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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You are here: Home 말씀과예배 설교 읽기 2019년 2월 24일 주일낮설교 (화평케 하는 자)

2019년 2월 24일 주일낮설교 (화평케 하는 자)

      

       화평케 하는 자

 

 

2. 24, 2019

本文:마태복음5:1-10

     : 牧師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이혼소송 중인 남편 박 모 씨를 폭행했다는 증거 영상이 KBS를 통해 공개됐다. KBS가 공개한 영상에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모습이 나온다. 경찰에 제출했다는 영상에는 조현아 전 부사장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죽어"라고 고함치며 박 씨와 싸우는 모습이 담겨있다. 박씨가   살점이 떨어져나가고 엄지발가락이 빠졌다.는 주장과 관련된 사진도 담겼다. 박 씨는 경찰에 조 전 부사장이 특수상해, 아동복지법 위반 상 아동학대, 특정경제 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으로 고소했다. 박 씨는 고소장에 조 전 부사장의 폭언, 폭행 정황을 담았다. 박 씨는 조 전 부사장이 고함을 지르며 태블릿 PC를 집어 던져 엄지발가락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는 주장을 고소장에 담았다. 박 씨는 이에 대한 증거 사진, 영상 등을 제출했는데 KBS가 이를 보도했다.](조선일보 2월 20일자에서 발췌)

 

   조현아는 대한항공 부사장이고 그 남편 박 씨는 성형외과 의사입니다. 그 정도면 대한민국에서는 최상위급 위치에 있는 부부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왜 이렇게도 서로 원수가 되어 고소 고발을 하고 이혼을 추진하고 있을까요? 인간관계는 이렇듯 사회적인 지위나 돈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사람 관계는 사랑으로 연결 되어야 하고 그래야만 진정한 평화를 누리며 화평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는 관계는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사회적인 모든 것을 다 가지고 모든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 만한 그런 사람들이지만 폭력이 난무하고 갑질이 넘쳐나는 비참한 결과를 만들어내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그 첫 설교말씀에서 진정한 축복은 화평케 하는데 있음을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마5: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종도 46년 동안 한국과 미국에서 숱하게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 본 결과 화평케 하는 사람이 최고 최상의 인물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졌다 할지라도 사람들과 어우러져 화평할 줄 모르는 사람은 찌르는 가시요 쏘는 독일뿐이었습니다. 오죽하였으면 솔로몬이 다투는 여인과 큰 집에 사는 것 보다는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낫다고 고백하였겠습니까? 그것도 두 번씩이나 거듭 말입니다.            

 

(잠21:9)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잠25:24)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화평케 하는 자가 최고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에 관한 말씀으로 진정한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화평케 하는 자들로 거듭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화평케 하는 자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이웃들과 더불어 편안하게 어우러질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삶이 윤택하고 예수님도 전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도 평범한 진리를 모른 채 오로지 자기 생각과 주장만 내세우는 미련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음을 우리는 또한 살아가면서 경험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런 사람과는 교제가 단절 되고 더 이상 관계를 유지하지 않게 됩니다. 특별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이민사회에는 이와 같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외롭고 힘든 생활 속에서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고 피해의식과 소외감을 너무 많이 겪다보니 마음이 메마르고 성격이 변해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렇게 변질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타고난 천성이 괴팍하고 남을 무시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근본적으로 잘못 된 인격의 소유자도 또한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도 이와 같은 현실을 미리 내다보시고 우리들이 받아야 할 축복 중에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한 가지 축복을 내려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화평케 하는 자 입니다. 이처럼 화평케 하는 자는 이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어가는 가장 소중한 성품일 뿐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로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자산임을 예수님은 축복으로 보상하실 만큼 강조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은 말씀을 가슴으로 받아 새기고 이웃들과 더불어 화평케 하는 자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없이는 하나님의 일은 커녕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생활에서도 낙오자가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리라

 

