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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나 된 것은! (2020년 5월 31일 주일낮설교)

나의 나 된 것은!

5. 31, 2020

本文:고린도전서15:9-10

說敎:崔仁根

 

우리가 내 힘으로 인생을 살면 그것은 은혜로 사는 것이 아니라 율법으로 살고 인본주의로 사는 것이지만.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품에 안겨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을 의지해서 살면 그때로부터는 은혜로 살고 하나님의 돌보아주심을 통해서 살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사는 것도 하나님께서 예비하시고 죽는 것도 하나님께서 예비하십니다. 흥하는 것도 망하는 것도, 성하는 것도 쇠하는 것도 다 지극히 선하신 하나님께서 예비하십니다. 이러므로 우리의 일상을 주님의 손에 완전히 맡겨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삶을 위하여 모든 것을 준비하십니다. 요나를 위해서 모든 것을 예비하신 하나님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위해서 혹은 풍랑을, 혹은 물고기를, 혹은 박넝쿨을, 혹은 벌레 한 마리를 준비하셨습니다. 이렇듯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녀들을 위해서도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을 예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고 따르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렇게 산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고전15:9-10)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는 말씀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의 이와 같은 믿음과 영적인 내면을 들여다 볼 수가 있습니다. 자신을 알고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아는 것이 바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사도 바울의 이와 같은 영적인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힘든 세상을 헤쳐 나가는 우리 모두의 롤 모델로 삼도록 해 보겠습니다. 말씀을 통한 풍성한 은혜와 회복의 은총을 덧입으시기 바랍니다.

나의 나 된 것은

(고전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사도 바울은 자신의 변화된 삶을 회고하며 자신이 살인마에서 변화를 받고 거룩한 하나님의 사도가 된 것을 깊이 감사드리며 그 모든 공을 하나님께 돌려드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매우 평범한 것 같지만 이러한 고백이 가장 소중한 하나님의 은혜에 화답하는 믿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실로 잘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요, 난지 팔일 만에 할레를 받은 전통 율법주의 자였습니다. 그리고 당대에 큰돈을 주고도 구하기 어려운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고 학문으로는 가말리엘 문하에서 수학한 최고의 학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러한 배경을 중심으로 숱한 악행을 저지르다 결국에는 스데반집사님을 순교하게 만드는 살인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7:57-58)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 이후로 그는 예수님 믿는 성도들을 잡아 죽이는 일에 솔선수범하였습니다.

(9:1-2)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 함이라

는 말씀처럼 말입니다. 그러한 그를 예수님께서 초자연적인 힘으로 거꾸러뜨리시고 회개시켜 하나님의 사도로 세우셨던 것입니다.

(9:3-7)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듯 사도 바울이야 말로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하지만 남이 보았을 때는 이렇지만 본인 스스로 그렇게 고백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타락한 인간의 본성은 교만하고 잘 되면 자기 탓이고 못 되면 남 탓으로 돌리는 죄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사도 바울은 자신이 이렇게 변화된 것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으니 오늘 우리들의 귀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자랑할 만 하던 모든 것들을 다 배설물과 같이 던져버리고 평생을 다 바쳐 은혜 주신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였던 것입니다.

(3:8-9)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과연 나의 나 됨이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는지요? 사도 바울과 같이 자랑할 만한 것이 있다면 그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육신의 자랑을 배설물처럼 버리고 신령한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나는 진정한 축복을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겸손이 은혜입니다

(고전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사도 바울의 옛 이름과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구약시대의 초대 왕 사울은 원래 매우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뜻하신 바가 계셔서 그러한 그를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게 하셨을 때 그는 자신은 가장 작은 지파에 소속된 보잘 것 없는 사람이기에 감히 왕이 될 자격이 없노라고 쓰레기더미 뒤에 숨어 왕 되기를 거절하였을 정도였습니다.

(삼상10:20-27)

사무엘이 이에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가까이 오게 하였더니 베냐민 지파가 뽑혔고 베냐민 지파를 그 가족대로 가까이 오게 하였더니 마드리의 가족이 뽑혔고 그 중에서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혔으나 그를 찾아도 만나지 못한지라 그러므로 그들이 또 여호와께 묻되 그 사람이 여기 왔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그가 행구 사이에 숨었느니라 그들이 달려가서 거기서 데려오매 그가 백성 중에 서니 다른 사람보다 어깨 위나 더 크더라 사무엘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의 택하신 자를 보느냐 모든 백성 중에 짝할 이가 없느니라 하니 모든 백성이 왕의 만세를 외쳐 부르니라 사무엘이 나라의 제도를 백성에게 말하고 책에 기록하여 여호와 앞에 두고 모든 백성을 각기 집으로 보내매 사울도 기브아 자기 집으로 갈 때에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된 유력한 자들은 그와 함께 갔어도 어떤 비류는 가로되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하고 멸시하며 예물을 드리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그는 잠잠하였더라

