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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17일 주일낮설교 (유능한 자가 되라!)

      

       유능한 자가 되라!

 

 

3. 17, 2019

本文:마가복음9:14-29

     : 牧師

 

 

 

   우리 한국어로도 번역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있는 <빙점>을 쓴 미우라 아야꼬라는 여인은 11년 동안 척추 카리에스에 걸려서 병석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 절망 속에서 일어나 그녀는 지금 일본 최대의 문인이 되었고 최고의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일본 사람 가운데 그 이상 그리스도를 위해서 많은 전도를 하고 있는 전도인은 없을 것입니다. 앤디 여사는 사하라 사막에 도전하여 유칼리나무를 심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는 이사야서에 있는 사막에 꽃이 피고 샘이 넘쳐흐르리라는 구절을 생각하며 1만년 동안 그 누구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사하라 사막에 도전하여 성공했습니다. 미국에 와 있는 우리들은 훨씬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고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 놈들은 역리 포로 2만 명을 잡아다가 4-5년 동안 수용소에서 고문도 하고 일도 시켰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8,000명이나 죽었습니다. 그 죽은 사람들에 관해 전쟁 후에 연구를 해보니까 영양실조라든가 고문을 당했다든가 병들었다든가 하는 것보다는 전부 절망해서 죽었습니다. 정신적으로 절망해서 죽었습니다. 그들은 심령이 약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보통 때는 강철의 의지를 가진 사람, 신념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렇게 비참해 절망하며 죽어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싱싱하게 살아 있었던 사람들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신념이라는 것이 300퍼센트의 일을 할 수가 있다면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3,000 퍼센트의 일까지도 능히 할 수가 있습니다. 무한한 일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 어떤 역경과 절망 속에서도 굴하지 아니하고 외쳤던 것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저절로 되는 유능한 자는 없습니다. 가슴에 권세 있는 하나님을 품은 자들이라면 유능한 자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제자들답게 무능한 자가 되지 말고 유능한 자가 되어 우리들을 선택하신 예수님께서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그런 멋들어진 인물들로 거듭나시기를 바랍니다.

 

   유능한 자가 되라!


  

   불행하게도 오늘 본문을 들여다보면 무능한 제자들의 초라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변화산상 밑에서 변화산에 올라가신 예수님과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임을 알아 본 한 사람이 귀신들린 아들을 데리고 와서 그 제자들로 하여금 고쳐주기를 부탁하였습니다. 하지만 아홉 명이나 되는 그 제자들의 무리들 중에 단 한 사람도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그들 중에서 큰 소란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막9:14-18)

저희가 이에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둘렀고 서기관들이 더불어 변론하더니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심히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저희와 변론하느냐 무리 중에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벙어리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 왔나이다 귀신이 어디서든지 저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하여 가는지라 내가 선생의 제자들에게 내어 쫓아 달라 하였으나 저희가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왜 이렇게도 무능한 자들이 되고 말았을까요? 우리들이 익히 잘 아는 대로 우리 예수님께서는 선택하신 그 제자들에게 놀라운 권세와 능력을 주셔서 귀신도 쫓아내고 질병도 고치도록 하시지 않았습니까?

 

(마10:1)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소중한 진리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능력을 받았을지라도 그 능력을 유지 하지 못하게 되면 이처럼 무능하게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와 반대로 무능하고 어리석어도 하나님을 똑바로 만나고 영적으로 변화를 받게 되면 유능한 자로 거듭 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고후6:6-10)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무능하고 유능한 것이 우리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하늘의 하나님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능력과 권세는 하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상29:11-12)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는 말씀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제자들의 무능함을 거울로 삼아 우리들은 그렇게 되지 않도록, 예수님의 제자로서 당당하게 세상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도록 능력 있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과연 그 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함께 그 해답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도가 능력입니다

 

   오늘 본문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제자들이 왜 그토록 무능한 자들로 전락하고 말았는지 그 원인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기도로서 깨어 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힘이 없고 연약하여 귀신에게 붙들려버린 불쌍한 사람이 그래도 예수님의 제자들이라고 기대를 안고 귀신들린 아들을 데리고 나왔으나 그들은 속수무책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습니다. 그저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어 쩔쩔매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우리는 왜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하고 말입니다.

 

(막9:28)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였나이까

그 때 예수님께서는 두 말 않으시고 단도직입적으로 그들에게 대답해 주셨습니다.