   어제 아침에 일어나 보니 친구로부터 문자가 하나 와 있었습니다. 뉴저지에서 목회하고 있는 친구인데 플로리다에 갔다가 어제 아침 8시 UA기로 돌아오게 되어 있었는데 정비관계의 문제가 생겼다면서 무려 6시간이나 연발하게 되었다는 광고가 나와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비행기가 60분도 아닌 6시간이나 늦게 출발할 수가 있느냐며 울분을 터뜨렸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그 비행기를 기다리던 200여명의 미국인들 중에 단 한 사람도 불평을 하거나 고함을 지르거나 항의를 하거나 하는 사람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냥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너무나도 감동을 받아 이것이 진정한 선진국의 저력이요 이것이 바로 믿음의 아름다운 열매이구나 하고 깊은 깨달음과 배움을 얻었노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격자와 신자는 유사시에 이처럼 멋들어진 열매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로부터 과연 하나님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로구나!하는 칭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옛날 어떤 곳에 화평한 가정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친구가 놀러와 가정이 화평하게 사는 방법을 물으니 친구는 곧 아들을 불러 밭에 이삭이 갓 핀 보리를 베서 묶어세우라고 하였습니다. 아들은 때가 되지는 않았으나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니 하라시는 대로 보리를 베어 묶어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일을 중지 시키고 다시 말씀하기를 이제는 소를 지붕으로 끌어 올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아들은 지붕에 사다리를 올려놓고 외양간에서 소를 끌고 오더니 지붕으로 끌어 올리려 안간 힘을 다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바라본 친구는 화평의 비결이 바로 이것이로구나 하고 크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는 즉시 집으로 가서 아들을 불러 보리를 베어 묶어세우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아버지 아침에 어디 갔다 오시더니 갑자기 노망이라도 들었소? 때도 안 된 보리는 왜 베라고 하시오." 하고 반항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본 아버지는 우리 가정이 화평하기는 정녕 틀렸구나 하고 슬퍼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아버지의 뜻보다는 자기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고 달려드는데 무슨 화평이 있을 수 있고 가정의 평안이 존재할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이웃과 더불어 화평케 하는 자가 되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리라!고 그 보상을 선언해 주셨습니다. 그만큼 화평케 하는 자가 훌륭하고 예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5: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는 신분상승을 의미하는 매우 놀라운 축복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뜻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원래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는 공중 권세 잡은 자들을 따르며 하나님을 떠나버린 죄인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우리들을 다시 하나님의 아들로 회복시켜 주겠다고 하시니 이것이 바로 축복이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회복을 신앙생활의 최고봉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관계회복을 통하여서 더욱 하나님의 영광을 이 세상에 선포하는 사명자로 승리하는 모범을 보여 주었습니다. 만약 오늘 우리들도 이처럼 하나님의 아들로 회복만 되면 하나님의 모든 것을 상속 받으며 이 세상을 승리하는 최고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롬8:28-30)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놀라운 축복을 누리려고 한다면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화평케 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는 이웃과의 관계를 제대로 유지하지 못한다면 하나님과의 관계 또한 회복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단도직입적으로 선언해 두었습니다.

 

(요일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이 배우는 이 진리는 우리들의 인생뿐만 아니라 영적인 최후 승리를 얻는데 가장 소중한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이웃과의 관계가 흐트러지면 하나님과의 관계 또한 회복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화가가 되기를 꿈꾸는 몇 명의 소년들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방문했습니다. 그는 아주 조용한 가운데 예수님의 얼굴을 그리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한 소년이 화판 더미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예민한 그의 작업이 방해를 받아 기분이 상했습니다. 그는 붓을 집어던지고는 어쩔 줄 몰라 하는 소년에게 화를 내며 심하게 꾸짖었습니다. 소년은 울면서 화실 밖으로 뛰어나갔습니다. 레오나르드 다빈치는 다시 붓을 들고 예수님의 얼굴을 완성시켜 보려고 애썼지만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창조성과 영감은 화를 낸 후 전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레오나르드 다빈치는 붓을 놓고 울고 있는 소년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미안하구나. 내 말이 너무 지나쳤다. 나를 용서해다오. 나는 너보다 더 잘 못했구나 너는 그저 화판에 걸려 넘어진 것뿐인데. 나는 공연히 화를 내어 나의 생명 안에 흘러드는 하나님의 영감을 막았구나. 나와 함께 다시 화실로 들어가지 않겠니?" 그런 후 그는 자연스럽게 예수님의 얼굴을 그릴 수가 있었습니다. 화목하게 하는 삶에서 하나님의 평화와 기쁨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겸손함과 용납과 사랑에서 화목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평화를 깨뜨리는 역사는 교만과 우월감 또는 열등감과 자기 비하의 감정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화목하게 하는 책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화목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책임입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화평으로 이웃과의 관계가 회복 될 때 비로소 하나님과의 관계 또한 회복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핍박 받음이 축복입니다

 

   팔복의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핍박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거의 공감이 가지 않는 말씀처럼 보입니다. 미국에서 교회에 나간다고 핍박을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대로 예수님만을 사랑하려면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사회에서도 엄청난 저항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은 악한 세력들로 뒤덮여 있기 때문입니다.

