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3일 주일낮설교 (믿음과 삶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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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03 December 2017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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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삶의 위기
12. 3, 2017
本文:열왕기하18:1-8
說敎:崔 仁 根 牧師
유대 왕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믿음이 좋은 인물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그의 믿음이 어떠하였는지 자세하게 기록해 두고 있습니다.
(왕하18:5-6)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저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는 인생 여정이 그렇게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대적인 앗수르가 시시때때로 쳐들어와 곤경에 빠졌으며 자신의 삶에도 위기가 닥쳐 죽을병에 걸리기도 하였기 때문입니다.
(왕하18:13-14)
히스기야 왕 십 사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취하매 유다 왕 히스기야가 라기스로 보내어 앗수르 왕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나를 떠나 돌아가소서 왕이 내게 지우시는 것을 내가 당하리이다 하였더니 앗수르 왕이 곧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정하여 유다 왕 히스기야로 내게 한지라
(왕하20:1)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저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처치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는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믿음이 좋아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왜 이렇게도 안팎으로 고통이 연속으로 찾아와 그로 하여금 어려움을 겪도록 하였을까요? 이는 단순하게 히스기야 왕만 당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예외 없이 찾아오는 동일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때때로 믿음에 대한 회의가 생기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의심까지 생겨서 우리들의 신앙생활을 어지럽히는 현실을 우리 모두가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이에 대한 해답은 무엇일까요? 오늘은 이와 같이 믿음과 삶의 위기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신선한 변화와 성탄의 계절에 걸 맞는 진리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모쪼록 말씀에 귀를 모으고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믿음과 삶의 위기
그렇다면 히스기야 왕처럼 그렇게 하나님께서 친히 인정해 주실 만큼 믿음이 좋은 사람에게 왜 그렇게도 삶의 커다란 위기가 닥쳐 온 것일까요? 아니 오늘 우리들도 나름 하나님 중심으로 힘을 다하여 신앙생활을 잘 하는 줄 알았는데 왜 뜻밖에도 상상치 못했던 삶의 위기와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 쉽게 속 시원하게 대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와 동일한 고통을 당하게 되고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런 고통 속에서 허덕이며 힘들어 하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바다의 항해에 대한 특별한 지식을 가진 전문가가 질문 하나를 던졌습니다. "혼자서 배를 타고 항해를 할 경우 가장 위험한 때는 언제인지 아십니까?"하고 말입니다. 조금도 주저함 없이 모든 사람들이 대답하였습니다. "그거야 폭풍우를 만났을 때지요.”하고 말입니다. 그러자 전문가는 고개를 흔들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혼자서 배를 타고 항해할 경우, 가장 위험한 때는 폭풍우를 만났을 때가 아닙니다. 이러한 때는 차라리 있는 힘을 다하여 그 환경과 싸우기 때문에 정말로 목숨을 잃을 때가 드뭅니다. 그러나 제일 위험한 때는 바람도 잔잔하고 날씨도 쾌청한 때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에 아무런 긴장이나 조심 없이 갑판을 걷다가 우연찮게 떨어져 물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좋은 날씨에 위기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신앙생활에도 똑 같이 적용할 수 있는 예화입니다.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아이들도 건강하고 착실하게 잘 자라고 수입도 넉넉하여 무엇 하나 걱정할 것이 없을 때, “이제는 내 영혼아 감사하며 만족하게 복을 누릴지어다.”하고 있을 때 사탄 마귀는 소리 소문도 없이 우리들의 영혼을 도적질해 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경고하십니다.
(살전5:3)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히스기야 왕에게 왜 이처럼 위기가 지속적으로 닥쳐오고 있었는지 조금은 이해가 가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믿음이 좋은 사랑일수록 위기와 고통을 주시어 그 믿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긴장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기의 때에 지혜롭게 잘 대처해 나갈 수 있는 믿음과 능력을 겸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위기를 사람의 방법으로 해결하였습니다
이제 히스기야 왕이 위기를 만났을 때 어떻게 대처해 나갔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에서 오늘 우리들이 무엇을 배우고 교훈 삼아야 하겠는지 진정한 깨달음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히스기야 왕의 경솔함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앗수르의 산헤립 왕이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 왔을 때 대책 없이 너무나도 쉽게 항복하는 모습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왕하18:13-14)
히스기야 왕 십 사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취하매 유다 왕 히스기야가 라기스로 보내어 앗수르 왕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나를 떠나 돌아가소서 왕이 내게 지우시는 것을 내가 당하리이다 하였더니 앗수르 왕이 곧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정하여 유다 왕 히스기야로 내게 한지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고 나서 히스기야 왕은 산헤립이 내린 조공을 바치기 위해 참으로 처절하게 애쓰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왕하18:15-16)
히스기야가 이에 여호와의 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을 다 주었고 또 그때에 유다 왕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전 문의 금과 자기가 모든 기둥에 입힌 금을 벗겨 모두 앗수르 왕에게 주었더라
는 말씀과 같이 그는 정녕 하나님의 전에 입혔던 금까지도 다 벗겨 적국의 왕에게 갖다 바쳐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때 조공으로 바쳐야 했던 배당은 은이 300달란트요 금이 30달란트였습니다. 당시 은 300달란트는 오늘 날 온스로 360,000온스요 금 30달란트는 36,000온스 였습니다. 오늘날 금 한 온스에 대략 1,600달러니 이를 현재 돈으로 환산하면 57,600,000달러입니다. 이것을 기원전 550년으로 되돌아가 환산해 본보면 참으로 엄청난 액수임을 알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어리석게도 이처럼 쉽게 항복하고 이렇게도 무서운 조공을 읍소하면서 산헤립 왕에게 갖다 바쳤던 것입니다. 더욱 큰 문제는 그렇게 하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쉽게 조공을 받아먹어 본 왕은 기회만 되면 또 다시 쳐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산헤립 왕은 오래지 않아 히스기야 왕을 또 다시 침공하고 들어왔습니다.
