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15일 주일낮설교 (기적을 체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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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15 July 2018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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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체험하라!
7. 15, 2018
本文:요한복음11:39-44
說敎:崔 仁 根 牧師
[영국 IT 기술자 존 볼런튼은 노트북 대신 잠수 장비를 챙겨 9000㎞를 날아왔다. 호주 마취과 전문의 리처드 해리스(53)도 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중국·일본·스웨덴의 동굴 전문가도 태국 북부 미얀마와의 접경 산골로 급히 달려왔다. 오래전 군을 떠났던 태국 예비역 특전사 대원 사만 구난(37)은 10여 년 만에 잠수복을 꺼내 들었다. 세계 각국에서 동굴 탐사 전문가이거나 수중 잠수 전문가로 자처한 사람들이 13명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수천㎞를 달려왔다. 이들 다국적 구조팀은 지난 8일부터 사흘간 구조 작업 끝에 동굴 속 암흑에서 16~18일간 고립돼 있던 소년과 코치 13명을 모두 동굴 밖 빛의 세상으로 데리고 나왔다. 다 살아 돌아왔다. 10일 오후 6시 48분(현지 시각) 태국 네이비실 페이스북에 전원 구조 첫 소식이 떴다. 지난달 23일 동굴을 탐험하기 위해 들어갔다 폭우로 고립됐던 태국 치앙라이주(州) 유소년 축구팀 '무 빠'(야생 멧돼지) 단원 13명이 전원 구조됐다. 고립된 지 18일, 생사가 확인된 지 8일 만이다. 작전 첫날 4명, 둘째 날 4명이 구조된 데 이어 사흘째인 10일 나머지를 모두 구조한 것이다. 그러나 구조 작업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소년들은 동굴 입구에서 4.5㎞ 떨어진 곳에 머물고 있었다. 깜깜한 동굴 속에서 살아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고 소년들이 견디는 동안 동굴 밖에선 전 세계에서 달려온 탐험·잠수·구조 전문가들이 힘을 합쳤다. 모든 사람이 기적을 이뤄냈다. 소년들의 구조 작업이 물 흐르듯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도록 '밑그림'을 그린 사람은 호주의 마취과 의사 겸 잠수 전문가인 리처드 해리스다. 해리스는 동굴 잠수 경력 30년의 베테랑으로 소년들의 생존이 확인된 직후 직접 동굴 안으로 들어가 아이들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구조 순서를 정했다. 그는 소년들과 코치 등 13명이 동굴을 안전하게 빠져나간 뒤 맨 끝에서 이들을 따랐다.
지난 2일 아이들의 생존 사실을 처음 확인한 사람은 영국의 잠수 전문가인 전직 소방관 리처드 스탠턴과 IT 기술자인 존 볼런튼이다. 전 세계 동굴 조난 사고 때마다 출동 요청을 받았던 이들은 이번에도 직접 입수해 수㎞의 동굴 바닥을 기어들어가 소년들의 생존 사실을 확인했다. 다국적 전문가들과 힘을 합쳐 구조 작전을 실행한 주역은 태국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이다. 희생도 있었다. 구조팀 일원인 사만 구난 예비역 원사가 지난 6일 산소탱크 동굴 내부 주입 작업 중 산소 부족으로 의식 불명에 빠져 끝내 숨졌다. 네이비실 전역 뒤 2006년부터 방콕 수완나폼공항 경비대에서 근무해온 그는 구조팀에 자원했다. 치앙라이로 떠나기 전 직접 동영상을 찍고 "아이들을 모두 구해오겠다"고 다짐했다. 아르파꼰 유꽁테 태국 네이비실 사령관은 "귀중한 동료를 잃었지만 언제든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고 했다.](조선일보 7월 11자 보도에서 발췌)
이것이 21세기의 진정한 기적입니다. 기적이 무엇입니까? 일반적으로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 한 것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케 된 것을 일컬을 때 우리는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태국 소년들의 100% 구조를 두고 모든 세계인들이 기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만큼 불가능했던 사건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동굴에는 1886년부터 지금까지 4차례에 걸쳐 사람이 갇힌 적이 있었는데 단 한 번도 구조가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려 13명 전원이 100% 구조 되었기에 그렇게 기적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만큼 구조 기술도 발전되었지만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소중한 분들이 세계에서 몰려와 전력을 다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가능한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는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도 본문 말씀으로 돌아가 성경에서 만들어진 기적 중에서도 최고 최대의 기적을 만나보고 어떻게 그와 같은 기적이 가능할 수 있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오늘 우리들의 삶에 적용하여 우리들도 기적을 체험하는 놀라운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기적을 체험하라!
성경에는 참으로 놀라운 기적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결 같이 사람의 힘으로는 전혀 불가능한 하늘의 하나님만이 가능케 하시는 그런 기적들입니다. 그러나 현대 사람들은 이와 같은 하늘의 기적을 믿지도 않고 또한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그와 같은 체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하늘의 하나님으로 믿지 못하는 빌립을 향하여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행하는 그 일을 보고 나를 믿으라.”고까지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요14: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와 같은 예수님께서 오늘 놀라운 기적을 우리 앞에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사람이 죽어 무려 나흘이나 지났고 더운 지방이라 이미 그 몸에서 썩은 냄새가 나는데도 예수님께서는 그와 같은 사람을 말씀 한 마디로 살려 내셨던 것입니다.
