 그런 특종 곰입니까?” 그러자 경비원은 펄쩍 뛰며 헨드릭스 교수를 노려보았습니다. “당신은 아직 이해 못하셨군요. 사실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 우리는 매년 이때쯤이면 죽은 곰들을 공원에서 끌어내야 합니다. 스스로 먹는 능력을 상실한 곰들로 남이 먹여주는 것에만 의존하는 곰들 말입니다. , 이제 왜 그런 경고가 나붙었는지 아시겠지요? 바로 곰들 자신을 위해섭니다!” 영국의 성경학자 윌리암 바클레이는 진리란 스스로 발견했을 때에만이 유용한 것이다. 스스로 발견한 진리가 아닌 것을 단지 전달만 할 때에는 자기의 것이 아니므로 쉽게 잊혀 진다. 그러나 스스로 발견한 진리일 때는 자기의 한부분이 되어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관찰을 통해 말씀(본문)속에 숨겨져 있는 진리의 보화들을 발견해내야 한다는 뜻입니다. 신앙생활이나 이 세상의 삶이나 그래서 부지런해야 하고 그렇게 열심을 낼 때 몸도 건강해지고 재물도 쌓이며 믿음도 커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들에게 이와 같은 진리에 관한 아주 좋은 모델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모하는 영혼을 어떻게 만족시켜 주시며 삶에 불어 닥치는 뜻밖의 고통과 눈물은 왜 존재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와 같은 인생의 길목에서 만나는 고통과 눈물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편안한 걸 좋아합니다. 하지만 고여 있는 물은 썩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도록 때로는 가난도 주시고 고통도 주시고 심지어는 질병도 주십니다. 그렇게도 게으르고 나태하기만 하던 사람도 암에 걸리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순종하고 움직이고 몸부림을 칩니다. 지난 31일 아침마당에는 70대 중반으로 보이는 50대의 한 남성이 출연하여 제대로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로 고백을 하는데 그는 평생을 담배를 피우다가 혀에 암이 발생하여 혀의 1/3을 잘라내었기 때문에 말을 잘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도 담배를 끊으라고 주변에서 강권하였으나 그 맛있는 담배를 끊을 바에야 차라리 암에 걸리겠다고 고집을 부리며 계속하여 피운 결과 그렇게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즉석에서 담배를 끊고 죽을힘을 다해 암과 싸워 간신히 회복의 축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설마, 하면서 미적거리다가 건강도 잃고 믿음도 쏟아버리고 인생의 가장 소중한 사람도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삶을 살 때가 너무나도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기는 그런 멋들어진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은혜입니다!

지난 월요일 아침 108분에 시애틀 다운타운 근처 I-5에서 프로판개스를 실은 대형 트럭이 넘어지면서 I-5 프리웨이가 남북 모두 닫히므로 시애틀 역사상 최악의 교통대란이 일어났습니다. 거기에다가 전에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천둥번개를 동반한 소나기눈까지 엄청 내려서 온 세상이 난리법석을 떨었습니다. 그렇게도 복잡하게 평소에도 늘 막히던 I-58시간 동안이나 닫았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받았겠습니까? 이것이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의 한 단면입니다. 급하다고, 바쁘다고, 너무나 중요하다고 동동걸음을 치지만 순간에 우리들의 의지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야 할 때가 있고 손해를 보아야 하는 때도 있으며 심지어는 죽어야 하는 일까지 만나게 되는 것이 오늘 우리들의 삶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스스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힘쓰고 서로 도와가면서 살아가야 하겠지만 절대자이신 하늘의 하나님의 은총을 덧입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역사적인 한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들에게 생생하게 증거해 주시고 계십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함께 마음 귀를 기울이고 듣고 깨달아서 우리들의 인생도 사랑하는 자녀들의 불투명한 내일도 다 하나님께 맡겨드리고 자유할 수 있는 진정한 믿음으로 거듭나시기를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소원은 이루어집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사도 바울입니다. 사도 바울은 아시아를 복음으로 평정한 전무후무한 전도의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복음의 영역을 넓혀 더 먼 곳, 곧 로마로 가기를 소원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것이 오늘날처럼 그렇게 쉽거나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늘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소원을 품고 있었습니다.

