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15일 주일낮설교 (하나님의 구원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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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15 December 2019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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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구원 계획
12. 15, 2019
本文:창세기3:15
說敎:崔 仁 根 牧師
불행하게도 인류의 조상이라는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사탄 마귀와 짝하고 놀다가 비참한 심판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사는 날 동안 고통을 당하여야 하였고 끝내는 죽어 흙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고통의 주인공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천국과 같은 축복의 보금자리인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친히 명령하신 그대로 땀을 흘리며 땅을 파고 먹을 것을 구하여야만 하였습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그렇게 비참하게 살아가다가 결국은 죽어야만 하였습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놀랍게도 하나님은 무화과 나뭇잎으로 만들어 입었던 옷을 벗겨버리고 짐승을 잡아 가죽옷을 지어 입혀주셨고 그들로 하여금 다시 소생할 수 있도록 구원의 복된 길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류를 향하신 하나님의 구원계획이었습니다. 오늘은 성탄절을 앞두고 이와 같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통하여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터득하고 그래서 보다 더 의미 있는 성탄절을 맞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짐승을 죽여 피를 흘림으로 가죽옷을 지어주셨습니다
(창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죄를 범하게 된 인간은 부끄러움과 수치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죄의 결과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도 범인을 체포하고 호송할 때를 보면 거의 대부분이 모자나 마스크나 옷으로 얼굴을 가립니다. 아마도 부끄럽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죄는 이렇듯 부끄러운 것이고 또한 그 죄의 형벌은 무서운 것입니다.
(창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창3:10)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그들은 부끄러움을 알았고 수치를 깨달았으며 마침내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하는 작은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 수치를 가리워 보려고 무화과 나뭇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가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친히 짐승을 잡으시고 가죽을 벗겨 친히 그들의 부끄러움을 가리워 주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죄악으로 인한 부끄러움을 가릴 수가 없고 그 죄로 인한 형벌인 죽음의 두려움을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가죽옷을 입혀 주셔야 부끄러움이 가리워지고 하나님께서 친히 사망 권세를 깨뜨려 주셔야 비로소 그 두려움에서 해방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타락한 인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란 땅을 파고 땀을 흘리며 간신히 먹을 것을 준비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 또한 하나님께서 친히 빛을 비춰주시고 비를 내려주셔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 없이는 절대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온 몸으로 체험하고 깨달았던 믿음의 조상 시편 기자들은 다음과 같이 탄식하며 노래하였던 것입니다.
(시139:7)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시121:1-4)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안 계시면 오늘 우리들의 존재는 참으로 무의미합니다. 해가 없으면 달이 아무런 소용이 없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들과 함께 하시지 않으신다면 오늘 우리들의 존재는 그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이와 같은 현실을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이런 우리들과 함께 하시려고 하늘을 버리시고 이 땅으로 오셨으니 그 이름이 바로 [임마누엘]이었던 것입니다. 이는 히브리말로 하나님이 우리들과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그 이름조차도 임마누엘이 되셨던 것입니다.
(마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바로 이것이 성탄절의 배경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한 가지 놀라운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친히 아담과 하와에게 짐승을 잡고 그 가죽을 벗겨 친히 옷을 해 입히셨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사탄 마귀와 짝하다가 타락한 그들은 너무나도 초라하였습니다. 하루도 가지 못할 무화과 나뭇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고 하나님을 피해 숨어버린 그들의 모습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하지만 하나님은 아무런 조건도 없이 그들에게 최초로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셨던 그 순박한 짐승을 잡으시고 가죽을 벗겨 인간에게 입히셨으니 그 사랑이 얼마나 아름답고 감격스럽습니까?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 옷을 받아 입은 인간들이 하나님께 감사드렸다는 기사는 창세기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이번 성탄절에 잃었던 우리들의 감사가 되살아나고 또한 이번 성탄절에 병들고 외롭고 지쳤던 몸과 마음이 임마누엘의 주님을 만나 치유되고 회복되는 기적을 체험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진실로 이번 성탄절을 맞아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이 이처럼 놀라운 은총을 맛보시게 되기를 구유에 임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사탄 마귀와 영원히 원수가 되게 하셨습니다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인간을 죄악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게 한 장본인이 바로 사탄 마귀입니다. 가룟 유다를 보십시오. 마귀가 유다에게 들어가니 그가 치명적인 죄도 서슴지 않고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감히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팔아치울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요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 마귀의 역사입니다. 멀쩡하던 유다에게 마귀가 이렇게 역사하니 순식간에 변하여 예수님을 팔았던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사탄 마귀는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지 못하도록 눈에도 보이지 않게 역사하고 있습니다.
(눅8:12)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와서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라는 말씀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강력하게 경고하십니다. 사탄 마귀를 대적하라고 말입니다.