(요11:43-44)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놀라운 기적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놀라운 기적의 배후를 살펴보면 참으로 신비로운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와 같은 진실을 찾아 우리들의 것으로 만들므로 우리들도 또한 이와 같은 기적을 체험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함께 진리를 찾아 가슴으로 새겨보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과 친해야 합니다
오늘 기적의 주인공들은 나사로와 그의 누이 마르다와 마리아입니다. 불행하게도 이들은 부모도 없이 삼 남매만 외롭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그들은 예수님을 사랑했고 또한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소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관계가 죽은 오라비 나사로를 기적으로 되살리는 놀라운 배경이 되었던 것입니다. 마리아는 어른 1년 연봉에 해당하는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머릿단을 풀어 그 발을 씻겨드렸던 그런 헌신적인 여인이었습니다. 그만큼 그들은 예수님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 오라비 나사로가 병들자 그들은 지체하지 아니하고 평소에 사랑으로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해 왔던 예수님께 기별 하였던 것입니다.
(요11:1-3)
어떤 병든 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형제 마르다의 촌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씻기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비러라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예수님과 나사로와 그 누이들이 어떠한 사랑의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 충분히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도 나사로를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우리 친구”라고 까지 불러 주셨습니다.
(요11:11)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가라사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리고 본문을 기록했던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워낙에 나사로와 누이들을 사랑하셨다고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요11:5)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사랑의 관계가 죽은 나사로를 살려내는 결정적인 역사를 하였습니다. 그들은 문제가 생겼을 때 예수님과 공유하였고 예수님은 또한 그들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이나 이웃들을 막론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관계를 평소에 유지에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예 명령하셨습니다.
(막12: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은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서 한결 같이 나타나는 매우 소중한 진리로 기록 되어져 있습니다. 그만큼 인생살이에서 이웃들과의 관계가 소종하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과의 관계는 오죽 하겠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단도직입적으로 선포하고 있습니다.
(요일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나사로처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정도로 놀라운 주님의 기적을 체험하고 싶다면 나사로처럼 예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뜨겁게 주님을 사랑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고 미지근하고 적당하게 머리로만 알고 있는 그런 상태로서는 기적은커녕 구원도 받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뜨거운 사랑, 그 자체가 기적의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또 하나 소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이 때로는 맞지 않을 때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오라비 나사로가 병들어 죽어가자 다급하게 사람을 예수님께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예수님은 그들처럼 급하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시간을 지체하셨고 그러는 중에 나사로는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기가 막히는 사실입니다.
(요11:6-7)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라는 말씀처럼 말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입장에서 이 사실을 한 번 생각해 보신다면 참으로 억장이 무너질 일입니다. 사랑하는 오라비 나사로는 촌음을 다투며 죽어가고 있는데 예수님은 2시간도 아니고 이틀이나 더 머뭇거리시며 시간을 보내시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소중한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간과 우리들의 시간 사이에는 놀라운 시간차가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즉시 나사로에게 가셔서 병든 나사로를 고치셨다면 전혀 불가능한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사는 기적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이틀이나 더 지체하시면서 나사로가 죽어 도무지 다시 살 여망이 없는 썩은 냄새가 나는 지경에 이르도록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죽은 자가 다시 사는 놀라운 기적을 이 땅에 나타내 보이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조차 읽을 수 없었던 인생들은 그와 같은 깊은 주님의 뜻을 알지 못하기에 원망하거나 불평하거나 감정이 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두는 육신의 한계를 넘어서 영적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요11:20-21)
마르다는 예수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는 이 한 말씀은 마르다와 마리아의 심정을 고스란히 표현해 놓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더디 오심으로 인해 오라비가 죽어버리자 마르다와 마리아는 엄청나게 실망을 하고 아예 마리아는 나타나지도 않았고 마르다는 언니라 마중을 나오기는 했으나 그 심중에는 주님을 향안 안타까움과 원망 같은 앙금이 남아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들의 자화상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주님 앞에서 결코 아름다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전체의 문맥과 사건의 시종을 지켜보면서 깨닫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그 어떤 경우에도 원망하거나 불평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또한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 보다 깊으시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언제나 완전하시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은 왕이 되기 전에는 참으로 겸손하여 “나는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없다.”며 행구(쓰레기더미) 뒤에 숨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왕이 된 후에는 하나님의 말씀조차도 거역하고 자신의 판단과 소신대로 행동하다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대표적인 인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 길이 참고 기다리지 못한 탓이었습니다.
