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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You are here: Home 말씀과예배 설교 읽기 2017년 12월 24일 주일낮설교 (임마누엘)

2017년 12월 24일 주일낮설교 (임마누엘)

임마누엘

성탄주일

12. 24, 2017

本文:마테복음1:18-25

:

지난 1218(월요일) 저녁 610분경에 서울 강남 청담동 오피스텔에서 김종환군이 연탄을 피워 놓고 자살을 해 한국은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청춘이 만 리 같은 27살의 김종환군은 샤이니의 맴버로 최근 한창 인기를 누리고 있는 아이돌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수만 수천 명의 청소년들이 아이돌이 되는 것이 생애의 꿈이라며 몰려들고 있는데 아이돌이 되어 인기와 명예와 부를 한꺼번에 누리는 성공적인 가수가 왜 그렇게도 최악의 길을 선택하고 자살하였을까요? 그가 남긴 짧은 유서가 오늘 우리 인생의 본질을 생각해 보게 하고 있습니다. “우울이 뼈 속 깊이 파고들어 나를 파괴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나는 오롯이 나만 홀로 남아 있다.” 이것이 그가 남긴 유서였습니다. 그는 남들이 보기에는 아이돌이 되어 인기도 누리고 돈도 벌고 인물도 꽃미남에 속해 남부러울 것이 없는 것 같이 보였으나 그의 속사람은 철저히 병들어 우울증에 빠져 있었고 외롭고 고독한 청춘을 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입니다. 남들 보기에는 화려한 것 같고 잘 사는 것 같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 있는 것 같아도 내면에는 너 나 할 것 없이 다 그렇게 외롭고 고독하여 가슴이 텅 비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냉정하게 한 번 생각해 보면 과연 누가 우리들의 아픔을 알아주며 남모르게 당하는 문제에 관심이 있으며 헛말이라도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며 함께 해 주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렇게도 외로운 이민생활에서 진정한 친구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여기에는 진정한 친구를 만나기 어렵습니다. 부모님의 수고를 말로라도 위로해 주는 자식 하나 없는 정도이니 과연 그 어디에 기대를 가질 수가 있겠습니까? 실로 분주한 나날을 정신없이 보내지만 우리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예외 없이 우리는 다 외롭고 고독하며 가슴이 비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주 작은 문제만 만나도 달리는 자전거에 돌맹이가 부딪히는 것처럼 우리들의 삶은 순식간에 넘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한 우리 인생들의 숨길 수 없는 단면입니다. 인류 최초의 살인극이 형제지간에 일어났고 그 요인 또한 대수롭지 않은 시기와 질투에서 비롯된 것을 유추해 본다면 오늘 우리들의 가슴이 그 얼마나 가을 낙엽처럼 메말라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와 같은 현실을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그래서 우리들에게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 주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 땅의 First Christmas였던 것입니다. 오늘은 2017년도 성탄주일을 맞아 성탄의 진정한 의미와 축복에 대해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모쪼록 생명의 말씀에 마음 귀를 기울이시고 진정한 위로와 은총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임마누엘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신 배경을 자세하게 설명해 놓은 소중한 진리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성탄의 목적이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별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임마누엘입니다. 암울하고 힘든 시절에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해결책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탄의 예언이었습니다.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고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성탄 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임마누엘이었습니다. 그로부터 거의 6백년이 지난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그 옛날 이사야를 통하여 주셨던 약속을 그대로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임마누엘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해 두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하늘의 하나님께서 죄 많은 우리들과 함께 해 주신다고 하시니 말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것은 이론상의 성경의 기록이고 실제로 이렇게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성도들은 그렇게 많지가 않습니다. 어느 성도의 다음과 같은 간증이 이를 잘 대변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기도의 부족을 느끼고 기도를 열기 위해서 여러 달 동안 열심히 산을 찾아 다녔습니다. 그런데를 가보니 기도하는 분들이 많았고, 열심도 대단해 보였습니다. 바위를 두드리며 "주여, 오시옵소서"라고 기도하는데 굉장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도 열심히 연습을 했습니다. 기도하다 보니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하고 불이 오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선교사님이 가르치는 성경공부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는데, 그 날 선교사님이 제게 기도를 시켰습니다. 그래서 냅다 큰 소리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주여! 오시옵소서." 그때 선교사님이 놀라셨는지 좀 진정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제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마태복음 마지막 장 마지막 절을 찾아 읽어 보십시오." 그래서 읽었습니다. 그 말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선교사님은 제게 그 말씀을 믿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믿는다고 대답했습니다. 선교사님이 다시 질문을 합니다. "그 약속의 말씀에 의하면 주님이 어디에 계십니까?", "내 옆에 계시겠죠."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분이 그렇다면 왜 그렇게 악을 쓰냐고 말합니다. 그리고 제 대신 당신이 기도를 하시겠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저는 무척 기분이 나빴지만 그때 그 분이 기도한 그 기도를 지금까지 잊지 못합니다. "주여, 여기에 우리와 같이 계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 기도 소리를 듣는 순간 제 마음 속에 느끼는 소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 저 사람은 하나님과 참으로 친한가 보다."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하나님이 함께 계시다는 이 사실이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분의 고백과 같이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이 사실을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믿고 고백하지 못한다면 성탄절이 수 천 번이 와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성탄의 가장 핵심은 하나님이 우리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과연 어떤 변화와 역사가 일어나는 것일까요? 성경이 증거하는 것들 중에서 다음과 같이 몇 가지만 발췌해서 함께 공부하면서 기적을 체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근심이 변하여 기쁨이 됩니다

