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26일 주일낮설교 (내 사랑 안에 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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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26 March 2017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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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안에 거하라!
3. 26, 2017
本文:요한복음15:1-11
說敎:崔 仁 根 牧師
[시리아 정부군이 통제하는 서부 항구도시 타르투스와 자발레에서 지난 3월 23일(현지시간) 연쇄 폭탄 공격이 발생해 148명 이상이 숨졌다고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와 시리아 국영TV 등이 보도했다.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는 이번 공격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자처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께 타르투스 시내의 버스와 택시 정류장에서 첫 폭탄이 터진 후 3차례 추가 폭발이 있었고 비슷한 시간대 타르투스에서 북쪽으로 50km 떨어진 항구도시 자발레에서도 4차례 폭탄 공격이 일어났다. 이번 연쇄 공격으로 최소 148명이 사망했다고 시리아인권관측소(SOHR)는 전했다. 자발라에서는 적어도 100명이, 타르투스에서는 48명이 각각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고 이 단체는 설명했다. 부상자도 200명이 넘게 나왔다. 두 도시에서는 첫 폭발이 발생한 후 현장에서 시신을 수습하거나 부상자를 돕는 인파 속에서 테러범이 자신이 착용한 폭발물 조끼를 스스로 터뜨리면서 인명 피해가 컸다. 반면 시리아 국영TV는 "지금까지 두 도시에서 집계된 사망자가 78명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폭탄은 두 도시에 있는 주유소와 버스·택시 정류장, 전력 회사, 병원 응급실 정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졌다. 이 공격에는 5명의 자살 폭탄 범인과 2차례의 차량 폭탄이 동원됐다고 SOHR은 전했다. 라미 압델 라흐만 SOHR 소장은 2011년 3월 시리아 내전이 발발하고 나서 "최악의 유혈 폭탄 공격"이라고 AFP통신에 말했다. 라흐만 소장은 이어 "타르투스 지역에서 이 같은 강력한 폭발이 있기는 30년 만에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소셜미디어에는 사건 현장에 픽업트럭에 실린 시신과 길바닥에 널브러진 신체 일부, 불에 완전히 탄 소형 버스, 승용차, 택시 등의 사진이 올라왔다. 일련의 폭탄 공격 이후 IS 연계 매체인 아마크통신은 "IS 전사들이 타르투스와 자발레 도시에 있는 알라위파 집합소를 공격했다"고 밝혔다.]<(카이로=연합뉴스) 한상용 특파원>
시리아에서는 이처럼 IS가 서방연합국가들의 공격을 방지하기 위해 시민들 40여만 명을 사실상 인질로 잡고 인간방패로 사용하고 있다고 하니 그들의 잔인함과 불쌍한 시리아인들의 삶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한편 아프리카의 한 프로 축구선수가 친구 두 명과 함께 체력을 단련하기 위해 강가를 따라 2시간 정도 뛰고 몸을 식히자며 강으로 들어가 수영을 하던 중 길이 5m에 가까운 대형 악어의 공격을 당해 허리를 물린 채 물 속으로 끌려들어갔는데 아직까지 시체조차 찾지 못한 끔찍한 사건이 지난 주간에 있었습니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우즈베키스탄 지역에서 50대의 한 여성이 3층 건물 창문 난간에 매달린 채 도와달라고 아우성 치고 있었는데 마침 그 밑을 지나가던 청소년들이 그 모습을 보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키득거릴 뿐 그 누구도 신고를 하거나 도와 주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그 여인은 힘이 소진한 나머지 땅바닥으로 추락해 목숨은 건졌지만 엄청난 골절상으로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이렇듯 무섭고도 무정한 세상입니다. 그 누구도 따뜻한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는 사람이 없고 오히려 언제 어떤 위험을 당하게 될는지 알 수 조차 없는 삭막한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러한 때에 우리 예수님께서 주시는 메시지 하나가 오늘 우리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듣기만 하여도 봄날의 햇빛처럼 저절로 온 몸과 마음이 따뜻해 오는 소중한 초청입니다. 사람의 사랑도 아쉬운, 외롭고 지친 이민생활 속에서 하늘의 하나님께서 이처럼 따뜻한 음성으로 우리들을 부르시고 계시니 오늘 우리 성도들은 소망이 있는 백성들입니다. 따스한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이 피부를 간질이며 찾아오는 봄을 맞아서 오늘은 우리 예수님의 이처럼 따뜻한 부르심을 가슴에 새기면서 예배자로서 거듭나고 축복된 하나님의 자녀들로 거듭날 수 있도록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려고 합니다. 마음 귀를 열고 복된 말씀을 받아서 봄보다 더 푸근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온 몸과 마음이 회복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내 사랑 안에 거하라
