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빌립보장로교회

-- 성령의 열매맺는 교회 --

Sat11232024

Last update12:00:00 AM

Font Size

Profile

Menu Style

Cpanel
Back You are here: Home 말씀과예배 설교 읽기 2018년 11월 4일 주일낮설교 (고통을 감사로 덮으라!)

2018년 11월 4일 주일낮설교 (고통을 감사로 덮으라!)

고통을 감사로 덮으라!

11. 4, 2018

本文:창세기45:1-8

: 仁 根 牧師

그 누구도 비바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누구나 다 따뜻하고 훈풍이 불어오는 봄과 같은 날을 좋아합니다. 만약 우리들의 날씨가 정녕 그러하다면 우리들은 결코 맛있고 영양 있는 과일과 곡식은 먹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봄날 같은 훈풍 속에서 영글어지는 곡식과 과일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그 누구나 태평성대를 소망하고 고난과 역경을 피해가기를 원합니다. 정녕 우리들의 삶이 그렇게 순탄하기만 하다면 우리들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런 아름다운 사람이 되지는 못 할 것입니다. 피조물을 만드신 하나님은 사람이든 식물이든 모진 비바람과 뜨거운 태양 빛에서 소생하고 풍성한 열매를 맺도록 만들어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역경 속에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탄생하고 난세에 영웅이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바로 그와 같은 위대한 한 인물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가 바로 요셉입니다. 그는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홀아버지 품에서 자라야 하는 비운을 겪었습니다. 그것도 서럽고 아쉬운데 배다른 형들이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여 아버지 몰래 타국으로 팔아버려 종살이를 하며 비참한 세월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또한 주인아주머니의 모함을 받아 결국 타국에서 감옥에 들어가는 최악의 사태를 맞아야만 했습니다. 그러했던 그가 당대 최고 최대의 나라인 애굽의 총리대신이 된 것입니다. 그것도 나이 30세에 말입니다. 오묘하게도 온 땅에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어지자 거대한 나라요 양식이 풍부한 애굽으로 줄을 지어 양식을 구하러 왔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요셉을 타국으로 팔아버렸던 형들도 끼어 있었습니다. 엄청난 권세를 가진 요셉 앞에 나타난 초라한 형들의 모습은 바람 앞에 선 등불과 도 같이 위태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그와 같은 형들로 인해 옛날의 추억이 되살아나고 분노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연민과 눈물이 앞을 가리워 대성통곡을 하였습니다.

(45:1-3)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에게 자기를 알리니 때에 그와 함께 한 자가 없었더라 요셉이 방성대곡하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능히 대답하지 못하는지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바로 여기에서부터 요셉은 오늘 옹졸한 우리 대부분의 인생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다가 여자로부터 무시를 당하고 버림을 당했다고 분노한 32살의 남자가 그 여자와 여자의 부모 및 조모까지 살해하고 자신도 그 자리에서 자살하여 생을 마감한 부산의 한 남자를 생각나게 하는 요셉은 참으로 보통 사람들과 다른 그 무엇이 있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는 과연 생각이 거대하고 믿음이 거대하며 원수를 대하는 용서와 사랑이 거대한 인물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요셉을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들어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감사의 달 11월을 맞아서 진정한 감사의 사람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는지 요셉을 중심으로 공부하면서 깊은 도전을 받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고통을 감사로 덮으라!

인류 역사상 요셉처럼 끔찍한 역경을 기회로 삼고 성공한 사람도 그렇게 많지는 앓을 것입니다. 짧은 인생 여정에서 거의 30여년을 역경 속에서 허덕였지만 전화위복으로 그는 또한 젊은 나이 서른에 당대 최고로 성공한 자리에 앉았으니 기적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와 같은 모든 역경과 성공을 오로지 하나님께로 돌리는 위대함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범상한 사람들이 가지지 못하는 요셉만의 놀라운 믿음이었습니다.

