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01일 주일낮 설교 (하나님께서 부르실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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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Thursday, 05 July 2012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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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7. 1, 2012
本文:누가복음14:15-24
說敎:崔仁根牧師
정신병원에서 의사들이 치료가 다 된 환자를 퇴원시키기 전에 그 환자를 다시 한 번 더 테스트 해 보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고 합니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조금씩 떨어지게 하고 그 물이 바닥에 흥건하게 고이게 될 때 환자에게 그 물을 닦으라고 시켜봅니다. 정신병이 완치된 환자라면 물이 떨어지는 수도꼭지부터 먼저 잠그고 그 다음에 흘러내린 물을 닦게 되나 아직 완치되지 못한 환자는 떨어지는 수고꼭지는 그대로 둔 채 떨어진 물만 계속 닦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 우리들의 신앙생활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인생의 가는 길이 오직 하나님의 뜻과 손 안에 있다고 믿고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이 아직 성숙하지 못하게 되면 교회에는 나오지만 인생의 모든 여정을 스스로 해결하려고 몸부림치며 고통가운데 빠져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조용히 묵상해 보면 우리는 결코 우리 스스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들을 그 잔치에 초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잔치 날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밭을 샀기 때문에 그 밭에 나가봐야 한다고 하였고 또 어떤 사림은 소를 샀기 때문에 그 소를 심험해 보아야 하니 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또 어떤 이는 장가를 들었기 때문에 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화가 나서 그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길거리의 사람들을 데려다가 잔칫집을 채우라고 명령하고 그처럼 자신의 잔치에 거절하고 오지 않은 사람들은 다시는 그 잔치에 참여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마지막 경고를 내립니다. 다른 성경 마태복음에서는 이보다 훨씬 더 강력한 심판을 기록하여 두었으니 “군대를 보내어 모든 사람들을 진멸하고 불을 질러 다 태워버리라.”(마22:7참조)고 명령합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들에게 무엇을 교훈하고 있습니까? 잔치를 배설하고 사람들을 초청한 사람은 예수님이시고 그 초청을 거절하고 돌아선 사람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요 그들이 거절한 이유들은 오늘 우리들의 일상들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우리는 이런 일 저런 일로 너무 바빠서 그 초대에 응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그 모든 바쁜 일들조차 끝이 나고 엄중하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마지막 판단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가슴이 답답한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월은 살같이 빨라 2012년도도 이미 절반이 다 지나가고 7월 1일 7월의 첫 주일을 맞았습니다. 우리는 과연 우리들에게 주어진 이 짧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말씀으로 돌아가 삶의 진정한 길을 찾고 되돌아보며 후회하지 아니하도록 깊은 깨달음과 결단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오늘 본문은 분명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부르시는 모습을 비유로 설명해 놓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이 땅에서도 부르시고 마지막 때는 하늘나라로 또 다시 부르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우리는 과연 어떻게 처신해야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 속의 사람들처럼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거절하며 살겠습니까? 아니면 당당하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순종하고 아브라함처럼 따라가야 하겠습니까? 그리고 마지막 이 땅에서의 삶을 다 하고 다윗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는 과연 어떻게 하겠습니까? 오늘은 이와 같은 중대한 사안들을 가슴에 놓고 진실된 믿음으로 응답할 수 있도록 말씀으로 돌아가 그 분명한 해답을 찾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언제 우리들의 삶이 다 할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부름 받은 인생은 축복 받은 인생입니다
우리들은 원래 하나님을 배신하고 사탄 마귀를 따라 영원한 죽음을 향해 달려가던 어리석은 죄인들이었습니다.
엡2:1-3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 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곳에서 불러주지 않았다면 이미 다 죽은 목숨들입니다. 사도 바울이 일생을 하나님께 바쳐 헌신하게 된 동기도 이와 같은 우리들을 아무런 조건도 없이 불러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롬8:29-30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 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이렇게 거룩한 주일을 지켜 하나님 앞에 나와 몸과 마음과 예물을 드리며 예배드리고 있는 것은 우리들이 이처럼 하늘의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잘났던 못났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우리들을 불러주셨을까요?
