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3일 주일낮설교 (최상의 인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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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03 November 2019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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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의 인격
11. 3, 2019
本文:잠언1:7
說敎:崔 仁 根 牧師
인격이 무엇입니까? “인격이란 사람으로서의 품격”이라고 국어사전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대로 된 사람은 사람다운 품격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품격이란 또 무엇일까요? 지, 정, 의를 소유한 사람을 뜻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품격이 있는 사람이라면 지적능력과 정적인 능력과 의지적인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을 알고 또한 그것들에 반응하되 정서적으로 풍부하게 반응하고 결국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아니하며 인생과 하나님께 유익하도록 결단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평범한 것 같지만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하지 못하는 쉽고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인격자라는 소리를 들으며 살아가는 고상한 인물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흔하게 만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지난 한 달 동안 “신자”에 관한 진정한 의미를 공부하였습니다. 우리는 이제 누가 뭐래도 신자요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그렇다면 반드시 가져야 할 하나의 품격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격입니다. 우리는 이제 사람들과 하나님 앞에서 인격자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길은 과연 무엇일까요? 오늘은 이에 관한 진리를 공부하면서 풍성한 은혜를 기대해 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인격입니다
(잠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지혜자는 단도직입적으로 선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 이치를 다 꿰뚫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모르면 그는 무지한 자입니다. 그러므로 인격의 기본이 되는 지적능력의 기본은 이렇듯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와 같은 자를 귀하게 여기시고 복이 있는 자로 구별하시어 풍성한 축복으로 보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시112:1-3)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 그 의가 영원히 있으리로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지만 이 땅에는 이렇게 복이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흔하지 않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교회에 다니는 신자들까지도 하나님을 제대로 모른 채 자기 유익을 위해 교회에 다니는 종교인으로 전락하는 자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도 하나님을 제대로 몰랐던 인물 중의 하나입니다. 그가 과연 하나님이 누구신지 똑바로 알고 있었다면 그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도 허망한 욕심을 부리다가 망할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제자로 발탁되었던 가룟 유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과연 예수님이 진정 어떠한 분이신지 분명하게 알았다면 그 주님을 팔아먹을 생각을 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이렇게 보면 하나님을 꼭 알아야 할 사람들이 정녕 하나님을 모르고 있었다가 비참하게 망하는 불행한 대상이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한 번 다시 묵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초대교회 때 감동을 많이 받았으면 자신들의 밭을 팔아 하나님께 갖다 바칠 생각을 하였겠습니까? 그것까지는 아주 좋았는데 불행하게도 그들도 또한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한 탓에 밭을 판 일부의 돈을 감추어 두고 전부인 냥 갖다 바쳤다가 순간에 죽는 비참한 심판을 받고 말았습니다.
(행5:1-5)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불행하게도 이 종이 오랜 세월 성도들을 경험한 바로는 의외로 하나님을 잘 모르는 성도들이 많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속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그 하나님 앞에서 잔꾀를 부리거나 자신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도 안중에 두지 않고 살아가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들 말입니다. 인생은 죽을 때까지는 판단할 수 없는 기이한 존재들입니다. 망한 것 같았는데 흥하는 자들이 있고 흥하는 것 같았는데 망하는 자들이 의외로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망하는 자들의 대부분이 이미 앞에서도 언급해 드린 바와 같이 흥하였던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왜 흥하고 잘 되었다가 망하는 것일까요? 제대로 된 인격자가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인격자가 되지 못했을까요? 지식과 지혜의 근본이신 하늘의 하나님을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외치고 있습니다.
