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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3일 주일낮설교 (결국은 은혜입니다!)

결국은 은혜입니다!

9. 3, 2017

本文:에베소서2:1-10

:

영국의 거부였던 피츠제럴드는 아이가 열 살이 넘었을 때 아내를 잃었습니다. 상심이 컸던 그는 아들에게 더욱 정성을 쏟아 부었지만, 애석하게도 아들마저 병을 앓다가 스무 살도 채 되기 전에 죽고 말았습니다. 홀로 된 피츠제럴드는 거장들의 예술 작품을 수집하며 그 슬픔을 잊으려 노력하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피츠제럴드도 병으로 죽게 되었는데, 세상을 떠나기 전 그는 유언에 재산을 어떻게 처분할 것인가를 분명하게 밝혀 두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소장품을 경매에 붙이라고 지시하였습니다. 이 수백만 파운드에 달하는 소장품들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모두 대단한 것들이었으므로 사려는 사람들이 예상대로 구름처럼 모여들었습니다. 예술품들은 경매 전에 관람할 수 있도록 전시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그림 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지방의 무명 화가가 피츠제럴드의 외아들을 그린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제목의 보잘 것 없는 그림이었습니다. 제일 먼저 경매에 붙여진 것은 바로 그 그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그림은 아무도 입찰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뒷자리에 앉아 있던 초라한 모습의 한 할머니가 손을 들더니 조용히 말했습니다. "제가 그 그림을 사면 안 될까요?" 그는 피츠제럴드의 아들을 어릴 때부터 돌보았던 늙은 하인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돈을 모두 털어 그 그림을 샀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변호사는 경매를 중지시킨 다음 큰소리로 피츠제럴드의 유언장을 읽었습니다. "누구든지 내 아들의 그림을 사는 이가 모든 소장품을 다 가질 것입니다. 이 그림을 선택한다면 그는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니 모든 것을 가질 충분한 자격이 있습니다." 그 할머니는 옛 정을 생각하여 아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넘어 갈 그 아들의 그림이 안타까워 그 그림을 샀을 뿐인데 그것이 그녀에게는 엄청난 행운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과연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무엇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지요? 진짜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우리들의 죄를 씻어주시기 위해 그리고 우리 죄인들을 천국으로 데리고 가시기 위해 소중한 생명까지도 십자가에 내어 놓으셨던 그 주님은 과연 우리들의 생애에 어떤 비중을 차지고 있는 것일까요? 오로지 명품에만 목을 매고 사람도 물건도 오직 명품이어야만 관심을 가지는 우리들에게 피츠제랄드의 이야기는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조금은 우리들도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에 관하여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결국 우리는 그 분의 은혜로 살고 그분에게로 가야 할 성도들이니까 말입니다.

결국은 은혜입니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두 가지를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하나는 자기 자신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십니다. 자신을 모르고서는 결코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들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밝히고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그러한 우리들을 어떻게 구원하셨는지를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읽은 성경 본문 에베소서 2장은 성경 중에서도 구원에 관한 가장 소중한 말씀입니다. 함께 공부하면서 무엇이 진정한 은혜인지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인간의 본질은 죄인입니다

오늘 본문은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우선 성경부터 함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2:1-3)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이 말씀을 인정하고 고백하며 자신의 죄 때문에 고개를 숙일 줄 아는 사람이 바로 신자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이처럼 명확하게 기록 되어 있는 말씀인데도 이 말씀을 애써 외면하며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인정하지 않는 가짜 신자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렇게도 유명하고 위대한 사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와 같은 자신의 본질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고백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평생에 남긴 가슴 찡한 고백은 다음과 같습니다.

(고전15:9)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고전15: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딤전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사도 바울은 이렇게 자기 자신을 고백하였습니다. 그것도 사석에서 자신을 낮추는 척 고백한 것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하여 오고 오는 세대가 자신을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영원히 남겨두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귀하게 여기시고 평생을 동행하시며 귀하고도 복되게 사용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사도 바울의 고백은 그가 특별히 무엇인가를 잘못하여 씻지 못할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의 후손으로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인류가 다 그렇게 죄의 DNA를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불행한 죄인이 되었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죄는 그냥 그대로 죄인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그 죄 값으로 영원히 죽게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죄는 실로 부끄럽고 비참합니다. 요즘 대한민국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안타깝고 가슴이 아픕니다. 하루에 1조원씩을 벌어들이는 세계적인 기업 삼성의 최고 경영자 이재용씨가 뇌물죄라는 형벌을 받고 5년을 선교 받은 채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3대째 삼성가의 기업 총수로서 모든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그가 한 시대의 정치 세대를 잘못 만나 영어의 몸이 되어 초라하게 재판 받는 모습을 보면 그렇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대통령의 자리에서 한 순간에 탄핵 되고 감옥에서 화장도 하지 못한 채 초라한 모습으로 재판을 받으러 끌려 다니는 박근혜 전대통령을 보면 더욱 가슴이 아픕니다. 바로 이것이 죄 때문입니다. 본인이 잘못 하였던 아니던, 죄라는 굴레에 덧씌워진 모습은 그렇게도 부끄럽고 초라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은 그것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영원한 것이요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로 떨어지게 되니 가히 상상을 초월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들의 본질인 죄인이 받을 미래의 형벌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죄를 예수님께서 대신 해결해 주셨습니다