(1:8-13)

첫째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 됨이로다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함이니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듯 사도 바울은 로마에 가기를 원했었고 또한 거기에서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인 복음 전하기를 소망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고백과 같이 지금까지 길이 막혀 그는 가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이 복음의 죄수가 되어 그렇게도 소망하던 로마를 향해 갈 수 있게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7:1-2)

우리의 배타고 이달리야로 갈 일이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사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행선할새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멀쩡하게 복음 전하는 사람을 악한 이들이 죄인으로 몰아 천하에 몹쓸 짓을 한 사람으로 고소를 하여 이처럼 로마에 있는 가이사에게 심문을 받기 위해 호송되어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와 같이 사도 바울이 호송되어 배를 타고 가는 이야기로부터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27:9-11)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행선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저희를 권하여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행선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으리라 하되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선견자라 그들이 타고 가는 배가 지금 출발하게 되면 폭풍을 만날 위험이 있다고 예언해 주었으나 죄수들을 인솔하는 백부장이 사도 바울의 말보다는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고 고집스럽게 출항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처음 보는 죄수의 말을 선장과 선주의 말보다 더 따르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한 가지 꼭 배우고 가야 합니다. 주의 종은 주님과 함께 하는 자라는 사실을 순간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들이 늘상 실패하는 이유가 바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백부장과 같이 살기 때문입니다. 상식으로 생각하면 선장과 선주가 경험이 많아도 더 많을 것입니다. 그 부분에서는 거의 전문가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그들도 단순한 주님의 종의 예견보다 못했다는 사실이 역사적으로 증명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주님의 종의 말을 언제나 우선순위를 두고 믿고 따르는 삶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들과 함께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어쨌든 사도 바울은 이렇게 하여 꿈에도 그리던 로마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기지 놀라운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평생을 하나님과 함께 살고 배우고 깨닫고 체험한 사실을 기록해 놓은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들의 신령한 소원을 반드시 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사도 바울과 같이 신령한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소원을 가슴에 품고 있으면 언젠가는 때가 차매 그 소원을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어 주십니다. 이는 요셉의 체험이었고 다윗의 경험이었으며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사도 바울의 확신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한 번 하신 약속은 반드시 지키십니다.

(107:9)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들에게 바로 이와 같은 확신을 심어주는 고귀한 말씀입니다.

고통과 죽음에서도 해방 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과 죄수들을 인솔하는 백부장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믿고 사도 바울이 지금 출항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충고해 주었으나 눈에 보이는 좋은 조건들만 바라보고 결국은 출항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출항한지 얼마 못되어 엄청난 태풍이 불어 닥쳤기 때문입니다.

(27:13-14)

남풍이 순하게 불매 저희가 득의한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가까이 하고 행선하더니 얼마 못되어 섬 가운데로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대작하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와 같은 태풍으로 인해 배는 풍비박살이 나고 승객들은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기며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바다 위에서 당한 고통의 날이 무려 14일이나 되었습니다.

(27:33)

날이 새어 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을 음식 먹으라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열나흘인즉

이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 때의 고통을 우리 중에 그 누구도 실감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배를 타고 이처럼 열나흘이나 풍랑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쳐 본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태풍 속에 있는 배는 그야말로 낙엽과 같이 가볍게 흔들리며 정처가 없습니다. 7-8m가 넘는 파도에 휩싸여 일렁이는 곳에 단 10분만 있어도 배속에 있는 모든 것을 다 토해내는 극심한 멀미를 하게 됩니다.

25년 여 전에 우리교회 집사님 한 분이 웨스트포트로 낚시를 하러 갔습니다. 그곳에서 챠틀보트를 대절하여 태평양으로 낚시를 가는데 한 사람당 당시 150불을 냅니다. 15명 정도의 일행들이 동승하는데 한 두 시간 망망한 태평양으로 나가 물고기가 있는 곳을 찾아 정박하고 낚시를 해서 한 통에다 담고 마지막 돌아 와서 사람 수 만큼 물고기를 나누어 가지는데 1m 정도가 되는 엄청난 물고기를 5-6마리씩 가지고 오게 됩니다. 그런데 처음 그 배를 탔던 집사님은 그만 멀미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얼마나 멀미가 극심하던지 선장을 보고 이 사람들의 돈을 다 물어 줄 테니 돌아가자고 통사정을 하였으나 그곳까지 나간 사람들이 한 사람의 멀미 때문에 돌아가자고 할리 없었습니다. 하루 종일 변기통을 붙들고 낚시는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채 돌아오고야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태풍을 만나 열나흘이나 거센 파도에 멀미를 하였다면 과연 그 고통은 얼마나 컸겠습니까? 오늘 본문의 태풍은 바로 그러한 것이었습니다. 그 배에 탄 사람들은 무려 276명이나 되었습니다.

(27:37)

배에 있는 우리의 수는 전부 이백 칠십 륙인이러라

그들이 가진 짐은 또한 얼마였겠습니까? 그들이 먹을 음식은 또한 얼마였겠습니까? 하지만 그들은 목숨을 얻기 위해 그렇게도 소중하던 짐들을 다 버려야만 했습니다.