예수님의 부르심은 언제나 이처럼 따뜻하고 부드럽습니다. 단지 세상의 욕심과 교만에 찌들어 주님의 이와 같은 음성을 듣지 못하는 인생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 세상에 숱하게도 귀하고 좋은 말씀들이 많이 있지만 오늘 본문에 기록된,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는 이 말씀보다 더 따뜻하고 위로가 되는 말씀도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이처럼 푸근한 사랑을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챙기고 생각하는 이 마지막 때에 “내 사랑 안에 거하라”고 부르시는 주님의 사랑은 참으로 오늘 우리들에게 위로와 소망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푸근한 주님의 부르심은 오늘 우리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렇게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삶의 특별한 축복은 과연 무엇인지 함께 공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잘 듣고 봄날과 같은 우리 주님의 부르심에 함께 응답하고 풍성한 축복을 또한 함께 누릴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허덕이며 수고하는 우리들을 주님 곁에 부르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시시때때로 우리들을 부드러운 음성으로 부르십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게도 단순한 한 말씀 속에서도 우리는 우리들을 향하신 우리 주님의 따뜻한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일단은 하늘의 하나님께서 미물만도 못한 우리들의 형편을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하고 부르시는 말씀 속에서 바로 이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오늘 우리들의 수고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 중에 이렇게 수고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수고보다 더 힘든 것은 그 누구도 우리들의 수고를 인정하고 위로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 모두의 슬픔이요 아픔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늘의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들의 이 수고를 아시고 인정하시고 다가와 주신다니 놀랍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주님은 그렇게 우리들의 수고를 알고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친히 해결해 주십니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말씀이 바로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은 예수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막연하게 교회에만 다니지 말고 가슴을 열고 이와 같은 깊은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왜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지, 왜 우리들이 정성을 다해 이 날을 하나님께 바쳐 예배로 화답하여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이처럼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들을 사랑해 주시고 우리들의 형편을 다 아시고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축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십자가가 존재하는 한 우리는 거기에서 피를 흘리며 친히 생명을 내 놓으셨던 그 사랑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여기에서 하나 더 더하시며 우리들을 부르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말입니다. 이 말씀의 숨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의 제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요15: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는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면 오늘 우리들을 찾아오셔서 “내 사랑 안에 거하라”시는 주님의 진정한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주님의 사랑 안에서 위로와 소망과 꿈을 안고 과실을 많이 맺혀서 나의 제자가 되어라 는 것이 바로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진정한 바램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똑바로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또한 이 세상에서 널리 전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 삶의 향방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 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제자는 배우는 자입니다. 제자는 스승을 닮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단도직입적으로 명령하셨습니다.
