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3일 주일낮설교 (배신자는 되지 말라!)
- Details
-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03 March 2019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 Hits: 500
배신자는 되지 말라!
3. 3, 2019
本文:창세기6:1-8
說敎:崔 仁 根 牧師
["그는 인종차별주의자입니다. 그는 사기꾼입니다. 그는 협잡꾼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전 변호인인 마이클 코언이 27일 미국 하원 정부감독개혁위원회 청문회에서 한 말이다. 2016년 대선 기간 트럼프가 모스크바 '트럼프 타워 프로젝트'에 대해 거짓 증언을 하라고 지시했다고 마이클 코언이 청문회에서 고백했다. 같은 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참석하기 위해 하노이에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코언은) 형량을 줄이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코언의 증언을 반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전 변호인인 마이클 코언이 2016년 대선 기간 모스크바 '트럼프 타워 프로젝트'와 관련해 있었던 일을 밝힌 것이다. 2016년 대선 운동 기간 중 코언은 트럼프의 불륜설을 막기 위해 전직 포르노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에게 '입막음 돈'을 지급했고 탈세와 국회에서 거짓 증언을 한 이유로 3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코언은 하원 정부감독개혁위원회 청문회에서 트럼프가 모스크바 '트럼프 타워 프로젝트'에 대해 "알고 있었고 이에 대한 지시를 내렸다."고 증언했다. 이는 러시아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해온 트럼프 대통령과 상반되는 증언이다. "동시에 난 그를 대변해 러시아와 활발히 협상을 진행했다… 그는 내 눈을 보고 우린 러시아와 진행하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미국 국민에게도 똑같이 거짓말을 했다. 그의 방식으로 내게도 거짓말을 하라고 말한 것이다." "그는 내가 거짓말을 하길 원했다."고 코언은 더했다. 코언은 2017년 의회에서 모스크바 트럼프타워 프로젝트를 중단한 시점에 대해 거짓말을 해 유죄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우리가 협상을 중단한 건 2016년 1월이라고 밝혔었지만, 그건 거짓이었다. 러시아와의 협상은 그 후에도 몇 달 동안 계속됐다."고 증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위키리크스의 민주당 전국위원회 이메일 파문에 대해 사전 지식이 없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코언은 트럼프가 그의 정치 고문인 로저 스톤을 통해 위키리크스의 이메일 공개에 대해 미리 들은 적 있다고 증언했다. 스톤은 위키리크스의 창업자 줄리언 어산지가 본인에게 힐러리 클린턴 캠프에 타격을 입힐 대량의 "이메일 뭉치"가 있다고 전화로 전했으며, 이 얘기를 들은 트럼프가 "그럼 너무 좋지 않겠냐?"라는 식으로 대꾸했다고 코언은 밝혔다. 코언은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에 본인에게 "흑인 대통령이 있는 나라 중에 '거지 소굴'이 아닌 나라가 있냐?"고 물은 적이 있으며, 그 당시는 버락 오바마가 집권 중일 때였다고 회상했다. 2016년 대선 기간 중 트럼프의 불륜설을 막기 위해 전직 포르노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에게 '입막음 돈'을 지급했던 코언은 "영부인께 거짓말을 한 것이 내 가장 큰 후회 중 하나."라며 "착하고 좋은 분이시다. 제가 존경하는 분인데,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이 내용은 BBC방송이 보도한 내용을 발췌한 것입니다. 이는 지난 2월 27일 미 하원 청문회에서 코언이 자신이 목숨처럼 섬기고 존경하였다는 트럼프 대통령을 배신하면서 털어 놓은 내용들입니다. 이렇듯 이 세상에는 수도 없는 배신자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한 가지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배신”입니다. 배신은 비인간적인 행위로서 반드시 보복을 받고 영원히 망하게 되는 악행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바로 그 배신으로 인해 인류가 어떻게 비참하게 망하게 되었는가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 주는 성경의 역사입니다.
배신자는 되지 말라!