 

(막9: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무엇입니까? 그들은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의협심만 가지고 어떻게 해 보려고 하였지만 귀신은 그들 위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힘과 능력으로 귀신을 내어 쫓으려고 하였지만 결국 무능한 제자로 낙인 받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기도 외에는 그 어떤 방도로도 귀신을 이길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기도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권세를 구하는 겸손한 자세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평소에도 틈만 나면 산에 올라가셔서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의 능력으로 기적을 베푸시지 않았습니다. 기적을 베푸시기 전에 반드시 하나님께 기도하시면서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요11:41-42)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기도로서 공생애를 성공적으로 잘 감당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스승님을 3년씩이나 따라다니며 그렇게 기도하시던 예수님을 몸소 체험하였으면서도 제자들은 그 누구도 예수님처럼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을 제외하고 제자들이 기도하러 갔다든지 기도하고 능력을 베풀었다든지 전혀 기도에 전념하였다는 등의 기사가 있으면 한 번 찾아보십시오. 불행하게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외형만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지 무능한 자들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는 오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 가운데는 돈을 버는 능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을 잘 이끌고 통솔하는 리더쉽이 뛰어 날 수도 있습니다. 온 몸을 다 바쳐 충성하고 헌신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일은 그런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무조건 엎드려 기도하는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의 안식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능력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힘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만나는 지름길입니다. 기도는 기적을 보는 최상의 길입니다. 그래서 한 평생을 그와 같은 기도로 대 사도가 되었던 사도 바울은 가장 간단하면서도 가장 강력하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살전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고 말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50년 목회의 성공자인 레이몬드 데 오비스 목사가 목회를 시작하던 초기에 한 노인에게 예수를 믿고 교회에 나오라고 전도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지방 전도자들 모두 거의 반세기 동안 그에게 전도해 보지 않은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도 효력을 내지 못 하였습니다. 하루는 그렇게 완고하기로 유명한 바로 그 노인이 떨며 눈물을 흘리면서 교회에 나아와 제단 기슭에 꿇어앉게 되었고 그는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오비스 목사의 목회는 대성공이라고 다들 떠들썩하게 되었습니다. 그 바람에 오비스 목사 자신도 어깨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성공이 아니었습니다. 오비스 목사의 성공적인 목회로 그가 회개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 노인은 어느 날 밤 자기가 믿게 된 동기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나의 여생을 주님께 바치게 하고, 나를 그리스도 앞에 무릎 꿇게 한 것은 내 늙은 어머니의 기도였습니다. 그 분은 벌써 세상을 떠나 무덤에 계신지 40년 가까이 되었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40년 전 어머니의 기도가 늦게나마 이렇게 결실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믿음이 유능하게 합니다

 

   기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모자랍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만나는 최상의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기도보다 더 중요한 것이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합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마21: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약1:6-7)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단순하게 이 두 말씀만 보아도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분명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기도의 밑거름은 오직 하나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고, 귀신들린 아버지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기적을 보지 못했습니다.

 

(막9:22-24)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하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지만 센스가 넘치는 아버지는 단숨에 주님 앞에 엎드리고 믿음 없음을 고백하고 항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달라고 주님께 호소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밑거름이 되어 그는 귀신을 쫓아내시는 우리 주님의 기적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시대는 말세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습니다. 믿음과 기도 이 두 가지는 하늘의 기적을 이 땅에 만들어 놓는 가장 위대한 능력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행하게도 이 두 가지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든 교인들에게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은 탄식하셨고 기적을 보여주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눅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들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겨자씨만큼의 믿음만 있다 해도 이 세상에서 못 할 일이 없는 유능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주님께서 친히 내려주신 약속이니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마17:20)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오늘 본문과 똑 같은 사건을 마태가 기록한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왜 우리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하고 제자들이 여쭈었더니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는데 마태는 똑 같은 질문에 대해 예수님께서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17:19-20)

이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고 말입니다. 이는 다소 서로 다른 대답인 것 같지만 마가나 마태가 볼 때에 마가는 기도에 무게 중심을 두었었고 마태는 믿음에 무게 중심을 두어서 그런 결과일 뿐 근본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기도는 믿음을 동반 하였을 때 응답이 되고 믿음이 있으면 간절하게 기도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오늘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이와 같은 믿음이 있으면 유능한 자가 될 수 있으나 이와 같은 믿음이 없으면 무능한 자로 전락하고 말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제자들은 믿음도 없고 그러므로 기도도 하지 않은 채 자신들이 제자라는 미명하에 기적을 베풀어 보려고 하였지만 실패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대중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으려면 오늘 우리들도 믿음과 기도로 무장하고 당당하게 주님 앞에 설 수 있어야만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마9:27-31)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가실쌔 두 소경이 따라 오며 소리 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소경들이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대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계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게 하지 말라 하셨으나 저희가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전파하니라

 