(왕하18:17)
앗수르 왕이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로 대군을 거느리고 라기스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가서 히스기야 왕을 치게 하매 저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라 저희가 올라가서 윗못 수도 곁 곧 세탁자의 밭에 있는 큰 길에 이르러 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앞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위기를 주시는 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긴장하고 깨어 있어 하나님께 붙어 있으라는 경고임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위기 가운데서 오히려 넘어지고 자빠지며 하나님을 떠나버린다면 그는 하나님과 무관한 망하는 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히스기야는 단 한 마디의 기도조차 드리지 않은 채 성전의 금까지도 모두 벗겨 갖다 바치는 그렇게도 어리석고 경솔한 처신을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해서 위기의 때에 그 믿음으로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히스기야는 이렇게도 분명하게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45여 년 동안 목회하면서 경험한 성도들의 모습이 또한 이와 같은 히스기야와 다르지 않았던 것을 이 종은 많이 경험하였습니다. 어려움이 없을 때는 믿음이 좋은 것처럼 신앙생활도 인간관계도 잘 유지해 나가다가 위기가 닥치면 모든 것을 다 둘러 엎어버리고 히스기야와 같이 낙담하고 타협하며 함께 죄악으로 끌려들어가 망하는 참으로 어리석고 안타까운 모습들을 많이 경험해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히스기야를 통하여서 위기의 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잘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일례로 다윗을 한 번 살펴보시게 된다면 히스기야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똑 같은 상황으로 대적 블레셋이 다윗을 공격하고 쳐들어 왔기 때문입니다.
(삼하5:17-20)
이스라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았다 함을 블레셋 사람이 듣고 다윗을 찾으러 다 올라오매 다윗이 듣고 요해처로 나가니라 블레셋 사람이 이미 이르러 르바임 골짜기에 편만한지라 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가로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저희를 내 손에 붙이시겠나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되 올라가라 내가 단정코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라 하신지라 다윗이 바알브라심에 이르러 거기서 저희를 치고 가로되 여호와께서 물을 흩음같이 내 앞에서 내 대적을 흩으셨다 하므로 그곳 이름을 바알브라심이라 칭하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히스기야와 다윗의 차이점을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대적이 강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면 결코 이겨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과 같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해답을 받아 대적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히스기야는 단방에 항복하고 그렇게도 무서운 조공을 다 갖다 바쳐야만 했을까요? 그리고 이와 같은 사실을 왜 열왕기하 18장에 기록해 두셨을까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오고 오는 세대에서 우리들을 교훈하시고 가르치기 위해서 기록해 두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삶의 위기에서 믿음이 있다면 다윗과 같이 하나님과 의논하고 해결점을 찾으려는 겸손한 지혜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위기를 기도로서 극복하였습니다
히스기야로부터 조공을 받으며 맛을 본 앗수르 왕 산혜립은 또 다시 히스기야를 공격하고 쳐들어왔습니다.
(왕하18:17)
앗수르 왕이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로 대군을 거느리고 라기스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가서 히스기야 왕을 치게 하매 저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라 저희가 올라가서 윗못 수도 곁 곧 세탁자의 밭에 있는 큰 길에 이르러 서니라
는 말과 같이 말입니다. 그리고는 온갖 모욕적인 말로 왕 히스기야와 그 왕이 믿는 하나님을 모독하였습니다. 그 내용이 18장에 빼곡히 기록 되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히스기야 왕이 겸손하게 하나님 전에 나아가서 옷을 찢고 엎드려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종들을 하나님의 사람 이사야에게 보내어 또한 기도하도록 부탁하였습니다.
