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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2일 주일낮설교 (예수님을 만난 사람)

예수님을 만난 사람

12. 2, 2018

本文:요한복음1:35-42

: 牧師

어떤 강사가 강의 도중에 지갑에서 곱게 간직하고 있던 100불짜리 지폐를 하나 꺼내더니 여러분 가운데서 이 돈을 가지기를 원하는 분은 손을 들어봐 주세요.” 했더니 영문을 몰라 두리번거리면서도 손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그 강사는 다시 그 100불짜리 지폐를 마구 구겨버리더니 다시 말했습니다. “지금 구겨진 이 돈도 받고 싶으신 분들은 손을 들어봐 주십시오.” 여전히 방청객들을 손을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그 구겨진 돈을 시멘트 바닥에 던지고는 발로 마구 밟고 뭉개버렸습니다. 바닥의 먼지와 함께 돈은 금세 더러운 휴지조각처럼 변해버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강사는 물었습니다. “이렇게 더러워진 돈일지라도 가지고 싶으신 분들은 손을 들어주십시오.” 역시 많은 방청객들은 손을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100불짜리 지폐는 지갑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을 때나 구겨졌을 때나 심지어는 시멘트 바닥에서 밟혀 쓰레기처럼 더러워져도 여전히 100불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관객들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 돈을 갖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때로는 험한 세상 살아가면서 상하고 찢기고 만신창이가 되어도 예수님의 보혈이 흐르는 예수님의 사람으로 영원히 그 가치를 지니고 있는 소중한 성도들입니다. 비록 돈이 없어도, 비록 몸이 지치고 병들어도, 배운 것도 잘난 것도 없어 그 어떤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피로 값을 주고 사신바 된 예수님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너는 내 것이라.”(43:1)는 인정을 받고 보호를 받으며 끝내 이 세상을 떠날 때에도 천국을 상속 받을 수 있는 성도라는 사실을 한 순간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이렇게 당당하게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라고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들에게 보내 주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복된 계절이 바로 성탄의 계절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처럼 무명의 한 어부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어떻게 그 삶이 바뀌게 되었는가를 증거해 주는 소중한 진리로 가득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들이 너무나도 잘 아는 베드로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으며 그 인생이 어떻게 유종의 미를 거두게 되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서 우리들에게 주어진 삶도 베드로처럼 멋들어질 수 있도록 풍성한 도전과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을 만난 남다른 간증이 있겠지만 시몬 베드로는 아주 특별하게 예수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동생 안드레의 전도를 통해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1:41-42)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베드로가 탄생 되는 순간입니다. 전도라는 거룩한 방법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을 옳은 데로 인도하는 사람은 하늘의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고 선언하셨던 것입니다.

(12: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는 말씀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성도들이 일생을 통해 한 순간도 무관심할 수 없는 놀라운 사명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베드로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달라집니다

괜찮은 사람 하나를 만나도 변합니다. 난폭하고 거칠고 사납던 조폭도 예쁜 여자 하나를 만나면 순한 양과 같이 변합니다. 말썽꾸러기 사춘기의 아들도 여자 친구를 만나면 다른 아이처럼 따뜻하게 변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난다면 어떻게 될까요? 틀림없이 변합니다. 예수님을 만났던 열 두 제자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베드로를 보아도 이와 같은 역사가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너무나도 놀랍게 달라졌습니다. 자신이 생명처럼 귀하게 여겼던 그 모든 것들을 다 버렸기 때문입니다.

(5:1011)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19:27)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라는 말씀들과 같이 말입니다. 이는 참으로 위대한 일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결코 쉽게 할 수 없는 그런 놀라운 결단을 베드로는 이렇게도 과감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생명 줄과 같은 배도 버리고 생명 그 자체인 가족들도 다 버리고 예수님을 쫓았던 것입니다. 이는 비단 베드로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도 잘 났던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3:7-9)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소중했던 그 모든 것들을 두 번 다시 미련을 가지지 않도록 배설물과 같이 과감하게 버렸습니다. 이는 그가 친히 고백한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기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부족하지만 이 종도 예수님 한 분을 얻기 위해 부모도 형제도 친척들도 친구들도 다 잃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 종은 평생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분에 넘치도록 그 보상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여러분들도 이처럼 소중한 것을 버릴 수 있을 정도로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1년 중에서도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계절이 바로 우리들을 만나시기 위해 하늘 보좌도 버리시고 이 땅에 내려오신 성탄의 계절입니다.

