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5일 주일낮설교 (가장 보배로운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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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05 May 2019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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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보배로운 유산
어린이주일
5. 5, 2019
本文:디모데후서1:1-8
說敎:崔 仁 根 牧師
[귀신을 쫓는다며 20대 딸에게 식용 소다를 먹여 사망하게 한 어머니·승려·무속인이 재판에 넘겨졌다.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식용 소다를 과하게 먹여 사망하게 한 어머니, 승려, 무속인이 재판에 넘겨졌다. 울산지검은 학대치사 혐의로 A(52·여)씨, 승려 B(58)씨, 무속인 C(55·여)씨 등 총 3명을 불구속기소했다고 30일 밝혔다. 재판부에 따르면 지난 2017년 A씨는 딸 D(23)씨의 건강이 좋지 않자, 무속인 C씨와 상의했다. C씨는 경남의 한 사찰 승려인 B씨를 소개해 같은 해 12월 30일부터 함께 치료를 시작했다. 둘은 딸의 가슴과 등을 손바닥으로 때리거나 부항 시술 등을 하다가, 귀신을 쫓는 데 효과가 있다며 식용 소다를 물에 타 D씨에게 먹였다. 이후 가루 형태의 소다를 숟가락으로 떠서 D씨에게 먹였다. 고통을 호소하던 D씨는 사찰에 간지 열흘 만인 2018년 1월 8일 사망했다. 부검 결과 D씨의 사망 원인은 소다 과다 섭취에 따른 탄산수소나트륨 중독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씨 등의 치료 행위를 과실로 보고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사건을 넘겼다. 재판부는 D씨가 고통을 호소하는 데도 소다를 강제로 떠먹인 행위는 학대라고 판단해 학대치사를 적용해 기소했다.](조선일보 4월 30일자) 이 사건은 어머니의 무지와 샤머니즘이 아까운 청춘을 죽게 만든 가장 대표적인 예라 하겠습니다. 지금 시대와 같은 21세기의 첨단 과학 앞에 식용소다를 강제로 먹이고 귀신을 내어 쫓는다는 이런 황당한 방법으로 사람을 숨지게 하였는지, 안타까움을 넘어 개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인생들의 불쌍하고 어리석은 현실입니다. 오늘은 2019년도 어린이 주일을 맞아 천하보다 더 소중한 우리들의 자녀들에게 과연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유산해 주어야 하겠는지, 진리의 말씀을 중심으로 소중한 도전을 받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습관적으로 이처럼 소중한 어린이 주일의 시기를 보내버리지 말고 다시 한 번 더 마음과 믿음의 옷깃을 여미고 말씀에 귀를 기울어보시기 바랍니다.
가장 보배로운 유산!
이 세상에서 자식보다 더 소중한 자산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식이 귀한 줄만 알지 그들을 어떻게 교육하고 양육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은 잘 모릅니다. 그래서 적당하게 밥 먹이고 학교에 보내는 것으로 다 된 줄 알고 소중힌 시기를 놓치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민생활이란 굴레에 묶여서 어떻게 할 수 없이 안타까워 하다가 그만 기회를 놓치고 후회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복 중에 있을 때와 태어나서 3살까지는 엄마가 품고 교양과 믿음과 지혜를 얻을 수 있도록 직접 교육하는 것이 백만장자가 되는 것 보다 더 귀합니다. 우리는 지난 4월 27일 퓨알랍에서 79세 된 남순자씨가 자신이 경영하는 그로서리에서 총을 맞아 숨진 사건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백주 대낮에 아직도 어려보이는 두 범인이 들어와 돈을 요구하기에 두 말 않고 돈을 다 내 주었는데도 총을 발사 주인 남씨를 죽였던 것입니다. 이후 피어스 카운티 경찰은 지난 5월 1일 용의자 두 명 가운데 한 명인 흑인 청년을 체포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앞서 지난 29일 오전 타코마 치눅랜딩 마리나 해변에서 숨진 채 발견된 흑인 소년의 신원도 확인한 결과, 이번 사건의 용의자라고 경찰은 밝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두 범인은 이제 겨우 16살이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이들의 가정교육과 환경을 짐작해 볼 수 있게 됩니다. 같은 또래의 두 친구, 똑 같은 흑인들, 아직도 어린 16살... 이들이 제대로 된 가정교육과 신앙교육을 받았더라면 숙제나 하고 있을 백주 대낮 5시에 권총을 들고 강도짓이나 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소중한 어린 때의 교육과 인간됨의 훈련이 제대로 안 되면 인생 출발도 하기 전에 저렇게 죽거나 감옥으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디모데를 극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와 같은 디모데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외할머니와 어머니 때문이라고 오늘 우리들이 가슴 따끔하게 도전을 받아야 하는 진리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말씀을 중심으로 과연 우리는 우리들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진정 무엇을 가르치고 유산해 주어야 하겠는지, 가슴을 열고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자녀들에게는 좋은 부모님이 있었습니다