지난 목요일 새벽기도를 마치고 돌아와서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데 평소에 잘 알고 있던 말씀이었고 머리로도 너무나 익숙하였던 성경의 내용이었는데도 유난히 마음에 감동을 주는 말씀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바로 사울 왕이 교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이 여겼다가 버림을 받는 그런 말씀이었습니다.

(삼상15:24-29)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청하오니 지금 내 죄를 사하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사무엘이 가려고 돌이킬 때에 사울이 그의 겉옷자락을 붙잡으매 찢어진지라 사무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서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

이 얼마나 냉정하고 무서운 마지막 심판입니까? 그리하여 사울은 왕의 자리에서 버림을 받게 되고 너무나도 비참하게 망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죄의 형벌이요 하나님의 냉정하고도 무서운 심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 우리들이 얼마나 엄청난 죄인임을 밝혀 놓고서도 그 죄대로 형벌하지 않으시고 가슴 벅차도록 그 모든 죄에서 건져주시고 구원해 주셨는가를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2:4-7)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평소에도 늘 귀에 익숙했던 귀한 낱말들을 만나게 됩니다. 긍휼, 풍성, 큰 사랑, 은혜, 구원, 자비와 같은 단어가 그렇습니다. 그 어느 단어 하나라도 헛되게,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소중하고 귀한 말씀들입니다. 그렇습니다. 냉정하게 단칼에 단죄하시고 버리시던 구약시대에 비하면 참으로 지금 은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엄청난 축복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마땅히 죄 값을 치르고 심판을 받아야 하겠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그와 같은 우리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자비와 사랑으로 구원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스코틀랜드의 독립운동가 로버트 부르스라는 사람이 도피자로 지낼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부르스는 쫓겨서 달아나다가 너무 급한 나머지 산 속 동굴로 피신해 숨어 들었습니다. 동굴 속에 숨어서 숨을 죽이고 밖을 내다보던 그는 자기 앞에서 거미 한 마리가 열심히 거미줄을 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윽고 자기를 쫓는 무리가 동굴 입구에까지 닥쳤습니다. 그들은 거미줄이 처져 있는 것을 보고 여기엔 들어가지 않았다고 말하며 그냥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때 부르스는 무릎을 쳤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 하나님. 이 작은 거미의 뱃속에 나를 위한 피난처를 마련해 주셨군요. 거미를 통해서 나를 보호해 주시다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것이 은혜를 깨달을 줄 아는 신자의 고백입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인생들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인지, 축복인지, 은혜인지 조차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깨달을 수 있는 은혜가 주어진 것이 감사한 일입니다. 아주 절박한 순간에 무심코 나타나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 알 수 있는 은혜가 진정한 영적 은혜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단 한 순간도 우리들이 져야 할 죄 짐을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우리 예수님의 고난과 사랑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와 같은 우리 주님의 사랑과 은혜와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들은 이렇게 하나님 앞에 나와 있지도 못할뿐더러 영원한 지옥 형벌에서 비참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죠셉 스크라이븐은 노래하고 있습니다.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근심 걱정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주께 고함 없는 고로 복을 얻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하여 아뢸 줄을 모를까?

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예수님은 우리들의 죄짐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까지 올라가신 지극히 우리들을 사랑하시는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성경의 증거와 진리를 순간도 잊지 말고 가슴으로 간직하고 보답할 량으로 더욱 그 주님을 사랑하며 최선을 다해 신앙생활의 승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53:4-6)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는 말씀을 날마다 상기하면서 말입니다.

