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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9일 주일낮설교 (천국으로 가는 길)

천국으로 가는 길

고난주일

4. 9, 2017

本文:마태복음16:21-27

:

미국 인구조사국의 조사에 의하면 2017318일부로 73억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지구가 무거울 정도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그들 중에 단 한 사람도 이 지구상에 영원히 남아 있을 사람은 없습니다. 길어야 100년도 살지 못한 채 모두가 다 가을 낙엽처럼 하나씩 둘씩 이 세상을 떠나 하루에도 25만 명 이상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과연 사후의 세계는 존재하는 것이며 죽은 다음에도 그 무엇인가가 존재하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 성경은 아주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사람은 죽으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바로 지옥과 천국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조물주이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살아생전에 하나님을 믿었던 신자들은 구원을 받아 천국으로 들어가게 되고 불신자는 죽어서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된다는 것이 성경 전체의 가르침입니다. 이것을 믿지 못하니 결국 불신자가 되는 것이고 죽은 사람이 아무도 살아나와 그곳의 상황을 설명해 주지 않으니 무지한 가운데서 지옥 형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말씀으로 돌아가서 스스로 잘난 척 하지 말고 성경 말씀대로 믿고 따르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지난 2천년 동안 변하지 않고 뭇 사람들의 신앙과 삶의 표준이 되어 왔으므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믿지 못한다 해도 눈에 보이는 성경 말씀만은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 자신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그와 같은 성경이 오늘 우리들에게 생생하게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천당 아니면 지옥으로 가게 된다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천당으로 가는 길에 대해 자세히 배우고 정해진 삶을 다 하고 죽게 되었을 때 영원히 복락을 누리며 살 수 있는 천국으로 가야 하겠습니다.

천국으로 가는 길

그렇다면 우리 인생들이 어떻게 천국으로 갈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서 또한 성경은 분명한 해답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말씀입니다.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것은 예수님께서 친히 증거해 주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권위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입니다. 이 말씀을 곰곰이 묵상해 보면 천국으로 가는 길에는 반드시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으로 가는 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천국은 우리 스스로 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천국은 예수님께서 친히 안내해 주셔야만 갈 수 있는 곳입니다. 우리들은 지금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 땅이 얼마나 크고 방대한지는 미국을 횡단하고 여행해 본 자들만이 감탄합니다. 한국에서 미국 시애틀로 오는데 9시간 조금 더 걸립니다. 그런데 뉴욕에서 시애틀로 오는데 거의 6시간이 걸립니다. 그렇다면 이 땅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땅이 텅텅 비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미국의 대통령인 트럼프는 이슬람의 신봉자들로 구성된 6개 나라의 사람들은 미국 땅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제2차 행정명령을 내렸습니다. 그 외에도 미국이 요구하는 비자를 소지하지 못한 자들은 그 누구도 미국 땅에 합법적으로 발을 들여 놓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황금보석으로 가득 찬 천국을 아무나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곳으로 가려면 반드시 천국으로 가는 길이 되어주시는 예수님을 통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요한복음 14:6의 말씀으로 대변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다 예수님, 예수님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예수님을 모르고서는 그 누구도 갈 수 없는 곳이 바로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들이 천국으로 갈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천국으로 가는 길에 대해 성경이 증거 하는 대로 자세하게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천국으로 가는데도 길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여행을 하려고 해도 목적지로 가는 길을 찾게 됩니다. 비행기를 타든지, 배를 타든지, 혹은 자동차를 타든지를 막론하고 길을 따라 가야 목적지에 도달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에도 길이 있고 바다에도 길이 있으며 땅에서는 더 더욱 길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천국으로 가는데도 길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친히 자신을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고 말입니다. 그런데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분명하게 기록된 성경 말씀인데도 이 말씀의 의미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천국 같 수 있는 복된 길을 잃어버리고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그렇게 미련한 자들이 되지 않도록 마음 귀를 세우고 천국 가는 길이 무엇인지 똑바로 배워서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천국으로 당당하게 입성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천국으로 가는 길에는 죄의 가시덤불이 너무나도 무섭게 엉켜있어서 그 누구도 그 가시밭을 헤치고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가시덤불을 치우고 길을 만들어만 합니다. 그와 같은 가시덤불은 바로 우리들이 타고난 원죄와 그 원죄를 안고 사는 날 동안 지어온 자범죄입니다. 이 죄를 안고서는 그 누구도 거룩 거룩한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그 모든 죄를 치워버리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어린 양이 되어 피를 흘리셨던 것입니다. 오로지 예수님의 피 만으로만 우리들의 죄를 씻어버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9:22)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고난을 당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모든 인류의 죄는 오직 예수님의 피로서만 깨끗게 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렇게도 무서운 십자가의 고난을 스스로 자원하여 당하셨던 것입니다.