 

   이슬람이 국교처럼 되어 있는 파키스탄에서 기독교를 신봉하는 성도들은 참으로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과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아시아 비비라는 여인이 그와 같은 몹쓸 희생자가 되어 엄청난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2009년 어느 날 비비는 자신의 컵에 물을 따라 이슬람 여성에게 건넸는데 그 여인이 대뜸, 더러운 그리스도인의 물은 마시지 않는다.고 거부하였습니다. 이 때 비비가 내가 믿는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는데 네가 믿는 무하마드는 인류를 위해 무엇을 하였느냐?고 반문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두 여인은 싸움을 벌이게 되었고 분을 못 참던 이슬람 여인은 비비를 신성모독 죄로 관가에 고발하였습니다. 불행하게도 비비는 재판을 받게 되었고 사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그리고 무려 8년이나 감옥에서 지내다가 최근에 마침내 서방 여러 나라들의 압력에 굴복하여 무죄로 석방되었습니다. 다섯 자녀들을 거느린 비비는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고 무려 8년 동안을 지옥과 같은 감옥에서 고생하여야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석방 된 이후에도 미국 CNN방송은 비비가 무슬림들의 살해 위협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다고 보도 하였습니다. 진리를 고수하며 핍박을 받고 의를 위해 살해 위협까지 받고 있는 신자는 비비 하나뿐이 아닙니다. 예배당으로 버스를 타고 가던 이집트 콥트교 성도들에게 괴한들이 무차별 총기를 난사하여 버스에 타고 있던 45명이 사망한 사건도 몇 달 전에 이집트에서 있었고 오랜 세월 내전을 겪고 있는 이라크와 시리아 등지의 성도들도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무슬림들로부터 살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사실을 미리 내다보시기라도 하신 것처럼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은 핍박이 곧 축복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반드시 천국을 받으리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마5: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천국에 들어가려면 의인이 되어야 합니다. 의인은 죄인의 반대 개념으로 오직 믿음으로만 죄의 옷을 벗고 의인이라는 인정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갈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 예수님 때문에 죽을죄에서 자유하게 되고 죽어서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신앙은 의외로 많은 핍박과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악한 사탄 마귀는 우리들이 그들을 떠나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을 가장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계시는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은 고통을 끝까지 이기고 견디면 반드시 천국의 주인공이 되게 해 주겠다고 약속해 주셨던 것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파사디나에서 세상을 떠나신 옥호열 선교사님은 6.25 때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군목으로 계시면서 북한의 인민군 포로들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저녁 식사 후 막사를 한 바퀴 돌다가 화장실에서 어떤 포로 청년이 내가 죽일 놈이지. 내가 죽일 놈이지.하면서 울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청년, 나는 아시다시피 여기서 여러분을 돕기 위해 있는 군목인데 무슨 사정이 있으면 이야기 해 보시오, 내가 도울 테니.라고 말하자, 이 청년은 이렇게 털어놓았습니다. 목사님 저는 이북에서 예수님을 믿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결혼한 아내가 어떻게 예수님을 진실 되게 잘 믿는지 나는 마음이 상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한번은 아내를 찾으러 교회에 갔는데 예배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보란 듯이 신발을 신고 뚜벅뚜벅 들어가 제 아내의 머리칼을 휘어잡고 끌고 나왔습니다. 예배당 뜰에서 엄청 때려주었습니다. 그래도 한 번도 반항하지 않더군요. 이상한 것이 다른 말은 제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하는 아내인데, 교회 나가지 말라는 말은 전혀 듣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인민군에 징집이 되어 전쟁을 하다가 유엔군에게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미군 장교가 나오더니 우리 포로들을 한 줄로 세우고 뭐라고 말을 하면서 손짓을 하는데 예수 믿는 사람을 골라내는 것 같았습니다. 그 때 살고 싶은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제 차례가 되었는데 가슴에 십자가를 그렸더니 노래하라고 손짓을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제가 찬송가를 압니까. 갑자기 머릿속에 제 아내가 저한테 매 맞고 나서 부르던 노래가 생각났습니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364장) 그래서 그저 살기 위해서 더듬거리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랬더니 O.K.하면서 저를 따로 세워 여기까지 오게 되었고, 지금은 예수님을 내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구원받게 된 것은 오직 제 아내의 찬송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기독교 역사에 끝도 없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조상들은 그렇게도 모진 핍박을 다 견뎌내며 믿음을 지켜 오늘 우리들에게 유산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은 그 신앙을 어떻게 이어가고 있습니까? 눈곱만큼이라도 피해를 보거나 자손심만 상해도 당장에 교회를 떠나거나 믿음을 떠나고 말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천국에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고귀한 직분을 헌신짝처럼 던져버리고 오로지 자기 자신의 유익만을 따라 사는 그런 사람들은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레미야 48:10을 한 번 보십시오. 실로 무시무시한 예언이 기록 되어져 있습니다. 여호와의 일을 태만히 하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로다.고 말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아는 성도라면 결단코 하나님께서 맡기신 직분을 헌신짝처럼 버리거나 믿음에서 떨어지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스스로 기름을 안고 불에 들어가는 것처럼 어리석고 위험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오늘 본문에서 똑부러지게 기록해 두시고 선언하셨습니다.