이 땅에는 수많은 종류의 직업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목사는 가장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일생을 헌신하는 하나님의 사명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보다 더 배신을 많이 당해 본 사람들도 없을 것입니다. 특히나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민사회에서는 그와 같은 일이 더욱 非一非再(비일비재)합니다. 말로 다할 수 없고 수를 헤아릴 수도 없는 숱한 배신을 당하며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나가는 목사들은 인간적으로는 가장 불쌍한 사람들일지도 모릅니다. 오직 하나 하늘의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시고 상을 주실 것이기에 위로와 소망을 가지고 헌신 할뿐입니다. 이민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도 목사만큼은 아니지만 저마다 배신을 당하고 상처를 입으며 살아오고 있습니다. 이 종이 이 미국 땅에서 40여년을 목회하면서 간절하게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배신자는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지난주일 오랜만에 공동의회를 열고 장로 3명, 안수집사 5명, 권사 10명을 선택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와 이웃들을 섬기고 주의 종들을 섬겨야 할런지는 앞으로 6개월 동안 훈련 받게 될 것이지만 단 한 가지 가슴에 반드시 새겨 두어야 할 사항은 “배신자는 되지 말자!”는 것입니다. 이 종도 한 교회에서 36년 동안 섬기며 경험하고 있고 또한 선배 및 후배 목사들을 통해서 보고 있지만 단 한 사람도 예외가 없이 자기가 세운 일꾼들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가슴 아파하더라는 것입니다.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 결코 행하지 말아야 할 단 한 가지는 배신입니다. 낳고 키워주신 부모님을 배신하지 말고 가르치고 사람 되게 해 주신 스승을 배신하지 말고 천국 가는 길을 가르치고 자손들을 축복하며, 자신들을 훈련하고 키워서 일꾼으로 세워주신 목사님을 배신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 가지 대상을 배신하는 자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가장 악랄한 인간으로 반드시 심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진리는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배신만은 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조건도 없이 우리 사람들을 만드시고 그 아름다운 지상의 낙원인 에덴을 그들에게 무상으로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 동산의 주인공이 된 인간들은 모든 것을 다 주신 하나님은 배신하고 아무 것도 주지 않은 사탄과 마귀의 말은 따름으로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창3:1-7)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 사건이 있기 이전에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들에게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엄명을 내리셨습니다.
(창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하나님의 말씀은 거역하고 사탄 마귀의 말을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이로 인해 그들은 모든 것을 무상으로 주시고 그들을 이 땅에 존재하도록 하신 하나님을 배신함으로 타락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죽어야만 하는 비참한 형벌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이 타락한 백성들의 후손들은 이처럼 비인간적인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악한 존재들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그와 같은 인간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기록 되었고 그로 인해 홍수의 대 심판을 받는 불쌍한 대상들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창6:5-7)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배신자는 결코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자신에 대한 분명한 말씀을 성경에 기록하여 두시고 오늘 우리들에게 경고하십니다.
(렘51:56)
곧 멸망시키는 자가 바벨론에 임함이라 그 용사들이 사로잡히고 그들의 활이 꺾이도다 여호와는 보복의 하나님이시니 반드시 보응하시리로다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한 번 하신 말씀은 반드시 실천하십니다. 그러므로 배신하는 자들은 홍수처럼 쓰러버리시듯 보복하시는 것입니다. 실제로 가룟 유다를 생각해 보시면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은 30에 팔아먹고 돈을 챙긴 배신자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자신의 뜻대로 은을 손에 넣었지만 하나님은 그 돈을 쓰지 못하고 망하도록 보복하셨습니다.