그는 왕이 되었으나 자만하지 아니하였고 왕의 자격이 없다고 일부 백성들이 비난하여도 그들에게 대항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자신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이 잘나서 왕이 된 것이 아니요 못났음에도 하나님께서 세워주셨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자세가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로다.”고 고백하는 겸손한 자만의 자세인 것입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왕위에 오른 자신의 모습을 망각하게 되니 결국 그는 오만하고 교만하다가 망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보편적으로 타락한 인간의 본연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저절로 겸손할 수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지 않도록 시시때때로 노력하고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하나님께서 친히 경고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는 말씀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교만하게 되면 모든 공로가 자신의 것으로 비취게 되고 겸손하게 되면 그 모든 은덕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교회에서 너무나도 예쁘게 자라나고 있는 어린 아이들을 늘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어린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과연 저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우리들 중 단 한 사람도 저와 같은 어린 시절을 거치지 않았던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저렇게 무능한 존재에서 오늘 우리들의 모습으로 성숙하고 성장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이 우리들의 모습으로 자랄 때까지 과연 누구의 공이 가장 컸겠습니까?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부모님이요 스승이요 함께 자라났던 시대적 환경이 아니었겠습니까? 그리고 그와 같은 부모와 스승과 환경을 주신 분이 또한 하늘의 하나님이 아니었겠습니까? 그러므로 자만하거나 교만하여 이와 같은 기본을 잃어버린 자는 하나님께서 가만 두지 않으시고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경고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렇게도 잘난 숱한 조건들을 다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單刀直入(단도직입)적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로다.”고 말입니다. 과연 그는 위대한 사람이요 사도 중의 사도요 이 땅에서 더 이상 쉽게 볼 수 없는 고귀한 우리들의 롤 모델인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체험한 사람은 바로 이렇게 고백하고 아름다운 영적인 모습을 당당하게 보여주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를 똑바로 알고 있었던 사도 바울은 실로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세상 그 누가 사랑하는 자신의 제자에게 자기 자신을 소개하면서, “내가 죄인 중에 괴수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서슴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을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딤전1:13-15)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고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을 만큼 겸손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체면 따위로 자신을 포장하지 않았으므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놀라운 기쁨과 진정한 자유를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기쁨을 누리며 주어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도 바울과 같이 진정한 기쁨을 누리고 살았던 사람도 없었습니다. 오죽하면 힘겹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항상 기뻐하라.”(살전5:16)고 명령하였겠습니까?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진정한 겸손자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인 것입니다.

옛날 영국 황제 루이스가 민정을 살피기 위하여 국내를 순시하는 도중에 어떤 동네 한 모퉁이에 있는 물방앗간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물방앗간에서 기뻐하며 부르는 노래가 들려와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황제는 노래 소리에 도취되어 듣고 있다가 물방앗간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곳에서는 물방앗간 노인이 일을 하면서 그렇게 기쁨으로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황제는 그 물방앗간 노인에게 다시 노래를 하나 청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노인은 노래하기를 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나도 역시 세상 사람이 부럽지 않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절로 나오네…….” 하면서 찬송을 불렀습니다. 노래를 경청하고 있던 황제가 말하기를 그러면 둘째 소절은 이렇게 불러보시게나. “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영국 황제 루이스가 날 부러워하네,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절로 나오네…….”라고 말이야!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이렇듯 제대로 은혜를 체험하고 고백하는 성도들이라면 하나의 소중한 삶의 열매를 맺히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그렇게 축복 주신 하나님께 화답하듯 영광을 돌려드리는 신실된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이에 관한 사도 바울의 고백 하나를 오늘 본문에서 엿볼 수 있는데 다시 한 번 더 그 말씀을 묵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고전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가, 그 고귀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로다.”고 고백하고 감사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라면 그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더 많이 수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늘 우리들에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더욱 주님의 일에 힘을 써야 합니다. 그런데 과연 어떻습니까? 오늘 우리는 과연 주님의 일에 더욱 힘을 쓰고 있습니까? 형식적으로 하는 척이나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무관심 한 채 오로지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만 노력하고 있습니까?

