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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18일 주일낮설교 (두려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2. 18, 2018

本文:이사야43:1-7

:

4세기 동방의 명설교가였던 요한 크리소스톰이 사회악을 꾸짖고 황후 유독시아의 사치를 나무라다가 위협을 당하고 귀양살이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태연히 말했습니다. “내가 무엇을 두려워할까? 죽음인가? 아니다. 나의생명은 그리스도께 감추어져 있다. 내가 사는 땅에서 쫓겨나는 것인가? 아니다.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다. 나의 소유를 잃고 갈 것도 없다. 나의 보화는 하늘에 감추어져 있다. 저들이 나를 쫓아내면 나는 엘리야처럼 될 것이고 저들이 나를 구덩이에 던져 넣으면 나는 예레미야처럼 될 것이고 굴에 던져 넣으면 다니엘처럼 될 것이고, 돌로 친다면 나는 스데반처럼 될 것이고 목을 벤다면 세례 요한처럼 될 것이다. 그리고 나를 매질한다면 나는 사도 바울처럼 될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 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혈육 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이까?”라고 말입니다. 과연 이 세상의 모든 두려움을 초월한 위대한 신앙인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놀라운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성경 속의 위대한 인물인 성군 다윗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56:4)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혈육 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56:11)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이까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들이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우리들과 함께 하시고 우리들의 소중한 모든 것들을 보호해 주실 줄 믿는 믿음으로 주어진 인생을 담대하고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다니엘의 세 친구들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신앙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7배로 뜨겁게 한 풀무불이 기다리고 있다 해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들의 믿음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생사여탈의 권세를 가지고 있는 왕 앞에서 감히 죽어도 좋다고 선언할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3:13-18)

느부갓네살 왕이 노하고 분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끌어 오라 명하매 드디어 그 사람들을 왕의 앞으로 끌어온지라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가로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그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니 짐짓 그리하였느냐 이제라도 너희가 예비하였다가 언제든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리어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 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목숨이 단 하나뿐이거늘 그들은 어떻게 이렇게도 담대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바로 오늘 우리들이 배워야 할 소중한 대목이 여기에 있습니다. 육신의 두려움을 넘어 영으로 거듭난 위대한 삶을 위해 오늘도 말씀에 귀를 모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들의 삶을 위협하고 불행하게 하는 모든 염려와 근심과 두려움이 다 불신에서 나오는 것임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근심하고 염려해도 문제가 해결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밤새도록 걱정하고 근심하며 나약하여져 있는 초라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에서 멀어진 육신의 한계라는 것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이와 같은 모습을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은 단도직입적으로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염려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두려움도 똑 같은 맥락입니다. 두려움은 불신입니다. 연약한 인간의 육신과 생명을 안고 그 삶과 생명을 위협하는 큰 힘을 만났을 때 어찌 아니 두려워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 본문과 같이 그와 같은 우리들의 현실을 직시하시고 위대한 위로와 약속으로 두려움을 물리치게 하시며 신선한 축복으로 다가오시는 것입니다.

(43:1-4)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라는 실로 엄청난 위로와 축복으로 말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두려움을 물리치는 하나의 팁(Tip)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은 이와 같은 두려움에 관한 진리를 통해 문제를 해결 받고 보다 더 활기차고 소망 넘치는 그런 멋들어진 삶을 추구할 수 있도록 소중한 진리를 공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두려움은 不信(불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그렇게 사랑하는 자녀들이 두려움으로 떨며 불안하게 살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실 온갖 것으로 두려워하며 그렇게 작은 새처럼 덜려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조금만 반복적으로 몸이 아파도 혹시 암이 아닐까? 하고 두려워하고 운전을 하고 가다가 큰 사고가 난 현장을 지나가도 나도 저렇게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하지 하며 두려워합니다. 장사만 조금 안 되고 매상이 떨어져도 이렇게 하다가 망하는 게 아닐까 두려워하고 높은 다리를 지나가도 고소공포증으로 불안해하며 행여 이 다리를 지나가다가 지진이라도 나면 어떡하지 하면서 두려움에 떱니다. 이러한 우리들을 너무나도 잘 아시는 하나님은 우리들의 그와 같은 두려움과 불안을 제거해 주시려고 놀라운 약속을 하나 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사야 4110절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참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보호하시는지 의심의 여지없이 발견할 수 있는 귀하고도 복된 말씀입니다.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와 같은 놀라운 말씀을 받고서도 두려워한다면 그 이유는 오직 하나뿐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은 불신인 것입니다. 다윗은 수 없는 전쟁터의 위험과 적의 칼날 앞에서 두려워 할 수밖에 없는 위험한 삶을 헤쳐 나온 사람입니다. 다른 이도 아닌 왕이 잡아 죽이겠다고 결단하고 정예된 용사 3천을 이끌고 추격하고 나왔을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가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위험을 만나면 두려워 할 수밖에 없는 작은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혼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보호하시고 우리들을 지켜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을 도와주겠다고 보장하시고 또한 우리들을 강하게 붙들어 주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최소한의 예의요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으로 말미암아 죽은 청년의 수가 30만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들과 남편을 일선에 내보내고, 염려와 불안과 근심가운데 빠져 심장병으로 죽은 미국시민들이 100만 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총탄이 사람을 꿰뚫어 죽인 수 보다 불안과 공포가 죽인 사람의 수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개들이 어떤 사람이 지나갈 때에는 유난히 짖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짖지 않는가에 대해 말한 심리학자의 글이 있습니다. 개들은 무엇인가 안정되지 못한 사람이 두려운 마음을 품고 개 앞을 지나가게 되면 그가 떠는 진동이 개의 촉감에까지 전달되므로 그 개가 덩달아 불안해하며 짓는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테니스 선수였던 짐 길버트는 그가 다섯 살 되던 해에 어머니를 따라 치과병원에 가서 어머니가 치료 받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치료를 받던 그의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고 말았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어린 길버트의 마음은 깊은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나중에 그가 자라서 유명한 테니스선수가 되었으나 그는 여전히 치과병원에 대한 공포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치료를 받지 않으면 안 되게 되자 치과병원에는 가지 않고 자신의 주치의를 집에 모셔서 치료를 받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입에 치료기가 닿는 순간, 그도 역시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고 말았습니다. 두려움과 불안의 심리는 이렇게도 무서운 결과를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것의 40%는 지나간 과거에 대한 것이며, 50%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것이며, 10%만이 현재를 위한 것이라고 노만 빈센트 필(N.V.Peale)박사가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믿음으로 거듭난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육신에 사로잡힌 인생은 걱정하고 염려하며 두려워하는 삶을 살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국의 시인인 G. 하버드 목사는, “두려움은 질병보다 더 많이 사람들을 죽인다.”고 설파하였던 것입니다.