(27:18-19)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저희 손으로 내어 버리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우리들은 너무나도 이 땅을 살아가면서 집착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잃어버리면 인생이 망하기라도 하는 듯이 그렇게 붙들고 놓지를 못합니다. 하지만 이처럼 삶에 뜻하지 못한 풍랑을 만나게 되면 미련 없이 다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지난 목요일 조선일보에 게재된 한 기사가 참으로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56살 먹은 한 가장이 부인이 뇌출혈로 꼼짝도 못하고 자리에 눕게 되자 할 수 없이 좋은 직장도 그만 두고 곁에서 모든 병수발을 하게 됩니다. 움직이지 못하는 부인을 그 누구도 보살펴 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흐르자 퇴직금도 점점 다 없어지고 살아가야 할 현실적인 문제까지 닥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자신도 그만 암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가정 형편이 이 모양이다 보니 자신의 암을 치료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부인과 함께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이렇듯 우리 인생에는 위기가 닥쳐 올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이와 같은 절망의 때에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27:20-25)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 뻔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 뿐이리라 나의 속한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그 배에 타고 있던 276명의 사람들은 사도 바울 한 사람 때문에 죽을 고비에서 살아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도 사도 바울이 로마에 가기를 소원하였음으로 그 소원을 이루어 주시기 위해 이처럼 위급한 풍랑 속에서도 사도 바울을 보호해 주셨고 그로 인해 그 배에 탄 모든 사람들 또한 구원을 받도록 역사해 주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놀라운 교훈입니다. 인생 여정에 어떤 사람과 함께 살아가느냐가 그렇게도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 하나를 잘 못 만나 인생을 망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람 하나를 잘 만나서 죽을 고비에서도 살아나게 되는 기적을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을 한 번 보십시오. 비록 대통령까지 되었으나 최순실이라는 사람 하나를 잘 못 만난 박근혜대통령은 저렇게도 비참한 신세가 되어버렸고 자신을 위해 헌신하던 그 좋은 사람들을 모두 감옥에 보내고 말았지 않습니까? 권력도 좋고 재산도 좋지만 진짜로 인생 여정에서 좋은 것은 바로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을 만나야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결국 사도 바울은 죄수에서 지도자가 되어 그 많은 사람들을 통솔하고 인솔하여 결국에는 하나님의 약속과 같이 단 한 사람도 죽지 않고 멜리데라고 하는 한 섬으로 피신할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은 그곳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이 많은 사람들을 영접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천신만고 끝에 이처럼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고 구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죄수의 몸으로 로마도 가고 있었던 사도 바울로 인해 이처럼 놀라운 기적을 보았으므로 죄수들을 인솔하던 백부장이 이제는 바울을 보호하고 그 지시를 따르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27:42-44)

군사들은 죄수가 헤엄쳐서 도망할까 하여 저희를 죽이는 것이 좋다 하였으나 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저희의 뜻을 막고 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물에 뛰어 내려 먼저 육지에 나가게 하고 그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배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니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원을 얻으니라

(28:1-2)

우리가 구원을 얻은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토인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비가 오고 날이 차매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하여서 삶의 소중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그 어떤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은 함께 하시고 하나님께서 쓰시는 종을 통하여 구원의 놀라운 기적을 베풀어 주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는 빌립보라고 하는 큰 방주에 함께 승선한 천국행 성도들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주의 종을 중심으로 순종과 섬김의 덕목으로 우리들의 영원한 목적지인 천국까지 아름답게 행진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될 때 사도 바울을 통해 하나님의 기적 같은 구원을 맛보았던 276명과 같이 구원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기적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첨단의 이 시대에 무슨 기적이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그렇게 믿는 사람은 죽는 날까지 기적을 보지 못 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과 같이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고 선언하면 기적은 언제라도 일어납니다. 사도 바울과 함께 하시던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실제로 사도 바울을 통해 하나님은 놀라운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제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그와 같은 놀라운 기적을 목도하고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는지 그 배경을 함께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28:3-5)

바울이 한 뭇 나무를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을 인하여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토인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달림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원을 얻었으나 공의가 살지 못하게 하심이로다 하더니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이것이 첫 번째 기적입니다. 토인들도 알고 오늘 우리들도 압니다. 독사에게 물리면 그 독이 워낙에 무섭기 때문에 퉁퉁 부어 죽게 되는 것입니다.

(28:6)

그가 붓든지 혹 갑자기 엎드러져 죽을 줄로 저희가 기다렸더니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려 생각하여 말하되 신이라 하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어떻게 이와 같은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을까요? 사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일찍이 약속하신 기적이었습니다.

