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16일 주일낮설교 (마지막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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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16 February 2020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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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기회
2. 16, 2020
本文:요한복음13:21-30
說敎:崔仁根 牧師
영국의 에드워드 7세는 식사 예법에 몹시 엄격한 왕이어서 왕자들이 식사 시간을 언제나 무서워하곤 하였습니다. 어느 날 아침 식사를 하던 요크 왕자는 갑자기 말을 더듬거리며 에드워드 7세에게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려 했습니다. 그러자 왕은 버럭 화를 내며 "식사 중에는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했지!" 하며 소리를 쳤습니다. 요크 왕자는 놀라서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식사 후 에드워드 7세는 요크 왕자를 조용히 불러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래, 아까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느냐?" "이제는 늦어버렸어요." "늦어? 무슨 일이었는데?" "그때 할아버지 음식에 벌레가 들어갔었어요." 이것이 바로 기회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기회란 한 번 지나면 영원히 다시 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승리한 멋진 인재들은 기회에 대해 다음과 같은 유명한 명언을 남겨두었습니다.
윌터 크라이슬러
수많은 사람들이 인생에서 절대 출세하지 못하는 이유는 기회가 문을 두드릴 때, 뒤뜰에 나가 네잎크로바를 찾기 때문이다.
아라비아 속담
다음의 네 가지는 돌이킬 수 없다-뱉은 말, 쏜 화살, 과거생활, 그리고 게을리 한 기회
성경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지막 기회를 놓쳐 敗家亡身(패가망신)을 당한 인물들이 의외로 많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그 마지막 기회를 잘 살려 起死回生(기사회생)한 인물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성경의 기록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귀한 도전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지혜로워야 하고 깊은 깨달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하나님께서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멸망하는 짐승 같다고 까지 표현하셨겠습니까?
(시49:20)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새해가 밝아 온지도 벌써 한 달 반이 지나가고 있는 이 즈음에 우리는 깨달음이 있는 예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왔을 때 우물쭈물 망설이지 말고 과감하게 일어나 결단하고 그 기회를 잡는 용기와 믿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우리들의 삶에 교훈을 심어주기 위해 기회를 놓치고 망하는 자와 기회를 잡고 흥한 자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풍성한 은혜와 도전이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기회를 놓쳐버린 어리석은 사람
(요13:21-22)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에 민망하여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서로 보며 뉘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
(요13:25-26)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찍으셔다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주시니
(요13:30)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우리는 이 여러 말씀 속에서 가룟 유다의 미련하고 가증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품에 안겨 있을 정도로, 예수님의 모든 재정을 맡아 있을 정도로 예수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고 있었던 그가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팔리라”고 언질을 주셨을 때 뻔뻔스럽게도 “주여, 누구오니이까?”하고 묻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다가 결국에 예수님께서도 노골적으로 “내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고 하시고 한 조각을 찍으셔다가 가룟 유다에게 직접 주시면서 그가 나를 팔 것이라고 선언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그것을 받고 가룟 유다는 어두운 바깥으로 나가버리고 말았습니다. 행동에 옮기기 위해 예수님을 떠나간 것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은 가룟 유다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셨던 것입니다. 그것도 공개적으로 말입니다. 그 때 만약 유다가 깨닫고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회개하였더라면 그는 그렇게도 끔찍하게 죽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불행하게도 그 마지막 기회까지도 묵살해버리고 어둠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끝까지 그 소중한 기회를 발길질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자기의 목을 스스로 매고 죽어야 하는 비참한 존재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마27:2-5)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주니라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또 다른 소중한 비밀을 하나 발견하게 됩니다. 가룟 유다와 한통이 되어 예수님을 팔 때의 유대인들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한통속이 되어 예수님을 잡기 위해 의기투합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유다에게 아낌 없이 은 삼십을 달아 주었고 유다는 기꺼이 예수님을 그들의 손에 넘겨주었습니다. 그 과정을 보면 우연히 그런 죄에 빠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다는 스스로 대제사장들에게 찾아 가서 “내가 예수님을 너희에게 넘겨주면 얼마나 주려느냐?”고 흥정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마26:14-16)
그 때에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저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줄 기회를 찾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울 정도로 서로가 하나가 되어 있습니까?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 돈을 챙길 기회를 잡았고 대제사장들은 유다를 통해 그들이 잡고자 하는 예수님을 정확하게 잡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도 밀착되었던 그들의 관계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유다가 뉘우치고 돈을 들고 그들을 다시 찾아갔을 때 그들의 냉정함을 보면 잘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27:3-4)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이라는 말씀처럼 그들은 유다에 대해 눈곱만큼도 동정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냉정하게 내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유다가 절망하고 스스로 목을 매고 죽었던 것입니다.