워싱턴에 가면 링컨이 애용하던 성경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성경 속에 손때에 이겨져 눌린 손가락 자국이 있습니다. 여러 번 같은 장소를 손가락으로 눌러서 생긴 자국입니다. 그곳이 바로 시편 344절입니다.

(34:4)

내가 여호와께 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라는 말씀이 그렇습니다. 수없는 전쟁과 정적들을 헤쳐 나왔던 그는 늘 두려움 속에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기도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그 무서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두려움은 불신이요 사탄 마귀가 갖다 주는 가장 무서운 영혼의 절망이므로 이와 같은 두려움에서 해방되라고 하나님은 친히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을 이렇게 두렵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죄입니다.

(3:8-10)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들을 두렵게 하는 요인은 이렇듯 하나님을 떠난 죄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와 같은 무서운 두려움에서 떠나 하나님의 품안에서 평안을 누릴 수 있도록 죄를 떨쳐버리고 영적으로 거듭나 진정한 성도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로 하여금 그와 같은 평안을 누리도록 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친히 그 무서운 십자가를 대신 지시고 죄의 형벌을 받으셨는데 여전히 그와 같은 죄의 노예가 되어 두려움에서 떨고 있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不信(불신)은 죄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서 친히 두려워하지 말고 명령하시고 그와 같은 두려움에서 자유케 하시려고 친히 우리들과 함께 해 주시겠다고 까지 약속해 주셨는데도 여전히 두려움 가운데 머물고 있다면 그것은 불신 때문이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가장 진노하시는 일이 바로 불신이라는 사실을 오늘 우리는 깊은 두려움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불신은 단순하게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곧 하나님 앞에서 무서운 죄이기 때문입니다.

(14:23)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듯 의심이나 불신이나 믿지 못하는 것은 모두가 다 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염려하거나 근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를 원하십니다.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마음에 근심하고 또한 하나님 없는 자와 같이 두려워하는 것을 하나님은 싫어하십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성도는 어떤 환경 속에서도 우리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믿고 두려워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옛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죽을지도 모르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당당하게 하나님을 인정하고 모든 권세를 다 가진 느브갓네살 왕의 요청을 거절한 용기 있는 신앙인들이었습니다. 사람이 최고로 두려워하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죽음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생사여탈의 권세를 가지고 있는 왕 앞에서도 하나님께서 살펴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담대하게 왕의 청을 거절하였으니 진짜 신자들이었습니다.

(3:14-18)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가로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그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니 짐짓 그리하였느냐 이제라도 너희가 예비하였다가 언제든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리어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 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이 얼마나 놀랍고 담대한 믿음입니까? 과연 하늘 아래 그 누가 생명 줄을 쥐고 있는 왕 앞에서 이렇게도 당당하게 자신의 생명을 내어 놓고 하나님을 기대하고 의지하며 믿음으로 확고하게 서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가상히 여기시고 불속에서도 건져내 주셨던 것입니다.

