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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7일 주일낮설교 (생각을 바꾸어라!)

생각을 바꾸어라!

 

 

7. 7, 2019

本文:민수기11:16-23

   : 牧師

 

 

 

(사55:6-9)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그렇습니다. 미국의 수필가 렐프 웰드 에머슨은 "사람이란 종일 자기가 생각하는 바로 그것이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걸음걸이, 몸 움직임, 말하는 모양, 옷 입는 맵시 등은 모두 그 사람의 생각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느릿느릿한 행동은 느릿느릿한 생각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오정의 행동은 사오정과 같은 생각에서 나옵니다. 아무나 사오정이 되는 줄 아세요. 바쁜 걸음은 바쁜 생각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미움의 행동은 미움의 생각에서 나옵니다. 사랑의 행위는 사랑의 생각에서 나옵니다. 생각이 그 사람입니다.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는 "사람의 일생은 자기 생각 그대로 되기 마련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솔로몬도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잠23:7)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무엘 스마일즈는 "생각을 심으십시오. 행동을 거둘 것입니다. 행동을 심으십시요. 성격을 거둘 것입니다. 성격을 심으십시요. 신의를 받아들일 것입니다. 생각을 기르십시요. 왜냐하면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오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생각은 그 사람을 움직이는 지렛대입니다. 자동차의 기아는 그 자동차의 방향을 움직이는 시작입니다. 1단을 넣으면 1단으로 갑니다. 뒤로 기어를 넣으면 뒤로 갑니다. 기아대로 움직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생각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는 바로 그 사람의 인격이요, 그 사람의 모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호텔방을 빌려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밤에 정전이 되어 에어컨이 작동되지 않자 몹시 더웠습니다. 그는 잠결에 일어나서 창문을 연다는 것이, 그만 유리창을 깨뜨렸습니다. 갑자기 시원한 바람이 불어 닥쳤습니다. 마침내 잠을 푹 자고 아침에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보니 창문은 꽁꽁 잠겨 있고, 어항을 깨뜨린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시원하게 잘 잤습니다. 정말 시원해서 시원하게 잘 잔 것이 아니었습니다. 창문이 깨졌으니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고 있다는 생각이, 그로 하여금 잠을 잘 자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생각이 그 사람이며, 생각은 시작입니다. 무슨 시작입니까? 바로 축복과 심판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바로 이와 같은 현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결 같이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그 생각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책망을 받았고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사람이 얼마나 죽었으면 그들이 죽은 지역 이름까지 바뀌었겠습니까?

 

(민11:33-35)

고기가 아직 이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칭하였으니 탐욕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백성이 기브롯 핫다아와에서 진행하여 하세롯에 이르러 거기 거하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제부터 왜 그들은 그렇게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앞에서 지역 이름이 기브롯 핫다아와라고 바뀔 만큼 무서운 심판을 받아 죽어가야만 했을까요? 함께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은 언제나 애굽에 있었습니다


 

(민11:4-6)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민11:10-14)

백성의 온 가족들이 각기 장막 문에서 우는 것을 모세가 들으니라 이러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심히 크고 모세도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여짜오되 주께서 어찌하여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나로 주의 목전에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나로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을 내가 잉태하였나이까 내가 어찌 그들을 생산하였기에 주께서 나더러 양육하는 아비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그들이 나를 향하여 울며 가로되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 하온즉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질 수 없나이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복된 땅과 그곳으로 인도하실 하나님은 생각하지 못하고 밤낮으로 원명하고 불평하며 울며불며 모세를 괴롭히니 마침내 모세의 인내가 한계를 맞게 되었던 것입니다. 모세가 얼마나 괴롭고 답답하였으면 이렇게도 하나님 앞에서 죽기를 한하며 하나님께 매달렸겠습니까?

