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이렇게 극복하라! (2020년 7월 12일 주일낮설교)
- Details
-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12 July 2020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 Hits: 476
위기, 이렇게 극복하라!
7. 12, 2020
本文:룻기1:1-14
說敎:崔仁根牧師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이 네덜란드를 점령하였습니다. 이때 헬리 그래머 목사가 시무하던 교회 교인들이 밤중에 은밀히 목사관에 모여들었습니다. “목사님 이럴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러자 그래머 목사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내가 누구인지를 대답하면 자연히 결정됩니다.” 그래서 모여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나는 크리스천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기뻐하는 일을 하자고 하여 유명한 DRM(네덜란드 저항운동)을 조직하였고, 이 DRM이 큰 활동을 하여 다시 나라를 되찾았으며 여기에 참여한 운동가들이 모두 전후 네덜란드 건설에 위대한 공헌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위기가 왔지만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위기를 나라에 공헌하는 기회로 삼고 헌신하여 역사에 길이 남는 위대한 인물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술주정꾼 아버지 밑에서 자란 두 형제 중 하나는 술주정뱅이가 되었고 다른 하나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처럼 술주정꾼이 된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왜 술주정꾼이 되었습니까?” 그러자 주정꾼이 된 아들이 대답하였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목사가 된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당신은 아버지가 술 마시는 것을 보고도 술을 배우지 않았습니까?” 목사가 된 아들도 대답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한자의 위기라는 말은 위태할 위(危)와 기회 기(機)자로 이루어졌는데 이는 위기란 나쁜 것만이 아니라 발전과 쇄신의 기회가 된다는 뜻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노라면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위기로 인해 인생을 끝내버리고 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위기를 잘 극복하고 오히려 승리하고 성공하는 기회로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난 9일 대한민국에서는 서울시장 박원순씨가 자살함으로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박원순은 서울시장에 3번씩이나 재선되었고 장차 유력한 대한민국의 대통령 후보로 물망에 오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결국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자살이라는 마지막 선택으로 끝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언제 어떤 위기에 봉착될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여기고 승리할 수 있도록 오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을 들을 귀를 열고 사는 날 동안 위기를 극복하고 승리하는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룻1:1-5)
사사들의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우거하였는데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유하더니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 두 아들이 남았으며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아내를 취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거기 거한지 십년 즈음에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두 아들과 나오미라는 여인을 아내로 두고 단란하게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던 엘리멜렉은 뜻밖의 위기를 맞아하게 됩니다. 흉년을 맞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흉년으로 양식이 없는 상태에서 양식을 찾아 모압으로 내려간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가장의 선택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와 같은 엘리멜렉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베들레헴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땅이었다면 모압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삶의 위기가 닥쳤다고 베들레헴을 떠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떠나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엘리멜렉은 위기가 닥쳤을지라도 하나님의 땅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베들레헴을 떠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께 구하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렸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엘리멜렉은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이 그저 사람의 방법을 따라 사람의 길로 떠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도 자신의 두 아들도 다 그곳 모압에서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위기를 통하여서 성도들의 믿음을 점검하시고 확인하시는 것입니다. 밤과 낮을 주시고 여름과 겨울을 주시는 하나님의 목적이 바로 성도들로 하여금 전천후적으로 단련 되고 훈련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룻1:3-5)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 두 아들이 남았으며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아내를 취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거기 거한지 십년 즈음에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두 아들들이 모압에서 모압여인을 취하여 아내를 삼았으나 똑 같이 자식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방여인을 통해 이방 자식 얻기를 기뻐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하나님의 중심을 믿음의 눈으로 깨달았던 나오미는 결국 하나님께서 자신의 남편과 두 아들들을 치셨음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룻1:13)
너희가 어찌 그것을 인하여 그들의 자라기를 기다리겠느냐 어찌 그것을 인하여 남편 두기를 멈추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인하여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이 놀랍도록 깨닫는 것은 하나님께서 비록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게 하셨으나 결국 그 흉년을 거두시고 새롭게 회복시켜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룻1:6)
그가 모압 지방에 있어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들었으므로 이에 두 자부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란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만약 엘리멜렉이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땅 베들레헴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이처럼 비참한 비극을 격지 않은 채 흉년의 때를 넘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배워야 합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베들레헴은 바로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머물고 계시면서 언제나 우리들을 기다리시는 축복의 땅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교회라는 베들레헴을 떠나 자신의 방식대로 인생을 살아서는 결코 안 되는 것입니다. 인생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살게 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처음도 나중도 다 자기 자신의 경험과 지식과 수단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안타까운 교인들을 너무나도 많이 봅니다. 그 길은 결국 엘리멜렉과 같이 우선은 지혜로운 것 같지만 결국은 슬픈 결과를 만들어내고 맙니다. 그래서 이삭은 똑같은 흉년을 맞았으나 자신의 방식대로 애굽으로 양식을 찾아 떠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100배나 얻었고 결국에는 거부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창26:1-2)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창26:12-13)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이 살아가는 인생이라고 우리 마음대로 베들레헴을 떠나 눈앞에 보이는 유익만을 쫓아가는 인본주의적인 삶을 살아가서는 안 됩니다. 힘들면 기도하고 기쁘면 찬송하면서 오로지 이삭과 같이 묵묵하게 이겨내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진실된 신앙생활을 지속해 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복을 주심과 같이 오늘 우리들에게도 복을 주시며 형통한 삶을 보장해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래전에 어떤 두 여인이 같은 시기에 헐리우드의 배우가 되었는데, 한 사람은 콜린 타운센드였고, 또 한 사람은 마릴린 몬로였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타운센드양은 예수님을 믿고 헐리우드를 떠나 선교하는 목사님과 결혼하였으나 마릴린 몬로는 계속해서 섹
