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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You are here: Home 말씀과예배 설교 읽기 2017년 4월 2일 주일낮설교 (바른 삶의 희망입니다)

2017년 4월 2일 주일낮설교 (바른 삶의 희망입니다)

바른 삶은 희망입니다!

4. 2, 2017

本文:출애굽기2:1-10

:

['골든벨 소녀' 김수영 작가가 근황을 전했다. 328일 방송된 KBS1 '아침마당'의 화요초대석에는 김수영 작가가 게스트로 출연해 '골든벨 소녀, 꿈의 씨앗을 뿌리다'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김수영은 윤인구 아나운서가 근황을 묻자 "영국 런던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그만두고 전 세계를 여행하며 많은 꿈에 도전했다. 회사도 차렸고 최근에는 결혼도 했다"고 말했다. 여행가, 작가, 강연가, 기업인, 콘텐츠 제작자, 번역가 등 직업만 10개가 넘는 김수영 작가는 과거 중학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로 여수상고(현재 여수정보과학고)에 입학했으며, 재학 중 KBS '도전 골든벨'에 출연하여 실업고 학생으로는 처음으로 골든벨을 울렸다. 이후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경영학 학사과정을 마치고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 로열더치셸 영국 본사에서 카테고리 매니저로 활동한 바 있다. 골드만삭스 입사 3개월 만에 몸에서 암세포가 발견되고, 충격을 받아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것을 써 내려갔고, 2016년 현재 83가지 꿈을 담은 리스트를 완성하였으며, 지금도 그 꿈들을 하나씩 실현해가고 있다. 가난한 가정형편, 학교 중퇴, 상고출신, 25살의 '암 선고' 등 수많은 편견과 역경을 이겨낸 그는 1년 동안 세계를 누비며 사람들이 어떤 꿈을 꾸고 어떻게 이루는지를 직접 카메라에 담아 방송했고, 학교, 기업체 등 사회 곳곳에서 꿈을 전파하는 강연자로 나서 활발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으며 사회적 기업 '드림 파노라마' 대표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멈추지 마 다시 꿈부터 써 봐', '당신의 사랑은 무엇입니까', '드림 레시피',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등이 있으며, CBS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 KBS 이야기쇼 두드림 등 국내 언론매체 뿐 아니라 인도, 싱가포르 등 해외 25개 매체에 널리 소개된 바 있다.]

이상은 김수영씨에 관한 간단한 소개입니다. 희망 하나로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성공가도를 걷고 있는 그녀의 멋들어진 모습을 짧은 글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생명이 붙어 있고 살아 있다면 그 자체로 꿈이고 희망이라는 사실을 오늘 우리는 온 몸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건강한 몸이 있다면 그 어떤 역경도 이겨낼 수 있고 또한 성공할 수 있다는 꿈을 가지고 인생을 정복해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기 때문입니다.

(1:27-28)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길고도 추웠던 겨울에서 벗어나 만물이 소생하며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 아름다운 봄과 4월을 맞았습니다. 움츠렸던 가슴을 펴고 심호흡과 함께 꿈을 마시며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에 삶을 맡겨드리고 새로운 희망을 내다보는 진정한 신자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바른 삶은 희망입니다!

