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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You are here: Home 말씀과예배 설교 읽기 2019년 8월 18일 주일낮설교 (겸손의 가치!)

2019년 8월 18일 주일낮설교 (겸손의 가치!)

겸손의 가치!

 

 

8. 18, 2019

本文:잠언22:1-5

   : 牧師

 

 

 

 

   성 부라더 로렌즈 수도사는 어느 날 제일 싸움 잘하기로 소문난 수도원에 원장으로 임명장을 받았습니다. 그가 문제 많은 수도원으로 가서 문을 두드리자 젊은 수도사들이 몰려 나왔습니다. 그들은 백발이 성성한 노수도사가 서 있는 것을 보고, "노수도사가 왔구려! 어서 식당에 가서 접시 닦으시오" 처음 부임한 수도사가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전통이 된 모양입니다. 노수도사는 즉각 이 수도원의 문제가 바로 여기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노수도사는 "네! 그리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곧장 식당으로 묵묵히 걸어 들어갔습니다. 노수도사는 한 달, 두 달, 석 달, 계속해서 접시를 닦았습니다. 접시 닦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처음 부임한 초자라고 멸시와 천대와 구박이 대단했습니다. 석 달이 지나서 감독이 순시 차 나왔습니다. 젊은 수도사들이 쩔쩔매며 감독을 영접하였습니다. 그런데 감독의 눈에 원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감독이 물었습니다. "원장님은 어디 가셨는가?" 수도사들이 대답했습니다. "원장님은 아직 부임하지 않았습니다." 감독이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린가! 내가 로렌즈 수도사를 3개월 전에 임명하고 파송했었는데!" 감독의 말에 젊은 수도사들이 啞然失色(아연실색)했습니다. 그 즉시 식당으로 달려가 노수도사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노수도사의 죽기까지 낮아진 겸손의 도를 따라 그렇게도 문제투성이였던 수도원이 가장 모범적인 수도원으로 변화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겸손의 가치입니다. 하나님은 친히 말씀하십니다.

 

(잠22: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고 말입니다. 바로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겸손의 가치가 과연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그 가치는 재물과, 영광과, 생명입니다! 이 세상에서 과연 그 무엇이 이 정도로 가치 있는 것이 있을까요?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와 같은 놀라운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무엇보다도 먼저 겸손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그래서인지 성 어거스틴은 참으로 놀라운 진리 같은 말 하나를 남겨 두었습니다. 어느 날 제자들이 스승님, 신자들이 가져야 할 최고의 덕목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서슴지 않고 대답하였습니다. 그것은 겸손이네.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의 덕목은 무엇입니까? 두 번째도 겸손이네. 그렇다면 세 번째의 덕목은 무엇입니까? 세 번째로 겸손이네.라고 말입니다. 어거스틴은 겸손의 가치를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처럼 겸손의 가치를 알고 겸손한 성도가 될 수 있도록 가슴 깊이 오늘의 말씀을 새겨두어야 하겠습니다.

 

   겸손하면 재물의 복을 누리게 됩니다


 

(잠22: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들이 누리는 재물은 우리들의 능력과 재주로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이렇게 착각하지만 제대로 하나님과 성경을 아는 사람이라는 결코 그렇게 주장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에 대해 선언해 두셨기 때문입니다.

 

(신8:16-18)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와 같은 재물 얻을 능력을 겸손한 자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만한 자들이 재물까지 가진다면 더 교만하여져서 많은 사람들을 괴롭게 할 줄을 하나님께서 친히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이 깊이 깨달아야 할 한 가지 보배로운 진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아 재물을 누리고 싶다면 무조건 겸손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천년이 지나도 동일하며 변하지 않는데 그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 이렇게 우리들을 교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한 자가 재물의 복을 받는다는 사실은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낙타는 하루를 시작하고 마칠 때마다 주인 앞에 무릎을 꿇는다고 합니다. 즉, 하루를 보내고 일을 끝마칠 시간이 되면 낙타는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등에 있는 짐이 내려지길 기다리며, 또 새날이 시작되면 또 다시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주인이 얹어 주는 짐을 짊어지는 것입니다. 주인은 낙타의 사정을 잘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낙타가 짊어질 수 있을 만큼만 짐을 얹어 줍니다. 낙타는 주인이 얹어 주는 짐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낙타는 당신입니다. 그리고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형편을 누구보다도 잘 아십니다. 그리고 당신이 짊어질 수 있을 만큼 당신에게 짐을 얹어 주십니다. 이 때 당신은 어떤 모습으로 짐을 받으십니까? 낙타와 같은 겸손한 모습입니까? 새에게 날개는 무거우나 그것 때문에 날 수 있고, 배는 그 돛이 무거우나 그것 때문에 항해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십자가는 짐이 되나 그것이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천국으로 향하게 만들어 줍니다. 재물은 이렇게 겸손하게 무릎이라도 꿇고 순종하는 충성스러운 일꾼들에게 하나님께서 덤으로 주시는 선물인 것입니다.

