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24일 주일낮 설교 (너무나 황당한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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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Tuesday, 26 June 2012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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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황당한 고통
6. 24, 2012
本文:다니엘2:7-13
說敎:崔仁根牧師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을 만나고 사귀고 결혼하는 것은 보다 더 나은 인생 곧 행복과 기쁨을 만들어 내기 위함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만남이 오히려 고통이 되고 비극이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것만큼 인생에서 황당한 일도 없을 것입니다. 행복하자고 만난 사람이 슬픔과 고통의 요인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지난 목요일(6월 21일)자 조선일보에 참으로 안타까운 기사 하나가 실려 있었습니다. 전남대학교 명예교수였던 K씨(69세)가 자신의 집에서 숨진 지 한 달이 넘도록 아무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래전 맡아들을 미국으로 유학 보내고 그 때부터 기러기 아빠가 되었던 교수는 3년 전 은퇴하고 혼자서 살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유학 갔던 아들과 딸은 미국이 좋다고 미국에서 살고 있고 부인마저도 아이들이 있는 미국으로 가겠다고 떠난 다음 교수는 혼자서 쓸쓸히 살아가다 그렇게 혼자서 죽어 한 달이 넘도록 혼자 방치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잘못 만난 사람관계의 단편적인 모습일 것입니다. 잘 살아보겠다고 젊은 날의 모든 외로움을 온 몸으로 겪으며 자식과 아내를 미국까지 보내어 장래를 보장해 주었는데 결국 인생 끝자락에는 혼자 남아 죽는 순간에도 가족들은 알지조차 못했으니 이와 같은 인생이라면 무엇 때문에 외로움과 경제적인 어려움을 혼자서 다 짊어져야 했을까요? 이것이 바로 “황당한 인생”인 것입니다. 결국이 그렇게 쓸쓸하고 외로운 죽임일 줄 알았다면 그렇게 살아갈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희망이 있었기에 참고 견뎌 나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인생은, 아니 자식들과 아내는 아버지와 남편을 버렸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보다 더 황당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기가 꿈을 꾸고 잊어버려놓고는 전국에 술객들과 박사들을 다 불러 모아 놓고 자신이 꾼 꿈을 찾아내어 해석하라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하면 다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권력과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는 이렇게도 황당한 명령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의 단면입니다. 그러기에 이 종은 평생을 통해 사람은 믿을 대상이 아니라고 선포해왔고 오직 믿을 수 있는 유일한 한 분이 계시니 그 분은 살아계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시라고 전파해 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실적인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이러한 황당한 때를 대처해 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힘 있는 자들에게 또는 권세 있는 자들에게 오늘 본문의 불쌍한 사람들처럼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들에게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이처럼 황당한 고통을 이겨낼 수 있을는지? 오늘 본문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음 귀를 열고 말씀을 받아 삶 속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멋진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너무나 황당한 고통
우리는 매일같이 운전을 하고 다닙니다. 운전을 하다보면 나만 잘 한다고 사고를 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내가 아무리 고통법규를 잘 지키고 안전운전을 하고 가도 상대가 잘못하면 엉뚱하게 내가 사고를 당하게 되고 엄청난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미국에서 1년에 음주 운전으로 타인이 죽는 사람이 6만 명이 넘습니다. 아무리 운전을 잘하고 가도 술을 먹고 막무가내로 운전을 하다 사고를 내게 되면 이처럼 엉뚱한 사람이 죽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수요일(6월 13일) 인천에서 38살의 젊은이가 길 가에 현금수송 차량을 세워 놓고 차 뒤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데 50대의 아주머니가 운전 중 졸다가 그 차를 그대로 들이받아 일하던 젊은이가 두 다리가 잘려나간 채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너무나도 황당한 고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만 운전을 잘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상대가 이처럼 황당한 사고를 만들지 못하도록 방어운전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이와 같은 진리를 다시 한 번 더 확인하게 됩니다. 바벨론의 왕 느브갓네살은 어느 날 밤 아주 무서운 끔을 꾸게 됩니다. 얼마나 놀라고 악몽에 시달렸든지 자기가 꾼 꿈조차도 잊어버린 채 아침에 일어났습니다. 그 꿈을 알아야 하겠고 그 꿈의 해몽을 찾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 것도 생각나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전국의 술객들과 박사들을 다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어명을 내렸습니다.
단2:5 왕이 갈대아 술사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명령을 내렸나니 너희가 만 일 꿈과 그 해석을 나로 알게 하지 아니하면 너희 몸을 쪼갤 것이며 너 희 집으로 거름터를 삼을 것이요
단2:9 너희가 만일 이 꿈을 나로 알게 하지 아니하면 너희를 처치할 법이 오직 하나이니 이는 너희가 거짓말과 망령된 말을 내 앞에서 꾸며 말하여 때 가 변하기를 기다리려 함이니라 이제 그 꿈을 내게 알게 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그 해석도 보일 줄을 내가 알리라
고 마입니다. 이렇게 황당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꿈은 자기가 꾸고 타인으로 하여금 그 꿈을 말하라고 하니 참으로 가관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도 어이가 없어 전국에서 부름 받아 온 술객과 박사들이 왕에게 다음과 같이 아뢰었습니다.