오늘 본문은 자식을 낳아 본 부모라면 그 누구라도 가슴을 칠 충격적인 아픔으로 가득합니다.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았는데 나라가 그 아들을 죽이려고 칼을 들고 설치니 할 수 없이 버려야만 했던 청천벽력과도 같은 현실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이 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아들을 낳으면 무조건 죽이라는 왕의 엄명을 어기고 석 달 동안을 숨기며 키우다가 더 이상은 숨길 수 없어 갖다 버려야 한다면 그보다 더 큰 아름과 고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쁜 아들을 지켜 줄 수 없다는 부모로서의 자괴감과 나의 아들을 나라가 죽이려 하는 처참한 삶의 헌실 앞에서 그들은 절망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안타까운 모습들을 종합해서 긴 역사 속에 올려놓고 보면 그렇게 절망스러운 것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또한 발견하게 됩니다. 절망이 아니라 오히려 희망이었고 놀라운 기적이었으며 끝내는 축복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버려야만 했던 주인공 모세가 인류 최고 최상의 지도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에게 생명이 있고 건강이 있다면 그 자체로 희망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렇다면 어떻게 이처럼 비참한 삶의 현실이 축복이 되고 희망이 될 수 있었을까요? 오늘은 바로 이와 같은 거대한 질문 앞에 그 해답을 찾아보는 말씀으로 봄의 희망을 엿보려고 합니다. 함께 마음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을 만나 뵐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인생은 스스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다니는 성도들이라면 모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모세의 일생은 출애굽기를 통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버림을 받고 바로의 궁에서 자라나 스스로 민족을 해방시켜 보려다가 실패자가 되어 광야로 도망을 가고 무명의 용사로 무려 40년이라는 긴 세월을 초야에 묻혀 그냥 그렇게 인생이 끝나는가 했더니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역사로 그를 부르시고 다시 40년이라는 긴 세월을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어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었던 세기적인 인물이 바로 모세입니다. 간단하게 그의 생애를 들여다보아도 그는 그의 인생이라고 스스로 산 것이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인생은 태어날 때부터 스스로 태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나쁘게 되거나 선하게 되지도 못합니다. 그만큼 환경 지배적 존재가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모세를 보면 이와 같은 사실을 극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스스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 의해 태어나 보니 세상이 악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사내아이는 모두다 죽여야 하는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강가에 버려져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를 건져내 키운 것은 이스라엘의 아들은 모두 다 죽이라고 명령한 바로 왕의 딸이었습니다. 인생이 스스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모세가 장성했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왕궁에서 40여 년 동안 문무를 통한 모든 준비를 다 하였습니다. 조국과 동족에 대한 열정 또한 남달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불쌍한 민족을 해빙시켜 보겠다며 동족을 구하고 애굽인을 쳐 죽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40년 동안 성장해 왔던 꿈의 보금자리 왕궁을 탈출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스스로 무엇인가 해 보려고 했던 것 자체가 실수였던 것입니다.

(2:11-15)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고역 함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어떤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좌우로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 죽여 모래에 감추니라 이튿날 다시 나가니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그 그른 자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 그가 가로되 누가 너로 우리의 주재와 법관을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임같이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가로되 일이 탄로 되었도다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은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곁에 앉았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늘 우리들이 무엇인가를 해 보려고 애쓰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취하면 잘난 척 교만하고 못하면 낙심하며 스스로를 비관합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인생은 꼭 이렇게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오늘 우리는 모세를 통하여서 배우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서도 늘 경험하게 되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지난 330일 박근혜 대통령은 결국 감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대통령의 딸로 태어나 대통령이 된 보기 드문 인생을 살아 왔지만 최태민, 최순실이라는 그릇된 사람들을 만남으로 인해 그 누누도 상상하지 못했던 인생 나락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을 보면 역시 인생은 스스로 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대통령이 되었다가 이처럼 비참하게 탄핵이 되고 감옥에까지 갈 바에야 평범하게 살아가며 소시민으로서의 행복을 누리는 것이 더 낫기 때문입니다. 독방 앞에 서서 그렇게 울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인생지사 塞翁之馬(새옹지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가슴으로 느끼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우리 인생이라고 우리 마음대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보다 더 지혜롭고 효과적인 삶을 위해 깊이 있는 고민을 한 번 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인생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만큼 행복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누군가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끈 떨어진 망아지처럼 스스로 자유하며 스스로 만족하며 스스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그 누구를 막론하고 가르침 받기를 싫어하고 충고를 배격하며 오로지 자기 소욕에 좋을 대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이 시대에는 스승도 없고 제자도 없는 막무가내의 세상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끔찍한 사건 하나가 터져 세상을 온통 충격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열일곱 살 난 고등학교를 중퇴한 소녀가 초등학교 2학년인 8살짜리 여자 아이를 자기 집으로 유인해 목을 졸라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하여 쓰레기 봉지 두 개에 나누어 담고 아프트 옥상 물탱크 위에 유기했다가 경찰에 붙잡힌 사건이 바로 그렇습니다. 지난 수요일(329) 인천에서 철없는 8살 아이가 이렇게 비참하게 죽은 것입니다. 살인자를 구속까지 하였으나 아직도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는 알아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중학교 때의 친구들을 중심으로 탐문해 본 결과 범인은 어릴 때부터 고양이나 짐승을 잡아 해부하는 것을 많이 했다고 하니 이 어린 아이도 그런 식으로 해부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만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어쨌든 어린 8살짜리 딸아이를 잃은 부모님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원통하고 가슴이 아픕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들의 나이만큼 오늘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모세를 보면 한 사람의 인생이 스스로 살아가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의해 인도 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태어났을 때부터 마지막 죽음에 이르기까지 세세하게 하나님께서 간섭하시고 계셨다는 증거들이 성경에 가득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1:15-21)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자와 부아라 하는 자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조산할 때에 살펴서 남자여든 죽이고 여자여든 그는 살게 두라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을 어기고 남자를 살린지라 애굽 왕이 산파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 이같이 하여 남자를 살렸느냐 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하매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라 백성은 생육이 번성하고 심히 강대하며 산파는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을 왕성케 하신지라

여기에서 우리는 산파까지도 하나님께서 간섭하시고 다스리고 계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태어났고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왕궁에서 자라나는 기적을 보았던 것입니다. 이는 죽이라는 왕의 딸이 모세를 건져 키웠기 때문입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젖을 먹일 유모를 구해야 하는데 그 유모가 또한 모세의 어머니였다는 사실입니다.