 

(잠8:21)

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로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 함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오만하고 교만한 자들에게 재물을 주셔서 더욱 하나님과 멀어지고 그것으로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경계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처럼 온유하고 겸손하여 무엇을 주든지 이웃들과 나누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나게 하는 성도들에게는 이처럼 재물을 주셔서 곳간에 가득하게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눅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낮아져야 합니다. 이웃들과 사랑하고 하나님 앞에 헌신적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살면 재물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주시는 것입니다.

 

캐나다 밴쿠버 북쪽에 유명한 휴양지 휘슬러라는 곳이 있습니다. 겨울에는 스키로 유명하고 여름에는 골프로 유명한 곳입니다. 어느 날 저녁에 20대 젊은 남녀가 북쪽 우거진 산림 속으로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곰이 나타나서 여차친구를 공격하였습니다. 그러자 남자가 달려들어 사생결단 곰과 싸우며 여자를 도망가도록 시간을 벌어주었습니다. 사투 끝에 곰은 물리쳤지만 곰에게 얼굴을 맞은 청년은 얼굴 한쪽이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엉덩이와 허벅지 살을 떼어내 얼굴에 이식하며 30여 차례 이상 수술을 받았으나 얼굴은 너무나도 징그럽고 무섭게 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여자 친구마저도 무섭다면서 떠나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굳은 신앙으로 디시 일어섰습니다. 그러한 얼굴로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물건을 팔았습니다. 처음에는 모두가 문을 닫아 버리고 두 번 다시 보려고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진실과 겸손 그리고 믿음이 인정을 받아 결국에는 캐나다에서 최고의 외판원으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물론 자신의 피나는 노력도 있었겠지만 하늘의 하나님께서 그의 좌절하지 않는 믿음과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겸손을 보시고 풍성하게 복을 내려주셨기에 그토록 성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천 년이 지나가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에 겸손은 재물을 얻는다고 하셨으니 우리 모두 겸손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주시는 축복으로 재물을 누리시게 되기를 축원 드립니다.

 

겸손은 영광을 누리게 합니다

 

(잠22: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본문에 등장하는 영광이라는 말을 영어 성경에는 Honor로 나타나 있는데 이것을 가장 쉽게 해석하면 영예, 존경, 상입니다. 다시 말해 겸손하면 영예를 얻게 되고 존경을 받게 되며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살아 있어 칭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최고의 영광인 하늘 상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들이 생활 속에서 거의 관심도 가지지 못하는 겸손이 이토록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용서하시고 부르신 예수님을 위해 일생을 다 바치고 난 다음 생의 마지막 순간에 바로 이 상 받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고백하였습니다.

 

(딤후4:6-7)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이와 같은 축복은 아무나 누리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겸손하여 성도들의 사랑을 받으며 겸손하여 사명을 은혜롭게 감당하는 자들만이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주님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하는 자라면 바로 겸손한 자인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최고의 덕목은 바로 온유와 겸손이었기 때문입니다.

 

(마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지만 작금의 교회를 들여다보면 이렇게 겸손한 성도들을 참으로 만나보기 어렵습니다. 목사를 쫓아내고 목사의 뺨을 때리는 장로들이 여기저기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발 겸손해지십시오. 제발 낮아지십시오. 제발 잘난 척 하지 마십시오. 결국은 그 대가를 여러분들과 여러분들의 자손들이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완벽한 사도도 잡아먹지 못해 안달 난 악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와 같은 악한 자들의 이름을 성경에 기록해 두고 자손만대에 저주꺼리가 되게 하였던 것입니다.

 