 

(민11:15)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나로 나의 곤고함을 보지 않게 하옵소서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은 이렇듯 오로지 애굽에 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에게 크게 진노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사도 바울을 통해서 그 생각을 올바르게 가질 것을 명령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롬8:5-7)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고 말입니다. 우리 모두 이 말씀을 깊이 가슴에 새기고 생각부터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그 생각을 따라 생명과 평안의 놀라운 축복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알렉산더 대왕의 일화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대왕은 이웃나라 친구로부터 훌륭한 사냥개 두 마리를 선물도 받았습니다. 사냥을 좋아했던 대왕은 무척 기뻐하며 그 개들을 데리고 토끼 사냥을 나갔습니다. 하지만 그 개들은 사냥에 아무런 의욕을 보이지 않은 채 그냥 땅에 두 다리를 뻗고 앉아있기만 하였습니다. 그 다음에 또 그 개들을 데리고 다시 사슴 사냥을 하러 나갔습니다. 하지만 그 개들은 전과 같이 전혀 사슴을 잡을 생각이 없는 듯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화가 난 대왕은 그만 그 개들을 그 자리에서 죽여 버리고 말았습니다.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이웃나라의 친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대왕은 무슨 그런 개들을 보냈느냐고 투덜거렸습니다. 자초지종을 다 들은 친구는 매우 아쉽다는 듯 말했습니다. 대왕, 그 개들은 고작 토끼나 사슴을 사냥하는 것으로 훈련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 개들은 호랑이와 사자를 잡도록 고도의 훈련을 받은 매우 영리한 개들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에게 고기나 먹으며 애굽에서 살라고 독생자 예수님을 희생하시며 구별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에게는 가나안이라는 영원한 도성을 정복하도록 특별하게 선택하시고 구별하신 하나님의 정예 군사들입니다. 그러므로 토끼나 사슴 따위에 관심을 두지 말고 호랑이와 사자에 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좀 더 이상과 꿈이 큰 하나님의 사람들로 거듭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모세의 생각은 자신의 경험을 뛰어넘지 못했습니다

 

(민11:21-23)

모세가 가로되 나와 함께 있는 이 백성의 보행자가 육십 만 명이온데 주의 말씀이 일개월간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다 하시오니 그들을 위하여 양떼와 소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이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

 

사람에게 시달리고 그래서 사명이 흔들리게 되면 하나님보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더 의지하게 되는 이와 같은 불행한 여건에 빠지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좋은 피지도자를 만나야 하고 아울러 피지도자도 좋은 지도자를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모세 같은 위대한 지도자도 그 역량을 다 발휘하지 못하고 이렇게도 하나님 앞에서 초라한 자로 전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하나님께서 모새에게 내 손이 짧아졌느냐?고 책망하셨겠습니까?

 

2차 세계대전 당시 있었던 일입니다. 연합군 지원병 중에서 독일에 보낼 스파이를 많이 뽑아 훈련을 시켰습니다. 독일식 음식, 군복, 언어, 이름, 생활습관에 대하여 매일 맹훈련을 받습니다. 외모도 완전히 독일 군인일 뿐만 아니라 의식구조마저도 독일화 되어 독일 사람으로 완전히 변했다고 인정될 때 비로소 스파이가 될 자격이 부여된다고 합니다. 그들의 이름은 마이크 스미스가 아니라 프리드리히 한스이고, 고향은 일리노이주 시카고가 아니라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로 바꿔졌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들이 그렇게 완전히 의식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랜 기간 동안 훈련을 받습니다. 그들은 훈련의 마지막 단계에서 수 십리나 되는 먼 길을 무거운 짐을 지고 고된 행군을 합니다. 피곤에 지쳐 깊이 잠든 사이에 새벽 두 세 시경 갑자기 낯선 사람이 손전등을 들고 곤히 잠든 훈련병을 깨우면서 네 이름이 뭐냐라고 묻습니다. 그때 제 이름은 마이크 스미스입니다라고 대답하면 그는 실격입니다. 그는 제 이름은 프리드리히 한스입니다라고 엉겁결에라도 독일말로 대답할 수 있을 때 정식 스파이가 된다고 합니다. 오직 한 가지 사실, 즉 나는 독일 군인이라는 것이 잠재의식에도 깊이 박혔을 때 비로소 스파이로서의 교육을 마치게 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도 예수님으로 가득 차 있어 어디에서 보아도 크리스챤으로 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로 모든 생각이 집중 될 때에만 그것이 가능합니다. 우리 마음에 있는 세상의 정과 욕심을 모두 십자가에 못박아버리고 주님만 생각하며 사는 자만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풍성한 축복으로 보상해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백성들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하나님 앞에서 나약한 자신의 육신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말았습니다.