(2:7-9)

그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당신을 위하여 이 아이를 젖 먹이게 하리이까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그 소녀가 가서 아이의 어미를 불러오니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이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이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아들을 낳으면 다 죽여야만 했던 처절한 환경 속에서 모세는 그 어머니의 젖을 먹으며 자랄 수 있었고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자신의 아들을 젖먹이면서 공주로부터 삯을 받았으니 이보다 더 큰 기적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세는 왕궁에서 40년 동안 자라났고 광야로 보내져 또 다른 40년을 연단 받은 후 결국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스라엘의 최고의 지도자로 40년을 충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선한 인생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가능하고 그렇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은 최고 최대의 축복을 받은 자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아삽이라는 사람은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선언하였던 것입니다.

(73: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

뿐만 아니라 교만하다가 조상들이 지진으로 망한 고라 자손들은 이와 같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궁정에서의 한 날이 악인의 장막에서 거하는 천 날보다 낫다고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84:10-12)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한결 같이 하나님께서 인생의 길을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가치를 알고 이처럼 놀라운 고백으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섬겼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우리들 앞에 놓인 크고 작은 문제들을 바라보一喜一悲(일희일비)하지 말고 먼 미래를 내다보고 오늘 우리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우리들과 우리 자녀들의 장래를 맡기는 믿음의 종들이 다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도들이 가장 못하는 일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맡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는 성도들을 인도하는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은 그렇게 쉽게 맡기라하면서도 정녕 맡겨야 하는 문제를 만나게 되면 끝까지 붙들고 몸부림치는 것을 날마다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을 보니 이제는 맡겨야 하겠습니다. 끝까지 고집을 부리면 바로 왕과 같이 고통에 빠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바로를 보십시오. 하나님이 과연 어떠하신 분이신가를 열 가지의 재앙을 통해서 분명히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고집을 피우고 그 하나님께 대항하다가 자신의 맏아들을 비롯하여 자신이 왕으로 있는 애굽의 모든 백성들의 첫째를 다 잃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더욱 어리석은 것은 그와 같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백성들을 끝까지 따라가 죽이려고 하다가 자신의 소중한 군사들을 홍해에서 몰살시키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14:23-28)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들이 다 그 뒤를 쫓아 바다 가운데로 들어오는지라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 구름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그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그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에 극난하게 하시니 애굽 사람들이 가로되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치는도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바다 위로 내어 밀어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 하시니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어 밀매 새벽에 미쳐 바다의 그 세력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스려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쫓아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우리는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하여서 통렬히 깨달아야 할 교훈을 받습니다. 애굽 군사들이 한 말이 바로 그렇습니다.

(14:24-25)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 구름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그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그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에 극난하게 하시니 애굽 사람들이 가로되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치는도다