우리는 오직 그 은혜로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듯 오늘날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고백하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우리들의 삶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고백하며 그렇게 그 하나님께 감사하는 성도는 그렇게 많지가 않습니다. 잘 되면 자기 탓이고 못 되면 하나님의 탓으로 돌리는 가짜 성도들이 너무나도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신자라면 자신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축복이요 사랑이요 은혜임을 깨닫고 감사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고전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고 선언한 바와 같이 말입니다. 신앙생활은 별것 아닙니다. 이렇듯 자신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요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기에 이처럼 범사에 감사드리며 사는 곧 신앙생활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렇게 산 위대한 한 인물이 있습니다. 그 분이 바로 크로스비 여사입니다.

크로스비(Fanny J. Crosby)라는 여자는 앞 못 보는 소경으로서 9,000여 편에 달하는 찬송시를 쓴 사람입니다.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를 나의 구주삼고...",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등 은혜로운 찬송시를 많이 쓴 사람으로서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찬송가에만도 23편의 주옥같은 찬송이 실려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불행하게도 식모의 불찰로 소경이 되었으나 어려서 할머니가 들려주는 성경이야기를 듣고 영의 눈이 열려서 기도하는 중에 성령 충만을 받고 신령한 노래를 많이 쓰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아홉 살 때 기도하기를 "만약에 하나님이 나에게 시력을 허락해 주신다 해도, 나는 안 받으렵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밝은 눈을 주실 터인데, 세상에서 더럽혀지지 않은 깨끗한 눈으로 우리 주님의 얼굴을 보렵니다." 그리고 그녀는 말하기를, "나는 내 눈을 멀게 한 그 사람을 만난다면 나는 그에게 한없는 감사를 드리겠습니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은 사람은 불평, 원망 대신에 감사와 자족의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처지에서든지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성도들만이 할 수 있는 위대한 삶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들이 누리는 모든 은혜가 다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이처럼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둘려드리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들의 죄 문제를 해결 받고 천국으로 갈 수 있다는 이 사실 하나만큼은 늘 가슴에 품고 행복하고 감사한 생활을 지속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2:8-9)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축복보다도 죽어서 천국에 갈 수 있는 구원보다 더 큰 축복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랑하거나 실망하는 어리석은 우를 범하지 말고 오로지 감사함으로 은혜에 화답하는 멋들어진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불평과 원망은 은혜를 잊어버린 세상 사람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이처럼 우리들이 은혜 안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해 주는 능력인 것입니다.

브라질의 아마존 강은세계 최대의 하구를 가긴 강입니다. 7만 평방 킬로나 되기 때문에 양쪽 언덕이 안보여, 처음 가는 사람은 강에 들어선 것이 아니라 아직 바다 한복판에 있는 줄 착각을 일으킬 정도입니다. 대서양에서 폭풍 때문에 오래 표류한 배 한척이 식수를 구하기 위하여 겨우 이 하구에 도착하였습니다. 해도상으로는 분명히 아마존 하구에 도착했을 때가 되었는데 여전히 언덕이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마침 배 한척이 내려오고 있었으므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식수를 구하고 있는데 아마존 강은 어느 쪽이오?" 저쪽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당신들은 이미 아마존의 맑은 물 한복판에 있소. 물통을 내려 뜨기만 하시오!" 우리는 이미 은혜의 한복판에 머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서 이미 성취되어 우리는 맑은 물 한복판에 서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인식하고 감사하는 것이 바로 구원 받은 성도들의 의무인 것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어느 덧 축복과 소망이 넘쳐나는 우리 교회가 이 땅에 탄생한 9월입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믿음으로 돌아서야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은혜와 축복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지는 못한다 해도 참으로 넘치는 축복을 이미 우리는 받아 누리고 있습니다. 온전한 몸으로 태어난 것이 그렇고 사랑할 가족을 받은 것이 그러하며 소중한 교회를 받아 같은 마음으로 따뜻하게 사랑하며 섬길 수 있는 것이 또한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신령한 축복을 기대하고 사모하며 하나님께서 이미도 내려주신 은혜의 강에서 감사하며 풍성한 기쁨을 누리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여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은혜의 맛을 잊어버리거나 아직도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아직도 세상에 머물고 있는 어리석은 죄인일 뿐입니다. 우리들의 영적인 변화를 기대하시며 특별새벽기도회와 부흥회를 준비시켜 주시는 하나님 앞에 새로운 꿈과 기대를 가지고 사모하는 영혼으로 잘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풍성한 기도의 응답과 넘치는 말씀의 은혜를 받아서 우리들도 누리고 우리들의 후손들에게도 나누어야 하겠습니다. 귀하고 복된 9월 첫 주일 예배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섬겨 예배드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에게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풍성한 은혜와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좋으신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793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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