 

여호수아의 생각은 모세를 가로막았습니다        

 

(민11:26-29)

그 녹명된 자 중 엘닷이라 하는 자와 메닷이라 하는 자 두 사람이 진에 머물고 회막에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나 그들에게도 신이 임하였으므로 진에서 예언한지라 한 소년이 달려와서 모세에게 고하여 가로되 엘닷과 메닷이 진중에서 예언하더이다 하매 택한 자 중 한 사람 곧 모세를 섬기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말하여 가로되 내 주 모세여 금하소서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위하여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 신을 그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기를 먹고 싶다면서 애굽에 그 생각을 둔 채 울며불며 원망하고 불평하자 그들 앞에 선 모세가 탄식하며 저런 백성들을 더는 인솔할 수가 없사오니 차라리 은혜를 베푸사 나를 죽게 하여 달라고 호소하는 지경에 이르자 하나님께서 친히 고기를 주시고 모세를 도와 그들을 인도하시기 위해 이스라엘에서 장로와 유사 등 지도자 70명을 모아 하나님 앞에 나아오라고 지시하셨습니다.

 

(민11:16-1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노인 중 백성의 장로와 유사되는 줄을 네가 아는 자 칠십 인을 모아 데리고 회막 내 앞에 이르러 거기서 너와 함께 서게 하라 내가 강림하여 거기서 너와 말하고 네게 임한 신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너 혼자 지지 아니하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지만 그들 중에는 하나님의 이와 같은 명령에도 불구하고 모세의 명을 거역하고 진중에 머물고 하나님 앞에 나아오지 않는 자가 있었습니다.

 

(민11:26)

그 녹명된 자 중 엘닷이라 하는 자와 메닷이라 하는 자 두 사람이 진에 머물고 회막에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나 그들에게도 신이 임하였으므로 진에서 예언한지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모세에게 고하니 여호수아가 그들을 금하여 예언하지 못하게 하고 지도자의 반열에서 제하여 버리라고 간구하자 오히려 모세가 그와 같은 여호수아에게 화를 내며 네가 지금 나를 시기하느냐?고 책망하였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지금 우리들이 보는 바와 같이 이스라엘 진중에는 제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엉망진창이 된 상황을 목도하게 됩니다. 백성들은 모세를 원망하고 모세는 탄식하며 하나님 앞에서 죽기를 소원하며 모세와 여호수아는 서로 의견의 대립을 보이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침내 하나님께서 진노의 팔을 걷어붙이시고 그들 앞에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민11:31-34)

바람이 여호와에게로서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 곁 이편저편 곧 진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 쯤에 내리게 한지라 백성이 일어나 종일 종야와 그 이튿날 종일토록 메추라기를 모으니 적게 모은 자도 십 호멜이라 그들이 자기를 위하여 진 사면에 펴 두었더라 고기가 아직 이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칭하였으니 탐욕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이는 생각이 올바르지 못하여 하나님은 온전히 믿고 쫓지 않고 인간 육신의 욕심만 부리던 초라한 백성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버린 인간들의 내면은 이처럼 초라한 육신의 욕망만이 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그 생각이 항상 신령하고 영적인 것이어서 하나님과 함께 하고 인간 육신의 욕망을 몰아내며 주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을 따라 하나님께서 진정 인정하시고 은총을 더하시는 그런 거룩한 제자들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말씀이 사는 날 동안 거룩한 거울로 남아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Arther Miller의 희곡 중에 세일즈맨의 죽음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그 작품은 인간이 성공을 위해 살 것이냐, 아니면 승리를 위해 살 것이냐를 다루고 있습니다. 성공과 승리는 분명 다른 개념입니다. 성공한 것 같으나 실패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인간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듯하나 인생의 결말은 승리하는 사람들도 또한 많이 있습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 Willy Loman은 흔히 말하는 성공적인 세일즈맨이었습니다. 이 작품의 마지막 부분은 그와 같은 주인공이 그만 자살하여 장례를 치르게 되었는데, 남은 미망인은 죽은 남편에게 덕이 되고 칭찬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도무지 떠오르는 것이 없었습니다. 고민하던 그녀는, 어느 날 윌리는 시멘트와 돌을 가져다가 집 앞 현관을 수리하여 가족의 불편을 덜어주었습니다.고 하였습니다. 과연 오늘 우리들이 갑자기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남은 가족들과 이웃들은 우리들의 무엇을 그리워하며 추억하겠습니까? 부디 주님과 가족을 섬긴 흔적을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려면 먼저 우리들의 생각이 바로 여기에 머물고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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