(53:5-6)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죄의 담을 헐어주시려고 일부러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 당하셨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이 세상의 모든 이치를 다 잊어버려도 단 한 가지 이와 같은 놀라운 진리 하나는 가슴에 새겨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사형선고를 받은 우리 죄인들을 풀어주시고 예수님께서 그 무서운 형틀에서 달리시고 돌아가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자들과 그 이름을 부르는 자들은 그 누가 되었던 지간에 다 천국으로 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16:31)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되었고 지난 2천년이 넘도록 변함이 없었으므로 진리입니다. 누구든지 이와 같은 예수님만 가슴에 품고 살면 죽어도 천국에 가는 것이 만고불변의 진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모든 말씀들을 종합하여 단 한 마디로 말씀해 주셨으니, “내가 곧 길이다!”고 선포해 주셨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천국으로 가려면 자기 자신을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따라 천국으로 가기를 원한다면 자기 자신을 부인하라!”고 하셨습니다.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 말씀은 과연 무슨 뜻일까요? 이 말씀의 의미를 알려면 앞으로 돌아가서 왜 이와 같은 말씀이 나왔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앞서 베드로는 예수님으로부터 심한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해야 하실 엄청난 일을 가로막고 서서 인간적인 자신의 견해를 밝혔기 때문입니다. 말씀부터 먼저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6:21-24)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여기에서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천국 가는 길을 준비하시려고 십자가를 지러 가야 한다고 말씀하실 때 그 길을 가로 막고 서서 이런 일이 결코 주님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고 엄히 책망하셨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주신 말씀이,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자신을 부인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예수님을 따라 천국으로 가기를 원한다면 우리 자신을 먼저 부인하여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인간적인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을 가로 막았던 것은 어떻게 보면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어떤 제자가 스승이 죽임 당하러 가야 한다는데 잘 가세요하면서 지켜보고만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렇게 한 베드로를 향하여 예수님은 사탄이라고까지 무섭게 책망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육신적인 판단만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장차 천국으로 가는 길에서는 결코 인간적이고 육신적인 판단만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와 같은 자기 자신을 부인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천국으로 가는 길목에서 인간적이고 육신적인 모든 가치관을 과감하게 다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훗날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의 자랑할 만했던 모든 세상적인 스펙들을 과감하게 배설물과 같이 버렸던 것입니다.

(3:7-9)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도 이제는 이와 같이 우리들의 생각과 지식과 경험과 인간적인 모든 것들을 과감하게 배설물과 같이 버려야만 하겠습니다. 그래야만 그 보다 더 고귀한 천국을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도 우리 자아가 살아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스스로 판단하고 정죄하여 예배까지도 자기 뜻에 맞지 않으면 그냥 빠져버리는 엄청난 우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임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육신에 갇혀서 신령한 영적인 판단이 흐려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엄히 명령하십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자신을 부인하라!”고 말입니다.