(삼상13:5-14)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 하여 모였는데 병거가 삼만이요 마병이 육천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같이 많더라 그들이 올라와서 벧아웬 동편 믹마스에 진 치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위급함을 보고 절박하여 굴과 수풀과 바위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으며 어떤 히브리 사람들은 요단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으로 가되 사울은 아직 길갈에 있고 그를 좇은 모든 백성은 떨더라 사울이 사무엘의 정한 기한대로 이레를 기다리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사울이 가로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번제 드리기를 필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사무엘이 가로되 왕의 행한 것이 무엇이뇨 사울이 가로되 백성은 나에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은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치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 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어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 하고
인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사울의 행위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대적들은 쳐들어오고 군사들은 겁을 먹고 도망가는데 오리라고 약속한 사무엘은 오지 않으니 사울은 그가 고백한 것처럼 부득이 하여 사무엘을 대신하여 제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함정이었던 것을 사울은 몰랐던 것입니다. 아무리 위기가 닥쳐오고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도 하늘의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들을 친히 다 알고 계신다는 믿음이 사울에게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참으로 기다린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믿음의 조상이라 일컬음을 받았던 아브라함 조차도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만 하시고 무려 25년을 기다리게 하시고 자신의 나이가 100세를 향하여 가자 결국 그도 끝까지 하나님을 기다리지 못한 채 이스마엘을 낳는 비극을 연출하고 말았습니다. 그로 인한 불행이 이 땅에 지금까지도 지속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오늘 우리는 이와 같은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참고 기다릴 줄 아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육신으로는 절대로 그렇게 길이 참고 기다릴 수 없으니 영적으로 거듭나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덧입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다 영적으로 거듭나야만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믿어야 합니다
이제 오늘 본문에서 우리들이 찾아야 할 마지막 비밀 하나가 남아 있습니다. 사람이 죽어 썩은 냄새가 나는데도 그 시체를 온전한 사람으로 다시 살려 내신 초유의 기적을 체험하기 원한다면 마지막 이 한 가지 비밀을 반드시 찾아야 하고 또한 그것을 가슴으로 품고 따라야 합니다. 과연 그것은 무엇일까요?
(요11:4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그렇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친히 똑부러지게 선언해 주신 그대로 “믿음”입니다. 믿어야 기적도 일어나고 구원도 받게 되고 천국에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에게는 예외 없이 모두 모두 믿음으로 무장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일찍이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요구하셨던 것입니다.
(마17:20)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진정한 믿음의 가치와 믿음의 기적을 만나보게 됩니다. 그 위력은 산도 옮길 수 있고 또한 못할 것이 없는 만능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예수님은 오늘과 같은 마지막 때를 내다보시고 믿음이 없다고 친히 탄식하셨습니다.
(눅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믿음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믿음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최선을 다 해야 하겠습니다. 그 길은 바로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이요 예배에 올인 하는 것입니다.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믿음이 만들어 지는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21세기 가장 무서운 병은 당뇨라고 합니다. 이는 암보다 더 무섭고 이 병으로 인해 건강하게 살아가지 못하고 숱한 합병증으로 고생하며 또한 죽음에 이르는 숫자가 암보다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당뇨는 아무런 자각 증상이 없기 때문에 더욱 무서운 것이라고 합니다. 눈에도 보이지 않는 인슐린을 정상적으로 분비하고 준비하는 췌장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온 몸의 건강을 잃게 되는 것이 당뇨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우리들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믿음이 떨어지게 되면 기적은커녕 구원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구원은 오로지 믿음으로만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의심하고 사람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는 마르다에게 선언하셨던 것입니다.
(요11:4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고 말입니다. 그런데 마르다가 예수님께 무슨 말씀을 드렸기에 예수님께서 이렇게도 강력하게 “네가 믿으면 기적을 보리라.”고 말씀 하셨을까요? 그 대답은 어렵지 않게 다음과 같이 기록 되어져 있습니다. 어리석게도 마르다가 사람의 소리를 내었기 때문입니다.
(요11:39)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우리는 마르다의 말에 절대적으로 공감을 하게 됩니다. 사람이 죽어 이미 냄새가 나는데 그런 상황 속에서 예수님이 그 시체를 보겠다고 하시니 어찌 말리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것이 바로 예수님 앞에서는 불신의 행동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상식과 경험으로 주님 앞에 서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육신이요 영적인 자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진정한 믿음이 필요한 마지막 때를 우리는 지금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헌신과 충성과 목숨을 건 열정에도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을 우리는 태국 소년들의 구출에서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에는 기적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기적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최소한 서너 가지의 필수적인 조건이 있음을 오늘 본문은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기적의 주인공이신 예수님과 아름다운 사랑의 관계를 유지해 나가야 하는 것이 그 첫 번째요, 주님을 길이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인내의 미덕이 또한 그 두 번째 조건입니다. 그리고 가장 소중한 세 번째의 조건은 바로 믿음입니다. 우리는 오늘 가슴으로 우리 주님의 말씀 하나를 간직해야만 하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하나님의 영광이란 바로 기적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저절로 되는 축복이란 없습니다. 심은 만큼 거두게 되고 노력한 만큼 누리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이 세 가지의 진리를 되새기며 기적을 만들어 가는 놀라운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하나님을 향한 신앙생활이요 우리 후손들에게 유산해 줄 가장 멋진 삶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무더운 여름 날 성전으로 올라와 정성을 다해 예배드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에게 주님만이 주시는 위로와 축복과 기적이 충만하시기를 좋으신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멘
주후 2018년 7월 15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