단2:10-11 갈대아 술사들이 왕 앞에 대답하여 가로되 세상에는 왕의 그 일을 보일 자가 하나도 없으므로 크고 권력 있는 왕이 이런 것으로 박수 에게나 술객에게나 갈대아 술사에게 물은 자가 절대로 있지 아니하 였나이다 왕의 물으신 것은 희한한 일이라 육체와 함께 거하지 아니 하는 신들 외에는 왕 앞에 그것을 보일 자가 없나이다 한지라
하지만 왕의 추상같은 명령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 어떤 설명과 변명에도 왕은 한결 같은 명령만 내렸습니다. “내 꿈을 알아내고 그 꿈을 해석하지 못하는 자들은 모조리 닥 죽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들과 같은 박수와 술객과 박사들을 죽일 때 그곳에 포로로 잡혀갔던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도 함께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단2:12-13 왕이 이로 인하여 진노하고 통분하여 바벨론 모든 박사를 다 멸하라 명하니라 왕의 명령이 내리매 박사들은 죽게 되었고 다니엘과 그 동 무도 죽이려고 찾았더라
참으로 일이 황당하고도 이상하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느브갓네살 왕의 이와 같은 황당한 횡포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왕이 쓰는 시위대 장관 아리옥은 수하를 거느리고 칼을 들고 왕의 명령을 따라 이처럼 소중한 사람들을 죽이러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 다니엘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세 친구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와 함께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치 영화에서나 봄직한 또 다른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황당한 고통의 시기를 넘기고 왕의 총애를 입어 거대한 나라에 총리로 올라서게 됩니다. 이 이야기가 바로 다니엘서의 놀라운 기록들입니다. 이제 우리들도 우리 인생 속에서 실제로 경험하게 되는 이처럼 황당한 고통을 어떻게 뛰어넘고 전화위복으로 그 고통을 인하여 더 나은 세계를 열어가는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을는지?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 그 길을 함께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인생은 현실입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인생은 현실입니다. 그 말의 뜻은 언제든지 고통 주는 자가 일어나면 고통을 받게 되어있고 상처 주는 자가 일어나면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에서처럼 순식간에 문제가 해결되고 행복으로 반전되는 그런 엉뚱한 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고 김광석씨는 참으로 가슴에 와 닿은 노래를 많이 불렀습니다. 그가 부른 “어느 부부이야기”는 언제나 듣는 순간 가슴이 아련하고 찡해 옴을 느낍니다. 나이 많은 부부가 자식들을 다 키워놓고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지난날을 추억하며 부르는 노래가 바로 그 가사입니다. ‘곱고 희던 그 손으로 넥타이를 매어 주던 때... 막내아들 대학입학을 준비할 때 뜬 눈으로 밤을 세우던 일, 큰 딸 아이 시집보내던 일... 그런데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외롭고 힘든 그 먼 길을 어이 홀로 가려하오...’ 구구절절이 인생을 가슴으로 체험하고 부르는 노래처럼 그 노래를 들으면 인생 앞에 선 나약한 자신을 발견하고 그냥 숙연해 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인생 산전수전을 다 겪고 난 다음에 고백처럼 들려주는 이야기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노래를 부르고 있는 김광석이란 사람은 아직도 새파란 젊은 사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더욱 기가 찰 노릇은 역시 이 김광석씨가 부른 노래 가운데 나라의 부름을 받고 군에 입대하는 이야기를 노래한 것이 있는데... ‘부모님께 큰 절 하고 대문을 나설 때... 친구들아 군대 가면 편지 많이 보내다오. 훈련소에서 문득 거울을 보았는데 짧게 잘린 내 머리가 처음에는 우습더니 나중에는 무너진다 마음까지... 뒷동산에 올라가면 내 고향이 보일는지...’ 구구절절이 군대 가던 내 모습과 훈련소에서의 그 고통과 그립고 그립던 고향산천을 머리에 떠오르도록 구슬프게 노래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김광석씨는 군대에 가지도 않았고 방위 근무를 하였습니다. 무엇입니까? 다 가짜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노래나 드라마나 영화는 다 가짜인 것입니다. 영화관에서 스크린에 비취던 장면은 형편없이 비가 많이 내리고 우중충 하였는데 영화가 끝나고 극장 밖에 나오면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신 햇빛이 작열하듯이 사람이 만들어 놓은 모든 것들은 다 현실감각이 없는 가짜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하루 한 시간 살아가야 하는 우리 인생은 현실입니다. 누가 때리면 아프고 누가 죽이면 죽어야 하는 그런 현실입니다. 이러한 것을 혼동하면 안 됩니다. 조금 전에 이 종이 운전을 하되 안전 운전을 해야 하고 그렇게 안전운전을 하는 길은 곧 방어운전이라는 말씀을 드린 것도 이처럼 인생은 드라마가 아니고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결코 녹화도 안 되고 재방송도 안 되는 한 순간을 살아가는 현실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어릴 때 부모님과 선생님을 잘 만나 기초 교육이 잘 되어 있으면 어디에 가든지 칭찬 듣고 인생을 복되게 살아갈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늘 욕이나 먹으면서 천덕꾸러기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십대와 20대 때 열심히 공부하고 미래의 꿈을 향하여 노력하고 힘쓰면 평생을 안전하고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인생의 성공자가 될 수 있지만 그 때 놀러 다니고 못된 짓 하며 인생의 기초를 마련해 두지 못하게 되면 평생을 그렇게 허덕이며 입에 풀칠하기에 급급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인생의 주인은 인생을 만드신 하나님께 있음을 깨닫고 불꽃같은 눈동자로 살피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하나님을 요셉처럼 잘 섬기고 의지하면 반드시 그 하나님의 은총으로 험한 인생을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으나 경거망덕하며 사울 왕과 같이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게 되면 결국은 구원하러 오신 그 하나님 때문에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다 인생은 현실이라는 사실을 두렵게 만드는 요소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어려울 때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또한 그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믿음에 굳게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인물 다니엘은 어떻게 그처럼 황당한 죽음의 고비에서 살아날 수 있었는지? 계속해서 본문으로 돌아가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니엘은 믿음의 친구들과 함께 문제를 풀어나갔습니다
