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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You are here: Home 말씀과예배 설교 읽기 2017년 11월 19일 주일낮설교 (하나님의 사랑)

2017년 11월 19일 주일낮설교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

추수감사주일

11. 19, 2017

本文:에베소서1:3-14

:

사무엘 라이프워츠라는 변호사가 있었는데 아주 성실하고 유능한 변호사였습니다. 이분의 변호를 통해 사형 구형을 받은 죄수 78명이 사형 언도를 면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78명 가운데 라이프워츠 변호사에게 감사의 뜻을 표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성탄절이 되면 크리스마스 카드가 그토록 많이 들어오는데 이 변호사 덕택에 생명을 건진 죄수들이 보낸 것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는 누가복음 17장에 기록되어 있는 열 문둥병자에게서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문둥병을 고침 받았던 10명의 문둥병자들 중에 감사를 드린 문둥병자는 오직 단 한 사람뿐이었기 때문입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는 매일 아침 4킬로씩을 뛰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한번은 유럽 여행길에서 너무 피곤해서 뛰지 않고 늦잠을 자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억지로 일어나서 뛰었는데, 그때 어느 발 없는 노인이 창가에서 자기를 부러워하는 모습을 발견했고, 호숫가에서 휠체어에 의지해서 산책을 하던 중년 신사가 선망의 눈초리로 자기를 보는 것을 발견하고서, 자신의 게으름과 또 건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잊었던 일을 뉘우쳤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에 감사를 해야 합니까? 풍년 주신 것, 장사 잘되는 것, 합격된 것, 취직된 것, 진급된 것, 물론 다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감사는 이방인도 드릴 줄 아는 감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먼저 죄 사함 받고 구원받은 일에 대해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살후2:13)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오랫동안 목회를 하면서 젊은 여인들이 임신하고 출산하고 양육하는 모습을 봐 왔습니다. 단 한 사람도 쉽게 아이를 갖고, 낳고, 키우는 여인은 없었습니다. 모두가 다 죽을 고생을 하면서 아이를 낳고 키워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부모의 그와 같은 아픔과 눈물과 애환을 알지 못합니다. 모두가 스스로 잘나서 태어나고 자라고 성공한 줄 알고 있습니다. 육신의 일도 그렇거늘 우리가 과연 우리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하신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을 알고 있을까요? 그러니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영혼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이후 진심으로 하나님의 그 구원에 깊이 감사를 드리며 일생을 바쳤던 사람입니다. 성경의 그 누구도 사도 바울만큼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에 감사한 인물이 없을 정로로 말입니다. 그가 단도직입적으로 선포하여 놓은 말씀이 오늘 우리들에게도 도전이 되기를 바랍니다.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는 말씀을 말입니다. 오늘은 2017년도 추수감사주일입니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감사드려야 하겠는지 성경으로 돌아가 그 해답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우리는 대부분의 전도용지에 찍힌 붉은 글씨로 쓴 한 문장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문장과 이 말씀에 감동을 받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그만큼 가슴이 메말라 있기 때문이요 그 다음은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가슴에 숨겨 둔 자기만의 이성에 대한 상이 있습니다. 그것을 요즘 말로는 이상형이라고 합니다. 가을 낙엽이 대지를 뒤덮고 그 낙엽을 잠재우기라도 하듯 가을비가 소리 없이 내리는 어느 조용한 커피 집에서 가슴에 품고 있었던 바로 그 이상형이 다가와 목숨을 다해 사랑합니다! 오늘 나의 사랑을 받아주시겠습니까?” 한다면 심장 뛰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은 그 보다 천 배, 만 배로 더 뜨겁고 고귀합니다. 그런데도 오늘 어리석은 인생들은 하나님의 그 사랑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을 향한 감사도 충성도 없는 것입니다. 앞서 들었던 사무엘 변호사의 고백과 누가복음 17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죽을 사형 틀에서 구원해 주었는데도, 저주 받은 문둥병에서 해방시켜 주었는데도 그들의 가슴엔 감사가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과연 어떠할까요? 아마도 그들과 비슷한 타입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이 종의 긴 목회 경험에서 받은 모습이나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탄식하시는 말씀을 들어보아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한 가지 놀랍고도 무서운 말씀 하나를 기억해야 합니다.

(1:21-25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 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니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영원히 멸망하는 자리에 내어 버려 망하게 하신다고 기록해 둔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차원이 아닌 신앙생활의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할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한 번 더 정리해 보면서 감사의 이유와 제목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사랑하사 선택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이처럼 감사주일에 성전에 올라와 진정으로 감사드리며 예배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하나님의 자녀들로 선택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의 증거입니다.