여기에서 일부 애굽 병사들은 이미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서 친히 싸우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주인인 바로의 추상같은 명령을 어길 수 없어 그들은 끝까지 갈라진 바다 속으로 뛰어 들었다가 결국은 다 죽은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애굽의 바로 왕에게만 있는 고집이겠습니까? 오늘 우리들도 꼭 같습니다. 끝까지 제고집대로 해보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망하고 나서야 자신이 잘못 했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구약에서는 앞을 내다보는 선견자인 선지자를 세워주시고 신약시대와 지금은 목사들을 세우시고 여러분들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제발 이제는 고집을 버리고 절대 전능하신 하나님께 우리들과 우리 자녀들의 삶을 맡기고 의지하는 가장 평범하면서도 가장 비범한 이 길을 선택해야만 하겠습니다. 오직 그 길만이 살 길이요 복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렇게 살았다가 만복을 받았던 성군 다윗을 기억하게 됩니다. 그는 목숨을 걸고 충성하였던 왕 사울로부터 죽임을 당하게 되는 참으로 비참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손수 왕이 군사들을 이끌고 자기를 잡아 죽이려고 추격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말입니다. 다윗은 충분히 사울을 죽이고 스스로의 위험에서 해방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능히 사울을 죽이고 위험에서 해방 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요즘 벌률 용어로 정당방위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사울의 옷자락만 베었을 뿐 그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다윗 같은 큰 용사가 잠이 든 왕의 옷자락을 베었다는 뜻은 목도 벨 수 있었다는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왜 자기 목숨을 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인 대적의 목을 베지 않고 옷자락만 베었을까요? 자신이 처한 환경을 하나님의 손에 올려드렸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사울의 손에 죽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죽겠다는 뜻이요, 반대로 사울이 자신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결코 사울이 하나님의 허용 없이 자신을 죽일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삶의 위기를 하나님께 맡겨드리는 믿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이와 같은 기회를 두 번씩이나 주었지만 다윗은 한결 같이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이와 같은 믿음을 확인하신 하나님은 결국 다윗을 살리시기 위해 사울을 죽이시고 이처럼 하나님께 자신의 인생을 맡기는 다윗에게 사울 왕의 권좌를 허락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가슴으로 깨달았던 다윗은 훗날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교훈하고 있습니다.

(37:4-9)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고 말입니다.

여기에서 이 종의 간단한 간증을 하나 하겠습니다. 우리 교회를 개척하고 3년여 만에 300여명의 교회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러자 교회의 헤게모니를 잡겠다는 무리들이 일어나 고라자손들이 모세를 대항하듯 이 종을 배신하였습니다. 이민국에다 가짜목사로 고발을 하고 온갖 추악한 루머를 퍼트렸습니다. 그래서 영주권을 빼앗기고 추방당할 위기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은 가고 13년이란 기나긴 시간동안 가족들은 미국에 들어오지를 못했습니다. 가족들이 들어오는 것은 고사하고 제 자신조차도 추방의 위기에서 헤어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캐나다를 통해서 가족들을 데리고 오도록 하자, 이민국 앞에서 데모를 하자 는 등의 의견들이 분분했습니다. 심지어는 변호사가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교인들을 동원하여 이민국 앞에서 데모를 하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잘 아는 시애틀타이즈의 기자가 있는데 그 기자를 불러 데모하는 모습을 촬영하고 기사화해서 여론을 일으키면 이민국이 항복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다윗과 같이 우리 빌립보교회를 이 종에게 맡기실 것이면 영주권을 회복시켜 주시고 가족들을 보내 주실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한국으로 가서 한국에서 목회하겠다는 일념으로 하나님께 기도만 하면서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악한 자들을 다 제거해 주시고 영주권 대신 시민권을 주시고 때가 되매 가족들을 보내주시고 오늘까지 34년 동안 우리 빌립보교회를 섬기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에서 그 어떤 좋은 조건으로 이 종을 청빙하고 불러도 우직하리만큼 우리교회만을 위해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교회를 맡기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모세를 통해서 그리고 다윗을 통해서 못나고 부족하지만 이 종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인도하시고 계심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이제는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 하나님께 우리들의 인생을 맡겨드리는 용기 있는 믿음으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반드시 모세와 다윗, 그리고 이 종과 함께 하시던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과 친히 함께 하시고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들을 축복의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요 신자들이 걸어야 할 축복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바라만 보아도 심장이 뛰는 참으로 좋은 봄의 계절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의 삶에도 봄이 임하고 푸른 희망이 가득한 역사가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바른 삶은 그 자체가 희망입니다!”는 제하의 말씀을 전해드렸습니다. 우리 모두 막연하게 죽은 나무처럼 살지 말고 생명이 있는 한 봄이 되면 다시 피어나듯이 우리들의 삶도 영혼도 자녀들도 그렇게 힘차게 피어날 수 있도록 인생의 근간을 이루는 기본을 깊이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인생이라고 우리 스스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이 땅에 태어났으면 하나님께서 간섭하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인생을 스스로 붙잡고 혼란스럽게 살아가지 말고 하나님께 맡겨드리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른 삶이요 바른 믿음이요 바른 인생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스스로 뭔가를 해보겠다고 몸부림치며 모세처럼 실패해 왔으면 이제라도 깨닫고 용기 있는 결단으로 변화의 역사를 만들어 내야 하겠습니다. 언제까지 그렇게 맹하게 교회에만 다니겠습니까? 이제는 다윗처럼 과감하게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기적을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디 만물이 소생하는 이 아름다운 봄의 계절에 신선한 변화와 결단으로 하나님의 기적을 보는 그런 멋들어진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이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742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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