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17일 주일낮설교 (하나님을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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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17 February 2019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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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보리라!
2. 17, 2019
本文:마태복음5:1-8
說敎:崔 仁 根 牧師
[교회에서 잠을 자던 4살 여자아이가 여중생에게 맞아 뇌사상태에 빠졌다. 부평경찰서는 11일, 지난 8일 오전 5시 30분쯤 인천시 부평구의 한 교회에서 잠을 자던 A양(4)을 폭행해 뇌사상태에 빠뜨린 혐의로 중학생 B양(16)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B양은 이날 교회 유아방에서 함께 잠을 자던 A양이 뒤척이자 홧김에 A양을 폭행한 혐의(중상해)를 받고 있다. 폭행 당시 A양의 어머니는 새벽기도를 위해 자리를 비운 것으로 알려졌다. A양은 병원에 옮겨졌지만 머리 등을 다쳐 뇌사상태다.](인터넷 뉴스에서 발췌)
요즘 한국에서는 중 고등학생이 가장 무섭다는 말이 공공연히 화자 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청소년들이 살벌하고 잔인하게 변해버렸기 때문입니다. 16살 먹은 여중생이라면 4살짜리 아이들을 귀여워하고 사랑스러워 할 청순한 그런 나이가 아닙니까? 그런데 자기의 잠자리를 불편하게 한다는 단순한 이유 하나로 아이를 때려 뇌사상태에 빠뜨렸다니 참으로 기가 찰 노릇입니다. 그것도 교회에 다니는 학생이 말입니다. 자세한 것은 뉴스에서 구체적으로 보도하지 않아 알 수 없지만 교회 유아방에서 잠을 잤고 어린 아이의 엄마는 새벽기도회에 나갔다는 것을 보면 이 여중생도 믿는 집 아이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교회에서 철야를 하고 이어서 새벽기도회를 하였는데 그 여중생과 아이는 따뜻한 유아방에서 잠을 자고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교회 같으면 다 같이 새벽기도회에 나와야 할 대상들이지만 말입니다. 교회에 다니고 교회에 다니는 집 아이가 이 정도로 잔인하다면 뭔가 잘못되었음이 틀림없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예수님의 제자들로서 복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5:7-8)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라고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축복과 두 가지 조건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긍휼과 청결한 마음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과연 어떻습니까? 과연 우리는 남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습니까? 과연 우리들의 마음은 청결합니까? 과거는 어떻게 되었던지 간에 오늘부터는 우리 속에 긍휼과 청결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으로부터 긍휼을 받을 수 있고 비록 죄인이지만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 볼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보리라!
[여고생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성폭행한 후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강간 등 치사·특수 준 강간)로 기소된 10대 4명이 징역형 등을 선고받았다. 광주지법 제11형사부(부장판사 송각엽)는 15일 강간 등 치사 혐의로 구속 기소된 A(18)군과 B(17)군에 각각 징역 장기 5년·단기 4년6개월, 장기 4년·단기 3년6개월을 선고했다. 또 성폭력치료프로그램 수강 80시간과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취업제한 5년씩을 명령했다. 법원은 다만 이들의 치사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불구속 기소된 C(17)군에 대해서는 징역 장기 3년·단기 2년6개월, 성폭력치료프로그램 수강 80시간과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취업제한 3년을 선고한 뒤 법정 구속했다. C군과 함께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진 D(17)군에 대해서는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아울러 보호관찰 2년과 성폭력치료프로그램 수강 80시간, 사회봉사 160시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취업제한 3년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의도적으로 피해자를 만취하게 만들었다. 구토 뒤 실신까지 이르렀는데도 적절한 구호 조치를 하지 않고 성폭행했다."며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 피해자의 유족은 평생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안고 살아야 한다."며 이 같이 선고했다. 다만 A군과 B군의 치사 혐의에 대해서는 "피해자 부검 결과에 따르면 급성 알코올 중독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며 "당시 피해자가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는 점을 예견하기에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며 무죄로 판단했다.](중앙일보 2019년 2월 15일자 기사에서 발췌) 이것이 오늘 우리들이 보고 있는 꿈 많은 청소년들의 초라한 모습입니다. 미래의 꿈을 향하여 학업에 열중하고 지나가는 강아지가 절뚝거려도 불쌍해서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나이인 17, 18세 소년들이 계획적으로 여고생을 유인하여 개임이라는 명목 하에 술을 먹이고 실신하였는데도 성폭행을 하고 혼자 내버려둔 채 떠나버린 무자비한 인간성을 지닌 친구들을 봅니다. 그 중에 단 한 사람이라도 인간이 바로 되었더라면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참으로 이 세상은 무자비하고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말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우리들에게 명령하십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입니다. 이렇게도 잔인하고 긍휼이 없는 세상이 올 것을 예수님은 이미 내다 보셨던 것입니다. 가슴을 열고 이 말씀을 듣고 긍휼이 있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어 험악한 이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야 하겠습니다.
긍휼히 여김을 받는 축복
예수님은 제자 된 우리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는 복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 이것은 모든 축복 중에 가장 기본이 되는 축복입니다. 우리는 앞서 말씀 드린 청소년들보다 더 잔인하게 예수님을 배신하고 떠나버렸던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악마 같은 죄인들에게 던져버리고 거기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게 하였던 무자비한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우리들을 친히 찾아오셨고 말할 수 없는 축복으로 오늘 이렇게 잘 살게 하여 주셨습니다. 이와 같은 모든 축복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조건 없이 긍휼을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엡2:1-5)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이처럼 성전으로 올라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예수님의 제자로서 멋들어지게 살아가는 것은 결코 우리들이 잘나고 그만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긍휼히 우리들을 살리시고 복을 누리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긍휼”은 무엇을 의미하는 말일까요? 어렴풋이 알고는 있지만 다시 한 번 더 가슴에 꼭 심어지도록 그 뜻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원래 헬라어로 쓰여진 원어성경에서는 “긍휼히 여기는 자”를 οί έλεήμον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