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6일 주일낮설교 (부름 받은 자의 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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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06 October 2019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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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름 받은 자의 도리!
10. 6, 2019
本文:요한복음21:1-6
說敎:崔 仁 根 牧師
인생을 살아가면서 마땅한 도리를 다하는 사람들은 존경 받고 칭찬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그 기본 도리를 못하게 될 때는 비난과 부끄러움을 당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 마땅한 도리를 못함으로 인해 어리석은 삶을 살아가게 됨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그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친히 찾아가 주시고 이와 같은 못난 제자들에게 새롭고 신선한 변화를 만들어 주시는 모습을 바라보게 됩니다. 진정 예수님의 사랑은 놀라운 변화를 만들었고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적잖은 감동과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에 다니고 예수님을 고백하는 신자들입니다. 과연 우리들은 이와 같은 신자로서 그 도리를 다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더 자신을 되돌아보고 사랑과 인내로서 우리들을 회복시켜주시는 예수님을 새롭게 만나야 하겠습니다. 고귀한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풍성한 은혜를 덧입으시기 바랍니다.
배신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21:2-3)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오늘 이 말씀은 참으로 우리 인생 여정에 놀라운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명세기 예수님의 제자라고 일컬음 받던 베드로와 그 일행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돌아가시자 주님께서 맡겨주신 그 놀라운 사명을 던져버리고 원점으로 되돌아가버리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 그들에게 소득이란 없었습니다. 평생을 물고기를 잡으며 살았던 그들에게 물고기가 단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다는 사실이 충격일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배신하고 떠난 자들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인 것입니다. 이는 구약 성경에서도 나타나는 사실입니다.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를 점령하고 들어갔을 때 하나님은 사람이든 짐승이든 다 죽이고 그 어떤 물건도 취하지 말라고 엄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모르게 한 사람이 배신을 하고 금덩어리를 숨겼다가 아이성을 점령하러 갔을 때 대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여호수아는 그 배신자를 찾아내 엄중히 심판하였던 것입니다.
(수7:16-26)
이에 여호수아가 아침 일찌기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그 지파대로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가 뽑혔고 유다 족속을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세라 족속이 뽑혔고 세라 족속의 각 남자를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삽디가 뽑혔고 삽디의 가족 각 남자를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이요 삽디의 손자요 갈미의 아들인 아간이 뽑혔더라 여호수아가 아간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청하노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려 그 앞에 자복하고 네 행한 일을 내게 고하라 그 일을 내게 숨기지 말라 아간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참으로 나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여차 여차히 행하였나이다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중의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취하였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 속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 이에 여호수아가 사자를 보내매 그의 장막에 달려가 본즉 물건이 그의 장막 안에 감취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는지라 그들이 그것을 장막 가운데서 취하여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로 가져오매 그들이 그것을 여호와 앞에 놓으니라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세라의 아들 아간을 잡고 그 은과 외투와 금덩이와 그 아들들과 딸들과 소들과 나귀들과 양들과 장막과 무릇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고 아골 골짜기로 가서 여호수아가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뇨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그것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 그 위에 돌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날까지 있더라 여호와께서 그 극렬한 분노를 그치시니 그러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날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
순종해야 합니다
(요21:4-6)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신줄 알지 못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우리는 이 단순한 말씀 속에서 순종이 얼마나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 놓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단 한 마디의 말씀을 순종하였더니 밤이 맞도록 단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했던 그들에게 그물이 찢어지도록 가득 찬 수확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순종은 이렇듯 하나님께서 그토록 요구하시는 예배보다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삼상15:22-23)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늘날 사람들과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도 부모님의 말씀도 순종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자기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의존하고 자신들에게 유익이 있는지 없는지를 먼저 따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들의 능력만큼은 살 수 있겠지만 하늘의 기적은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순종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외아들 독자 이삭이라도 하나님께서 바치라고 하시매 미련 없이 바쳤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에게 이 세상 누구에게도 주시지 않았던 여호와 이레의 엄청난 축복을 주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지상에서 가장 지혜를 많이 받았던 놀라운 왕이었지만 이처럼 순종하지 못함으로 나라가 두 동강 나고 마는 비참한 심판을 받고 말았습니다. 순종이 예배보다 더 귀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한 순간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요21:15-17)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이렇듯 사랑은 성도들의 지상 과제입니다. 이것을 떠나서는 신자도 될 수 없고 하나님을 만나볼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마지막 과제가 바로 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요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는 말씀은 단순한 명령이 아닙니다. 이와 같은 사랑이 없으면 우리들의 산을 옮길 만한 믿음도 몸을 불살라 바치는 열정도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고전13:1-3)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시몬 베드로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셨던 것입니다.