사람은 희망을 먹고 사는 아주 특별한 존재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희망이 있으면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세상 만물을 다 가졌다고 해도 희망이 없어지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제자들은 오직 예수님이 희망이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희망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악당들에게 붙잡혀 속절없이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악당들에게 체포되었고 끝내 골고다로 끌려가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예수님께 모든 것을 다 걸었던 제자들은 낙심천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 중 두 제자는 몸서리치는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그들에게는 절망과 낭패와 슬픔과 고통이 가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4:13-21)

그 날에 저희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 오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촌으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 하더라 저희가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저희와 동행하시나 저희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서더라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우거하면서 근일 거기서 된 일을 홀로 알지 못하느뇨 가라사대 무슨 일이뇨 가로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여늘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된 지가 사흘째요

이 말씀에서 우리는 이 사람들이 왜 예루살렘을 떠났는지, 왜 슬픈 기색을 하고 있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 예수님께서 악당들에게 잡혀 돌아가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바로 그와 같이 낙심한 그들에게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단순하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신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말씀을 풀어 가르쳐 주시고 낙심과 절망으로 닫혔던 그들의 마음을 열어 예수님을 알아보게 하시고 그들의 차갑게 식어버렸던 가슴을 뜨겁게 하여 사명을 회복하고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가게 만들어 주셨던 것입니다.

(24:30-35)

저희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매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곧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 한 사도와 및 그와 함께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는지라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 하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단순하게 우리들과 함께 하시기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절망이 변하여 희망이 되게 하시고 사명을 회복시켜 값진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회복시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할헬루야!

우리 인생의 풍랑을 잠재워 주십니다

지난 11월 달에 수능시험을 끝내고 예비대학생이 된 19살 소녀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49살의 어머니와 함께 제천에 살고 있는 외할머님 댁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외할머니랑 함께 여자 3대가 사우나를 하러 갔습니다. 사우나장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서 사우나 바로 밑층 파킹장에서 불이나 순식간에 불길과 독성연기가 피어올라 오자 여자 3대는 사방이 막힌 목욕탕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채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지난 목요일(21) 제천에서 있었던 스포츠센터의 대형 화재에서 발생한 슬픈 이야기입니다. 이 화재로 무려 29명이 사망하고 31명이 다쳤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의 거센 풍랑입니다. 벌건 대낮인 오후 330분에 일어난 이화재로 한 남자는 장모님, 아내, 사랑하는 딸을 순식간에 다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그 누가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날 줄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이것이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인생 여정에서 그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재난이요 고통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건은 예수님 당시에도 예외 없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직접 경험한 거센 풍랑이 성경에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14:22-33)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 말씀을 중심으로 당시 상황을 다시 재현해 본다면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자들은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고 있었고 예수님은 산에서 혼자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풍랑이 일어나 배에 있던 제자들은 혼비백산하였고 더 이상의 구원의 여망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풍랑의 한 가운데서 작은 배 안에 갇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진짜 놀라운 사실은 산에서 기도하시던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그 모든 상황을 다 아셨고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득달같이 바다 위로 걸어서 달려 오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오늘 우리들이 반드시 믿어야 할 소중한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은 어디에서 계시든지 간에 우리들의 형편과 처지를 다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알고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여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마태복음 14장의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산속에 계시면서도 바다의 상황을 다 알고 계셨고 너무나도 초급하니 물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로 다가오셨으며 거세게 일어나는 파도를 향하여 말씀하시므로 순식간에 파도를 잠재우시기까지 하셨던 것입니다. 그때 제자들이 깨닫고 선언한 한 마디가 오늘 우리들의 가슴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33)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제자들의 고백과 같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고 또한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땅에 오셔서 우리 곁에 머물고 계시며 우리들을 도우시는 분은 바로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것을 확인하고 고백하는 것이 바로 성탄절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우리는 앞서 소개해 드렸던 어느 성도님과 같이 큰소리고 외치며 부르짖으며, “예수님, 우리에게로 오시옵소서!”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곁으로 오시기 위해 하늘 보좌도 버리시고 2천 년 전에 이미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이처럼 실제적이고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믿고 의지할 때 비로소 기적도 일어나고 풍랑도 잠잠해 지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이와 같은 강력한 믿음을 촉구하셨던 것입니다.

