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23일 주일낮설교 (받았으니 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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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23 December 2018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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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았으니 드리라!
성탄주일
12. 23, 2018
本文:마태복음2:1-11
說敎:崔 仁 根 牧師
영국의 유명한 설교자 윌리엄 생스더가 어느 날 병원에 입원한 소녀를 심방하였습니다. 의사들이 그 소녀의 시력을 회복시키려고 최선을 다해 수술을 하였지만 실패하였습니다. 소녀는 생스더에게 "하나님께서 내 시력을 빼앗아 가시려고 해요."라고 괴로운 마음으로 말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에 그는 "하나님이 빼앗아 가시게 하지 말고 그 하나님께 드리거라." 하고 사랑이 담긴 마음으로 권면하였습니다. 우리의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이라도 하나님께 드리면 훌륭한 하나님의 것이 됩니다. 아무리 크고 위대한 것이라도 드리지 않으면 빼앗기게 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드리는 사람입니다. 미련한 사람은 빼앗기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의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고전4:7)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뇨
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누리며 삽니다. 그러므로 내 것이라고 자랑하거나 인색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지난 목요일인 20일 오후 6시 4분쯤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460번 국도 인근에서 쏘렌토 승용차가 도로 옆 가로수를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로 운전자 김모(53)씨가 크게 다치고, 동승했던 김씨의 아내와 두 딸, 그리고 아들의 여자 친구 등 4명이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김씨 등은 이날 육군 모 부대 신병 수료식에서 아들을 면회하기 위해 경기 성남에서 화천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들은 면회를 마친 뒤 아들을 신병교육대에 내려준 뒤 약 3km를 달리던 중 왼쪽으로 굽은 도로를 지나다 사고를 당했다고 합니다. 이거야말로 날벼락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군에 간 아들을 온 가족이 기쁨으로 면회하고 그 아들과 헤어져 5분도 채 안 되어서 이렇게 모두가 다 세상을 떠나버렸으니 이런 비극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것이 오늘 우리 인생의 현주소입니다. 그 어느 것도 내 것이라고 내 세울 것이 없는, 잠시 누리고 있는 것 뿐인 것이 오늘 우리들의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수요일 19일 서울 MBC의 ‘실화 탐사대’는 중화권 최고의 배우로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주윤발씨의 8,100억 전 재산 기부에 대한 특별 프로그램을 진행하였습니다. 거기에서 이처럼 놀라운 거액의 전 재산을 기부한 배경에 대한 내용을 방송해 주었는데 그것의 일부를 발췌해 보았습니다. [전 재산 기부에 대한 아내 반응을 묻자 “아내가 완전히 찬성했다.”라며 “그 돈을 영원히 가질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냐. 지금 당장 은행에 그 돈을 맡긴다고 해도 죽고 나면 소용없다. 어차피 그 돈은 내가 잠깐 가진 것 뿐이다.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해진다면 참 좋을 것 같다.”고 소신을 밝혔다.] 참으로 생각이 깨어 있는 놀라운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것이라고 욕심내고 인색하고 굳게 부여잡고 살아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동방박사들은 그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 머나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동방에서 예루살렘까지 길도 모른 체 별의 인도를 받으면서까지 예수님을 찾아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 축복을 받으려고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 경배를 드리고 예물을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참으로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로 팽배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도전이 되는 말씀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함께 배우면서 깊은 깨달음을 가지고 빈손으로 와서 지금까지 소중한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 우리들이 이제는 주어야 하는 때를 만났음을 깨닫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받았으니 드리라!
최근 대구에서 두 사람의 기부자로 인해 많은 감동의 뉴스가 나오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60대의 여성으로 청소부로 일 하면서도 매년 20~30만원씩 지난 6년 동안 1천 4백여만 원을 기부해 감동을 주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역시 60대의 남자로 매년 1억 5천여만 원씩 지난 6년 동안 8억 5천여만 원을 기부해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두 분이 똑 같이 이름도 이유도 아무런 조건도 없이 지난 6년 동안 한결같이 성탄의 때만 되면 기부금을 보내온다는 것입니다. 돈이 귀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이렇게 긴 세월을 한결 같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돈을 보내는 이런 사람들은 참으로 훌륭한 분들인 것만은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미국의 시민들은 거의 70% 이상이 자선단체에 기부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바나 리서치가 미국인들을 중심으로 자선단체에 대한 기부실테를 조사한 바에 의하면 미국의 부자들은 단 2%밖에 기부에 동참하지 않지만 연봉 2만에서 3불에 불과한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자선단체에 참여하는 사람은 70%에 육박하고 있고 주당 4시간 이상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미국 인구의 거의 절반에 가깝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능력은 바로 신앙생활에서 나오는 것으로 또한 조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가슴에 모시고 살아가는 진정한 성도들이라면 자신의 재능이나 몸 그리고 재물로 이웃들을 섬기고 돕고 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계절이 바로 성탄절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의 정신은 주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구약 성경의 요절이라고 하는 요한복음 3장 16절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누가 뭐래도 예수님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이제는 예수님의 정신을 살려, 주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단도직입적으로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씀을 우리들에게 남겨 두었습니다.