(마27:1-5)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주니라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가룟 유다는 돈을 너무나도 좋아해서 제자회의 재정을 맡아 있으면서 그 돈을 남몰래 훔쳐갔고 그것도 모자라 스승이신 예수님을 팔아서까지 돈을 챙겼지만 그 돈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한 채 비참하게 자신의 목을 스스로 매고 죽는 심판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습니다. 성경에 이와 같은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이 있습니다. 다윗을 배신했던 시므이가 그랬었고 역시 다윗을 배신하였던 요압 장군이 또한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그와 같이 배신하는 자들은 끝까지 보복하시고 비참하게 심판을 받아 망하도록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와 같은 내용이 명명백백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았던 땅 위의 모든 인간들이 노아의 8식구 외에는 단 한 사람도 살아남은 자가 없도록 심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많은 잘못을 저지르며 살아가는 우리 죄인들이지만 단 한 가지 배신만큼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특별히 이번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선택 받은 18인의 피택자들은 가슴으로 이 말씀을 새기시고 배신 없는 일생을 살아 후손들에게도 하나님의 축복을 유산하는 참 지혜로운 일꾼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자손만대에 매국노의 후손들이라는 주홍글씨를 안겨 준 이완용이와 같은 어리석은 결코 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대 백과 사전에서 이완용이라는 항목을 찾아보면 먼저 "한일합
방을 주장한 원흉"이라 하였고 "합방 때에 전권대신으로 조인하여 매국노, 또는 역적으로서 그 후에 일본의 후작을 받아 귀족으로 생활하였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의 이력을 보면 그는 20 여세에 이미 급제한 후 주미공사 주일공사 등 요직을 역임했으니 결코 저능아나 부진아는 아니었던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요새말로 한다면 머리가 좋은 사람, 재주 있는 사람, 똑똑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인들 전혀 없기야 했겠습니까? 주권을 일본에게 완전히 맡기는 것이 우리 동족의 사는 길이요, 이 겨레가 번영하는 길이라고 그는 자기 나름으로 확실하게 믿고 있었을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데 왜 그는 역적이며 매국노입니까? 그 이유를 요약한다면 그가 한일합방을 적극 추진한 동기가 극히 개인적이며 이기적이며 따라서 부도덕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합방을 성공시킨 후 일본으로부터 후작이라는 높은 귀족의 신분을 얻고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였다는 사실만은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설사 역사에 대한 판단이 그릇되어 한일협력만이 한국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다 치더라도 그 일을 통하여 자기 자신이 영달을 누렸다는 것은 언어도단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단 한 번의 어리석은 배신은 역사에 길이 남고 자손만대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근심거리는 되지 말라
오랜 세월 목회를 하다보면 수많은 사람들 중에 늘 기쁨이 되고 기대가 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언제나 불안하고 근심거리가 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만나자고 하면 기대가 가고 만나는 날이 기다려지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만나자 하면 근심이 되고 그 날이 다가오는 것이 불안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과연 어느 부류에 속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본문에서도 이런 부류의 인간들이 있었음을 성경은 정확하게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창6:5-6)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라는 말씀은 홍수로 망한 인간들의 모습이 어떠하였는가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가슴에 탄식을 심어주었고 하나님의 마음에 근심을 심어주었던 것입니다. 왜 그들은 사람도 아닌 하늘의 하나님의 가슴까지도 그렇게 아프게 해 드렸을까요? 그 해답이 5절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라는 말씀이 그렇습니다. 그들의 마음의 생각과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우리들의 삶의 계획과 마음이 이렇게 항상 악하지 않도록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는 다니면서도 생각이나 계획이 이처럼 항상 악하게 되면 하나님의 근심거리가 되고 그렇게 되면 결국에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의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불행하게도 하나님은 우리들의 마음의 생각까지도 다 보시고 아신다는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 아침 우리교회 집사님 한 분이 메시지를 보내 왔습니다. 하도 기특해서 본인의 승낙을 받아서 여기에 그대로 인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굿모닝 목사님, 오늘 아침 학개 성경말씀을 읽는데 참으로 마음에 찔림이 있네요. 말은 하나님을 가장 많이 사랑한다 하지만도 실로 내 눈 앞에 있는 내 문제를 먼저 돌아보며 마음을 가장 많이 쓰며 살지 않나 싶은 게 하나님을 서운하게 하고 내 발이 내 집안에 일에만 빠르게 움직이고 있진 않나... 생각하게 하네요. 하나님의 말씀은 이와 상반 되고 있는데 말입니다.