사람은 열 달 동안 엄마의 배속에서 잉태 되고 자라납니다. 인간의 소중한 인성과 성품은 바로 이 때 다 만들어 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태어나서 그 엄마의 젖을 먹으면서 최초로 이 세상과 접하게 되고 자라게 됩니다. 이 때 비로소 인격이라는 것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년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넘어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는 것입니다. 과연 이와 같은 과정을 지나오면서 그 아이는 무엇을 보고 듣고 자라나겠습니까? 바로 부모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것을 정확하게 성경에 기록해 두고 있습니다.
(딤후1:4-5)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 속에 있는 거짓이 없는 아름다운 믿음이 바로 그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었던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종도 46년이 넘도록 부산과 서울, 또 미국에서 수많은 자녀들과 그 자녀들의 부모들을 보아 왔습니다. 결론은 오직 하나 그 부모에 그 자식이라는 것입니다. 혹 부모보다 나은 자식들을 볼 때에는 특별하신 하나님의 축복이요 믿음이 올바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라는 예외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올림피아에 있는 역사가 오래 된 한 교회에서는 아버지 장로가 목사님을 쫓아내기로 유명했던데 그 아들이 장로가 되더니 똑 같이 목사를 쫓아내는데 앞장서더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 장로에게 제 친구 목사가 쫓겨나고 영원히 목회를 접었기에 아직도 가슴이 먹먹할 정도로 아파옵니다. 폐일언하고 오늘 우리는 좋은 부모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우리 아이들을 믿음으로 키워내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의 자식들은 세상에서 방탕하고 있는데 오늘 우리들이 누구를 가르치고 전도하고 교육하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이와 같은 깊은 도전을 받아야 합니다. 디모데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그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사도 바울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제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오늘 본문에서 분명하게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유니게와 로이스는 디모데의 생애에서 참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입니다! 이 점에 관하여 저술가인 데잉빗 리드는 이렇게 기술합니다. “그 사도는 디모데 자신이 개인적으로 개종 경험을 하였다는 점만을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면, 디모데에게 곧바로 그 점을 생각나게 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이 디모데의 믿음에 관하여 먼저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던 점은 그 믿음이 이미 ‘로이스와 유니게 안에 살아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로이스와 유니게와 디모데의 믿음에 관하여 바울이 한 말은, 가정에서 부모가 심지어 조부모가 일찍부터 베푸는 성경 교육이 흔히 청소년의 장래에 영적 전망을 결정하는 주된 요소임을 알려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 구성원들은 하나님과 자녀에 대한 이 책임을 이행하기 위하여 자기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마 바울은 로이스와 유니게가 조성해 준 가정환경에 관해서도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 사도는 기원 47/48년경에 리스트라에 처음 머무르는 동안에 그들의 가정을 방문하였을 것입니다. 그 두 여자는 아마 그 때에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을 것입니다.(행14:8-20) 아마 그 가족이 누린 따뜻하고 행복한 관계는 바울이 로이스를 디모데의 “할머니”로 언급할 때 낱말을 선택하는 데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학자 세슬라 스피크의 말에 의하면, 그가 사용한 그리스어(맘메, 관례적인 공손한 말인 테테와 대조가 되는 단어)는 할머니를 부를 때 “어린아이가 사용하는 애칭”이며, 이 문맥에서는 “친밀감과 애정의 뉘앙스”를 전달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듯 디모데를 수제자로 삼고 그 디모데가 자라난 배경을 온 몸으로 겪고 이렇게 성경에 기록해 두었을 것입니다. 부모가 영적으로 바로 서야 자녀들로 하여금 믿음의 삶을 살아가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이제라도 우리 부모가 깊은 책임감을 가지고 더 많이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더 많이 하나님 앞에 영적으로 우뚝 서서 다윗 때문에 솔로몬이 징벌을 면했던 것처럼 우리들의 믿음으로 우리들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깊은 깨달음과 변화를 만들어가야 하겠습니다.
