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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축복을 위하여! (2020년 5월 10일 주일낮설교)

내일의 축복을 위하여!

어버이주일

5. 10, 2020

本文:창세기22:1-12

說敎:崔仁根

 

갈대와 올리브 나무는 힘이라든가 절개라는 문제를 놓고 서로 말다툼을 하고 있었습니다. 올리브는 갈대에게 약한 바람이 불어도 굽실거리며 허리를 펴지 못하는 것이 힘 있고 건강한 자기에게 무어라고 대꾸한다는 것은 당치도 않은 일이라고 딱 잘라 말하였습니다. 얼마 안 가서 큰 바람이 불었습니다. 갈대는 바람이 부는 대로 순종하여 바람이 그칠 때까지 탈 없이 넘겼습니다. 그러나 올리브 나무는 자기의 힘을 뻗치다가 그만 가운데 토막이 꺾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올리브 나무와 같이 자신의 기질을 자랑하고 굽힐 줄 모르는 사람의 성품은 그리 아름다운 것이 못됩니다. 인생을 살아가노라면 거센 풍랑과 위기의 바람이 시시때때로 불어오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굽힐 줄 모르고 강하기만 하면 부러지고 맙니다. 요즘처럼 악한 바이러스로 집안에 오랫동안 갇혀 있게 되면 타협하지 못하고 강하기만 한 사람들은 부러지고 넘어지기가 쉽습니다. 이러한 성품은 결국 부모님께도 그 영향을 미쳐 천륜을 어기고 넘어지는 파렴치한 인간이 되고 맙니다. 지금은 과연 말세라 부모를 거역하거나 학대하는 불행한 일들이 너무나도 신문 사회면을 많이 채우고 있습니다. 지난 52일에는 58세의 아들이 79살의 어머니가 풍을 맞아 거둥이 불편해지자 손수레에 어머니를 싣고 나가 땅을 파고 묻어버리는 최악의 불효자가 나왔습니다. 그의 부인이 갑자기 시어머니가 보이지 않자 경찰에 신고를 하였고 함께 살았던 아들을 용의자로 추궁하던 끝에 사흘 전에 어머니를 땅에 묻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경찰들이 급히 그곳으로 달려가 땅을 팠는데 기적 같이 할머니가 아직도 목숨을 부지하고 있어 병원으로 옮겨 살려내기는 하였지만 天人共怒(천인공노)할 아들은 네티즌들의 뭇매를 맞고 감옥으로 끌려갔습니다. 중국에서 일어 난 사건이었습니다. 이것은 코로나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말세의 위기라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어머니를 모시기 힘이 들었다 해도 살아계시는 어머니를 어떻게 땅을 파고 묻어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오늘은 2020년 어버이 주일입니다. 우리는 과연 어버이를 어떻게 섬겨야 하겠습니까? 그리고 우리들이 어버이를 섬기고 섬기지 못함에 따라 우리들이 살아가야 할 앞날도 달라진다는 사실을 혹시 알고 계시는지요? 오늘은 성경 속에서 이에 관한 진리를 찾아보고 내일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진정한 축복의 길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부모님의 가슴을 아프게 한 야곱

(27:18-23)

야곱이 아버지에게 나아가서 내 아버지여 하고 부른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노라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야곱이 아비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청컨대 일어나 앉아서 내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의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이삭이 그 아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 그가 가로되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삭이 야곱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가 과연 내 아들 에서인지 아닌지 내가 너를 만지려 하노라 야곱이 그 아비 이삭에게 가까이 가니 이삭이 만지며 가로되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하며 그 손이 형 에서의 손과 같이 털이 있으므로 능히 분별치 못하고 축복하였더라