(약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찌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벧전5:8-9)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엄격하게 말해 인류의 조상이었던 아담과 하와는 이와 같은 사탄 마귀를 대적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땅에 영원한 형벌을 가져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이와 같은 역사적인 사실을 두려운 마음으로 가슴에 새기고 영적인 승리는 오직 이와 같은 사탄 마귀를 대적하는데 있음을 알고 말씀과 기도로 깨어 있어서 사탄 마귀를 대적하는 능력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연약한 우리들이 사탄 마귀를 대적할 수가 있겠습니까?
성경에는 잠을 성도들의 죽음에 비유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육체의 잠, 죄악의 잠, 즉 영적 죽음을 말할 때도 있습니다. 여기서 “깨어 있으라”는 말은 바로 이런 영적 잠에서 깨어나라는 말입니다. 전쟁에서는 잠을 자면 죽습니다. 전방에 근무하고 있을 때, 한 주일에 한두 번 보초를 서는 일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지휘관이 꼭 하는 말이 있습니다. “졸면 죽는다.” 실제로 보초병 가운데 자다가 무장간첩에게 목이 잘린 사람도 없지 않았습니다. 여러 해 전의 일입니다. 북극을 탐사하기 위해서 존 후랭크린 경이 인솔자가 되어 북극을 탐험하고 있었습니다. 영하 70도의 추위로 많은 사람들이 동상에 걸렸습니다. 게다가 추위로 잠에 빠지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생겼습니다. 더러는 잠에 빠져 뻣뻣하게 얼어 죽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탐험장은 소리 지르며 말했습니다. “잠자지 말아라. 잠자면 죽는다!” 이렇게 경각심을 심어주며 대원들을 깨워서 살렸다고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도 잠자면 사탄에게 잡혀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깨어 있을 수가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말입니다. 즉 기도하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우리의 영적 잠을 깨게 하는 방법이 없습니다. 누구보다도 이렇게 깨어 있지 못하다가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았던 베드로는 훗날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겨두었습니다.
(벧전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 사탄 마귀를 대적할 수 있는 최고 최대의 길은 오직 이렇게 깨어 있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께 고난을 당하게 하심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게 하셨습니다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이 말씀 가운데서 사탄 마귀로 말미암아 우리 예수님께서 발꿈치를 상하시는 치명적인 고난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은 사탄 마귀가 인류에게 죄를 짓게 하였고 인류의 죄 값을 예수님께서 대신 짊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53:5-6)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예수님의 이와 같은 고통을 가슴을 치며 아파하고 그렇게까지 희생해 주신 주님께 모든 것을 다 바쳐 헌신하는 사람들은 성도라 일컬음을 받게 되나 그것을 모르고 모든 인생의 은총들이 자신의 공로인 줄 아는 자는 하나님을 배신한 불신자로 전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매년 성탄절을 지키게 하시고 예수님의 그 사랑과 희생을 기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때가 자꾸 말세로 가면서 성탄의 고귀한 사랑은 지워지고 인간들도 점차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을 잊어가고 있습니다. 인간이 인간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은 부모형제와 스승과 이웃의 사랑을 잊지 않기 위함이요 또한 인간들이 영적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들의 주변을 살펴보면 부모님과 스승의 희생을 아는 사람도,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희생을 아는 사람도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만큼 인간은 오직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화 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한 순간도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들의 죄를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성도된 최소한의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최초로 성경을 영어로 번역한 사람은 잘 알다시피 윌리엄 틴데일(William Tyndale)입니다. 영국의 경건운동과 개혁운동에 불을 댕긴 그는 1536년 10월 6일 금요일에 성경을 영어로 옮긴 업적 때문에 도리어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그러나 75년이 지난 1611년에 그의 번역을 기초로 하여 흠정역(The Authorized Version)이 제임스 왕(King James) 의 출판 인허에 의하여 발행되었습니다. 그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무려 900여개의 서로 다른 언어와 방언으로 성경이 번역 되고 인쇄되었는데, 이 일에 있어 그는 독보적인 선구자였던 것입니다. 비록 틴데일의 몸은 불태워졌으나 그의 사역은 축복이 되었던 것입니다. 성경을 자기 말로 번역하는 것이 불경의 죄가 되었던 시대에 그는 일찍이 진정한 하나님 말씀에 눈을 뜨고, 그것을 모든 신실한 성도와 또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불태웠던 것입니다. 태워 사그러진 잿더미 속에서 의롭게 피어난 장미처럼 그가 목숨을 버려 행한 일은 지금까지 살아 번역된 말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의 영혼 속에서 여전히 그리스도의 빛으로 비추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 값진 희생인 것입니다.
(롬8:19-24)
피조물의 고대 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 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라는 말씀과 같이 진정한 희생은 이렇듯 소망의 꽃을 피우게 되고 영원히 하늘에까지 길이 빛이 나는 생명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