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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2 주일낮설교 (예수님을 만난사람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2. 2, 2020

本文:요한복20:19-23

:崔仁根 牧師

 

 

 

 

이 시대에는 불행하게도 교회에는 열심히 다니는데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만나지 못한 안타까운 교인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산에는 갔는데 숲은 보지 못한 것과 같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성령님을 만나거나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에 진짜로 성령 충만을 받거나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변화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들이 공부하게 될 내용도 바로 이와 같은 놀라운 변화를 목도하게 될 것입니다. 그만큼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이고 삶의 놀라운 변화인 것입니다. 아직도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면 예수님 만나기를 소원하며 무화과나무 밑에서 예수님 만나기를 학수고대하며 기도하다가 결국에는 예수님을 만났던 나다나엘과 같이 우리들도 소원하며 기도하고 예수님을 사모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지 못한 채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심장이 없는 사람이 걸어 다닌다는 것과 같이 허망하기 때문입니다. 올 해의 우리들의 신앙생활의 목표는 가서 제사 삼으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돈은 벌어올 수 있어도 예수님 없이 가서 제자 삼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구호만 외치고 전도하겠다고 결단만 한다고 이루어지는 일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 속에 거하시는 성령님의 역사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함께 예수님을 만났던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예수님을 만나야 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던 제자들이 예수님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요20:19-20)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이것이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붙잡히시고 처형되자 제자들이 취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도 사랑하고 의지하고 기대하던 예수님께서 잔인한 유대인들에게 붙잡히시고 잔인하게 십자가에서 못이 박혀 돌아가셨는데 그 예수님을 추종하던 제자들이 두려워했을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떠나 도망쳤고 유대인들에게 붙잡히지 않도록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친히 찾아오셨던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 예수님의 지극한 사랑을 엿보게 됩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자신을 버리고 도망 가버린 제자들, 두려움에 떨며 숨어 있는 제자들, 그렇게도 사흘 만에 자신이 다시 부활 할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는데도 믿지 않았던 제자들에 대해 엄청 실망을 하고 다시는 그와 같은 초라한 제자들을 찾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니었습니다. 단 한 마디의 원망이나 책망이나 실망의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들에게 친히 자신의 상처 난 옆구리를 보여주시며 자신이 부활한 예수님이심을 보여주셨던 예수님은 실로 사랑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한 가지 소중한 진리를 배워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셨던 말씀을 붙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란 바로 새 계명입니다.

 

(요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진짜 예수님을 만났다면 예수님의 이와 같은 조건 없는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친히 서로 사랑하라시는 이 말씀을 순종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제자들과 같이 연약하고 두려움에 잠기고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누구보다 더 잘고 계셨기에 예수님은 그들을 탓하시기 이전에 사랑하시고 이해하시고 용서해 주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들이 가슴으로 본받으라는 사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도 서로 약함을 보담아주고 이해해주며 예수님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마음을 합해서 꼭 해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전도와 선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이렇게도 어리석고 부족한 제자들이지만 다시 한 번 더 용서하시고 사명을 맡기셨던 것입니다.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그렇게도 유대인들을 두려워하고 그렇게도 가슴 속에 믿음이 없고 무책임한 그들이었지만 예수님은 전에와 똑같이 그들을 다시 사용하시고 고귀한 사명을 다시 맡겨주셨던 것입니다.

 

(요20:21)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듯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신선한 사명을 부여 받고 전도와 선교에 헌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슬픔과 절망에 빠져 있던 제자들이 예수님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눅24:13-17)

그 날에 저희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 오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촌으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 하더라 저희가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저희와 동행하시나 저희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서더라

 

예루살렘에서 예수님께서 악당들에게 붙잡혀 돌아가시자 절망하고 낙심한 제자 둘이 그 살벌한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잃어버린 슬픔이요 절망이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그들이 예수님을 잃어버린 슬픔으로 큰 충격을 받았으면 예수님과 동행하면서도 그 분이 예수님이신 줄 알아보지 못했겠습니까? 그리고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사실과 이미 장사까지 지내버린 현실에 갇혀버렸던 그들은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시고 자기들과 동행하실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놀랍게도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슬픔과 절망에 빠져 아예 예루살렘을 떠나버린 그들에게 친히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복음이요 축복입니다. 우리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이처럼 축복이었고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기적이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우리 스스로도 모르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슬픔과 근심으로 차갑게 식어버렸던 우리들의 마음이 새롭게 뜨거워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적이요 예수님의 권능이신 것입니다.

 

(눅24:32)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예수님을 만나고 우리들의 식어버린 마음이 뜨거워져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의 일을 내려놓고 주님의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역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두 제자들도 이렇게 마음이 뜨거워지자 곧바로 그들이 떠나버렸던 예루살렘으로 다시 되돌아가게 되는 놀라운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거기에 있는 다른 제자들에게 자기들이 만났던 부활의 주님을 전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눅24:33-35)