(45: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45: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라는 말씀들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그런 쉬운 고백이 결코 아닙니다. 이는 오직 요셉만이 할 수 있었던 위대한 선언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꿰뚫어 보지 않고는 결코 할 수 없는 놀라운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바로 이러한 인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까지도 읽을 수 있었던 인물, 바로 그가 요셉이었던 것입니다. 오늘은 이와 같은 요셉을 통해서 역경을 기회로 삼고 감사로 하나님을 만나는 그런 놀라운 변화와 축복을 체험해 볼 수 있도록 말씀으로 돌아가 진리를 공부해 보려고 합니다. 풍성한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요셉에게는 꿈이 있었습니다

요셉은 남달리 어려서부터 놀라운 꿈을 안고 자라나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그것도 스스로 만들어 낸 꿈이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께서 친히 내려주신 놀라운 꿈이었습니다. 사실 그는 그와 같은 놀라운 꿈 때문에 그렇게도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겪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꿈은 결코 범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가진 꿈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함께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37:5-11)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고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컨대 나의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그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 꿈과 그 말을 인하여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그가 그 꿈으로 부형에게 고하매 아비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너의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모와 네 형제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그 형들은 시기하되 그 아비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더라

여기에서 우리는 요셉이 단 한 번만이 아니라 두 번씩이나 꿈을 꾸고 고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는 그의 꿈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었던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요셉은 그렇게 어려서부터 꿈을 품은 특별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와 같이 푸른 꿈을 가져야 합니다. 비록 그 꿈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고통과 고난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래야 정녕 그 꿈을 이루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할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요셉의 형들은 요셉의 그 허황된 꿈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시험해 보기 위해 요셉을 머나먼 타국으로 팔아버렸던 것입니다.

(37:18-20)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요셉을 타국의 종으로 팔아버리면 그가 꾼 허황된 꿈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이 그렇게 인간적인 방법으로 요셉의 꿈을 방해하려고 한 바로 그곳에서 요셉이 꾼 모든 꿈들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선 인간의 허무한 계획과 악한 꾀가 얼마나 허무하고 무용지물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그들의 잔꾀를 통하여 하나님의 원대하신 역사를 차질 없이 이루어 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꿈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꿈을 어떻게 이루시는가를 지켜보아야 합니다. 비록 육신은 잠시 고난과 고통을 받지 않을 수가 없으나 하나님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우리들의 꿈을 이루어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능력자이심을 만 천하에 나타내 보여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인디언 추장이 늙어가자 후계자를 간택하기 위해 젊은 청년들을 불러 시험을 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추장은 후보자들에게 눈앞에 보이는 높은 산 정상에 올라갔다 오너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젊은 추장 후보자들은 저마다 서둘러 산 정상을 향하여 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침내 청년 하나가 산 정상에서 고산 식물을 들고 와서 추장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산 정상에 올라가 보니 이런 식물이 있더이다.”고 하면서 추장에게 바쳤습니다. 다른 한 청년도 또 다른 청년들도 저마다 손에 뭔가를 들고 와서 추장에게 바치며 산 정상에 올라갔다 온 증거를 내 놓았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추장 앞에 나타난 한 청년은, “저 정상에 올라가보니 광대한 옥토가 널려 있음이 보였습니다. 이 많은 백성들을 이 사람에게 맡겨주신다면 저 광활한 땅을 개척하여 복된 내일을 만들어 내겠습니다.”고 하였습니다. 마침내 추장은 산 정상에서 미래의 꿈을 보고 온 이 청년에게 추장의 직을 물려주고 후계자로 삼았다고 합니다. 이렇듯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요셉과 같이 꿈을 가져야 합니다. 동서남북을 두루 바라볼 수 있는 광대한 꿈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은 그 꿈을 이루시는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요셉에게는 꿈을 이룰 믿음이 있었습니다