(1:3-5)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들이 참으로 다른 사람들과 달리 지혜롭고 똑똑하여서 세상 등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들을 선택하시고 때가 되매 부르시고 성령님의 감동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하나님 앞에 나아오게 된 것입니다.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는 말씀도 동일한 의미로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지명하시고 때가 되매 부르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들을 선택하시고 부르신 하나님은 아무런 조건이 없었습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선택해 두셨다는 말씀이 이를 입증해 줍니다. 만약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선택하시되 우리들이 일정한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이라면 우리 모두는 참으로 당당하고 잘난 사람들일 것입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들의 모든 조건을 만족하시고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무런 조건도 없이 우리들을 선택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 편에서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들이 감사드려야 할 조건인 것입니다.

어떤 부인이 차에 휘발유가 떨어진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부인은 덧붙였습니다. “차에 휘발유가 거의 떨어졌을 때 저는 투덜거렸죠. 왜 이 근방엔 주유소가 없을까하고 말이죠.” 의아하게 생각한 주위 사람들이 그런데 어떻게 감사한 일이 생겼죠?”라고 물었고 이 부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어젯밤 우리는 차를 도둑맞았어요. 그런데 휘발유가 바닥나 있었기에 이 도둑은 300m쯤 끌고 가다 차를 그냥 두고 가버렸지요. 만일 휘발유가 많이 남아 있었다면 차를 어떻게 찾았겠어요?” 우리에게 건강이나 행복, 평안이나 인간교제가 바닥 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절망하거나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곳에서도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범사에 감사하라(5:18)고 명령하신 말씀의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모든 악조건들을 다 아시면서도 하나님의 자녀로 예수님의 제자로 오늘 우리들을 선택하시고 사랑해 주시고 계십니다. 휘발유가 떨어진 자동차처럼 아무런 쓸모도 없는 우리들을 그 엄청난 사랑으로 천에 하나, 만에 하나 구별하시고 선택하시어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 이것보다 더 감사드려야 할 이유가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들의 초라한 모습을 익스큐즈(Excuse) 하지 말고 우리 있는 그대로 마음을 다해, 정성을 다해 사랑의 하나님께 깊이깊이 감사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대로 된 인격자요 제대로 된 신자의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감사를 잊어버리고 제 잘난 맛에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친히 책망하셨던 9명의 문둥병자들과 같이 어리석고 불쌍한 존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택하신 우리들에게 예수님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선택하신 우리들을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시고 그 무서운 죄의 형벌에서 구원해 주시고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것을 입증해 주는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들이 죄에서 자유하고 해방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예수님의 피 값으로 말미암았던 것입니다. 피는 곧 생명이니 예수님의 생명을 대신 지불하고 우리들이 죄의 형벌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공로도 없는 우리들을 위해 피를 쏟으시고 생명을 버리시면서 까지 희생해 주셨을까요? 그것은 오직 하나 우리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처럼 우리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그 사랑에 감동하여 일생을 다 바쳐 그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충성하였던 것입니다.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게도 크고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이와 같이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아보신 적이 있습니까? 아무런 조건 없이 힘들고 어려울 때 거액의 돈을 받아보셨습니까? 아무런 조건도 없이 시간을 내어주고 몸을 내어주고 값지고 고귀한 것들을 다 가지라고 내어주는 그런 사랑을 받아보신 적이 있습니까? 아마도 부모님 외에는 그 어디에서도 그런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타락한 이 세상에서는 이와 같은 사랑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못 배웠다고, 못났다고, 가난하다고, 뚱뚱하다고... 온갖 핑계를 다 갖다 붙이며 우리 곁을 떠나고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들이 사랑하고 또 사랑 받고 있다면 남들보다 다른 그 무엇인가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무리 사랑한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고백하고 달라붙어도 우리들이 가지고 있었던 그 무엇인가를 다 잃어버리고 빈털터리가 되어보십시오. 그렇게 좋다고 달라붙던 그 모든 거짓 사랑이 순간에 다 떠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세상에서는 감사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감사가 아니고 조건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보다 천 배 만 배 더 위대하시고 무엇이든지 가지지 않은 것이 없는 하늘의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들을 위해 하나 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까지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들을 조건 없이 사랑하시는 그 사랑 때문에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그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렇게 마땅히 드려야 할 감사를 드리는데도 그와 같은 자들에게는 보상하시고 복을 내려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고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렇게도 감사하는 자들을 귀하게 여기시고 더욱 더 사랑하신다는 뜻입니다. 할렐루야!