(요21:15)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라고 말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지금 이 순간도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묻고 계십니다. 과연 오늘 우리는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여기에 당당하고도 자신 있게 “예”라고 대답할 수 없다면 우리들은 진정한 신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진정한 예수님의 일꾼이 아닙니다. 그저 우리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교회에 다니는 종교인이고 맙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각오해야 합니다. 결단해야 합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는 베드로의 대답과 같이 자신 있게 “사랑합니다.”고 외칠 수 있도록 사랑이 가슴에 가득한 신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것에 다 부족함이 많고 연약하여도 이처럼 사랑으로 무장하고 그 사랑을 예수님으로부터 인정받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베드로와 같이 모든 허물을 용서 받고 “내 양을 먹이라!”시는 예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가슴에 사랑이 있는 제자들에게만 주님의 양무리를 맡기시기 때문입니다.
지난 수요일인 10월 2일에 텍사스의 한 법정에서는 판사도 죄인도 방청객들도 배심원들도 다 눈물을 흘리며 감동에 젖는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형을 총으로 쏘아죽이고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 범인을 18살의 동생이 증인석에서 증언하던 중 벌어진 명장면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형은 어느 날 퇴근하는 길에 애인과 전화를 하면서 너무나도 흥분할 정도로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계속 전화를 하면서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그만 전화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자신의 집이 있는 3층을 누르지 아니하고 4층을 누르고 4층에서 내려 남의 집을 자기 집인 줄 알고 문을 열고 들어섰다가 범인으로 오인을 한 집 주인이 총으로 쏘아버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범인은 30대의 여성 경찰관이었습니다. 이미 검사는 26년을 구형하고 지난 2일 최종 선고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증인석에 섰던 18살의 동생이 범인을 향하여 말하였습니다. “범인이 지금이라도 진정으로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빈다면 저는 용서를 하겠습니다.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아선다면 벌을 받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용서를 빌겠습니까?”하면서 범인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러자 범인은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며 회개한다.”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러자 동생은 재판장을 향하여 호소하였습니다. “재판장님, 제가 지금 저렇게 용서를 구하는 분과 허그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재판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때 동생은 증인석에서 내려와 범인을 향하여 다가갔고 범인은 벌떡 일어나서 동생과 진하게 허그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동생은 외쳤습니다. “저는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가르쳐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 이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합니다.”고 말입니다. 그 순간 재판장도 눈물을 닦았고 모든 사람들이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매 주일마다 함께 예배를 드리고 돌아와서 하나님께서 주신 목사님의 말씀을 서로 나누며 가슴에 새겼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아들이 없어졌으니 너무나도 안타깝고 가슴이 미어집니다.”고 말입니다. 그리하여 범인은 살인죄로서는 극히 보기 드문 10년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사랑은 이렇게도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 놓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다시 오실 이 마지막 때에는 사랑이 식어질 것이라고 성경은 예언하고 있습니다.
(딤후3:1-3)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은 말세의 홍수에 속절없이 떠내려가 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사랑에 올인하여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로서 예수님의 부르심을 입은 일꾼들로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로서 너무나도 마땅한 도리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