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빌립보장로교회

-- 성령의 열매맺는 교회 --

Thu04252024

Last update12:00:00 AM

Font Size

Profile

Menu Style

Cpanel
Back You are here: Home 말씀과예배 설교 읽기 2017년 10월 29일 주일낮설교 (사람과 다른 하나님)

2017년 10월 29일 주일낮설교 (사람과 다른 하나님)

사람과 다른 하나님

10. 29, 2017

本文:마태복음19:23-29

: 牧師

한 장돌뱅이가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기 아내한테 주려고 작은 애완견 한 마리를 사 가지고 왔습니다. 이 안주인은 남편의 선물을 기쁘게 받아서 항상 이 강아지를 자기 무릎위에 앉혀 데리고 놀면서 맛난 것들로 배를 채워 주었습니다. 강아지를 끔찍이 위해 주는 것을 지켜보던 당나귀는 은근히 질투심이 솟아올랐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없으면 혼자서 중얼거리곤 하였습니다. “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불평을 터뜨리지 않고 주인의 그 무거운 짐을 싣고 다녔는데 고작 돌아오는 것이라곤 마구간의 더러운 지푸라기 잠자리에 양에 차지도 않는 여물뿐이야. 그래 여기서는 정직한 노동보다 애교나 떠는 게 더 대접받는 일이란 말이야.”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당나귀는 집안으로 들어가서는 안주인의 무릎으로 휙 띄어 올라 히히힝 하고 멱따는 소리로 어리광을 부렸습니다. 안주인은 너무 놀라 서 정신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멍을 가라앉히자면 몇 주일이 걸릴지 모르는 심한타박상까지 입고 말았습니다. 당나귀는 맛난 것 대신에 무지막지한 몽둥이세례만 죽도록 받았습니다. 근대에 와서 3D 현상이란 말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직업을 선택하는 데 더럽고(dirty), 어렵고(difficult), 위험(dangerous)한 것을 기피한다는 뜻입니다. 누구든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가 있는 법입니다. 자기 몫의 삶이 있다는 뜻입니다. 남을 흉내 내는 것보다 한심한 일은 없습니다. 또 남의 일까지 가로채는 한심한 일도 없을 것입니다. 사울왕은 제사장의 일을 가로채 자신이 제사를 드림으로 여호와의 진노를 샀고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엉뚱한 착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분수를 따라 감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하는 진정한 신앙인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이와 같은 어리석은 착각을 해소하시기 위해 때때로 하나님과 우리들이 다르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근본적으로 우리 인생들이 하나님과 다른 것이 무엇인지 성경이 증거 하는 대로 똑바로 배워서 하나님을 우리들의 가슴 속에 가두어는 두는 어리석은 우를 범하지 않도록 참 지혜로운 성도들로 거듭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과 다른 하나님

우리 교회를 건축할 때의 일입니다. 거의 모든 성도들은 직접 건축을 해보지 못한 건축에 대한 문외한들이었습니다. 더군다나 미국에 와서 미국 건축법에 익숙하면서 건축을 해 본 사람은 거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므로 새롭게 세워져 가는 교회 건물을 바라보면서 열이면 열 자기의 소리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이건 왜 여기에 있어야 하지요? 이건 왜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하는 등의 크고 작은 문제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식적으로 예배시간에 광고를 하였습니다. “한 사람이 한 번씩만 질문을 하여도 제가 수백 번 대답을 해야 하니 질문을 하지 마시고 이상하게 생각이 들지라도 그것이 건축법에 따른 불가피한 것일 거야.” 하면서 기다리고 인내 해 달라고 말입니다. 무관심도 좋지 않지만 지나친 관심 또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피조물인 죄인들이면서도 하늘의 하나님을 향하여 엉뚱한 의구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하나님께서 마귀를 만들지 않았더라면 우리 조상들이 망하지 않았을 것이라든지,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거기에 두지 않았다면 우리 조상들이 타락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등의 착각들이 그렇습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은 하나님을 자신의 품안에 가두어 두고 자신과 생각과 뜻이 맞지 않으면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비판하게 되는 어리석은 죄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가장 기본적으로 우리 인간과 다르신 하나님에 대해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확실하게 배워서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며 따르는 소박한 어린 아이와 같은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생각이 우리들과 다릅니다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은 생각입니다. 생각이 반듯한 사람은 삶도 또한 반듯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타락한 우리 인생들의 생각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과연 어떠할까요? 이 땅에 엄청난 전쟁이 있고 이웃과의 불화가 있으며 사람들과의 관계가 범죄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그만큼 인생들의 생각이 불순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불행한 것은 우리들은 사람의 생각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가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각이 말로 표현 되고 또한 행동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들의 생각을 머리털을 헤아리시듯 다 알고 계십니다.