 

(마5: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고 말입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이 세상에서 적당하게 제 마음대로 교회에만 다니면 갈 수 있는 곳이 천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오늘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는 살을 찢고 피를 흘리며 목숨까지도 내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고 예수님께서 피로 값주고 세워주신 교회를 망가뜨리고 생명 같은 직분을 경홀히 여기며 믿음에서 떠나는 어리석은 행동을 밥먹듯이 하면서 천국에 갈 것이라고 믿는다면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들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목숨을 걸고 믿음을 지켜고 교회를 섬겨야만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예수님께서 주신 여덟 가지 축복을 들으면서 우리는 같은 축복이 두 번이나 기록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천국이 저희 것이라.는 것입니다.

 

(마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5: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팔복의 첫 번째도 천국이고 팔복의 마지막 여덟 번째도 천국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축복은 처음도 천국이고 나중도 천국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놀라운 진리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여섯 가지는 그와 같은 천국에 들어갈 성도들이 마땅히 지키고 누려야 할 조건과 축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들이라면 나머지 축복도 그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없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비참한 세상에서 아옹다옹 힘들게 살아가면서 죽어서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이 보다 더 비참한 인생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진정한 축복을 받아 누려야만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친히 제시해 주신 조건을 마음과 힘을 다해 충족시켜 드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심은 것이 없는 밭에서 열매를 기다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벌써 새해의 두 번째 달인 2월도 그 마지막 주일을 맞았습니다. 이렇게 빠르게 흐르는 시간의 강물에 속절없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신앙생활을 해야만 하겠습니다. 그러한 신앙생활이란 바로 팔복을 얻어 누리는 것입니다. 천국을 상속 받고 하늘의 위로를 누리며 하나님의 긍휼을 얻어서 영육 간에 배가 부르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도 천국에서도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도록 땅을 차지하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하나님을 뵈옵고 그 하나님과 함께 영원토록 천국에서 복락을 누리는 축복이 바로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 여덟 가지 축복은 그냥 교회에만 다니면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은 복을 누리기 위해, 심령이 가난하여야 하고 애통하는 자가 되어야 하며 온유하고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되어서 어떠한 핍박이나 고통도 능히 이겨내며 하늘의 소망을 두고 의에 목이 마르고 마음이 청결하여 모든 사람들과 하나님을 향해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덕을 쌓으며 축복을 누리는 길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하고자 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므로 낙심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이처럼 살고 이처럼 복을 받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귀하고 거룩한 주일에 이처럼 예배자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려드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반드시 이와 같은 축복으로 행복하고 그 귀한 축복들을 후손들에게 유산하는 그런 놀라운 심령들이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멘

 

                                           주후 2019년 2월 24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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