미국의 명문 프린스턴 대학교의 제1대 총장이며 부흥목사였던 조나단 에드워즈와 뉴욕에서 술집을 운영하여 거부가 된 마커스 슐츠라는 불신자의 가정이 사회에 끼친 영향을 알아보기 위하여 뉴욕시 교육위원회는 그 두 사람의 5대 자손들의 현황을 추적 조사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결과를 내 놓았습니다.
에드워즈 목사의 후손들은 총 896명이었는데 그 중에서 성직자 116명, 대학총장 3명과 학장 66명을 포함하여 교육자 86명, 문학가 75명, 국회의원 4명, 부통령 1명, 사업가 73명, 과학자 21명, 장로와 집사 등 모범적인 신앙인들이 286명이었습니다.
반면에 슐츠의 자손들은 총 1,062명이었는데 그 중에서 평균 5년 이상 교도소 생활을 한 사람이 96명, 알코올 중독자와 정신질환자가 58명, 윤락여성이 65명, 극빈자가 286명이었는데 이들 때문에 지출된 국고금이 무려 1억 5천만 불이나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가정과 불신자의 가정의 놀라운 차이점이었습니다. 믿음의 부모가 가정과 자손들은 물론이고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실로 대단하다 아니할 수 없는 놀라운 연구결과였습니다. 믿음으로 자손들을 양육하시는 현명한 부모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들에게 최고의 가치는 믿음입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면 참으로 많은 것들이 필요한 것임을 체험하게 됩니다. 지식도 있어야 하고 사랑도 있어야 하며 능력도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없어서 때로는 시험에 들기도 하고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 중에서도 가장 우선적으로 있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오늘 죄인 된 우리들이 과연 무엇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그나마 하나님이 이 세상에 살아계시는 것과 그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으로 고백하고 인정하는 믿음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와 같은 믿음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자녀들도 이와 같은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고 그렇게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야만 하나님의 은총을 덧입을 수 있는 줄 알아 재산보다도 더 귀한 믿음을 심어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들이 극단적으로 믿음을 가져야 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또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에서 믿음으로 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헌신적이고 열정적일지라도 결국 은 그런 것들이 자기의 의나 드러내는 죄가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롬14:23)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이와 같은 말씀들을 꼭 가슴으로 받아서 앞으로의 신앙생활에 큰 도전으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교회의 성도들 중에 진정한 믿음으로 무장된 자들은 거의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신앙생활의 근본이 믿음에 있는 줄 알아 우리들도 믿음으로 무장하고 우리들의 자녀들도 교회에만 다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굳게 서는 것이 급선무인 줄 알고 믿음으로 훈련하여야 하겠습니다.