(94:11)

여호와께서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시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 한 마디 말씀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생들의 현주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무하다고 하시면 허무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보신 우리 인생들의 생각은 과연 어떠한지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6:5-7)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의 생각을 종합평가하신 결과입니다. 역시 타락한 인간의 생각은 악하고 허무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더 충격적인 것은 그와 같은 허망한 인생들의 생각이 어쩌다가 악한 것이 아니고 항상악하였다는 사실입니다.

(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들은 단 한 사람도 예외가 없이 다 죄인이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죄의 결과로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인생들은 죽어야 하는 형벌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인정하든 부인하든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너무나도 잘 아시고 정의 해 놓으신 진리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의 생각은 이와 같은 우리 인생들과 다르다고 하셨습니다.

(55:8-9)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우리들의 죄악 된 생각으로 하나님의 그 높고 거룩하신 생각을 제한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그 높고 위대한 생각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29:11-1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 너희를 포로 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열방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나게 하던 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들의 생각과 정 반대입니다. 우리들의 생각은 죄악 되고 허망한 것인데 하나님의 생각은 평안과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성도라면 하나님의 이와 같은 생각을 믿고 그 생각의 품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해 주셨습니다. “내게 부르짖고 기도하며 찾고 또 찾으면 내가 들을 것이요 또한 만나 줄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그 하나님께로 나아가서 그 하나님께서 친히 보장하신 평안과 소망으로 회복의 은총을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말이 우리들과 다릅니다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우리 인생들은 그 누구나 말을 하고 삽니다. 그런데 그 말로 인해 이 세상에 달콤한 사랑도 만들어지고 포악한 살인도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은 생각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이 땅에 존재하는 인생들의 생각은 죄악 되고 허망하게 변절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그 입에서 나오는 말 또한 그렇게 죄악 되고 허망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대구에서 시어머니가 자신을 무시한다는 이유로 며느리를 목 졸라 살해한 사건이 벌어져 경악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대구 성서경찰서는 지난 1019일 살인 혐의로 시어머니 장모(57)씨를 붙잡아 조사 중인 것으로" 전했다.

시어머니 장씨는 지난 18일 오후 달서구 본리동 자신의 집에서 며느리 이모(34)씨를 목도리로 목을 졸라 살해한 뒤 자신도 목숨을 끊으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건은 당일 오후 9시께 아들이 돌아와 부인과 엄마가 쓰러져 있는 것을 경찰에 신고하여 알려지게 됐으며 현장에서 시어머니 장씨가 써놓은 것으로 보이는 "나 혼자 죽으려고 했는데 너 죽이고 나 죽겠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IBS뉴스)

지난 6월 서울 노원구에서는 25년 동안 함께 지내온 친구가 나이 많은 여자 친구를 사귀느니 늙으신 어머니나 잘 돌 보아라고 충고하자 자기 여자 친구를 무시했다고 칼로 찔러 살해한 사건이 발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서론 아홉의 동갑내기 친구이면서도 말 한 마디에 살인을 저지른 참으로 안타까운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이와 같은 말에 대한 고귀한 말씀을 남겨 두셨습니다.

(3: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고 말입니다. 우리는 그만큼 말에 실수가 많고 또한 말에 책임을 지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 마디의 말에 웃고 한 마디의 말에 분노하며 살아가는 인생이 오늘 우리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 받은 제자였던 베드로를 보더라도 이 말에 대한 우리들의 모습이 어떠한지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26:31-35)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는 말씀 속에서 우리는 인생의 허무한 말장난을 거울을 보는 듯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호언장담 해 놓고 돌아서서 그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맹세하고 저주까지 하고 돌아서버린 자가 바로 베드로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베드로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다 경우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렇게 살아가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렇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시면 지구가 끝나기 전에는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23:1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시면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믿음이 필요한 것은 이처럼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믿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나가는 말씀으로 남긴 말씀도 때가 되면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아브라함이 나이 75세가 넘었고 사라 또한 늙어 경수가 끊어진 그와 같은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아들을 낳을 것이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 말씀은 시간이 가고 세월이 지나도 징조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5년이 지나고 그의 나이가 100살이 되었을 때 거짓말처럼 사라가 잉태를 하고 아들을 낳았으니 그가 바로 이삭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이와 같은 말씀을 믿고 소망 가운데서 기다릴 줄 아는 신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구원하시려고 예수님을 보내 주신다고 말씀하셨고, 그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모든 죄를 다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며, 그러나 그 예수님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은 승천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또 다시 우리들을 데리러 이 땅에 재림하시고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모든 말씀 가운데서 오직 하나 다시 재림하고 오시는 일만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고 다른 모든 말씀은 다 이루어 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말씀대로 믿고 기다리는 진정한 신자로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심으로 식언치 않으시고 하신 모든 말씀은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행동(능력)이 우리들과 다릅니다