꿈은 가슴에 품는다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꿈을 이룰 그 날을 기대하며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이 종이 요셉처럼 푸른 꿈을 가지자고 외치는 이유도 또한 이렇게 노력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요셉은 비록 거대한 꿈을 안고 있었지만 형들의 모함으로 타국에 팔려가는 종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결단코 그 꿈을 접지 않았습니다. 그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더욱 더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대하고 바랐습니다. 그랬던 그의 모습을 다음과 같은 말씀을 통해 명명백백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39:1-3)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애굽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그를 사니라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여기에서 우리는 요셉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고 형통하게 해 주셨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떻게 하나님은 요셉에게 이토록 놀라운 축복을 내려주셨을까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요셉은 비록 종살이를 하고 있지만 푸른 꿈을 가슴에 품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대하며 믿었기 때문에 주신 축복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는 다윗이 우리들에게 남겨 주신 권면의 말씀과 딱 맞아떨어지는 동일한 역사입니다.

(37:4-9)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어쩌면 다윗의 이 말씀은 요셉으로부터 받은 청사진 같지 않습니까? 요셉은 꼭 이렇게 살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 위해 부잣집 마님인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물과 같이 물리치지 않았습니까? 자신에게 악을 행한 형님들을 원망하거나 불평하거나 원수로 가슴에 새기지도 않았습니다. 비록 지금은 종살이를 하고 비록 지금은 미혹을 받아 감옥에까지 들어가지만 하늘의 하나님은 반드시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원대한 꿈을 이루실 것이라고 그는 하나님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은 애굽의 땅을 차지하는 거대한 축복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습니다. 꿈이 있는 한 낙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꿈이 있는 한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꿈을 이루기까지 끝끝내 그 하나님을 믿고 기대하고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난한 행상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한곳에 머무르지 못하기 때문에 소년은 아버지를 따라 미국의 이곳저곳으로 떠돌아다녀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잠자리가 가장 불편했습니다. 이때부터 가난한 이 소년은 호텔사업을 꿈꾸었습니다. 자기와 같은 나그네들에게 편리한 잠자리를 제공하고 돈도 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그와 같은 호텔을 세우는 것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비록 지금은 어리고 돈이 없지만 언젠가는 이 꿈을 이루리라고 다짐하였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하였습니다. 늘 가슴 속에는 수십 층의 높은 호텔을 품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는 성경말씀을 굳게 믿고 꿈을 키워나갔습니다. 드디어 가난한 행상의 아들은 1924년 달라스에 큰 호텔을 세웠고 이 호텔은 세계로 뻗어나갔습니다. 이 소년이 바로 그 유명한 힐튼 호텔의 창업자 콘라드 힐튼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8:13)고 말입니다. 큰 꿈은 큰 믿음을 요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꿈을 가지고 그 꿈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큰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요셉에게는 고통을 덮어버릴 감사가 있었습니다

요셉의 사건에서 단 한 번도 감사라는 말씀이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맥상으로나 사건의 전개를 바라볼 때 요셉의 가슴에서 넘쳐나는 감사를 우리는 넉넉하게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을 타국에 팔아버린 형님들에게 한 요셉의 말이 바로 이것을 넉넉하게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45: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45: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이렇게 고백하는 요셉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 대단한 믿음의 소유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형들 때문에 당한 요셉의 고난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피눈물 나는 고통이었습니다. 그러한 원수들이 성공하여 권세와 힘을 가진 자신 앞에 나타났을 때 보통 사람 같으면 과연 어떻게 하였을까요? 하지만 요셉은 그들을 원수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애굽으로 팔아버린 자들이 그의 형들이 아니라 자신의 꿈을 이루시는 하늘의 하나님이셨다는 사실을 그는 지금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그와 같이 오묘하게 자신을 지금 이 순간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았겠습니까? 그와 같은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있었기 때문에 그는 눈앞에 나타난 원수 중의 원수들인 형들을 용서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랬습니다. 참으로 요셉은 위대한 감사의 사람이었습니다. 훗날 그의 아버지인 야곱이 세상을 떠나자 형들은 다시 한 번 더 요셉 앞에 엎드러져 용서를 구하고 요셉의 보복을 피하려고 비굴하리 만큼 요셉에게 아첨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 때 그들을 향해 대응하는 따뜻한 요셉의 변함 없는 사랑을 보면 역시 요셉은 위대한 사람이요 하나님 중심의 사람이요 하나님을 향한 감사를 잊지 않은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50:15-21)