(행20:35)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고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제대로 만난 사람은 이렇듯 주는 자로 복을 누리며 짧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성탄주일로 이와 같이 주는 자들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진정한 성탄의 뜻을 되새기고 받는 자에서 주는 자로 거듭나는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동방박사들은 예수님께 예물을 드렸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유명한 동방박사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그들은 기약도 없는 길고도 먼 동방에서 예루살렘까지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듣고 그 예수님께 경배를 드리고 예물을 드리기 위해 한사코 달려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께 엎드려 경배하고 정성껏 준비한 소중한 예물들을 세 가지로 구별하여 드렸습니다.
(마2: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몇 가지 소중한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을 때 하늘의 별이 친히 그들에게 내비게이션과 같이 길을 인도해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마2:9-10)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쌔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는지라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동방박사들이 기적을 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 그 누가 별의 인도를 받아 움직였습니까? 주님을 향한 선한 마음과 행동은 이처럼 기적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인생 여정에서 우리들의 계획과 뜻과 유익만을 얻을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들의 인생 여정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고난과 위험이 파도처럼 닥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처럼 별이 길을 인도하여 목적지에 무사히 당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기적이 임하게 되고 하나님의 영이 친히 그릇된 길로 들어서지 않도록 인도하시며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닥칠 수 있는 위험을 사전에 막아 주시는 것입니다.
(행16: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마2:12)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 경배를 드리고 예물을 드리는 것은 엄청난 축복으로 보상이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동방박사들은 예수님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습니다. 이 모든 예물들은 당시 왕에게 드리는 품목들이었습니다. 이렇듯 아기 예수님께 황금을 드렸다는 것은 “예수님은 왕이십니다.”는 뜻이요, 유향을 드렸다는 것은 “예수님은 죄와 허물이 없으신 완전하신 분이시라.”는 뜻이며, 예수님께 몰약을 드렸다는 것은 “장차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예표하는 것이었습니다. 몰약은 고귀한 분들의 시신에 바르는 향품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동방박사들은 예수님께 엄청난 의미를 지닌 값비싼 예물을 드렸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모두가 정성을 다해 성탄 예물을 드리는 것은 단순한 헌금이 아닌 예수님을 향한 동방박사들의 정신을 계승하는 깊은 의미가 숨어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드렸습니다
우리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그 소중했던 그물과 배를 다 버리고 예수님을 쫓았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눅5:11)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나중에 베드로는 스스로 예수님을 위해 자신의 소중한 모든 것들 다 버렸다는 사실 고백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19:27-29)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여기에서 우리는 분명한 사실 하나를 배우게 됩니다. 우리 주님을 위해 바치고 버리고 헌신한 삶은 반드시 그 보상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니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이 이와 같은 예수님을 위해 헌신하고 헌금하고 소중한 삶을 바치는 것은 결코 헛되지 않는 고귀한 투자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군 다윗은 이것을 일찌감치 체험하고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기록해 두었습니다.
(시37:25-26)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간증이요 고백입니까? 과연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주님과 이웃을 위해 인색하지 않고 꾸어주고 사랑하고 섬기면 틀림없이 우리들도 잘 되지만 우리들의 자손들이 하나님의 후광을 덧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베풀고 꾸어주고 섬기고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 이렇게 하라고 예수님께서 친히 하늘 보좌도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소중한 생명 까지도 아낌없이 주시며 모범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지난해 6월 텍사스에서 열아홉 살의 어맨다 호킨스는 한 살과 두 살 난 어린 딸들을 자신의 SUV차량에 방치한 채 밤새 호숫가 오두막에서 파티를 즐겼다. 다음날 오후가 돼서야 호킨스는 아이들을 데리러 갔고, 의식을 잃은 아이들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다. 사고 당일 낮 기온은 화씨 90도(섭씨 32도)까지 치솟았으며, 아이들은 차 속에서 열다섯 시간 이상 방치됐다. 밤에 같이 캠핑을 하던 친구가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호킨스에게 아이들을 데리러 가라고 이야기 했으나 그는 “울다 잠들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심지어 호킨스는 의사에게 아이들이 호숫가에서 꽃 냄새를 맡다 의식을 잃었다고 거짓말한 것으로 경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텍사스주 커카운티 법원은 아동 유기 등 혐의로 호킨스에게 징역 40년형을 선고했다. 담당 판사는 “아이들이 반려동물보다 못한 대접을 받았다”고 일갈했다.](2018년 12월19일 서울인터넷 뉴스에서 발췌)
이것이 인간과 우리 하나님의 다른 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믿음과 헌신을 따라 우리들의 자녀들을 형통하도록 복을 주시지만 인간은 자신이 낳은 자녀들도 이처럼 방치한 체 자기 자신만의 쾌락을 추구하다가 죽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자신만을 위해 하나님이나 이웃에 대해 무관심하면 이처럼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우리들 자신과 분신과도 같이 소중한 우리들의 자녀들을 위해서라도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섬길 줄 아는 성탄의 정신을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쳤습니다