(호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세상 돌아가는 이치는 다 알면서 정녕 알아야 할 하나님을 모르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힘써 여호와를 아는 진정한 인격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웃들에게 연민을 가지는 것이 인격입니다
(사58:6-11)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 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진심을 보게 됩니다. 누가 금식합니까? 신앙생활을 하는 여정에서 금식하며 기도하는 성도들보다 더 믿음이 좋은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냥 기도하기도 힘드는데 식음을 전패하고 기도한다면 정말 훌륭한 신자임에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금식 기도하는 성도들의 기도에 속히 응답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금식을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조건을 하나 제시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바로 이웃에 대한 연민이요 사랑입니다. 인격이 무엇입니까? 정적인 능력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인격자가 되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이처럼 이웃에 대한 연민이 없어 정적인 능력을 상실하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말세로 치달으면서 오늘날 이웃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오로지 우리 가족 우리 아이들만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서 더욱 불행한 것은 이것마저도 무너지고 있습니다. 남편도 아내도 자식도 사정없이 버리고 떠나버리는 비인간적인 모습들이 우리 주변에 널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들은 교회에 나가도, 기도를 하여도, 예물을 드려도 가인의 제사처럼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상은 사울 왕과 가룟 유다와 같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지금 하나님은 단도직입적으로 선언하고 계십니다.
(딤전5: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고 말입니다. 실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오해하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떻게 살든지 교회에만 나가고 헌금만 많이 드리면 문제가 해결 되고 복을 받고 형통하게 되는 줄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자들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신앙생활은 과연 어떠한 것일까요?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 친히 그 해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25:34-40)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바로 이것입니다. 이웃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천국으로 가는 지름길이요 하나님의 인정과 축복을 받는 길입니다. 이는 앞서 인용해 드린 금식 기도에 관한 진리와 일맥상통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을 향한 연민과 사랑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며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없으면 정적인 능력을 가진 진정한 인격자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느 동네에서 차에 짐을 싣고 그 동네를 떠나 어디론가 이사 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식구들을 다 이끌고 다른 동네로 떠나가 버렸습니다. 그는 그 동네를 떠나면서 하는 말이 "이 동네는 사람이 살 곳이 못됩니다. 이 동네 사람들은 모두 무식하고, 가난하고, 예절도 모르고, 욕심도 많고, 싸움질만 하고..., 그래서 우리는 생각다 못하여 이 동네를 떠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같은 시간에 다른 한 사람은 식구들을 데리고 그 동네로 이사해 들어왔습니다. 역시 차에 짐을 싣고, 그 동네를 떠나가는 그 사람이 살던 집을 사서 그리로 이사를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이 동네 사람들이 가난하고, 무식하고, 말이 많기도 하고, 불행하게 산다는 소문을 듣고, 그들의 이웃이 되어 볼까 하여 이 동네로 이사 오기로 하였습니다. 나는 우리 식구들과 함께 그들을 힘자라는 대로 도와 볼까 합니다."라고 말입니다. 이 두 사람들 중에 과연 누가 정적인 능력을 가진 인격자일까요?
믿음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 인격입니다
(히12:1-3)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인격은 의지적 능력을 일컫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이 인격자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들의 의지적인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소위 말하는 믿음을 지키고 예수님을 따라가려는 강력한 결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그렇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 온 몸으로 우리들에게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의 그 모진 고난이라도 끝까지 참아내시고 우리들의 영원한 구원자가 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그와 같은 예수님을 닮아 죽기까지 믿음을 지키고 고난을 이겨내며 예수님을 따라갈 결단력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가 로마에 도착하여 교회의 부패상을 목격했을 때 크게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완전히 무흠한 교회로 믿었던 그의 신앙이 무섭게 동요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스스로 죄인이며 반역자로 생각하여 성당으로 가서 스칼라 상크타(신성한 계단)를 올라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속죄하려는 마음에서였습니다. 그때 뇌리 속에서 성경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롬1:17)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진지하게 묵상하고 연구한 후 가톨릭교회와 공식적인 절연을 선언하고 이신칭의의 교리를 설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의인은 행함이나 고해성사로 살지 아니하고 오직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16세기 목숨을 건 종교개혁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결단이요 믿음을 지키려는 강력한 의지였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와 같은 믿음을 지키려는 의지적 능력입니다. 이것이 없이는 결단코 신앙적인 인격자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