죽기 직전까지 갔던 위기의 다니엘은 느브갓네살 왕의 어명 앞에서 돌파구를 찾아 나서는데 그 첫 번째 방도가 믿음의 친구들을 찾아간 것이었습니다.
단2:17 이에 다니엘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그 동무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 랴에게 그 일을 고하고...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들이 잘 아는 대로 이 세 다니엘의 친구들은 동일하게 유다에서 포로로 잡혀 온 하나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한결 같은 우정으로 온전히 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겨 오던 대단한 믿음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왕이 직접 이들을 찾아와 신상 앞에 절하고 설득하고 그들을 죽음으로부터 구해내려고 애섰을 만큼 왕의 총애를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서 한 치의 타협도 없이 왕의 어명을 거절하고 왕이 만든 신상 앞에 절하지 아니하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당하게 왕보다 하나님을 더 믿고 의지함을 왕 앞에서 선포했던 인물들이었습니다.
단3:16-18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 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 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이 정도의 믿음이면 참으로 하나님을 감동시켜 드릴만한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불 속에 들어가서도 하나님의 기적 같은 은총으로 타지 않고 살아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이 이러한 위기의 때에 찾아간 친구들이 바로 이와 같은 소중한 믿음의 친구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은밀하게 혼자서 골방에 앉아 기도하고 금식하기를 원하시기도 하시지만 함께 합심하고 마음을 같이 하여 모이는 것을 또한 매우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도 친히 놀라운 한 가지를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두 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는 예수님도 함께 해 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마18: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다니엘과 같이 믿음의 좋은 친구들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같이 놀고 같이 어울릴 친구들은 있지만 함께 문제를 나누고 함께 손 마주잡고 기도할 좋은 친구는 참으로 얻기 어려운 시대에 우리들이 살고 있습니다. 오늘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에게 한 번 물어보십시오. “과연 나는 삶의 어려움을 함께 나눌 믿음의 좋은 친구를 몇 사람이나 가지고 있는가?”하고 말입니다. 다니엘처럼 믿음의 친구 세 사람만 가졌다면 여러분들은 진정 주님 앞에서 잘 살아온 성도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 밤을 꼬박 짓세우며 같이 문제를 놓고 기도할 친구 한 사람도 얻기 어려운 때에 지금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함께 기도할 사람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때입니다. 느브갓네살과 같은 너무나도 황당한 명령을 내려 죄 없는 사람들의 목숨을 찾는 이가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종은 지난 수요일 오후 낯모르는 한 여인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딸이 법정에서 자녀 양육권을 놓고 남자와 싸우고 있는데 딸이 아이를 양육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 좀 해달라는 요청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 여인이 한 말이 가슴에 남습니다. “저는 이 땅에서 같이 기도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염치 불구하고 목사님께 전화 드려 이렇게 부탁을 드립니다.”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언제 우리들의 평안하던 삶에 위기가 닥치게 될는지 알 수 없습니다. 언제 황당한 고통의 소용돌이 속에 서 있게 될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다니엘과 같이 평소에 함께 기도하고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좋은 친구들을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함께 기도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들의 삶에 고통의 그 날과 그 시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다니엘은 너무나도 황당한 고통의 문제에 봉착했을 때 믿음의 친구들을 찾아가 함께 의논하며 문제를 풀어나갔다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지혜롭고 덕이 있는 다니엘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니엘이 그 세 친구들과 어떻게 하였는지 계속해서 성경 속에서 그 진리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단2:17-18 이에 다니엘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그 동무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 사랴에게 그 일을 고하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이 은밀한 일에 대 하여 긍휼히 여기사 자기 다니엘과 동무들이 바벨론의 다른 박사와 함께 죽임을 당치 않게 하시기를 그들로 구하게 하니라