어떤 큰 교회가 새로운 건물을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교인 모두의 의견이 일치되었으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어떤 모양으로 건축자금을 모을 것이냐의 문제를 놓고는 회의를 열기만 하면 사람마다 의견이 분분하여 좀처럼 일이 진척되질 않았습니다. 이에 낙담한 목사는 어느 날 저녁 시간을 정해서 교회 건축문제를 놓고 온 교인이 함께 모여 기도하도록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기도회에 참석한 인원은 극소수였습니다. 그 중 한 여인은 아이를 맡아 줄 사람이 없어서 다섯 살 난 딸아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기도회가 시작되었으며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그 꼬마 아이도 이 기도회가 교회 건축을 위한 기도회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그것에 대해 어머니에게 꼬치꼬치 캐묻더니 한참만에야 알아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그 꼬마 아이가 갑자기 집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깜짝 놀란 어머니는 딸을 찾아 나섰는데 얼마 후 교회 사택 마당에서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아이를 발견하였습니다. 목사님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글썽 맺혀 있었고 옆에는 벽돌 두 장이 실려 있는 아이의 장난감 손수레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 두 장의 벽돌은 교회 건축을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아이가 목사에게 가져온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 주일 아침 예배시간에 목사님은 이 일에 대해 교인들에게 이야기하였고 하나님께서는 듣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셨습니다. 그리하여 아이가 바친 두 장의 벽돌은 크고 아름다운 새 교회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Sunday School Times에서) 이것이 바로 단순하면서도 사람을 움직이는 감동적인 믿음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이와 같은 믿음이 있기를 소원하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믿음이 오는 길
우리는 믿음의 소중함에 대해 그리고 그 믿음이 오늘 우리들에게 꼭 있어야만 하는 일에 대해 공부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소원은 오직 하나 믿음입니다. 어느 정도로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에게 믿음을 요구하고 계시는지 다음 말씀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마17:20)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이 말씀에서 우리는 세 가지 놀라운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는 “너희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어도...”라는 말씀에서도 찾아볼 수 있듯이 대단한 믿음이 아닙니다. 단지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씨앗인 겨자씨만큼만 있어도 기적을 보장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사람이 어떻게 산을 옳길 수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와 같은 기적이 일어나도록 해 주겠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세 번째는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는 보장입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무능하고 무익한 우리 죄인들이 못할 일이 없으리라고 약속해 주시니 그만큼 믿음의 역사가 크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과 자녀들에게 무엇보다도 먼저 믿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늘 본문은 이처럼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대 사도인 바울이 친히 인정하고 성경에 기록해 둘만큼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사람들은 3대에 이르는 멋들어진 가족들이었습니다.
(딤후1: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는 말씀과 같이 디모데와 그의 외할머니 로이스와 그의 어머니 유니게가 바로 그 주인공들입니다.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들도 사도 바울과 같이 위대한 사도로부터 이와 같은 믿음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면 너무나도 좋겠습니다. 그런데 디모데는 어떻게 이처럼 놀라운 믿음에 관한 칭찬을 들을 수가 있었을까요? 그는 어떻게 그토록 놀라운 믿음의 주인공이 될 수가 있었을까요? 그 해답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딤후3: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믿음이 있는 외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성경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그 성경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 즉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우리 속에 믿음을 만들어 주는 놀라운 보배입니다. 마치 꿀벌이 꽃샘에서 꿀을 만들어 내듯이 성경은 믿음을 만들어 내는 비밀병기인 것입니다.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는 분명한 해답을 찾았습니다. 만약 우리들의 자녀들에게 믿음이 겨자씨만큼만 있다 해도 산을 옮기고 못할 일이 없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믿음을 소유할 수 있도록 만드는 비결은 오직 하나 성경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신, 구약 성경 완독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40여명이 이 복된 대열에 참여하고 있는데 그 중에 10여명이 청소년들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교회의 희망입니다. 요즘 청소년들이 하루에 8장씩 150일 동안 신, 구약 성경을 완독하겠다고 달려들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다. 저는 저들의 내일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성경을 읽고 망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데 어떻게 그 하나님께서 이런 청소년들의 장래를 보장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저는 앞서 퓨알랍에서 그로서리를 하던 우리 교민을 총으로 쏴죽이고 체포된 범인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그들의 나이가 이제 겨우 16살이었습니다. 