(3:24-26)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가로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여 옳소이다 왕이 또 말하여 가로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느부갓네살이 극렬히 타는 풀무 아구 가까이 가서 불러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서 나온지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늘의 하나님께서 능히 구원하실 줄 믿고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무장하고 믿음 없는 자들과 같이 의심하고 불신하는 어리석은 삶을 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의심하거나 믿지 못하는 자들을 가장 싫어하시기 때문입니다.

(왕하7:1-2)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셨느니라 그 때에 한 장관 곧 왕이 그 손에 의지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엘리사가 가로되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니라

이 말씀은 아람 왕 벳아닷의 군대가 사마리아를 우겨 싸고 진 치매 먹을 것이 없어 아이를 삶아 먹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예언한 말씀을 왕의 신하가 부정하고 의심하며 남긴 말입니다. 그러므로 엘리사는 그 왕의 신하에게 선언합니다. “네 눈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는 사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너는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고 말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의심하고 불신하게 되면 그와 같은 기적을 보겠지만 너는 결국 죽어 그 기적의 역사를 맛보지는 못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엘리사의 이 예언과 같이 그는 정말로 하나님의 기적을 보았으나 먹지는 못한 채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렇듯 불신을 가장 미워하십니다. 그 중의 하나가 두려워하는 것이므로 우리는 이와 같은 불신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거듭나는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들을 사랑하시고 보호하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성경의 그 모든 위대한 말씀가운데서 가장 우리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놀라운 말씀입니다. 우리 같이 죄와 허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들을, 그래서 아무 것도 아닌 일로 두려워하고 절망하고 넘어지는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친히 찾아오셔서 너는 내 것이!” 선언하시고 말로 다할 수 없는 사랑으로 역사해 주겠다고 약속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43:1-4)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이 말씀 앞에서 가슴 뭉클한 감동을 받지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일 것입니다. 어찌 하늘의 하나님께서 감히 죄인 된 우리들에게 이처럼 말씀하실 수가 있겠습니까?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한다.”는 이런 말을 이 세상 그 누구에게서 들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실로 하나님은 하나님을 진실로 믿고 의지하고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하나님을 고백하고 믿고 섬기는 자는 이 말씀 그대로 역사하시어 물이 침몰치 못하고 불이 삼키지 못하도록 역사해 주십니다. 노아가 그랬었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그랬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들처럼 단단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이처럼 하나님께서 물에서도 불에서도 구원하시는 기적을 볼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믿음의 옷을 두껍게 껴입고 그 어떤 환경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리차드 범브란트라는 루마니아 루터교회의 부흥목사님은 1948년 루마니아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는 무려 14년 동안 감방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마지막 3년은 빛이라고는 조금도 볼 수 없는 독방에서 지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중에서도 이 목사님은 신앙을 굽히지 않으셨는데, 노르웨이에서 이 목사님을 석방시켜 달라고 부탁하며 루마니아 정부에 10만 불을 보석금으로 보내줌으로 마침내 석방되어 지금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공산 사회에 복음을 전하는 큰일을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 분이 옥중에서 성경을 읽는 가운데 "두려워 말라"는 말씀을 세어 보니 모두 365개나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그는 성령께서 365일 날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며 힘주시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를 받게 되고 위기에서 전정한 도우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늘 하나님께서 말로 다할 수 없는 사랑으로 우리들을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서 우리는 더욱 더 가슴 따뜻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 담긴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43:1-4)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오늘 우리들을 사랑하시는지 엿볼 수 있는 아름다운 말씀입니다. 먼저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만드셨다고 선언하십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 사탄 마귀와 짝하면서 엄청난 죄악과 두려움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들을 예수님의 피로 구속하시고 죄악에 머물고 있는 우리들을 지명하여 부르시고 하나님의 소유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물과 불도 우리들을 엄몰하거나 태우지 못하게 하시고 죄의 때를 씻으시고 보배롭고 존귀하게 만들어 이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놀라운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이와 같은 사랑에서 빼앗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당당하게 선언하였던 것입니다.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라고 말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두려워하며 불안해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 안에만 머물고 있으면 우리들의 형편이 그 어떠하던 지간에 신선하고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기 때문입니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험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너무나도 무섭고 떨리는 일들을 많이 겪고 있습니다. 지난 수요일에도 플로리다의 고등학교에서 총기 사건이 일어나 꿈 많은 청소년 17명이 죽었습니다. 어찌 우리들이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염력 걱정을 아니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그 이유는 비록 우리들의 삶이 힘들고 살벌하지만 하늘의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들을 구속하시고 지명하여 불러 하나님의 것이 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물이 우리들을 엄몰치 못하며 불이 또한 우리들을 사르지 못하도록 보호하시고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못난 인생들이지만 하늘의 하나님께서 친히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두려움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사랑으로 신선하게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육신에 머물러 있지 말고 영적인 사람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모쪼록 복되고 귀한 2월의 세 번째 주일을 맞아 기쁨으로 예배드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에게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과 축복이 가득하여 두려움을 극복하고 평안과 행복으로 거듭나시기를 좋으신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8218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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