야곱은 연로하여 눈이 먼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형 에서인 냥 변장을 하여 에서의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야곱의 그 간악한 모습을 여과 없이 바라볼 수 있습니다. 형 에서는 팔에 털이 많은고로 그는 염소털로 자신의 팔을 위장하고 눈먼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사냥을 나간다고 인사를 하고 떠난 에서가 너무나도 빨리 사냥을 하고 왔기에 경험에 익숙하였던 이삭이 야곱에게 물었습니다.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고 말입니다. 이 때 야곱의 대답이 천인공노할 악한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고 말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감히 아버지를 속이려고 하늘의 하나님을 들먹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사람은 하늘의 하나님을 빙자하여 자신을 정당화시키는 사람이요, 상대의 약점을 이용하여 사기를 치는 인간입니다. 똑 같은 노동을 하는데도 영주권이 없다는 약점을 이용하여 임금을 적게 주는 업주들, 상대방의 약점을 잡아 폭로하겠다고 사기를 치며 돈을 갈취하는 놈들과 같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인간의 약점을 노려 사기를 치는 인간들은 사람이기를 포기한 가장 악질적인 범인들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아버지 이삭의 아들이, 다른 사람도 아닌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이 그렇게 하였다는 것이 참으로 오늘 우리들을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그의 인생 여정에 닥친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은 실로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몇 가지만 정리해 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31:40-42)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 내가 외삼촌의 집에 거한 이 이십년에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 사년, 외삼촌의 양떼를 위하여 육년을 외삼촌을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값을 열 번이나 변역하셨으니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의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공수로 돌려 보내셨으리이다 마는 하나님이 나의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감찰하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아버지를 속이고 외삼촌댁으로 도망갔던 야곱을 외삼촌은 이렇듯 속이고 또 속이며 야곱의 노동력을 착취하였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라반은 우리들이 익히 잘 아는 대로 야곱이 장가 들 때에도 7년이란 세월을 속이고 또 다시 7년을 더 일하게 하면서 야곱을 속였던 것입니다. 어쩌면 하나님은 이렇게도 정확하게 야곱에게 보상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야곱이 아버지 이삭만 속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속였습니다.

(28:20-22)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그가 외롭게 외삼촌댁으로 내려갈 때 그는 이렇게 하나님께 호소를 하며 서원을 하였던 것입니다. 먼 훗날 외삼촌댁에서 돌아올 때까지 하나님께서 이렇게 저렇게 지켜주신다면 바로 여기 벧엘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살겠노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가 에서의 칼날을 피하고 안전하게 돌아왔을 때 하나님께 드린 이 약속을 묵살해버리고 벧엘이 아닌 세겜으로 가서 살았습니다.

(33:18-20)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에 이르러 성 앞에 그 장막을 치고 그 장막 친 밭을 세겜의 아비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은 일백 개로 사고 거기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하였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밖에 없는 딸 디나가 그곳 세겜의 추장에게 강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야곱의 12아들들이 쳐들어가 그 추장과 그 모든 족속들을 다 죽여 버렸습니다. 전쟁이 선포된 것입니다. 야곱은 그곳에 처음 들어가 사는 사람이요 그곳 추장을 죽였으니 누가 이런 나그네들을 가만히 두겠습니까? 그래서 두려움에 떨던 야곱에게 하나님은 비로소 벧엘을 깨우쳐 주셨던 것입니다. 그때서야 하나님과의 약속을 깨달은 그는 야반도주 하듯이 세겜을 떠나 하나님과 약속했던 벧엘로 올라갔던 것입니다. 하지만 야곱의 고통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남도 아닌 자신의 아들들로부터 엄청난 고통을 당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12아들들 중에 유난히도 요셉을 차별나게 편애하였던 야곱은 결국 요셉의 형들의 계략으로 애굽으로 팔려가게 되고 짐승이 잡아먹은 것으로 보고되어 날이면 날마다 그 아들 요셉을 그리워하며 고통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37:33-35)

아비가 그것을 알아보고 가로되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먹었도다 요셉이 정녕 찢겼도다 하고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그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슬퍼하며 음부에 내려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 아비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야곱은 실로 속이고 속는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조상들 아브라함과 이삭으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은 받았지만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보상을 받아 그토록 속임을 당하며 눈물의 세월을 친히 보내야만 했던 것입니다. 이는 그가 스스로 고백한 그의 인생 역정을 돌아보아도 충분히 공감이 가는 부분입니다.