장로교 목사인 심프슨은 중년에 접어들 즈음에 건강을 잃고 크게 낙담하여 성직을 떠나려고 할 때에 우연히 한 단순한 흑인영가를 듣게 되었습니다. "아무 것도 예수께는 어렵지 않네. 아무도 그분처럼 일할 수 없네." 그 내용이 화살처럼 몸과 영혼을 위한 믿음과 소망과 생명을 싣고 그의 심령 속으로 날아들었습니다. 그는 조용한 곳을 찾았습니다. 오직 하나님과만 보낸 한 계절 후 완쾌되어 힘차게 일어나 넘치는 기쁨으로 나아가서 그 이래로 세계에서 가장 큰 해외 선교 단체 중의 하나인 선교회를 창설하였습니다. 하나님과의 이와 같은 놀라운 만남 이후 35년 동안 그는 그리스도를 섬기며 비범하게 일하였습니다. 무한한 능력의 하나님께 대한 그의 신앙이 일을 경영하는 데 필요한 모든 힘을 제공해 주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을 제대로 만난 사람은 어떤 모양으로든지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을 만나도 완전하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베드로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만나고 자산의 소중한 모든 것들을 다 버리고 따를 만큼 예수님의 사람이 되고 제자까지 되었지만 그는 역시 완전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도 우리들과 똑 같이 버린 것에 대한 미련을 되새겼고 본전 생각을 했으며 그도 죽이려고 달려드는 잔인한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예수님을 세 번 씩이나 부인하고 맹세하고 저주까지 하였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급기야는 주님께서 주신 모든 사명까지도 다 던져버리고 원점으로 되돌아가 고깃배에 오르는 초라한 모습까지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그와 같은 적나라한 모습들을 다시 한 번 더 성경으로 돌아가 기록된 그대로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9:27)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26:69-74)

베드로가 바깥뜰에 앉았더니 한 비자가 나아와 가로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비자가 저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 하노라 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울더라

(21:1-3)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이 이러하니라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이 말씀들은 한결같이 베드로가 비록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으나 여전히 연약하고 부족하며 완전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반증해 주는 성경의 증거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너 나 할 것 없이 완전하진 인생의 한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동료들이 실족하거나 순간 잘 못된 길에 빠졌다 해서 비난하고 돌아서고 물리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누구나 한 순간 그렇게 잘못에 빠질 수 있는 것이 우리 부족한 인생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단 한 번도 실수하였다거나 잘못 하였다고 해서 떠나시거나 버리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떠난 것은 죄인들이었지 예수님께서 친히 버리신 사람은 없었습니다. 미련한 이 종은 이 놀라운 진리를 깨닫지 못해 지래짐작으로 판단하고 성도들을 버리거나 포기한 적이 많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후회스럽고 안타깝습니다. 자신도 완전하지 못하면서 남은 완전하기를 원했던 어리석음이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보면서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판단하지 않으시고 기다리시면 우리들도 기다려야 한다는 진리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의 제자라는 가치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이 함께 찾아 본 베드로의 모습은 마치 구겨지고 짓밟혔던 100불짜리 지폐처럼 초라하고 보잘 것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제자 된 가치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그의 가치를 꺾지 않으시고 회복시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21:15-17)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 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무너지고 망가지고 깨져버렸던 베드로를 다시금 회복시켜 제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는 놀라운 모습입니다. 사람이 볼 때는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도 부인하고 사명까지도 던져버리고 삶의 원점으로 되돌아가버린 그런 못난 제자였지만 예수님은 개의치 않으시고 천하보다도 더 소중한 양을 먹이라고 맡기신 것입니다. 참으로 눈물겹도록 감격스러운 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 부족하고 연약하여 넘어지고 자빠지지만 예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을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더욱 더 강력하게 사용하실 수 있도록 회복하시고 강건케 하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들에게 예수님의 거룩한 보혈이 묻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와 같은 베드로를 끝까지 사용하시되 엄청난 능력으로 함께해 주셨던 것입니다.

(2:37-41)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베드로의 말씀의 권능이 그 얼마나 대단하였으면 한 순간에 3천 명이 회개하고 돌아왔겠습니까?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는 날 때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을 순간에 일으켜 세우는 권세도 있었습니다.

(3:1-8)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 가려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연약하여 넘어지고 자빠지지만 하나님은 그렇다고 포기하고 돌아서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종이 되었으면 그 가치는 영원히 지속 되는 것입니다. 가치만 지속 될 뿐 아니라 오히려 더 큰 능력을 주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온 세상에 전파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거나 좌절하면 안 됩니다. 다만 더욱 하나님 만나기를 소망하고 하나님의 그 사랑을 누리기 위해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겨야 하겠습니다.

(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능력과 권세의 예수님을 만날 좋은 계절이 다가왔습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소중한 기회를 놓쳐버리지 않도록 이번 성탄의 달에는 베드로와 같이 능력을 회복 받고 베드로와 같이 사명을 감당하는 아름다운 주님의 자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어느 덧 성탄의 달 12월을 맞았습니다. 진심으로 성탄하신 우리 주님께서 오늘 예배드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과 함께 하시고 회복의 은총으로 충만케 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일보다 우리들의 일생에 더 소중한 축복은 없습니다. 그와 같은 예수님을 우리들도 만나고 이웃들도 만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제대로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그 예수님을 위해 우리들의 가장 소중한 그것이라도 과감하게 포기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의 부귀영화도 좋지만 예수님은 그 보다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존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노력하지만 부족하고 세상에 젖어서 주님과 교회를 소홀히 여길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우리들을 한 순간도 버리시거나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더욱 불쌍히 여기시고 능력을 주시고 권세를 주셔서 끝끝내 주님의 자녀로서 이 세상을 정복하도록 도와주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맹세하고 저주까지 하였으나 예수님은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마시고 끝까지 예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성탄의 귀한 축복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다시 한 번 더 예수님을 가슴으로 모시고 그 예수님과 함께 세상을 정복하고 행복한 성도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진정한 예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멘

주후 2018122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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