스의 심벌로 헐리우드에 남아 있었습니다. 어느 날 몬로는 타운센드를 만나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영화배우가 되기로 했을 때 나는 결심했지. 그래서 꿈을 이루었지만 너무나 비싼 대가를 치루어야만 했어. 나는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고 불행한 사람이야." 그 후 어느 날 밤 몬로는 죽었으나 타운센드는 주님을 위한 섬김의 삶으로 보람과 행복을 누리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끝까지 참고 견디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창39:19-20)
주인이 그 아내가 자기에게 고하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넣으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요셉은 인생을 시작해 보기도 전에 너무나도 어린 나이인 17살에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는 배다른 형들의 손에 팔려 남의 나라 애굽에서 종살이를 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씨족사회로 살아가던 그때에 이렇게 머나먼 타국에서 종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곧 평생을 기약할 수 없는 엄청난 재난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것도 모자라 남의 나라 남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던 중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는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인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요셉은 이제 더 이상 희망이 없는 비참한 죄수로서의 삶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결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그렇게 만들어버린 형들이나 보디발의 아내를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절대적인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요셉의 놀라운 믿음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평범할 때 하나님을 의지하고 찾을 뿐 아니라 이처럼 최악의 위기에서도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섭리를 확신하고 흔들림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요셉과 같은 믿음으로 미래에 대한 소망을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롬8:24-25)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참고 견디는 덕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인간적인 경험과 이성의 판단에만 맡기고 그것으로 만족하고 절망한다면 그런 사람은 결코 믿음의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사람을 믿고 기대하지 말고 요셉처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객관적인 증거가 요셉처럼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고난의 터널 13년 만에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는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친히 그렇게 역사해 주셨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1990년 8월, 어느 시골의 고등학교 2학년 야구선수가 대학진학 문제로 학교와 갈등을 빚다가 고향을 떠나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소년은 돈이 없어 두 친구와 함께 자장면 한 그릇을 시켜 나눠먹어야 했습니다. 남산에 올라가 유치원생들이 싸온 김밥을 얻어먹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이제 다시는 고향에 내려가지 않으리라. 야구는 끝났다.”며 소년은 깊은 절망감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때 친구의 아버지로부터 “혈기를 앞세우면 항상 손해를 본다. 열심히 운동해서 실력으로 너희들의 생각을 보여주어라.”는 충고와 설득을 듣고 다시 고향에 내려가 운동을 계속하였습니다. 그 소년의 이름이 박찬호,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럽게 활약하고 있는 선수입니다. 그가 어릴 때 젊은 혈기를 참지 못하고 운동을 중단해버렸다면 지금의 ‘코리아 특급’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젊은 날의 혈기와 오기를 버리고 겸손하게 참고 견디며 미래를 기대하고 기다릴 때 기회는 찾아오는 것이고 축복을 만지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바른 가치로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욥1:21-22)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욥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생의 최악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하루아침에 7남3여가 죽었고 그 많던 재산이 날아가 버렸으며 자신의 강건하던 몸도 병들어 사경을 헤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위기도 이런 위기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도 담담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하나님께서 도로 가지고 가셨으니 그 하나님께 찬송을 올려드린다고 말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얼마나 연단을 받고 믿음에 굳게 서 있어야 이렇게 고백할 수가 있겠습니까? 과연 욥은 위기를 극복하는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 중에 단연 으뜸일 것입니다. 박원순씨가 욥처럼 믿음이 있었다면 그렇게 허망하게 자살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와 같은 욥의 믿음의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누리면서 건강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욥과 같이 가장 소중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서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의심하지 않고 끝까지 고귀하게 여기고 그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믿음의 가치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추구해야 할 최상의 믿음의 가치는 바로 이렇게 하는 데서부터 가능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고 믿는 믿음에서만 가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출4:11)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뇨 나 여호와가 아니뇨
라는 말씀에서 밝히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우리 인생은 우리들 스스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의 주권대로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최상의 길은 그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순종하고 그 길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믿음의 증거기이 때문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인정하고 따르는 것이 바로 하나님 중심의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보다 더 가졌다고 교만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가지지 못한 이웃들에게 빚진 줄 알아야 하고 설령 가지지 못했다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런 현실에서 또한 감사드리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지금은 믿음이 필요한 때입니다. 지금이 말세이고 말세에는 믿음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모쪼록 인생 여정에 기약 없이 닥치는 위기를 만날지라도 엘리멜렉과 같이 사람의 방법으로 해결하지 말고 욥이나 요셉과 같이 진정한 믿음으로 하나님과 결탁하여 轉禍爲福(전화위복)의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 내야 하겠습니다.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믿음을 따라 위기가 축복이 되도록 역사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귀하고도 복된 날 주일예배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에게 하나님만이 주시는 풍성한 축복이 충만하게 넘쳐나기를 좋으신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