(47:9)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어쩌다가 야곱은 다른 사람도 아닌 아버지를 속이고 불효하다가 결국에는 이렇게도 험악한 세상을 보내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최소한 부모님을 섬기며 근심거리가 되지 않도록 인간의 기본 도리를 다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버지 이삭이 야곱에게 속아 축복을 하고난 후 진짜 큰 아들 에서가 찾아와서,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던 사냥을 하고 여기에 산해진미를 만들어 왔습니다. 어서 드시고 이 아들에게 축복하여 주소서.”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 얼마나 참담하고 기가 막혔겠습니까? 그리고 그 아들 에서가 동생에게 속은 줄 알고 동생을 잡아 죽이겠다고 날뛸 때 아버지로서 또한 그 얼마나 가슴이 미어졌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아들 야곱이 아버지를 속이고 불효하였기 때문에 일어나 무서운 고통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최소한 부모님을 고통스럽게 하는 자식만큼은 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거기에 따른 심판이 너무나도 무섭기 때문입니다.

목숨을 내놓은 순종으로 효성을 다 한 이삭

(22:9-10)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우리는 여기에서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학자들은 이 때 이삭의 나이를 17세로 추정합니다. 그렇다면 그는 당시 장가도 갈 나이요 완전 장성한 성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아버지 아브라함이 칼을 들고 자신을 내려치려는 순간까지도 도망가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고 있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도 이삭은 아버지에게 여쭈어 본 일이 있었습니다. 짐승을 잡을 칼과 짐승을 태울 나무는 준비 되었는데 정작 번제에 올려놓을 짐승은 없었기 때문에 이삭은 그 소중한 번제물은 왜 없느냐고 여쭈어보았던 것입니다.

(22:7-8)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여기에서 이삭은 비로소 번제 할 어린 양은 자기 자신이었음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자신을 잡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릴 것임을 알아차렸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아버지의 뜻을 그는 이루어드리기 위해 기꺼이 죽을 것을 각오하고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하늘 아래 땅 위에 이런 아들이 그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래서 많은 신학자들이 이삭을 예수님의 모형으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이삭과 같이 스스로 어린 양이 되어 십자가에서 자신을 바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곧 십자가에서 죽으심이 하늘의 하나님의 뜻이었고 예수님은 그것까지도 순종하셨던 것입니다.

(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렇듯 이삭은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 아브라함에게만 순종한 것이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께도 극히 순종한 사람이었습니다.

(26:1-4)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삭은 하나님의 이와 같은 말씀을 순종하여 비록 흉년이 들어 가족들을 먹여 살릴 길이 요원하였지만 그는 애굽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고 그 땅에서 농사를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그 땅에 복을 주심으로 100배나 얻는 기적을 체험하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순종하라는 말씀을 가장 많이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순종하지 못하면서 신앙생활의 흉내만 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삭처럼 순종하게 되면 우리들도 이삭과 같은 기적 같은 축복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고집과 나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부모님께 순종함으로 이삭과 같은 축복을 누리는 진정한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6:12-14)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시늉만 내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이삭과 같이 순종함으로 기적을 만들어 내는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도 명령하고 계십니다.