최근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로 교회가 문을 닫고 가정에서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제 점차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조금씩 문이 열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지난 주간 성도들을 중심으로 한 설문조사를 하였습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점차 문이 열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면 당신은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겠습니까? 아니면 그래도 집에서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겠습니까?”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응답자의 52%는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리겠다고 응답하였고 48%는 그렇지만 집에서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겠다고 응답하였다고 합니다. 과연 이렇게 응답하는 사람들이 과연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고 고백할 수 있을까요? 결코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맛본 사람만이 아는 것입니다. 결코 남이 받았다고 곁에서 받은 흉내를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은 과연 어떠한 자세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을 섬기며 충성하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자기와 같이 못난 자에게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직분 주신 것을 감사드린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딤전1: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라고 말입니다. 그는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직분 주심을최고로 고백하였습니다. 이는 그가 쓴 성경 가운데 첫 1-2절을 읽어 보면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그의 소중한 고백입니다.

(1:1-2)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고전1:1-2)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과 및 형제 소스데네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1:1-2)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은 함께 있는 모든 형제로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라는 말씀들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내려주신 직분보다 더 귀한 직분은 없습니다. 이것은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죽고 난 다음에도 돌비석에는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셨던 직분을 기록하여 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섰을 때도 그 직분을 들고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직분 주심을 깊이 감사드리고 그 직분을 지키기 위해 목숨이라도 아끼지 않고 헌신하였던 것입니다.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에 감사드리고 그 직분을 귀하에 여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직분에 합당하도록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특별이 작년 9월에 새롭게 직분을 받으신 여러분들은 더욱 더 분발하시기 바랍니다. 아직 직분 받은 지 1년도 안 되었는데 열정이 식어버리고 충성에 소홀히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어린 동생 같은 서리 집사들이 이번 바이러스 사태에도 불구하고 주일, 수요일, 금요일에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교회에 나와 예배를 준비하고 섬기는데 직분 받은 여러분들의 모습은 볼 수가 없어 안타깝습니다. 예배에 모범을 보이고 교회에 나와 손 볼 곳이 없는지. 이와 같이 어려운 때에 힘들어 하는 성도들은 없는지, 직분 받은 자들이 해야 할 일은 없는지. 깊은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솔선수범하여 섬기시기 바랍니다. 과연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거든 하나님께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그것도 죽도록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공로 없이 거저 받은 하나님의 은혜에 화답하고 보답하는 기본자세이기 때문입니다.

아기를 낳지 못하는 부부가 있었습니다. 아이는 너무나도 갖고 싶은데 가질 수가 없으니 결국 입양하여 아이 하나를 키우기로 하고 고아원을 방문하였습니다. 그곳에는 올망졸망 사랑에 굶주린 아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부부는 3살 미만의 아이를 입양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도착해 보니 저마다 입양 받고 싶어 눈에 소망이 가득 담긴 모습으로 자신들을 쳐다보고 있어 참으로 민망하였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 많은 아이들 중에서 하나만 데리고 갈 수 있겠는가 싶어서 말입니다. 그런데 저 먼 발치에서 하염없이 자신들을 바라보는 제법 큰 아이가 하나 있었습니다. 어쩐 일인지 부인의 눈에 그 아이가 자꾸만 밟혔습니다. 조용히 남편과 의논하였습니다. 저기 저 아이가 우리들을 쳐다보는 눈이 너무나도 간절한데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저렇게 큰 아이는 키워봐야 우리들을 진정한 부모로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부인은 자꾸만 걱정을 하였습니다. 남편은 부인에게 마음대로 선택하라고 결정권을 주었습니다. 망설이다 끝내 그 아이의 눈길을 피할 수 없어 그 아이를 입양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 아이는 15살이나 된 소녀였습니다. 그 아이가 20살이 되는 날 부모는 특별한 여행을 계획하고 딸아이의 20살 생일을 축하해 주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여행을 가다가 대형 교통사고를 당해 남편은 현장에서 즉사하고 부인은 머리에 충격을 받아 기억력을 상실해버렸습니다. 다행히도 딸은 뒷좌석에서 벨트를 매고 있어 가벼운 찰과상만 입었습니다. 병원에서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자신을 보고 네가 왜 우리 집에 있느냐?”며 구박하고 심지어는 집에서 쫓나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딸은 무려 20년을 결혼도 하지 않고 홀로된 엄마, 그것도 기억력을 상실해버린 그 힘든 엄마를 보살폈습니다. 기적 같이 20년이 지난 후에 조금씩 기억이 돌아와 지금은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거의 회복이 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어머니가 입양한 딸아이의 사랑을 인터넷에 올려 읽어보았습니다. 그 딸은 자신을, 다 컸다고 아무도 입양하지 않는 자신을 입양해 주시고 따뜻한 사랑으로 키워주시고 자신을 위해 특별한 여행을 가다가 세상을 떠나시고 다친 부모님을 잊을 수 없어 20년 동안 단 한 번도 불평하지 아니하고 모시고 섬겼다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제대로 된 사람됨의 도리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부모님과 스승, 하나님의 사랑을 순간도 잊으면 안 됩니다. 이런 분들이 없이 오늘 우리들이 결코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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