우리들을 부르신 목적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부르신 목적은 사도 바울이 정확하게 언급하여 기록해 둔 바와 같이 우리들을 의롭다 하시고 또한 영화롭게 하시기 위해서 부르신 것입니다. 죄 가운데 그냥 두면 결국은 그 죄 값으로 죽어 지옥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우리들인 줄 아시고 그 가운데서 불러 예수님을 믿게 하시고 그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의롭다 함을 얻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부르신 백성들을 끝내 영화롭게 하셔서 영원토록 천국에서 복락을 누리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부르신 것은 우리들에게 영원한 축복을 주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미화 1불 짜리 뒷면에는 Annuit Coeptis라는 말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하는 일을 번성케 하신다.”는 뜻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부르신 자들을 결코 모른 척 하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들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그 삶을 복되고 아름답게 인도해 주십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아브라함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을 우상의 땅 우르에서 부르실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다음과 같은 놀라운 축복을 보장해 주셨습니다.
창12: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 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고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들에게 주시는 놀라운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받은 성도들의 삶
단순 논리로 불 때 우리는 부름 받은 삶이 무엇인지 아브라함을 통해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셨던 내용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창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이것이 부름 받은 아브라함이 지켜야 할 도리였습니다. 이것을 요약하면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떠나야 할 것들이고 다른 하나는 지켜야 할 도리입니다. 보다 더 구체적으로 요약해 보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행동하는 신앙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이를 다시 신앙적인 용어로 정리하면 육신적인 유익을 떠나고 영적인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으로 돌아와 왜 부름 받았던 축복된 그들이 그 부르심을 거역하고 비참하게 망하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한결 같이 육신적인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밭을 사고 소를 사고 장가를 가는 것이 바로 육신적인 대표적인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때, 그렇게 육신적인 축복을 누리려고 할 때 그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한결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의 모습을 연상해 볼 수 있습니다. 한결 같이 그들도 육신적인 축복 앞에 서 있었습니다. 다음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제자들은 어떻게 반응하였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4:21-22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 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 고 부르시니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눅5:10-11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 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 을 취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마9:9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은 것 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
이상에서 우리는 한결 같이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자신들의 소중한 축복의 근거를 다 버려두고 예수님을 쫓았던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은 육신적인 것에 붙잡혀 하나님을 서운케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순종하고 쫓아가면 그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덤으로 보장하시고 충만하게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을 한 번 보십시오. 그가 그 모든 것들을 다 버려두고 하나님을 따랐지만 하나님은 그의 평생을 통하여 넘치는 축복으로 그의 영육을 채워주셨습니다. 그 자신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후손들에게까지 놀라운 축복으로 풍성케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비록 모든 것들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쫓았지만 그들보다 이 땅에서 더 복 받은 사람들이 누가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오늘 본문 말씀의 주인공들처럼 이런 저런 핑계를 대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수도꼭지에서 흐르는 물을 먼저 막아야 밑에 고인 물을 닦는 것이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흐르는 물의 근본은 놓아둔 채 아무리 밑에서 닦은들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은 근본문제를 해결 받기 위함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길이 때로는 어렵고 힘들고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손해 보는 것 같아도 결국은 하나님께서 근본을 해결해 주심으로 우리들에게 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린 아이와 같이 단순하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순종하고 육신적인 현실을 넘어 영적인 존재로 변화를 입을 때 비로소 사도 바울과 같은 위대한 역사를 이 땅에 만들어 놓을 수 있다는 사실을 순간도 잊지 말고 가슴에 새기는 그런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부르심을 받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부르시되 두 가지 서로 다른 방법으로 부르십니다. 오늘 말씀을 귀담아 잘 듣고 과연 우리는 어떠한 부르심을 받았는지? 정확하게 판단하여 부른 받은 몸으로서의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부르시는 방법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부르시는 방법에는 다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내적인 부르심이고 다음 둘째는 외적인 부르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부르실 때 내적으로 부르신 자들이 있고 외적으로 부르신 자들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가장 알기 쉽게 설명해 드린다면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은 한결 같이 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예수님을 쫓았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보면 그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는 도중에 포기하고 자기 길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를 성경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행1:17-18 이 사람이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예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 던 자라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 하 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
행1:24-26 저희가 기도하여 가로되 뭇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의 택하신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 할 자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하고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저가 열 한 사도의 수에 가입하니라
이상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발견하게 됩니까? 가룟 유다의 최후를 보는 것입니다. 왜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예수님의 제자로서 3년씩이나 예수님을 따랐던 자였는데 이렇게도 비참하게 그 인생이 끝나고 말았습니까? 그가 예수님을 버리고 자기 육신의 길로 가버렸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되 유다와 같이 그 부르심을 거역하는 자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가 바로 외적인 부르심을 받은 자입니다. 하지만 베드로를 한 번 보십시다. 그도 가룟 유다와 전혀 다르지 않는 어리석은 우를 범하였던 자였습니다. 주님께서 면전에서 친히 보시는 앞에서 그 주님을 3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하고 맹세하고 저주까지 하고 떠나버렸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 베드로를 부활하시자 말자 친히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다음과 같이 놀라운 역사를 이룩해 주셨습니다.