(3:20)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고 말입니다. 우리들이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을 하나님은 크게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기뻐하심으로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27살밖에 되지 않은 꿈 많은 젊은 청년이 정상적으로 꿈을 위해 노력하지 아니하고 사기를 쳐서 감옥에나 들락거리는 전과자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도 백화점에 들렀는데 그곳에서는 큰 행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얀 드레스를 입고 대형 그랜드 피아노 앞에서 연주하는 한 여인을 보고 한 눈에 반해버렸습니다. 연주가 끝나자 그는 자신의 명함을 내밀며 너무나도 연주에 감동을 받았다며 괜찮으시면 보답하는 뜻으로 커피라고 한 잔 사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명함을 한참 들여다보던 피아니스트는 흔쾌히 그러자고 하였습니다. 그 명함에는 “000 회사 사장이라고 찍혀 있었고 젊고 핸섬한 젊은 청년이 그녀 앞에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2억이 넘는 고급 외제차로 그녀를 정중히 모시고 찻집으로 가서 차를 마시며 수작을 걸었던 것입니다. 아무 것도 몰랐던 순진한 처녀는 그 청년과 사랑에 빠졌고 나중에는 결혼까지 약속을 하고 양가 부모님과 상견례까지 마쳤습니다. 남자가 데려온 부모는 너무나도 교양 있고 부잣집 어르신답게 품위가 있어보였습니다. 결혼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고 꿈같은 신혼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채 한 달도 되기 전에 신혼의 단꿈은 송두리째 날아가고 말았습니다. 클럽에 나갔던 남편이 그곳에서 젊은이들과 시비가 붙어 폭행죄로 입건이 되었는데 사기 전과가 여러 번 있었던 그는 가중처벌을 받아 15년의 형을 받고 투옥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외제차도 사장도 준수하던 부모님들도 모두가 다 가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피아니스트는 엄청난 상처를 입고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지경이었고 혼인은 파탄나고 말았습니다. 그 일로 아버지도 충격을 받고 쓰러져서 결국은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온 집안이 그 사기꾼 하나로 문자 그대로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장모님이었던 그 처녀의 어머니는 아무도 몰래 무려 15년 동안 그 사기꾼 사위를 옥바라지 하였습니다. 편지를 써서 용기를 주고 영치금을 넣어 건강을 챙겼습니다. 처음에는 비웃던 그가 5년이 가고 10년이 가도 변함이 없자, 감동을 받으며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침내 15년 만기 출소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덧 42살의 나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장모님은 70을 내다보게 되었습니다. 전과자라 취직도 할 수 없고 오갈 데도 없는 그에게 장모님은 트럭을 한 대 사서 푸드 트럭으로 장사를 하도록 주선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장모님도 함께 음식을 만들어 주며 도와주었습니다. 이에 큰 감동을 받은 그는 어떻게든 생모보다 더 자신을 돌봐 주신 장모님, 자기 때문에 온 집안이 다 망해버린 그런 장모님을 위해 죽을 각오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런 대로 장사도 잘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딸과 아들이 찾아 와서 모든 음식과 장비를 박살내고 집안을 망가뜨린 천하에 더러운 사기꾼에게 무슨 짓을 하느냐며 어머니를 끌다시피 데리고 가버렸습니다.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이 사기꾼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추스리고 나 같은 놈이 무슨 일인들 당하지 않겠는가?”하는 마음으로 다시 열심히 장사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어느 덧 세월이 지나가고 어느 날 문득 장모님이 생각이 나서 집으로 찾아가보았습니다. 하지만 집은 이미 팔려 주인이 바뀌어 있었고 장모님의 행방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시간이 날 때마다 장모님을 찾아 헤매다가 마침내 어느 양노원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단걸음에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누워 있는 장모님은 자기가 알고 있었던 그렇게 곱고 고상하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풍을 맞고 반신불수가 되어 일어나지도 못하는 초라한 할머니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침대 앞에 엎드려 몸속의 모든 물이 다 빠져나오도록 울었습니다. 부모도 버린 천하에 몹쓸 인간인 자신을 위해 15년을 하루같이 챙겨주시고 개인 노후자금을 다 털어 푸드 트럭을 마련해 주셨던 천사보다 더 고귀하신 분의 모습을 대하는 순간 눈물보가 터져버렸던 것입니다. 그는 야윈 장모님의 손을 붙잡고 굳게 약속하였습니다. “어머님의 남은 삶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찾아와서 제가 어머님을 모시겠습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낮에는 장사하고 밤에는 장모님을 찾아가 씻겨드리고 먹여드리고 보살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아들 딸로 외면해버린 그 어머니를 사랑 받은 엣 사위가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였더니 하나님께서 보내신 새로운 아들, 자신을 보살피는 효성어린 아들의 섬김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선언해 두셨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리라고 말입니다.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는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이고 우리들이 그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을 수 있는 귀하고 복된 길이기 때문입니다.

(7:23)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나의 명한 모든 길로 행하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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