요셉의 형제들이 그 아비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가로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다 하라 하셨나니 당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의 그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그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가로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는 말씀과 같이 요셉은 범상한 사람을 뛰어 넘는 위대한 사랑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고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고 자신은 사랑하고 용서하고 먹이고 입히며 보살피는 것임을 천명하고 그렇게 실천하였던 사람이었습니다. 역시 요셉은 오늘 우리들이 사는 날 동안 가슴에 새기고 거울로 삼고 축복의 모델로 삼아야 할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로 무장한 사람은 사람을 보지 않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감격하며 굳은 일도 하나님께서 주시고 축복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줄 알아 모든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그런 진정한 신앙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들은 요셉처럼 고난과 고통을 감사로 덮어버리고 하나님의 심장으로 서로 사랑하며 꿈을 이루어 가는 그런 멋들어진 성도들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연중행사가 아닌 생활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영국 어느 지방에 등뼈에 병이 생겨 40여년이나 자리에 누워 고생하는 덴데라 라는 예수 믿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신앙이 참으로 좋아서 그 방에 들어온 사람마다 천국에 온 것 같은 생각을 가질 정도였다고 합니다. 당시 미국의 유명한 무디 선생이 영국에 부흥회를 크게 인도하던 중에 덴데라의 소문을 듣고 바쁜 일과 중에도 신앙 좋은 텐데라를 만나 보아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교인의 안내로 찾아가 냄새나는 덴데라 방에 들어가 환자를 위하여 기도를 하였습니다. 기도를 끝내고 무디 선생은 환자에게 얼마나 괴롭습니까? 하고 위로하였습니다. 그때 덴데라는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풍기면서 말하였습니다. "괜찮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도 지셨습니다. 나는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천당에 가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러므로 나는 그저 감사할 것뿐입니다." 무디 선생은 텐데라의 방을 나서면서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나는 오늘 천국을 맛보았다!"라고 말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어느 덧 성큼 감사의 달 11월이 다가왔습니다. 감사는 결코 감사의 계절에만 생각하는 단어가 아닙니다. 이것은 성도들의 생활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가장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생활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고난과 고통 가운데서 감사드릴 수 있다면 그것은 신앙생활의 최고봉이 될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안할 때는 감사드릴 수 있지만 고통과 고난의 때에는 원망하게 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토록 극심한 고통과 고난의 때에도 원망을 털어내고 감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였으므로 하나님은 그와 같은 요셉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다 이루시고 히브리 민족의 초석을 깔아 놓는 위대한 인물로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이 정도의 배짱과 믿음과 거대한 꿈이 있어야 한 시대를 풍미하는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그와 같은 인물은 될 수 없을지라도 우리들이 속해 있는 가정과 교회와 직장에서라도 요셉의 사명을 다해 비록 우리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악한 영혼들이 주변에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연단하시려고 붙여주신 요셉의 형들이라고 생각하고 이겨내고 승리하는 그런 멋들어진 믿음과 감사로 무장하여야 하겠습니다. 요셉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들과 함께 하실 것이므로 요셉에게 주셨던 놀라운 축복을 오늘 우리들에게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귀한 날 예배자로 하나님의 성전으로 올라오신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에게 요셉에게 주셨던 풍성한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좋으신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멘

주후 2018114

1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

Add comment


Security code
Refre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