곧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 한 사도와 및 그와 함께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는지라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오늘 무엇보다도 우리들의 차가운 마음이 뜨거워져야 하겠습니다. 냉랭한 가슴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미움과 다툼뿐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람들은 열정도 있어야 하고 헌신도 있어야 하고 희생도 있어야 합니다. 그 모든 것은 한결 같이 마음이 뜨거워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 말씀을 증거하다 보니 하나님의 말씀을 뜨거운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성도들도 있지만 차가운 가슴으로 그저 듣기만 하는 교인들도 많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마음은 차가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의 재물과 근심과 욕심으로 가득하게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이제는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과 같이 예수님을 만나고 마음이 뜨거워져서 예수님의 사랑과 능력을 자랑하고 전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빈 배가 만선이 되는 축복을 체험하고 사명자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요21:3-6)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신줄 알지 못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맹세하고 저주까지 하고 그의 원래 물고기 잡던 갈릴리로 되돌아가서 그물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이와 같은 모습은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여섯 명의 제자들까지도 낙심시키고 원점으로 되돌아가 물고기를 잡는 어리석은 자들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영웅심리라고 합니다. 한 사람의 리더가 무너지면 연쇄적으로 무너져 함께 타락하게 되는 현상인 것입니다.

 

(요21:2-3)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평생 물고기만 잡아 왔던 그 베테랑들이 밤새도록 단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재물은 우리들의 능력이 아닙니다. 재물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 그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그물을 내렸더니 그물이 찢어지도록 많이 잡혀 배가 물에 잠길 지경이었습니다. 만선의 축복이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물고기 잡는 어부로서 이 일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어부들이었는데 밤이 새도록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을까요? 어떻게 그러한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로 이와 같은 만선의 기적을 볼 수가 있었을까요? 이는 단순히 복을 주시는 분이 하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다시 만난 그들은 단숨에 기적을 보았고 그 기적뿐만 아니라 던져버렸던 사명까지도 다시 받게 되었습니다.

 

(요21:15-17)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 예수님의 사랑을 다시 한 번 더 확인하게 됩니다. 자신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도망 가버린 못나고도 초라한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변함 없이 사랑하시고 맡기셨던 사명을 새롭게 회복하시는 모습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사랑하다가도 자기에게 유익이 없으면 실망하고 돌아서지만 우리 예수님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한 번 사랑하시면 변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시는 분이 사람과 다른 우리 예수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요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소망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에 발 담그고 살아가는 우리들은 사실 너무나도 연약하고 무능합니다. 그래서 시시때때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사명을 던져버리고 돈을 따라 사람을 따라 그렇게 어리석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들을 떠나지 않습니다. 실망했다고 포기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사랑하시며 이끌어 주시고 또 다시 사명을 맡겨주십니다. 그래서 수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그 사랑에 감동하여 목숨이라도 내어 놓고 선교사가 되고 주님의 종이 되고 하나님의 심부름꾼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의 모습을 세 가지 케이스로 살펴보았습니다. 하나같이 주님의 사랑이 묻어나는 눈물겨운 모습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버리고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있는 초라한 그들에게 친히 찾아오셔서 아직도 채 아물지 않은 옆구리의 상처를 내보이시며 주님이심을 확인시켜 주시고 성령을 부어주시던 주님의 사랑은 실로 가슴이 찡합니다.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슬픔과 절망 속에서 두려움의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에게 친히 나타나시어 말씀을 풀어먹이며 식어버렸던 그들의 마음을 다시 뜨겁게 만들어 주시며 새로운 소망으로 채워주시던 우리 주님의 사랑은 또한 낙심하고 쓰러지는 오늘 우리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소망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원점으로 되돌아가 주님의 사망을 망각한 채 먹고 살기 위해 그물을 내리고 있던 초라한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친히 찾아가주시고 빈 배를 만선으로 채워주시고 밤새 허기지고 지친 그들에게 손수 떡과 생선을 구우시고 조반을 만들어 먹이시던 예수님의 모습은 눈물 없이는 대할 수 없는 놀라운 사랑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이렇게 성전에서 예배자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었던 것이 이렇듯 조건 없는 우리 주님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어떠한 상황, 그 어떤 경우에도 낙심하거나 절망하면 안 됩니다. 포기하면 안 됩니다. 다시 한 번 더 일어나 이토록 사랑하시는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우리들에게 감동을 주는 또 다른 놀라운 진리가 하나 숨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세 가지 케이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의 반응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증인으로 변화를 받아 예수님을 증거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나다나엘과 같이 무화과나무 밑에 엎드려 기도하는 성도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리고 설사 그런 멋진 성도들이 있다고 해도 왜 주님을 만나기를 원하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응답이 나올 것입니다.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보다는 우리들의 문제 해결이 우선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아예 못을 박으시듯 분명한 말씀 하나를 선포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말입니다.

 

(요20:21)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한결 같이 다 예수님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역으로 말하면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은 결코 예수님의 증인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너무나도 자명한 결론입니다. 보지도 못한 사람이 어떻게 증인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 세상 법정에서도 거짓으로 증언을 했을 경위는 위증죄로 처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이웃들에게 전해야 할 사명을 받은 제자들입니다. 그 예수님을 올바로 전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체험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성전에 올라와 정성을 다해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제 끝난 36차 전교인수려회를 통해서도 어떻게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지?를 토론하였습니다. 예배를 통해 말씀을 통해 찬송과 기도를 통해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 거룩한 성전에 올라오신 우리 모든 성도들은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증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들이 하늘의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이 보다 더 값진 축복이 어디에 있겠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 이처럼 놀라운 축복으로 행복하시기를 사랑 많으신 우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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