이 지구촌에서 가장 잔인한 존재는 누가 뭐래도 극단적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 즉 IS일 것입니다. 사람의 소중한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 못하게 살해하는 인간들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들 앞에서 무슬림으로 개종하라는 명령을 받고 당당하게 거절한 맹인 크리스찬이 있어서 기독교계뿐만 아니라 일반 매스컴에서도 대서특필하였습니다. 주인공은 50대 후반의 마리얌 페드리우스씨입니다. 그는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입니다. 그녀는 2년 전 이라크의 제2의 도시인 모술에서 IS에게 붙잡혀 인질이 되었습니다. IS는 그녀에게 무슬림이 되도록 개종을 지시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앞에서 당당하게 거절하였습니다. “전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슬람으로 개종하라고요? 아니요, 그럴 수는 없어요. 당신들은 사람을 죽이고 괴롭히죠. 난 당신 같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개종하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입니다. 바로 그때인 201510월 시리아에서는 11명의 크리스찬 선교사와 어린이들이 개종 요구를 거부했다가 모두가 다 비참하게 살해를 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201412월에도 15세 미만의 아이들 4명이 IS의 이슬람 개종요구를 받고 거절하였다가 비참하게 피살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비록 어린 아이들이었지만 당당하게 선포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한다. 우리는 예수님을 항상 사랑하고 따르고 있다.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들과 함께 하신다.”며 그들의 개종 요구를 거부하였던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가차 없이 어린 그 아이들을 비참하게 사살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도 비참하게 개종요구를 거절하였다가 모두가 다 처형되었음에도 마리얌은 그들의 개종 요구를 과감하게 거절하였습니다. 당당하게 그들을 거부하고 예수님을 똑바로 믿겠노라고 선언하였던 것입니다. 그 이후 IS의 감시가 느슨한 틈을 타서 무작정 탈출해서 앞도 못 보는 그녀는 수 십 킬로를 걸어 나와서 기적적으로 구조를 받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자신을 부인하는 예수님의 자녀들이 살아가야 하는 모습입니다. 죽임을 당한다 할지라도 자신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선택하는 믿음! 바로 이것이 우리 자신을 부인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으로 가는 길에는 십자가가 필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천국으로 가는 길에는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는 말씀이 바로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냥 맥 놓고 덜렁덜렁 그렇게 천국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적당하게 믿는 척 하면서 교회에만 드문드문 다니기만 하면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엄청난 착각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천국은 고사하고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미국 땅에도 들어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강력한 법보다도 더 강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를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되새기며 따르고 또 순종하여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지막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단도직입적으로 다음과 같은 말씀을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16: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고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이 보다 더 강한 말씀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그렇게도 귀하게 생각하는 것이 목숨입니다. 그러한 목숨까지도 우리들 스스로 유지하고 보존할 수 없다는 말씀을 지금 우리 예수님께서 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렇게 소중한 목숨조차도 예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를 우리는 어설프게 들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살고 죽는 것이 오직 예수님의 손에 달려 있는 줄 알고 그 주님의 말씀에 귀를 세우고 듣고 복종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들 앞에서 온 몸으로 순종하시고 보여 주신 길이기 때문입니다.

(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이 진정으로 주님 계시는 천국으로 가기를 원한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예수님의 이와 같은 말씀을 귀하게 듣고 순종하는 훈련부터 해야 합니다. 지금은 살아 있지만 당장 내일은 어떻게 될는지 아는 이가 우리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십자가입니까? 십자가는 고통의 상징입니다. 그 옛날에는 죄인들을 이 십자가의 형틀에 매달아 죽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나무에(십자가)에 달린 자마다 저주를 받은 자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21:23)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저주의 상징인 십자가를 각자가 지고서야 예수님을 따라오라고 하셨으니 이 말씀은 보통 의미를 가진 말씀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쓰디쓴 고통이라도 묵묵히 지고 따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힘들다고 벗어던지고 어렵다고 포기하면서 그렇게는 천국으로 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고 복음을 순종하는 삶은 앞서 말씀 드린 마리얌처럼 때로는 목숨을 내 걸고 지켜야 하는 것이 바로 복음을 따르는 믿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따라 천국으로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스스로 가볍게 경거망덕 하다가 베드로처럼 사탄 마귀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무겁고 힘든 십자가를 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에 그 누구도 이처럼 힘에 버거운 십자가를 지려는 성도들이 없습니다. 조금만 힘이 들어도 다 집어던져버리고 스스로 천국 가는 길을 이탈하는 어리석은 교인들을 너무나도 많이 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 시대를 향하여 탄식하시는 우리 주님의 아픔인 것입니다.