(학1:9)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연고뇨 내 집은 황무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음이니라]
과연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정녕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말은 하나님 먼저 하고 외치지만 삶의 현실은 언제나 내가 먼저고 내 아이들이 먼저고 내 돈 버는 것이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모으고 지키고 스스로 행복을 추구한들 가룟 유다와 같이 손에 넣어 놓고도 쓰지도, 누리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백성들이 이 땅에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근심거리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부모님들의 근심거리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스승과 목사님의 근심거리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당당하게 등장하는 노아와 같이 하나님의 칭찬과 자랑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창6:8-9)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 하였으며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는 근심거리가 있는 반면 소망과 기대가 넘치는 이런 멋들어진 인물들도 반드시 있는 법입니다. 다만 오늘 예배를 드리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단 한 사람도 근심거리가 아닌 축복거리가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그렇게 축복의 주인공이 되려면 노아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는 신자가 되어야 하고 하나님 앞에는 의인이고 사람들 앞에서는 완전한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들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기에 오늘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인간이라 결코 완전한 사람이 못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신 은혜가 있었기에 그는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위대한 사도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고전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번에 하나님 앞에 선택 받은 18인들과 우리 모든 빌립보의 성도들은 한결 같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넘치게 받아 역사에 길이 남는 노아의 후손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 드립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의 삶을 일일이 다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 성도들은 그렇게 많지가 않습니다. 설령 그렇게 알고 있다고 해도 그 사실 때문에 삶의 변화를 만들어 내는 성도들 또한 많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을 다 보고 계시고 마음속의 생각까지도 다 헤아리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창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우리 하나님의 全知(전지)하신 속성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을 다 속일 수 있다 해도 하늘의 하나님은 속일 수가 없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친히 천명해 주신 것입니다. 실제로 아간의 악한 행위를 하나님은 다 보시고 알고 계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를 점령하고 들어갈 때 하나님은 그들을 이스라엘에게 붙이시면서 하나의 조건을 명령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리고의 죄악이 구별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염되지 않도록 그곳의 모든 것들을 불사르고 취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간이라는 사람은 하나님의 그 명령을 어기고 금덩어리를 취하고 아무도 몰래 자기 집에 감추어 두었다가 끝내는 자신과 온 가족들이 아골 골짜기에서 비참하게 처형되는 형벌을 받고야 말았습니다.
(수7:24-26)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세라의 아들 아간을 잡고 그 은과 외투와 금덩이와 그 아들들과 딸들과 소들과 나귀들과 양들과 장막과 무릇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고 아골 골짜기로 가서 여호수아가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뇨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그것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 그 위에 돌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날까지 있더라 여호와께서 그 극렬한 분노를 그치시니 그러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날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깊은 깨달음을 가져야 합니다. 육신에 젖어서 이와 같이 우리들을 보시고 들으시고 다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배신의 악을 행하며 자신의 유익만을 취하는 어리석은 삶을 청산하고 정직하고 신실하여 하늘의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그런 일꾼들이 되어야만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전지하셔서 우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출3: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다윗은 참으로 억울하게도 충성을 다하고서도 사울 왕의 시기를 받아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기며 도망 다니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거나 억울해 하거나 사울을 제거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극한 상황 속에서도 그는 하나님 앞에서 엄청난 소망을 가지고 노래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시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라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중심의 믿음과 사람됨을 미쁘게 여기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사울을 제거하시고 그 왕위에 다윗을 앉혀주시는 축복을 주셨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다윗을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까지 인정하시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모든 뜻을 그를 통하여 이루셨던 것입니다.
(행13:21-23)
그 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특별히 하나님께서 사울을 폐하시고 다윗을 세우셨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들의 인생사도 역시 이처럼 하나님께서 친히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이 말씀에서 깨달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일꾼들로서 그리고 제자들로서 올바른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친히 가르쳐 주신 진리입니다.
(엡6:6-8)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하고 사람들에게 하듯하지 말라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하는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
는 말씀처럼 말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벌써 아름다운 봄을 여는 3월입니다. 아무리 눈이 내리고 날씨가 추워도 봄은 여지없이 오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이 제아무리 잘나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복이 될 줄 믿습니다. 홍수의 희생자들은 불행하게도 하나님의 이와 같은 엄중한 심판을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오로지 자신의 눈에 유익하도록 살아갔습니다. 마치 인생이 오늘 하루뿐인 냥 그렇게 자기 자신이 신이 되어 배신의 길을 두려움 없이 걸어갔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고 하나님께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판단하신 후 상상도 못할 엄청난 심판으로 그들을 쓸어버리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노아의 홍수였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들의 모든 생각과 삶을 불꽃같은 눈으로 들여다보시는 하나님을 순간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도 부모님도 스승도 이웃들도 배신하는 어리석은 삶을 살지 말아야 합니다. 그와 같은 배신은 하나님께서 가장 가증스럽게 여기는 비인간적인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다윗과 같이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 중심과 말씀 중심으로 살아 끝끝내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그 하나님께서 기뻐하심으로 내리시는 축복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오늘도 거룩한 예배자로 성전으로 올라와 정성을 다해 예배드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에게 다윗에게 주셨던 풍성한 하나님의 축복이 충만하시기를 좋으신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멘
주후 2019년 3월 3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