(17:20)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 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고 말입니다.

죽은 자를 살려 사망의 권세를 정복해 주셨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무엇이 무섭다 또 두렵다 해도 죽는 것보다 더 무섭고 두려운 것은 없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단절이요 모든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리는 생의 마지막이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다시는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것이 바로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생명은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 최대의 축복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도 소중한 생명을 스스로 끊어버리는 자살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이 시대의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난 22일 금요일에도 이와 같은 자살자를 막으려다 멀쩡한 경찰이 사망하는 어이없는 사고가 발생해 모든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자살을 막기 위해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아파트에서 추락해 숨졌다. 22일 대구 수성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21일 오후 920분쯤 수성구 한 아파트 9층에서 범어지구대 소속 정연호 경사(40)가 떨어져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숨졌다. 정 경사는 이날 오후 811분쯤 아들이 번개탄을 사가지고 들어왔다. 도와 달라112신고를 받고 한모 경위와 함께 출동했다. 현장에 도착한 정 경사와 한 경위는 신고자, 신고자의 아들 A(30)와 상담을 진행하던 중 A씨가 갑자기 동생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잠근 뒤 창문 여는 소리를 들었다. 위급한 상황이라고 판단한 정 경사는 아파트 외벽을 통해 문이 잠긴 방으로 들어가려다 미끄러져 9층에서 1층 바닥으로 떨어졌다. 정 경사는 경북대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다 22일 오전 247분쯤 숨졌다. 경찰은 정 경사의 빈소를 수성요양병원장례식장에 마련하고 수성경찰서에서 대구경찰청장장으로 영결식을 진행할 예정이다. 사고 소식을 들은 동료들은 사명감이 투철한 직원이었다며 안타까워했다.](1222일 동아일보에서 발췌)

바로 이와 같은 현실이 오늘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인생사의 단면입니다.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동원하여 구조작업을 벌이는가 하면 순식간에 자신의 목숨을 끊고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하루에도 45명이나 된다니 참으로 조국 대한민국도 문제의 나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성경에도 이와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모 없이 외롭게 살아가고 있던 삼남매가 있었는데 오라버니가 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자 예수님에게 사람을 보내어 빨리 와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께서 그 집에 오셨을 때는 이미 오라버니가 죽었고 나흘이 지나매 아열대 지방이라 벌써 냄새가 나는 지경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와 같이 처참한 시신을 앞에 놓고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다음 순식간에 정상인으로 다시 살려 내셨습니다. 인간의 상식과 경험으로는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예수님은 이처럼 놀라운 기적을 베풀어 주셨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의 근본문제인 죽음을 예수님은 친히 해결해 놓으셨던 것입니다.

(11:39-44)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우리들과 함께 하시려고 이 세상으로 내려오신 예수님은 이렇게도 인간의 가장 무서운 죽음의 문제를 너무나도 간단하게 말씀 한 마디로 해결해 주셨던 것입니다. 어쩌다가 한 번 이렇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생애와 역사를 기록해 놓은 복음서를 보면 회당장 야이로의 딸도 살려 내셨고(5:41-43), 나인성 과부의 아들도 살려 내셨습니다(7:11-17). 간단하게 점검해 보아도 세 번씩이나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려 내셨던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능력이 무엇인가를 단적으로 성경이 증거해 주고 있는 귀한 사료가 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계시되 이 세상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죽은 자도 살려내시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단도직입적으로 선포해 두셨습니다.

(11:25-2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고 말입니다. 무엇이 성탄절입니까? 이와 같은 죽음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시기 위해 하늘을 버리시고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오늘 우리들과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가슴으로 모셔 들이고 믿는 것이 성탄절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은 2017년도 성탄주일입니다. 과연 무엇이 성탄입니까? 우리들과 함께 하시며 우리들의 삶을 새롭게 하시기 위해 능력으로 우리 곁으로 친히 강림하신 날을 기념하는 것이 성탄절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이와 같은 성탄의 진정한 의미를 회복하여 성탄이 있기에 우리들의 삶 또한 달라지고 변화를 만들어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하기 위해 오늘은 성탄절의 축복으로 우리 곁에 다가 오신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들의 삶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새로워 질 수 있도록 고귀한 말씀을 받았습니다. 곧 절망이 변하여 희망이 되고 풍랑이 변화여 기적이 되고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남으로 이 땅에 하나님의 권능을 선포하고 또한 체험하는 역사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것이 결코 우화 속에 나오는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역사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진실로 예수님과 함께만 하면 이와 동일한 역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것이 성탄의 은총이요 성탄의 기적이요 생생한 예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막연하게 종교생활만 하지 말고 예수님을 가슴으로 모시고 기적 같은 신선한 새 날을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귀하고 복된 성탄주일에 햐나님 전으로 올라와 예배로 영광을 돌려드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에게 성탄의 풍성한 기적이 충만하시기를 좋으신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71224

성탄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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