(마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고 말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 예수님을 똑바로 배우는 바로 그곳에 진정한 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쩌면 우리 성도들은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수고하고 봉사하고 헌신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미쳤다”고 할 만큼 우리는 그들보다 더 많이 몸도 마음도 시간도 돈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보면 우리는 세상 사람들보다 더 잘 살고 더 건강하고 더 행복하고 더 오래 장수합니다. 왜입니까? 우리들을 지켜보시고 보상하시는 하나님이 역사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다음의 두 성구를 묵상해 보신다면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마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여기에서 우리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강력하게 명령하고 계십니다.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이렇게 가르치고 지키게 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스승을 똑바로 배운 자들만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사랑 안에 있는 자라야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 있어야만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제자의 삶을 살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이 세상 끝날 때까지 함께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님은 명령하십니다. “내 사랑 안에 거하라”고 말입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신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컬럼브스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실로 황금에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신천지를 찾아 떠난 것도 바로 이 황금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평생을 자신의 이름으로 인해 고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이름 크리스토퍼는 “예수 그리스도를 업고 다니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의 이름 그대로 그는 예수님을 업고 살 것인가? 황금을 업고 살 것인가를 두고 그렇게 고민을 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수도원에 들어가 며칠 동안 간절히 기도한 그는 마침내 신부님을 찾아가 자신의 이름을 회복하는 삶을 살겠노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세상도 황금도 다 버리고 오로지 예수님만을 위해서 그의 제자로 살겠노라고 결심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는 14년 동안 예수님의 제자로서 온전히 살다가 평안하게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그가 세상 떠나기 며칠 전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습니다. “내가 평생을 돈을 위해 살아 왔지만 내 인생의 마지막 14년 동안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 온 그 시간보다 더 행복했던 순간은 없었다.”고 말입니다.
풍성한 열매를 맺히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서 기죽지 않고 꿈을 꾸며 당당하게 그 어떤 환경과 사람들 앞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사랑을 넘치게 받으며 자라난 사람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사랑을 충분하게 받지 못한 채 자란 사람은 어딘가 자신감이 없고 두려움이 많고 용기가 없으며 매사에 소극적인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하나님은 언제나 사랑으로 모든 매사를 연관 지어 말씀하십니다.
(요14: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는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을 통하여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요15:4-6)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듯 사랑은 관계입니다. 그리고 그 관계는 성공의 비결인 것입니다. 관계 중에서 가장 확실하고 Strong한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신 의도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와 같은 굳건한 관계를 통해서 우리들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히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그 누구도 혼자서 살 수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친히 판단하신 결과요 인류의 긴 역사를 통해서 모든 삶의 선각자들이 고백하는 삶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함께 해야 열매를 맺히고 함께 해서 세상을 정복할 수 있고 함께 해야 행복할 수 있도록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지고 훈련되고 또한 살아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이와 같은 소중한 관계를 설명하시면 포도나무를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가지가 그 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죽게 되고 그렇게 죽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매우 우리들의 일상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말씀이지만 이 보다 관계를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아마도 이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를 예수님과 오늘 우리들의 관계로 해석해 주시는 이 말씀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분명한 비유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는 이 말씀은 곧 예수님 안에 거하라는 뜻이요, 그렇게 예수님 안에 있어야 하는 이유는 풍성한 열매를 많이 맺히기 위함이라는 이 논리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수학을 다 집대성 해 놓아도 이보다는 못할 만큼 분명한 공식이요 해답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는 신비로운 하나의 비밀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그래서 풍성한 열매를 많이 맺히려면 예수님의 사랑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연 무슨 의미일까요? 우리 교회에서 약 25마일 북쪽으로 I-5를 타고 달리면 메리스빌이라는 작은 도시가 나옵니다. 거기에는 워싱턴 주에 딱 하나밖에 없는 스테이크 뷔페식당이 있습니다. 그 식당 안에 디저트 코너에 가면 액체로 된 큰 초콜릿통 옆에 꼬챙이에 꽂힌 딸기가 수북하게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꼬챙이에 꽂힌 딸기를 초콜릿 통에 찍으면 초콜릿이 딸기의 온 몸을 감싸며 초콜릿딸기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윈리입니다. 죄악으로 범벅이 되고 이기주의로 찌들린 우리들에게는 실상 사랑이 없습니다. 사랑이 없는 메마른 가슴으로는 이 세상에서 결코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성공하지 못하니 풍성한 열매를 또한 맺히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메마른 우리들이 사랑이 넘쳐나는 예수님 안에 있게 되면 예수님의 그 풍성한 사랑이 우리들에게 묻어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들에게 사랑이 풍성해지면 이 세상을 이기고 많은 열매를 맺는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지금 우리들을 부르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내 사랑 안에 거하라”고 말입니다. 할렐루야!