오늘 우리들 주변을 살펴보면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옛날에 이 종은 ASAI PENTAX에 꽂혀서 그것을 가지려고 수 년 동안 목이 매이도록 사모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일본에서 만든 카메라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내 형편에 비쌌고 결국은 가지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손 안에 들고 다니는 스마트 폰의 카메라는 그것보다 훨씬 더 해상도도 좋고 기능도 좋습니다. 그때와 같이 필름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스마트 폰을 만든 사람들은 우리들과 똑 같은 사람들인데 이렇게도 놀라운 기술로 오늘 우리들의 삶을 편리하게 해 주는지 놀랍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북한의 김정은이가 가장 두려워하는 스텔스 폭격기와 지하 40m까지도 뚫고 들어가서 초토와 시켜버리는 벙커버스터 같은 무기는 凡人(범인)인 우리들은 상상도 하지 못하는 신기술들입니다. 그렇지만 하늘의 우리 하나님께 비하면 새 발의 피요 한 조각 휴지조각에 불과합니다. 어떻게 여인의 작은 애기 주머니에서 그렇게도 정교한 뇌가 만들어지며 그 딱딱한 뼈가 만들어지고, 어떠한 동력을 가하지도 않았는데 심장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뛰게 되는지... 아직도 인간은 이에 대한 아무런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아주 간단하면서도 가장 강력한 말씀으로 제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19:23-26)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제자들이 듣고 심히 놀라 가로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는 말씀이 바로 그렇습니다. 이 한 말씀은 오늘 우리들을 참으로 놀라게 하는 귀한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앞서 하나님의 한 말씀은 천지가 없어져도 다 이루어진다고 배웠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한 번 묵상해 보신다면 그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는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의 전능성을 대변하시는 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아무 것도 없는 이 세상을 말씀 한 마디로 만들어 내신 절대적인 능력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의심 없이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란 별 것이 아닙니다. 단순하게 믿고 따르며 기대하는 것! 바로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오늘날 교인들은 자기 자신 속에다 하나님을 가두어 두고 제 생각에 안 되면 하나님도 안 되고 자기 생각에 불가능하면 하나님도 불가능한 것으로 치부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집안의 탕자라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절대적인 권세를 가지시고 사람을 죽이기도 하시고 실리기도 하시며 부하게도 하시고 가난하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평생을 통해 믿음으로 이와 같은 하나님과 교통하였던 다윗은 그와 같은 하나님을 온 몸으로 체험하고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대상29:10-13)

다윗이 온 회중 앞에서 여호와를 송축하여 가로되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송축을 받으시옵소서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라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오늘 우리들에게 승리하며 복을 누리고 살아갈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37:4-9)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고 말입니다. 만일 오늘 우리들이 이 한 말씀만 잡아도 남은 삶을 승리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막연하게 교회에만 다니지 말고 이처럼 우리들도 다윗과 같이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고 고백할 수 있도록 멋들어진 승리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 길은 바로 우리 하나님의 이와 같은 능력을 믿고 체험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결실의 달 10월을 마지막 보내면서 우리들의 신앙적 결정체인 하나님에 관해 공부해 보았습니다. 어리석게도 인생들은 하나님을 자신의 가슴 속에 가두어 두고 자기들과 같은 존재인 줄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말만 믿음을 논하지 생각과 말과 행동은 전혀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그런 어리석은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들이 자칫 오해하기 쉬운 우리 사람과 다른 하나님에 관해 성경이 증거 하는 대로 살펴보았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생각과 말과 행동이 우리들과 전혀 다른 분이심을 분명하게 찾아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달리 한 번 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생각은 하늘과 땅이 멀 듯이 우리들과 전혀 다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해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친히 증거 하시기를 하나님은 사람과 다르시기 때문에 사람이 할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하신다고 단언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그 하나님의 자녀들이고 예수님의 제자라면 기본적으로 생각과 말과 행동이 세상과 달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조금씩이나마 변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이기 때문입니다. 모쪼록 만물이 풍성한 열매로 조물주를 기쁘시게 하는 이 복된 결실의 계절에 예배자로 거룩한 성전에 나아와 헌신하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하나님을 바로 알고 또한 우리 자신을 바로 알아 진정한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어 가는 복된 영혼들이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71029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

Add comment


Security code
Refre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