(16:17-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기적으로 거기에 있는 276명과 멜리데 섬의 어리석은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신이라고까지 믿었으니 그가 전하는 복음을 그들이 믿고 따랐을 것은 너무나도 분명한 역사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하여서 그곳에서 또 다른 기적을 보여주심으로 더욱 사도 바울의 권위를 세워주시고 그가 전하는 복음의 능력이 넘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28:7-10)

이 섬에 제일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유숙하게 하더니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웠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올리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도 위대한 역사를 통해 영광을 나타내시고 주의 종을 들어 귀하게 사용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이와 같은 기적보다 더 귀한 믿음인 것입니다.

(16:17-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그런데 이 시대가 21세기 첨단의 시대라 하지만 아직도 사람들은 미신을 믿고 귀신을 믿고 사탄을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대한민국에서 며칠 전 딸과 딸의 어머니가 합동으로 이제 겨우 3살 밖에 되지 않은 딸에게 귀신을 쫓아낸다고 때려서 죽게 하고 감옥으로 간 끔찍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20대 친모와 50대 외할머니는 딸이자 손녀인 3세 여아를 폭행해 숨지게 한 이유로 "아이가 귀신에 씌어서"라고 밝혔다. 경기 이천경찰서는 3일 아동학대처벌법상 학대치사 혐의로 구속한 최모(26·)씨와 신모(50·)씨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이들은 지난달 18~19일 사이 딸이자 손녀인 A양이 보챈다는 등의 이유로 복숭아나무 재질의 회초리와 훌라후프 등으로 때려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18일부터 숨진 당일까지 밥도 주지 않았다. 최씨 등은 지난달 21일 오전 510분께 A양이 숨을 쉬지 않자 병원으로 옮겼으나, A양은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숨졌다. A양의 담당 의사는 몸 곳곳에 멍 자국을 발견하고 같은 날 오전 811분께 경찰에 "학대 정황이 보인다"며 신고했고, 출동한 경찰은 현장에서 이들 모녀로부터 학대 사실을 자백 받아 긴급체포했다. 이후 A양의 시신을 부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전신 피하출혈이 사인"이라고 경찰에 구두 소견을 전달했고, 이에 따라 18~19일 이뤄진 폭행이 직접적인 사인으로 밝혀졌다. 검거 당시 최씨 등은 "(A양이)잠을 안 자고, 말을 듣지 않아 때렸다"고 진술했으나, 구속영장이 발부되고 경찰의 수사가 이어지자 "얘의 몸에 귀신이 씌어서 이를 내쫓기 위해 때렸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또 지난해 남편과 이혼한 최씨가 어머니 신씨와 신씨 가족과 함께 살기 시작했던 지난해 7월이 아닌 201512월부터 A양에게 손찌검을 해왔다. 과거 학대 기록을 수사한 경찰은 "당시에는 경제적인 이유, 양육의 어려움 등으로 최씨가 A양을 이따금 손바닥으로 때린 것으로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신씨와 함께 살면서 잠시 멈췄던 손찌검은 지난해 12월께 신씨 지인인 무당으로부터 "얘가 귀신에 씌었다"는 말을 듣고 다시 시작됐다. 처음에는 귀신을 내쫓기 위해 잠든 A양 머리맡에 복숭아나무를 뒀다가, 지난 1월 중순부터 A양의 보챔이 심해지자 밥도 주지 않고 회초리 등으로 폭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건을 통해 발견하게 되는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무당이 아이에게 귀신이 씌었다고 해서 그 귀신을 내 쫓기 위해 밥도 안 주고 지속적으로 때리다가 결국은 아이를 죽게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엄마가 26, 할머니가 50밖에 안 된 젊은이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도 이처럼 안타까운 사람들이 있는 것은 아직도 인간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모르고 바른 진리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빛과 소금이 되어 이 어두운 세상을 비추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참으로 아름다운 계절을 맞았습니다. 우리들의 삶에도 소생하는 신선한 변화를 만들어 내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어쩌다가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과 같이 신령한 소원을 품어야 하고 풍랑 속에서도 구원 받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예언과 같이 복음을 위해 신령하게 헌신하게 되면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뱀을 잡을지라도 해를 입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16장 참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힘과 돈만으로 봄과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신령한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고 죽음에서도 건져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어야만 제대로 된 복된 삶을 살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저절로 되는 것은 뱃살 불어나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하나님을 찾고 그 하나님께 부르짖으려 영적인 열정을 품어야 합니다. 이는 세상에서 돈을 버는 일도 마찬가지입입니다. 안일에 빠져 적당하게 사업하거나 직장에만 다니지 말고 창조적인 발상과 열정으로 나날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이 땅에 이루어 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주시고 찾는 이에게 만나주시며 두드리는 이에게 열어주시는 놀라운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말씀을 들으며 예배를 드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에게 이와 같은 풍성한 은혜로 기적을 맛보는 삶을 체험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735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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