그랬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다니엘은 친구들과 함께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이 황당한 문제를 해결해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바벨론의 술객들과 박사들이 그들의 왕에게 고하였던 것처럼 한 사람이 자면서 꾼 꿈을 알아내고 그 꿈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이 땅에서는 있을 수 없고 육체와 함께 거하지 않는 신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랬더니 거짓말처럼 하늘의 하나님께서 친히 이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단2:23 나의 열조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이제 내게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우리 가 주께 구한바 일을 내게 알게 하셨사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고 주를 찬양하나이다 곧 주께서 왕의 그 일을 내게 보이셨나이다 하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평소에도 잘 알고 있었던 기도의 능력을 다시 한 번 더 발견하게 됩니다. 이처럼 황당한 느브갓네살 왕의 어명일지라도 하늘의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하고 우리들이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기도만큼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놀라운 축복도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면 응답해 주신다고 약속해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바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요14:13-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 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 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요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 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수 있고 기도하고 응답을 받는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 복 받은 성도들인 것입니다. 할렐루아!
지극히 작은 것 속에서도 주님께서 가득히 계시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죠지 뮬러는 5만 번이나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고 하는데 어두컴컴한 창고에서 열쇠를 잃어 버렸을 때에도 기도를 했습니다. '주님, 어린 고아에게 먹을 것이 필요합니다. 창고의 열쇠를 찾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손으로 창고의 밑을 더듬어 보니 그 열쇠가 있었습니다. 잠자리에 들면서도 이렇게 기도합니다. '내 꿈속에 주님이 나와 같이 계시옵소서. 내가 혹시 밤중에 생명이 떠난다 할지라도 주께서 나의 시체를 향기롭게 하시고 내 얼굴이 너무 더러워 보이지 않게 하옵소서. 꿈속에서도 주님을 찬송하게 하옵소서.' 자는 시간, 일어나는 시간, 이 벅찬 하루는 우리의 것입니다. 엄청난 것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장 바닥이나 극장 바닥같이 잡스럽고 허허로운 이 세계가 전부 나의 정신세계가 아니라 하나님과 나와의 인생의 사건이 모두 나의 세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님과의 세계는 그렇게 해서 날마다 푸르러 갑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우리들의 삶의 현실에서 당하는 너무나도 황당한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마주 앉는 가장 소중한 기회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들이 이처럼 하나님 앞에 나아와 도움을 요청하며 하나님과 마주 앉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이따금씩 황당한 고통을 주시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야만 미련한 인생들이 하나님을 찾아 나오기 때문입니다. 기도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다니엘과 같이 기도가 생활이 되어 무슨 일을 만나든지 승리하는 그런 멋진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어느 덧 2012년도도 절반이나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빠른 시간이 언제까지 우리 앞에 머물러 있을는지? 지혜자의 말씀대로 세월을 아끼며 시간을 절약해야 하겠습니다. 바로 그렇게 사는 길이 어떠한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과 함께 승리하는 삶인 것입니다. 믿음의 아름다운 친구들과 함께 손 마주잡고 기도하며 문제를 해쳐나갈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능력은 없을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는 사탄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자를 찾아 달려든다고 하였습니다. 무엇으로 우리는 저 사탄과 황당하게 죽음을 요구하는 느브갓네살 왕을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미리 미리 말씀과 기도로 준비하고 대비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업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다니엘과 같이 사자 굴에서도 살아나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와 같이 풀무불 속에서도 살아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시는 담대한 믿음으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有備無患(유비무환)이라고 했습니다. 잘 준비된 자만이 이 살벌한 마지막 때를 승리하며 살아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말씀으로 무장하고 기도로 하나님과 함께 하여야 하겠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지난 4개월 동안 10/120을 통해서 신, 구약 성경을 완독하신 분들이 37명이나 되었습니다. 이렇게 말씀으로 무장하고 주님을 바라보는 성도들이라면 무슨 일을 만나듣지 승리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모쪼록 오늘 이처럼 무장하고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로 영광을 올려드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 가족들에게 하나님만이 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2년 6월 24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