(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주님께서 지라고 하셨으면 져야 하는데 불행하게도 요즘 교인들은 무거운 십자가를 기쁘게 지고 주님의 긍휼을 기다리는 성도들이 없으니 바로 지금이 말세인 것입니다.

기독도 두 사람이 천국으로 가는 길을 찾아 저마다 엄청나게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길을 걸을수록 십자가가 무거워짐을 느끼며 투덜거렸습니다. “이놈의 십자가는 왜 가면 갈수록 더 무거워지는 거지?”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다 결국 그는 아무도 몰래 조금씩 십자가를 잘랐습니다. 그렇게 잘라버리고 가니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힘이 자꾸만 부치게 되고 지치니까 또 다시 십자가가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때마다 조금씩 잘라버렸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마치 바보처럼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걸어갔습니다. 마침내 그들 앞에 큰 구렁이 나타났습니다. 미련해 보이던 그 사람은 자신이 지고 온 십자가를 그 구렁 위에 척하니 걸쳤습니다. 희한하게도 그 구렁의 넓이는 자신이 지고 온 십자가의 길이와 딱 맞아떨어졌습니다. 그는 당당하게 십자가를 밟고 그 구렁을 건너갔습니다. 그 구령을 다 건너가자 그 십자가는 순식간에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런데 무겁다고 조금씩 십자가를 잘라버렸던 사람은 구렁 사이에 십자가를 걸치는 순간 그 길이가 짧아 천리 먼 구렁 속으로 떨어져버렸습니다. 결국 그는 구렁을 건널 십자가를 잃어버리고 그만이야 영원히 그 구렁을 건너지 못한 채 거기에서 망하고 말았습니다.

이 지상과 천국 사이에는 엄청난 구렁이 있어서 그 누구도 그 구렁을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구렁을 넘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딱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가 바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니라!”고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를 묵묵히 지라고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은 2017년도 고난주일입니다. 그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 고난의 계절입니다. 하지만 고난의 쓴 잔을 마셔보지 못한 사람은 신자는커녕 인간도 제대로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오히려 감사하며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119:71)고 말입니다. 최소한 오늘 우리들도 이 정도는 되어야 하겠습니다. 고난의 늪에서 넉넉히 감사하며 새로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해 보는 그런 넉넉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예수님을 따라 천국으로 가기를 원한다면 자기의 그 잘난 모든 것들을 과감하게 부인하고 비록 무겁고 힘이 들지라도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말입니다. 참으로 이치에 맞지 않고 시대에 맞지 않는 것 같지만 바로 이것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천국 가는 필수라는 것을 오늘 우리 모두 깊이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이는 하늘의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도 친히 담당하시고 체험하시고 온 몸으로 걸었던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입술로는 예수님을 찾으면서도 몸으로는 자신의 유익을 찾는 그와 같은 이율배반적인 가치관으로는 결코 예수님을 따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의 입술로 신앙고백을 하고 천국 열쇠까지 받았지만 돌아서서 사탄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이 정도였다면 오늘 우리들이야 그 얼마나 어리석은 시행착오를 겪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들의 어리석은 가치관과 판단을 내려놓고 경솔하게 베드로와 같은 우를 범하지 않도록 묵직한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예수님을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복된 날 정성 모아 예배드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다 천국으로 들어가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잘난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무겁지만 복된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는 그런 멋들어진 심령들이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749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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