기쁘게 실아가라는 뜻입니다
이 종은 지난 주일에 비타민D에 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비타민D가 부족하면 우울해지고 그것이 더 심해지면 우울증이라는 무서운 병에 걸리게 된다는 사실을 또한 배웠습니다. 그렇습니다. 반대로 비타민D가 우리 속에 풍성하면 우리들의 기분이 명랑해지고 맘속에 잠재하던 어두운 그림자를 제거해 줍니다. 이렇듯 사람의 슬픔과 기쁨이 저절로 생성되고 저절로 누리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슬픔과 고뇌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 우리 불쌍한 인생들을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계시기에 오늘 우리들을 불러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만 기쁨이 충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15:9-11)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 예수님도 우리들이 기쁘게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 가슴에 기쁨이 풍성하게 담겨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도 행복하고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눈에도 보이지 않는 은근한 향내는 저절로 기분을 좋게 합니다. 하지만 불쾌한 냄새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언제나 이웃들에게 유익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도전을 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 우리 예수님께서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부르시는 이유가 우리들 속에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려는 이유라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이 종은 이렇게도 많은 여러분 앞에 서 있습니다. 한 눈에 기쁨이 가득한 모습과 그 반대의 모습을 동시에 볼 수 있습니다. 두말 할 필요도 없이 기쁨이 가득한 성도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제 마음도 기쁩니다. 반대로 근심이 충만한 성도들을 보는 순간 제 마음은 순간에 가라앉게 되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머무시는 성전으로 기쁨을 안고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도 노래하였습니다.
(시100:2)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
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기쁘게 하나님을 찬송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기쁨으로 예배드리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들의 부모님도 우리들이 기쁨으로 서로 사랑하며 우애 있게 지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모두가 다 그렇게 기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고통을 많이 받으며 일생을 주님만을 위해 헌신하고 살았던 사도 바울이 오늘 우리들에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빌2:18)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빌3:1)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빌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고 말입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기쁘게 살아가는 것은 하늘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의 근본이요 성도의 기본자세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기쁘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늘 기쁘게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길은 오직 하나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면 가능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우리들에게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내 사랑 안에 거하라”고 말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누구나 이 땅에 태어났으면 주어진 인생을 살고 이 세상을 떠나가게 됩니다. 하지만 단 한 번뿐인 인생을 값지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가 않습니다. 기생충처럼 남의 소중한 것들을 강탈하면서 그렇게 생명을 연명하여 가는 인생들도 많고, 있으나 마나하게 오로지 자기 자신밖에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으며, 무엇인가 인류와 사회에 유익을 만들어 가며 하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진짜 멋진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또한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들과 하나님의 관계를 포도나무에 비유하셨던 것입니다. 서로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인과관계를 맺고 생명이 있는 한 유익한 열매를 풍성하게 맺혀 주인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그런 멋진 인생을 살아가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많은 값을 지불하고 학교에 다니며 배우고 있고 또한 세상 사람들과 비교도 되지 않는 시간과 정력을 쏟으며 교회에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목적은 오직 하나, 보람 있고 유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풍성한 열매를 맺히며 값지게 살아가는 유일한 길이 오늘 배운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종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있으나 마나 한 존재가 아니라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우리들의 짧은 생애가 천국이 되고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단 한 사람도 예외가 없이 때가 되면 이 세상을 떠나야 합니다. 제발 깊은 깨달음을 가지고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들과 우리들의 후손들을 위해서 우리는 열매 있는 복된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된 예배를 드리며 천금 같은 말씀을 받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바로 이와 같은 삶의 가치와 믿음으로 나날이 천국이 되고 기쁨이 가득한 그런 삶이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7년 3월 26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