(왕하19:1-4)
히스기야 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궁내대신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장로들에게 굵은 베를 입혀서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내매 저희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히스기야의 말씀이 오늘은 곤란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가 임산하였으나 해산할 힘이 없도다 랍사게가 그 주 앗수르 왕의 보냄을 받고 와서 사신 하나님을 훼방하였으니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저의 말을 들으셨을지라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들으신 말을 인하여 꾸짖으실듯하니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소서 하더이다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히스기야 왕의 표현을 한 번 보십시오. “아이가 임산하였으나 해산할 힘이 없도다.” 이것이 히스기야가 당한 현실이었습니다. 가장 비참하고 처절한 표현이 바로 이와 같은 표현일 것입니다. 그렇게도 절박한 순간에 그는 굵은 베옷을 입고 엎드려 기도하고 궁내대신들을 이사야에게 보내어 상황을 설명하고 기도하도록 부탁을 하였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삶의 위기를 맞았을 때, 그리고 그 위기가 어린 아이가 임산하였으나 해산할 능력이 없는 것과 같이 비참하고 버거울지라도 히스기야와 같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엎드리고 간구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일어나시고 도우실 수 있도록 믿음으로 무장하여야 합니다. 결국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히스기야 왕의 이처럼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왕하19:6-7)
이사야가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렇게 고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앗수르 왕의 신복에게 들은바 나를 능욕하는 말을 인하여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한 영을 저의 속에 두어 저로 풍문을 듣고 그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고 또 그 본국에서 저로 칼에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로 하여금 군사 한 번 일으키지 않은 채 대승을 거두도록 도와주시고 시시때때로 쳐들어와 히스기야를 괴롭히던 산헤립을 친히 죽여서 영원히 제거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문제를 우리 스스로 해결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간구하지 말고 절대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고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일어나시고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그 구체적인 모습을 성경에서 친히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왕하19:35-37)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을 친지라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앗수르 왕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하더니 그 신 니스록의 묘에 경배할 때에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저를 칼로 쳐 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도망하매 그 아들 에살핫돈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이 말씀을 묵상해 보면 참으로 신비롭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그 얼마나 신묘막측 하며 놀라운지를 똑똑히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토록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는 신실한 종들을 이렇게도 놀라운 방법으로 보호하시고 해결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약속하신 그대로 하나님은 히스기야 왕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고 무려 18만 명이라는 천문학적인 적군들을 순식간에 다 죽이시고 히스기야를 괴롭힌 산헤립을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도록 악한 자들을 일으켜 친히 제거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히스기야의 믿음과 기도를 본 받아 우리들을 괴롭히는 대적들을 해결하고 태평성대를 누리는 축복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주신 성전에서 위기를 극복하기를 소망하며 기도드리기를 원하시고 그렇게 구하는 자들에게는 기적 같은 능력으로 위기를 넘어갈 수 있게 하시는 사랑의 아버지십니다.
(대하7:13-16)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로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염병으로 내 백성 가운데 유행하게 할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이는 내가 이미 이 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으로 여기 영영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 있으리라
고 약속하신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할렐루야!!!
1950년 6월 25일은 한민족에게 비극적인 날이었습니다. 꿈에도 잊어서는 안 될 민족상쟁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날은 주일이었습니다. 남한의 군인들은 휴일을 맞아 영 밖으로 외출하고 부대는 무방비상태였습니다. 잘 훈련된 인민군들이 물밀듯이 밀려오던 그날, 한국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한국으로부터 지원병을 요청하는 전문이 미국의 트루먼대통령에게 당도했습니다. 그는 잠자리에 들었다가 다시 일어나 침실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어떻게 처리해야 하겠는지 고심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엎드려 기도를 드렸습니다.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의 결정에 따라 미국의 귀한 청년들이 수없이 피를 흘려야 할지도 모르고 한반도가 잔악한 공산주의의 치하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밤새 기도한 끝에 마음에 확정을 지었습니다. “남한이 공산치하에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없다. 미국이 도와주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길이다.” 이것이 그가 고심하고 기도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6.25동란 때 미국이 손쉽게 참전한 것이 아닙니다. 트루먼의 열렬한 기도가운데서 내려진 선택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나라는 트루먼의 기도 덕분에 이렇게 전쟁의 위기에서 평화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며 삶의 새로운 기쁨과 변화를 만들어 가는 성탄의 달 12월입니다. 성탄은 하나님께서 우리들과 함께 하시려고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신 최고 최대의 축복입니다. 그래서 성탄하신 예수님의 이름이 “임마누엘”입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우리들에게 어떠한 기적이 일어나는지 분명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유대와 히스기야를 괴롭히던 앗수르의 대적 18만 대군을 손 하나 대지 아니하고 순간에 죽여 없애버리시던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악한 왕 산혜립을 상상도 하지 못했던 자를 일으키시고 죽여 없애버리시던 하나님도 우리는 두 눈으로 분명히 보았습니다. 바로 임마누엘의 권세요 능력이요 축복이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과 함께 하신다면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염려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에게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위기를 극복하고 오히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 천하에 자랑할 수 있는 기적이 바로 믿음에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때에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고 하박국 선지자는 예언하였던 것입니다. 복되고 귀한 계절 성탄의 때에 이와 같은 믿음으로 임마누엘 하시려고 구유에까지 낮아지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고 이웃들에게 사랑을 보여주기를 기뻐하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풍성한 기적과 능력의 하나님께서 위기에 빠진 우리들의 삶을 회복의 은혜로 충만케 하시기를 좋으신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7년 12월 3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