만약 그들이 교회에 나가서 성경 말씀을 배우고 있었다면 과연 그 나이에 그렇게도 끔찍한 범죄에 가담하였겠습니까? 절대로 아니었을 것입니다. 말씀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그들의 가슴 속에는 과연 무엇이 들어 있었을까요? 그렇습니다. 오로지 돈이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16살의 청순한 나이에 총을 들고 돈을 빼앗고 그 순수한 할머니를 쏘아죽일 수가 있었겠습니까? 이뿐만이 아닙니다. 중국에서는 더 우리들을 경악케 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어머니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베이징대 생이 3년 만에 붙잡혔다고 베이징바오(北京報)가 30일 보도했다. 우쉐위(24)는 지난 2019년 4월 28일 충칭시 장베이 국제공항에서 중국 경찰의 얼굴인식 시스템에 의해 붙잡혔다. 그는 3년 전 어머니를 살해하고 안방에 시체를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사건은 발생 당시 중국을 충격에 불어 넣었다. 어머니를 살해한 장본인이 중국 최고의 명문인 베이징대 생이고, 범행이 주도면밀했기 때문이다. 당시 누리꾼들은 “공부보다는 인성”이라며 이구동성으로 그를 비난했다. 그는 2016년 푸지엔성 푸저우시에서 중학교 교사를 하고 있는 어머니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어머니를 살해한 뒤 플라스틱 봉지에 싸 안방에 유기했다. 그는 냄새가 나지 않도록 활성탄을 플라스틱 봉지에 집어넣을 정도로 주도면밀함을 보였다. 그는 베이징대학 경제학과에 특별입학 허가를 받을 정도로 특출한 학생이었다. 입학 후에도 장학금을 받고 대학을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어머니를 살해한 이후 학교에 가짜 사직서를 보냈으며, 어머니 명의로 144만 위안(2억4841만원)을 대출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이 자금으로 도피생활을 해온 것으로 보인다. 경찰이 5만 위안(862만원)의 현상금을 걸고 수배를 했지만 그는 3년 동안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다녔다. 그는 이 기간 30개의 신분증을 사용하면서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어머니를 살해한 이유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고 베이징바오는 전했다.](2019년 4월 30일자 동아일보) 과연 놀랍지 않습니까? 베이징대학은 중국의 서울대학교입니다. 그런 일류대학에 다닐 정도의 명석한 두뇌로 그는 자신의 어머니를 죽이고 깨끗이 뒤처리를 한 다음 30여개의 신분증을 위조하고 자신이 죽인 그 어머니의 명의로 대출을 받아 그 돈으로 지난 3년 동안이나 경찰의 눈을 피하여 도피행각을 벌였다니 가히 놀랄 만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가슴에 바른 진리는 없고 머리만 잘 돌아가는 자가 만들어 놓는 비극이 무엇인가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라 하겠습니다. 바로 이것이 믿음이 뭔지 성경이 무엇인지 모르는 오늘날 젊은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녀들이 일류대학교에 들어가는 것도 좋고 훗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중요하고 더욱 더 위대한 인물이 되는 것도 괜찮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믿음이 있는 자녀들을 만드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사도 바울과 같이 제대로 된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만드는 그 유일한 길은 오직 성경으로 훈련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은 2019년도 어린이 주일입니다. 우리에게 자녀들을 주신 하나님께 먼저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그리고 그 소중한 자녀들을 믿음으로 양육하지 못한 죄를 또한 고백합니다. 이제는 깨달았으니 하나님의 소중한 자녀들을 디모데와 같이 믿음의 자녀로 키우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을 도와주셔서 제발 우리들의 자녀들이 믿음으로 자랄 수 있도록 먼저 부모 된 우리들이 믿음으로 살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디모데에게 로이스와 유니게가 있었던 것처럼 우리들의 자녀들에게도 우리들이 그와 같은 부모가 되어 지기를 또한 소망합니다. 그렇게 되는 그 유일한 길은 오직 성경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임을 깊이 깨닫고 피곤하다 바쁘다 핑계하지 말고 단 한절의 성경이라도 매일매일 읽고 묵상하는 부모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에 저절로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삭막한 이 미국 땅에서 정말 죽을힘을 다해 돈을 벌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정말 돈이 저절로 벌어지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압니다. 돈보다 더 귀한 우리들의 자녀들이 저절로 적당하게 훌륭한 사람들이 되겠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돈 버는 것보다 더 많은 정성과 사랑과 열정을 자녀들에게 쏟아야 돈보다 더 귀한 자녀들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제 요행은 그만 바라고 심은 대로 거둔다는 하나님의 진리와 같이 자녀들의 장래를 위해 믿음과 말씀으로 무장하고 값진 투자를 해야만 하겠습니다. 그것이 부자가 되는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한 미래의 투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 재벌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자식 하나 잘못 되면 그 인생을 불행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어린이 주일에만 생각하는 자식이 아니라 진정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복을 주시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자녀들을 만들어 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려고 오늘도 몸과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에게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풍성한 은혜와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좋으신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멘
주후 2019년 5월 5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