성경 속에는 참으로 위대한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사도 바울과 같이 일생을 온전히 다 바쳐서 헌신한 인물도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특별히 사도 바울은 살인마로 원성을 높였던 악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한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완전히 변화를 받아 그토록 아름다운 충성과 헌신을 다하였던 것입니다. 그가 스스로 고백한 자신의 변화를 함께 한 번 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빌3:7-9)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이 세상에서 자신이 평생 이루어 놓은 값진 모든 것을 이처럼 배설물과 같이 버리고 오로지 예수님만을 쫓아갈 수 있는 사람이 그 얼마나 있겠습니까? 우리 예수님의 권능은 이처럼 위대하였던 것입니다. 그를 이렇게 만드신 분이 바로 우리 구주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사도 바울에 비하면 과연 오늘 우리들이 우리 예수님을 위해 무엇을 바쳤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아브라함은 나이 100살에 얻었던 아들 이삭도 미련 없이 바쳤습니다. 평범한 우리들이 이처럼 살 수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 주님을 위해 작은 시간과 예물과 몸은 바칠 수 있어야만 하지 않겠습니까? 교회에 나와서 무엇이 되었던지 간에 헌신하고 섬기고 하나님과 이웃들에게 유익을 드리는 그런 멋들어진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앙을 넘어 인간이면 사람 냄새가 나는 그런 삶을 살아야 마땅하리라 믿습니다. 최소한 하늘을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제대로 만났다면 말입니다. 이제 역사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위대하게 살아간 인물들을 잠시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 자신 밖에 모르고 인생을 살아가는 오늘 우리들에게 큰 도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링컨 같은 사람은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가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하였다면 어떤 사람이 되었겠습니까? 물론 사업도 열심히 했을 것이고 법관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세계 정치사에서 성스럽다고까지 할 링컨이 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미국의 노예를 해방하고 미국의 건국사의 초석을 놓았던 그러한 링컨은 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그가 예스를 하면 유럽이 전부 예스로 진동이 되고, 노를 하면 유럽이 노 쪽으로 진동을 할 정도로 지진을 일으킨 사람이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하나님께서 만든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붙잡힌 사람입니다. 김익두 목사님은 아주 불량한 깡패였습니다. 그는 시장에 가는 사람마다 괴롭혔습니다. 시장에 가는 사람들이 오늘은 김익두를 안 만나게 해달라고 고사를 지내고 갔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한국 초대교회의 사도 바울과 같은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어거스틴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의 참회록을 보면 나쁜 짓이란 나쁜 짓은 다 했습니다. 가장 나쁜 사람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기도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성자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에게 모세가 왜 없겠습니까? 한국의 이사야가 왜 없겠습니까? 한국의 베드로나 바울이 왜 없겠습니까? 우리들에게 에스더나 룻이나 한나 같은 여성이 왜 없겠습니까? 사람들을 온전히 변화시켜 주시는 우리들의 위대한 교육자이시며 위대한 예술가이시며 또한 창조주이시며 부활의 주 되신 예수님께 우리의 생애를 맡겨야 하겠습니다. 우리 인격의 모든 병을 낫게 하시고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능력의 주님께 우리의 생애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소경들이 예수께로 갔을 때에 예수님은 내가 그 일을 능히 할 수 있다고 믿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이 일을 능히 하실 수가 있나이다 하고 믿으면 그렇게 될 수 있도록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사도 바울과 같이 우리들의 가장 소중한 그것을 아낌없이 드리고 그 주님께서 우리들의 인생과 자손들의 미래를 책임져 주시도록 맡겨드려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의 이와 같은 놀라운 결단이 이루어져야 할 때가 바로 우리들을 찾아 이 땅에까지 강림하신 성탄의 계절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 이와 같은 헌신과 믿음으로 신선한 성탄의 기적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은 2018년도 성탄주일입니다. 성탄절은 예수님을 만나는 계절입니다. 동방박사들과 같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안일과 죄악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을 찾아 이 땅에까지 강림하신 예수님께 드릴 예물을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주신 그 예수님께 우리들도 아까운 것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아브라함처럼 아들도 바치고 베드로와 같이 그물과 배도 바치고 사도 바울과 같이 일생도 바쳐서 오직 예수님의 기쁨이 되기 위해 아낌없이 헌신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거짓말과 같이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과 우리 자손들의 앞날에 여호와께서 친히 앞서가시며 그 필요를 미리 준비해 주신다면 우리들의 삶은 그 얼마나 황홀하고 풍성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결단해야 합니다. 동방박사들과 같이 예물을 준비하고 미련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예수님을 찾아 나서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결단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별들을 준비하시고 우리들의 길을 친히 안내해 주실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성탄의 기적이요 성탄의 축복인 것입니다. 복되고 귀한 성탄주일에 예배자로 하나님 앞에 나아오신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에게 이처럼 놀라운 하늘의 은총과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구유에 오신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멘
주후 2018년 12월 23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