(딤전1:19-20)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단에게 내어준 것은 저희로 징계를 받아 훼방하지 말게 하려 함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주의 종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일을 방해할 만큼 교만한 자들은 이처럼 비참하게 사탄의 종노릇이나 하다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말씀대로 겸손하고 하늘 상을 받으며 오고 오는 후손들에게 칭송을 받으며 살아가는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기철 목사님과 사제지간이 되고 주 목사님 교회의 장로로 시무하시던 조만식 장로님이 있었습니다. 조 장로님은 오산학교에서 교장으로 있을 때, 주 목사님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어느 주일, 조 장로님이 예배시간이 지나도록 손님과 이야기 하다가 교회에 들어오셨습니다. 주 목사님은 설교를 하다가 "조 장로님, 오늘은 의자에 앉지 마시고 서서 예배를 드리시오."하고 호령을 했습니다. 이럴 때 보통사람 같았으면 그냥 나가든가, 의자에 앉아서 목사에게 욕을 하며 험한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 장로님께서는 그대로 서서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나중에 주 목사님이 설교를 마치고는 "서 계시는 조 장로님, 기도해 주십시오."하니 기도하시는데 "하나님, 나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거룩한 주일에 하나님 만나는 것보다 사람 만나는 것을 더 중요시 한 죄를 용서하옵소서."하고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서서 예배를 드리신 장로님을 본 교우들은 큰 감동을 받고 울음바다가 되었다고 합니다. 장로님의 신앙을 우리는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그 당시 얼마나 자존심과 인격의 손상을 당하셨을까요? 그러나 기도와 순종으로 극복했을 때 역사의 위대한 인물로 빛 날수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겸손의 미덕입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사사로운 자존심을 세우지 아니하고 나를 통하여서 하나님과 목사님께서 성도들을 교훈하시려나보다 하고 묵묵히 순종하고 따를 때 이처럼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조 장로님의 믿음의 덕을 기리는 후손들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겸손은 생명을 얻게 합니다          

 

(잠22: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겸손은 생명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해 주셨습니다. 요즘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참으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급박하고 무서운 세상인 것 같습니다. 밤새 안녕 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범죄도 많고 사고도 많아 하루하루 무사하게 지나는 것이 최고의 축복이구나 싶을 정도입니다. SNS에서 나타나는 한 이야기가 현 상황을 잘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여유도 없는 동생이 언니 생일에 값비싼 선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깜짝 놀란 언니가 물었습니다. 얘야, 이렇게 비싼 것을 어떻게 사왔니? 네 형편을 내가 아는데...하고 나무라자 대뜸 동생이 대답하였습니다. 언니, 내일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아무도 몰라. 오늘 할 수 있을 때 나는 뭐든 다 하고 싶어. 오늘 밤에 내가 죽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잖아.라고 말입니다. 한 번쯤 곱씹어 볼 만한 말입니다. 전 부인이 아이도 볼 겸 저녁이나 같이 하자고 전 남편을 초대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오라는 곳으로 찾아가 아이도 보고 저녁도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저녁상의 밥에 졸피뎀이라는 수면유도제를 넣어 남편은 밥을 먹자 말자 쓰러져 잠들었습니다. 그 때 전 부인은 그 남편을 죽여서 여러 토막으로 나누어 작은 가방에 넣어 다니며 곳곳으로 흩어버렸습니다. 범인으로 잡혔지만 죽은 전 남편의 시신은 결국 찾지를 못했습니다. 그 주인공이 바로 30대의 고유정입니다. 더운 여름날에 시원한 샤핑몰로 나갔다가 떼 죽임을 당했습니다. 간호사가 병실에서 환자를 간호하다가 창으로 날라 들어온 총알을 맞고 절명하였습니다. 목적지를 향하여 멀쩡하게 달리다가 옆에서 튀어 들어온 자동차로 인하여 교통사고를 당하여 죽습니다. 시애틀에서 총영사로 많은 사람들과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면서 지내고 임기가 끝나 핀란드 대사로 나가셨던 문덕호대사가 암 진단을 받고 2주 만에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부 전도왕으로 한국에서 초청하기 힘든 가장 인기 있는 장로 2위에 올라 한국과 미국으로 집회를 다니던 종의 친구 반봉혁장로는 제약회사를 가지고 있고 엄청난 부자였으나 암으로 6개월 만에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이런 일들은 옛날에는 소설의 소제로나 쓰여지던 이야기들입니다. 하지만 지금 말씀 드린 이 모든 일들은 최근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 사건들입니다. 정말 오늘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지켜주심이 필요한 때입니다. 생명 하나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다 잃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약속하십니다.

 

(시121:5-7)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고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과 이 말씀을 대비해 보니 이러한 축복을 받을 사람은 아무나가 아니고 한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만 합니다. 그것이 바로 겸손입니다. 그러므로 겸손이라는 덕목은 단순하게 성도들이기 때문에 가져야 할 도덕적인 차원이 아니라 우리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겸손의 반대인 교만한 자는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미워한다.고 하셨습니다. 만약 우리들의 생명 줄을 쥐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신다면 어떻게 될까요?

 

(잠6:16-17)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육 칠 가지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잠8:1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잠16:5)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

(잠8:1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면 그는 곧 망한 사람이요 죽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잠15:25)

여호와는 교만한 자의 집을 허시며 과부의 지계를 정하시느니라

 

(잠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18:12)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라는 말씀과 같이 교만한 자는 하나님께서 친히 멸망시키고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지 말아야 할 가장 무서운 죄악은 바로 교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생명을 담보로 겸손한 자를 독려하시고 복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발 교만하지 마시고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말하고 행동하며 변화를 추구하지 아니하는 그것이 바로 교만이기 때문입니다. 겸손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교만을 죽이고 끊임 없이 기도하고 노력하고 힘써야만 하는 귀한 덕목입니다.