독일에 대기근이 있었을 때 한 부자가 가난한 아이들을 모으고 빵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 자루 속에는 너희들이 하나씩 가져갈 빵이 들어 있으니 꼭 한 개씩만 가져가고 내일 또 오면 빵을 주마." 아이들은 그 말을 듣기가 무섭게 자루에 달려들어 서로 큰 빵을 골라들고 정신없이 집으로 뛰어갔습니다. 그레첸이란 소녀는 서 있다가 마지막 남은 제일 작은 빵을 집어 들고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다음날도 어제와 같이 아이들은 빵을 집어 들고 집으로 가기 바빴습니다. 그레첸은 맨 나중에 남은 제일 작은 빵을 들고 감사합니다.”는 인사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와 함께 나누어 먹으려고 빵을 쪼개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빵 속에는 은화가 6개나 들어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그레첸이 노인에게로 달려가 빵 속에 들어 있던 은화를 돌려드렸습니다. 그때 그는 다음과 같이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은화는 감사할 줄 아는 착한 사람에게 상으로 주는 것이란다. 그러므로 그것은 바로 네 것이란다." 그렇습니다. 사랑 받은 우리들이 사랑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더 귀하고 더 큰 상으로 보상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는 날 동안 결코 감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덤으로 주시는 더 큰 축복을 필요로 하는 연약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주신 우리들에게 넘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주셔서 우리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것도 너무나도 감사한데 하나님은 더 큰 축복으로 우리들이 살아가는 날 동안 지켜주시고 먹여주시고 풍성케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단 한 순간도 우리들을 내버려두시거나 무관한 하신 적이 없습니다.

(32:10-12)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고백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도들이고 아직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 스스로 잘나서 잘 사는 줄로 착각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성군 다윗은 그렇게 위대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다 누리면서도 결코 그것이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인 것을 가슴으로 깨닫고 감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대상29:10-15)

다윗이 온 회중 앞에서 여호와를 송축하여 가로되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송축을 받으시옵소서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데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

라고 말입니다. 과연 위대하지 않습니까? 태평성대를 누리는 한 나라의 왕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나그네와 우거하는 자입니다.”고 고백하며 그 모든 축복이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고 선포하고 넘치는 마음으로 예물을 드리는 그런 왕은 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의 마음에 속 드는 축복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크든 적든 다 하나님의 축복이요 은혜인 줄 알고 그 하나님께 다윗과 같은 감사를 드리고 아낌 없이 바치고 충성하고 헌신하는 진정 멋들어진 신앙생활로 자손만대에 하나님의 축복의 유산을 이어가야 하겠습니다.

기독교 방송 드라마에 맹인 목사인 윤인수 목사의 간증 드라마가 방송된 적이 있습니다. 중병으로 앓아누워 있는 어머니를 간병하기 위해 어린 소년 시절에 그는 길거리에 나가 신문을 팔고 구두 닦기를 시작했습니다. 친구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앞을 보지 못하는 소년으로서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열심히 일을 해서 번 돈을 기뻐하며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그 돈을 내놓았습니다. 돈을 받아 든 어머니는 그의 등을 두들겨주며, “십일조를 먼저 떼자고 하자 그는 버럭 화를 냈습니다. “십일조는 무슨 놈의 십일조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한테 해준 게 뭐가 있단 말입니까. 나의 눈은 멀게 했고, 엄마는 병들게 했고, 공산당에게 쫓겨 피난민 신세가 되게 했고, 재산도 다 빼앗기게 한 그런 하나님께 무슨 놈의 십일조를 내라는 것입니까.”하며 항변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병든 어머니는 어린 아들의 손을 꼭 쥔 다음, “인수야 고향 잃어버린 것도 한스럽고, 집 잃어버린 것도 원통하고, 건강 잃어버린 것도 서러운데 하나님까지 잃어버리고 믿음까지 잃어버리면 뭐가 남겠느냐.”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건강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하나님을 멀리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지금 당장 하나님께로 돌아와 잃어버린 믿음을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될 절박한 상황에 처한 모든 사람들에게 엄청난 교훈과 신선한 충격을 줍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우리 모두는 치료받고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의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첫 걸음이 바로 감사인 것입니다. 내게 주신 모든 은혜에 보답할 량으로 감사를 드리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 받고 더 나은 삶으로 인도하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은 2017년도 추수감사주일입니다. 감사는 성숙된 인격과 신앙으로만 드릴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축복의 길입니다. 믿음으로 보면 다 감사해도 믿음에서 멀어지면 단 하나도 감사드릴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모든 범사에 감사드리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까지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 속에 위대했던 인물들의 공통분모는 바로 감사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감사드리는 그들의 삶을 하나님께서 끝까지 인도하시고 지켜주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감사드릴 수 있도록 자신을 훈련하고 또한 자녀들을 훈련해야 합니다. 어느 날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가 버스를 타고 가는데 한 흑인 여성이 여러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자기가 앉은 바로 그 옆 좌석에 앉았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만 자기에게로 밀고 들어와 나중에는 창틀에 몸이 찡길 지경이 되었습니다. 너무나도 짜증나고 화가 나서 주님 이러한 때에는 어떻게 감사드려야 합니까?’ 하고 투덜거렸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감사의 제목을 찾았는데, “하나님 이런 여자와 결혼하지 않은 것을 감사드립니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도 이제는 감사의 제목을 찾고 감사의 조건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으로 기억하고 감사의 조건으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죄인들을 친히 선택하시고 독생자의 피를 묻혀 구원하여주시고 사는 날 동안 각양 귀한 축복으로 인도해 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슨 일을 만나든지 하나님의 이와 같은 사랑을 가슴으로 감사드리며 더 큰 축복을 누리는 그런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이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71119

추수감사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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