(마27: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것이 비열한 세상의 모습입니다. 필요할 때는 입안의 혀처럼 귀하게 여기다가 단물을 다 빨아먹고는 쓰레기처럼 내다버리는 모습이 그렇습니다. 대한민국의 문희상 국회의장을 한 번 보십시오. 대통령과 민주당에 잘 보여 자기 아들을 이번 총선 때 공천이라도 받아보려고 그들의 입안의 혀와 같이 움직여 주었습니다. 명세기 제1 야당인 한국당을 제처 놓고 예산도, 선거법도, 공수처법도 비상식적으로 상정하고 야합 처리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일을 다 처리해 놓고 보니 아들의 공천은 고사하고 자기 자신마저도 토사구팽 당하고 말았지 않습니까? 이런 자들이 나라를 맡아 다스리니 나라의 꼴이 제대로 될 리가 없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죄악 된 세상의 단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다와 같이 눈앞에 유익을 위해 예수님을 등지고 세상과 짝하는 어리석은 삶을 결단코 살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짧은 인생 여정에서 기회는 항상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기회를 붙잡은 지혜로운 사람
(요21:15-17)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참으로 어리석게도 베드로는 예수님의 측근으로 그 누구보다 예수님을 더 잘 알고 더 많이 기적을 체험하고 말씀도 더 많이 들었건만 약한 게 목숨인지라 그만이야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주님을 버리고 원점으로 되돌아가 물고기나 잡는 초라한 어부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요21:1-3)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이 이러하니라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는 완벽하게 실패한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도 잃어버렸고 그 예수님께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시던 사명도 던져버렸고 물고기도 한 마리 잡지 못하는 최악의 실패자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베드로는 자기 한 사람으로 인해 나머지 제자들 여섯이나 타락시키는 참으로 안타까운 비극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요21:1-3)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이 이러하니라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가장 먼저 그들의 실패의 현장으로 달려오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빈 배를 만선으로 채워주시고 그들의 주린 배를 떡과 물고기로 채워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랑이심을 우리는 이렇게도 극명하게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들이 그렇게도 원하던 육신적인 모든 것을 다 충만케 채워주신 다음 특별히 베드로를 불러 새로운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위에서 언급해 드린 15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다시 한 번 더 기회를 주셨던 것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말입니다.
(요21:15-17)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천운으로 베드로는 가룟 유다와 달리 주님께서 주시는 이 기회가 마지막인 줄 알고 목숨을 내 놓고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고 선언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한 절의 말씀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주님께서 주시는 기회를 수용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가를 알 수 있는 소중한 대목입니다. 그것은 바로 순교입니다.
(요21: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는 말씀이 바로 그 생생한 증거입니다. 다시 말해 베드로는 목숨을 담보로 주님께서 주시는 마지막 기회를 잡았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랬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인생 여정에 마지막으로 주어지는 기회를 잡기 위해 목숨을 내어 놓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훗날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친히 예언해 주신 대로 순교하여 기독교 역사에 길이 남은 위대한 인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들이 도전을 받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주시는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소중한 목숨도 내어 놓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단순하게 기회를 잡는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기회를 잡기 위해서 때로는 목숨조차도 내어 놓아야 할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상대적으로 기회를 잡는다는 것이 어렵고 힘든 것입니다. 그래서 눈앞의 유익을 포기하지 못하는 가룟 유다와 같은 인간들이 부지기수인 것입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 예수님을 선택하지 못한 자들은 다 그런 것입니다.
로마의 핍박 때 12명의 성도들을 체포해서 마지막에 죽이는데, 추운 겨울날 어름 구멍 12개를 뚫어 놓고 각각 목 위의 머리만 남기고는 어름 속에 집어넣어 얼려서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때 그 옆에는 박해자들이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이제라도 예수만 배반하면 살려 준다고 꾀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위해 피로 사서 영생을 허락하신 예수님을 배반할 수는 없다.”고 일편단심 절개를 지켰습니다. 그때 하늘에서는 12천사가 12개의 면류관을 가지고 그들에게 씌워주려고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12명 중 한 사람은 너무나 몸이 얼려오니 견디지 못하고, “나 예수 버리겠으니 살려 달라.”고 했습니다. 물론 그는 어름 구멍에서 나와 살아났습니다. 그때 박해자들 중 한사람이 하늘을 쳐다보니 12개의 면류관을 가지고 내려오다가 한 천사는 섭섭하다는 듯이 눈물을 흘리면서 다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는 "나 예수를 위해서 죽겠소!"하면서 배교자가 버리고 떠났던 어름 구멍 속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면류관을 가지고 다시 내려와 씌워 주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