 

이태리의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라고 하면 20세기의 제일가는 교향곡 지휘자입니다. 베토벤 심포니를 제일 많이 지휘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베토벤의 음악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지휘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연주를 앞두고 여러 달 전부터 그 음악의 진수를 익히면서 오묘한 신비를 체험한 뒤에야 지휘봉을 잡는다고 합니다. 한 번은 그의 제자 가운데 하나가 물었습니다. "선생님, 이번 심포니 곡은 전에 여러 번 지휘하신 곡인데 왜 그렇게 연습을 많이 해야 합니까? 우리가 거의 다 외우다시피한 곡이 아닙니까?" 그러자 선생이신 토스카니니 지휘자가 대답을 했습니다. "아니야, 아직까지도 이 곡조의 신비를 다 파악하려면 나는 아직 역부족이야." 이것이 바로 세계에서 제일간다고 하는 명지휘자의 겸손입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운전하는데 자신 있다고 하는 사람들의 사고율이 더 많다고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는 아직도 전도요원하다고 하는 겸손한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더군다나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의 태도는 더더욱 그러해야 합니다. 주님 자신이 겸손하여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성에 들어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사도는 선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말입니다.

 

(약4: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듯 늘 자신을 성찰하고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노력하고 주의 종을 존경하며 따르고 순종하는 것이 바로 겸손인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에게는 늘 하나님께서 놀랍도록 풍성한 은혜와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필리핀이 아름답고, 명랑한 나라가 되려면 공무원의 부패와 부정을 근절해야한다고 외침으로써 필리핀의 대통령이 되었던 막사이사이는, 겸손하고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루손도의 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가난에 지지 않고, 역경에 꺾이는 일이 없이 자라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보고 겪고 느끼는 필리핀 민족의 슬픔과 불행을 어떻게 해서든지 없애야 하겠다는 높은 생각과 거짓 없고 올바른 사람이 되겠다는 그의 결심은 자동차 운전수 노릇을 하는 동안에도 옳지 않은 동료들에게 물들지 않게 했습니다. 착실하고, 근면하며, 성실한 그는 결국 양코 버스회사의 지배인이 되었고, 제2차 대전 후에는 국방 장관, 마침내는 대통령까지 되었던 것입니다. 그때 그의 연령은 겨우 46세였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서 그는 전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는 항상 소박하고 겸손하였습니다. "나의 직책은 대통령이지만, 나의 마음은 이 나라의 한 병사이다." 이것은 곧 막사이사이가 늘 품고 있는 신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늘 백성들과 같은 처지에서 살고, 같은 곳에 있었으며, 같은 생활을 하고, 또 같은 마음을 지니고 있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대통령이 된 후 그가 골똘히 생각한 것은 이 나라의 백성들이 고생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공무원들이 권력을 사사로이 이용하고 권세를 악용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폐단을 없이 하기 위해 그는 공무원들의 재산을 모조리 등록하게 하여 부정한 뇌물을 받아 부해지는 일이 없게 했던 것이다. 이러한 조치는 대단히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첫째 공무원들로 부정한 짓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이 정부를 믿게 되어 말할 수 없이 부패 했던 정치가 맑고 깨끗한 정치로 바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했던 그가 불행하게도 비행기 사고로 조난당하였을 때 필리핀 뿐 아니라 전 세계 인민이 다 그의 조난을 슬퍼하였습니다.

막사이사이상( Ramon Magsaysay Award)은 필리핀의 전 대통령 라몬 막사이사이를 기리기 위해 1957년 4월 제정된 국제적 상을 말합니다. 아시아의 노벨상으로도 불립니다. 1978년 장기려 박사가 받았고 한국에서는 김활란, 김용기장로 등 여러 유명인사들이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겸손하였던 막사이사이를 기념하고 후세들에게 길이 전하기 위한 아시아의 노벨로 지금까지도 권위와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는 상입니다. 오래 전에 막사이사이는 떠났지만 지금도 진정한 백성들의 가슴 속에 막사이사이는 살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진정한 겸손의 가치요 영원한 생명으로 거듭 살아 있는 복된 삶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겸손에 관한 위인들의 명언을 몇 가지 기록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플라벧-

하나님을 아는 자들은 겸손하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을 아는 자들은 교만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로말카-

겸손할 줄 모르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이요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은 겸손할 수밖에 없다.

 

러스킨-영국의 작가, 비평가

훌륭한 사람을 아는 방법은 곧 그가 겸손한 마음을 가졌나 아니 가졌나를 보아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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