요21:15-17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 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 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 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 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 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여기에서 우리는 가룟 유다와 다른 베드로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유다나 베드로는 동일하게 예수님을 버리고 자기의 육신의 길로 떠나갔습니다. 하지만 가룟 유다는 스스로 목을 매고 죽도록 버려두셨고 베드로는 친히 다시 찾아가시어 새로운 사명을 맡겨주시는 특혜를 누리게 해 주셨습니다. 여기에서 베드로가 유다와 다른 것은 그는 내적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외적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언제든지 그 부르심을 거역하고 떠날 수 있고 떠나는 순간 그는 멸망하게 됩니다. 마치 마태복음 14장에서 예수님께서 친히 군대를 보내시어 그 성과 그 사람들을 불태워버리신다고 하신 심판의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내적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언제든지 새롭게 되어 베드로와 같이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르심을 받되 내적 부르심을 받아 베드로와 같이 끝까지 승리하는 성도들이 진정 복 받은 자들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열매를 보고 그 나무를 안다고 하셨습니다. 이 종도 40여년의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성도들을 보아왔습니다. 참으로 가룟 유다와 같이 처음에는 엄청나게 잘 섬기고 그래서 주님과 목사님에게 신임도 받지만 결국에는 배신하고 본연의 자기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그렇게 충실하지 못한 것 같아 보여도 끝까지 베드로와 같이 주님의 사명을 함께 감당하고 함께 울며 함께 웃으며 그렇게 선한 하나님의 사명을 길이 감당해 나가는 그런 성도님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부르심을 받았을까요? 오늘 예배드리는 분들 중에는 단 한 사람도 가룟 유다와 같이 외적인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없기를 진심으로 소원합니다. 베드로와 같이 다소 부족하고 모자라는 부분들이 있을지라도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 앞에 은총을 덧입고 끝까지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해 나가는 그런 멋쟁이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내적 소명을 받았던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은 놀라운 고백을 이 땅에 남겨 두었습니다.
행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 니하노라
고 말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어느 덧 2012년도도 절반이나 지나가고 7월 첫 번째 주일을 맞았습니다. 언제 우리들의 삶에 더 이상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살같이 빨리 지나는 시간을 후회하지 않도록 오늘은 우리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관한 말씀을 묵상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입니다. 진정 하나님은 우리들을 왜 부르셨을까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죄악으로 죽어야만 할 우리들을 복된 자들로 영생케 하시려고 부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 받을 영원한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육신적인 삶을 탈피하여 영적인 목표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가져야 하고 누려야 할 것은 결코 이 땅에 존재하는 그런 육신적인 것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들이 과연 어떠한 부르심을 받았는지 새삼 점검해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 중에 단 한 사람도 가룟 유다와 같이 외적인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비록 베드로와 같이 부족하고 모자라도 주님의 내적인 부르심을 받은 자가 되어 늘 훈련과 말씀과 기도로 새롭게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끝내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그런 멋들어진 일꾼들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렇게 복된 날 하나님께 귀한 예배로 영광을 올려드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하나님의 축복과 영생을 동시에 받아 누리는 그런 멋진 내적 부르심을 입은 성도들이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2년 7월 1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