이처럼 믿음은 기적을 만들어 내는 최상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우리들도 이처럼 당당하게 믿고 끝까지 예수님을 쫓아가는 믿음의 멋쟁이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현실을 볼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변화산상에 오르신 예수님과 베드로 요한 야고보가 없는 동안 나머지 제자들은 산 아래에서 대책 없이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귀신 들린 아들을 데리고 와 쫓아달라고 부탁하는 등의 현실은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서 말입니다. 바로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무능하고 초라한 제자들이라는 모습을 만천하에 공포하는 부끄러움이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 우리들도 언제 우리 앞에 무슨 일이 닥치게 될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직원을 상습 폭행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던 마커그룹 송명빈(50) 대표가 자신의 자택에서 추락해 숨지기 직전 작성한 유서에 강한 불만과 원망을 드러냈다. 지난 13일 오전 4시40분쯤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의 한 아파트에서 송 대표가 화단에 추락해 숨져있는 것을 산책하던 주민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지적재산권 전문 업체인 마커그룹을 이끌어온 송 대표는 이날 오전 10시30분 특수폭행, 특수상해, 공갈, 상습협박, 강요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앞두고 있었다. 지난해 11월12일 직원 A씨는 상습적으로 폭행을 당했다며 송 대표를 검찰에 고소했고, 이 과정에서 송 대표가 직원을 폭행하는 영상이 공개돼 파문이 일기도 했다. 여기에 송 대표가 과거 아내와 장모를 폭행하고 흉기로 협박해 처벌받은 전력까지 알려지면서 논란은 확대됐다. 이후 송 대표는 A씨가 회사 돈을 가로챘다고 주장하며 지난해 12월28일 A씨를 배임, 횡령, 무고 혐의로 검찰에 맞고소했다. 경찰은 다른 외상 흔적이 없는 점 등으로 미뤄 송 대표가 아파트 12층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송 대표가 추락한 현장 주변에서 '송명빈 여기 XXX', '인생 뭐 있간디'라는 내용이 담긴 쪽지가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송 대표의 자택에서 반쯤 남은 소주병과 A4용지 6장 분량의 자필 유서가 발견됐다. 유서에는 '난 죽음으로 내 억울함을 항의한다', '너 때문에 자살하는 거야'라는 등의 강한 불만과 원망이 일부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2019년 3월 13일자 CBS 노컷 뉴스에서 발췌)

 

50세의 나이에 마커그룹을 이끄는 회장이 되었으니 세상적인 말로 출세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한 그가 직원들을 폭행했다는 고발과 누가 찍었는지 모르는 폭행사건의 비디오로 수사를 받다가 결국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길을 선택한 그의 심정은 인간적으로 충분히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회장 소리를 들으며 떵떵거리며 살던 사람이 새파랗게 젊은 경찰과 검사 앞에서 수사를 받고 감옥으로 갈 것을 생각하면 그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바로 이것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인생의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늘 현실을 냉철하게 파악하고 처신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부귀를 얻기 위해서는 목숨도 걸지만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단 1분도 투자하지 않으니 인생의 끝이 아름답지 못하는 무능한 자로 전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자는 짧지만 굵게 충고하고 있습니다.

 

(잠3:13-18)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여기에서 지혜자는 앞뒤로 동일하게 선언합니다. 지혜를 얻은 자는 복이 있다.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삶보다는 하나님께서 복이 있다고 하시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바로 지혜를 얻으면 그렇게 하나님께서 친히 복이 있다고 선언해 주시는 진정한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복은 바로 장수와 부귀입니다. 그러므로 장수와 부귀는 우리들이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스스로 장수하고 부귀를 누리려고 그것을 따라가니 무능한 자요 어리석은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면 무엇보다도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들이 취해야 할 최대의 지혜는 바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모른 채 하나님의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인간적인 수단이 되고 방법이 되어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더 폭발시키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실 때 순종하고 하지 말라고 하실 때 멈추어 설 수 있는 것이 지혜입니다. 아무리 우리들에게 유익이 있다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신다면 포기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하나님의 기적을 이 땅에 만들어 놓는 유능한 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디 오늘 우리 모두는 이와 같은 진정한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유능한 일꾼들로 거듭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봄을 여는 3월이 깊어가고 있는 완전한 축복의 계절 봄입니다. 봄은 만사가 새롭게 피어나고 탄생하는 생동하는 계절입니다. 우리들의 영혼도 그렇게 피어나고 신선한 능력과 권세로 회복 되는 은총을 덧입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자들이 전념하지 못했던 기도에 불을 붙여야 하겠습니다. 제자들이 가지지 못했던 믿음으로 무장하여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알고 이웃을 아는 지혜로운 일꾼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지혜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지혜로운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친히 장수와 부귀를 덤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세 가지만 제대로 갖추고 있으면 우리는 그 어떤 사탄 마귀의 장난에도 당당하게 설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친히 인정해 주시는 바 유능한 제자들로 우뚝 설 수가 있습니다. 귀신 하나도 내어 쫓지 못해 망신을 당하고 있었던 제자들을 거울삼아 우리 모두는 세상 사람들 앞에 능력으로 당당하게 설 수 있도록 준비하고 무장해야만 하겠습니다. 이 세상은 바야흐로 전문가의 세상입니다. 무능한 자는 자연 도태 되고 유능한 자들이 지배하는 그런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막연하게 후퇴하고 도태 되는 그런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지 않도록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하고 신선한 이 새 봄에 우리 모두 당당하게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오늘도 거룩한 성일을 기억하고 예배자들로 하나님 앞에 나아오신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에게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풍성한 권세와 능력이 풍성하시기를 좋으신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멘

                                           

                                           주후 2019년 3월 17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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