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전하라! (2020년 8월 30일 주일낮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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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30 August 2020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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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전하라!
8. 30, 2020
本文:마태복음28:16-20
說敎:崔仁根牧師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쾌락이 행복을 갖다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하지만 쾌락이 행복을 제공해 주지 못합니다. 쾌락주의자인 바이런은 인생의 말년을 우울하게 보냈습니다. "인생은 벌레 같은 것이야. 늙음과 슬픔 앞에서는 쾌락도 무용지물이구나. 나는 지금 심히 외롭다."고 고백하였습니다. 행복은 물질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미국의 백만장자 제이골드의 유언은 참으로 비극적입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다. 끊임없는 물욕이 나를 불행의 늪으로 빠뜨렸다."고 탄식하였습니다. 명예도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세계를 정복한 알렉산더대왕은 싸움에서 승리한 후 막사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정복할 곳이 없단 말인가?" 하면서 말입니다. 명예와 재물을 모두 소유한 베콘스필드경의 탄식은 실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내 젊은 시절은 온통 실수 투성이었어. 중년은 투정과 욕심의 노예였지. 이제 남은 것은 후회뿐이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귀와 영화가 행복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생의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해답은 오직 하나 뿐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인간은 오직 애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신비로운 존재입니다. 성경 속 인물이나 이 땅에 존재하는 인물들 중에서 예수님을 위해 살고 헌신한 사람들이 후회하거나 낙심하거나 절망한 경우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자랑할 만 하던 모든 것들을 다 배설물과 같이 버리고 평생을 바쳐 주님께 헌신한 인물입니다. 그가 자신의 사명을 마치고 생의 마지막 순간에 선포한 내용은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딤후4:6-8)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이 세상 그 누가 이와 같이 놀라운 생의 마지막 순간을 선포해 두었습니까? 오직 예수님을 위해 일생을 바쳤던 사도 바울뿐이었습니다. 이러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전하는 복음을 위해서라면 단 하나 뿐인 생명도 아끼지 않을 정도로 헌신적이었습니다.
(행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과연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돈을 위해서 살 것입니까? 명예를 위해서 살 것입니까? 아니면 쾌락을 위해서 살 것입니까? 사도 바울과 같이 예수님을 전하는 예수님의 사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 순간에 사도 바울과 같이 평생 전했던 그 예수님께서 친히 주실 상을 기대하며 미련 없이 예수님께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우리 그렇게 하라고 지금 우리 예수님께서 명령하고 계십니다. “나를 전하라!”고 말입니다. 우리 주님의 이와 같은 명령은 오늘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복음에 빚을 졌기 때문입니다
(롬1:13-15)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신, 구약 성경에서 사도 바울과 같이 복음에 온전히 매여 평생토록 전도하며 산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는 당시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조건을 충분히 갖춘 빼어난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것들을 배설물과 같이 버리고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오직 예수님 전하는 일에만 평생을 다 바쳤던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산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그가 그 복음에 빚진 자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사도 바울은 “빚”에 관한 분명한 개념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로마교인들을 훈계 할 때도 이와 같은 빚에 관한 진리로 가르쳤음을 알 수 가 있습니다.
(롬8:10-14)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전도를 하고 예수님을 전해야 하는 이유가 그 예수님께서 주신 은혜와 사랑과 축복에 빚을 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이에 대한 진리를 선포해 두셨습니다.
(마10:5-8)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예수님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거저 받은 자는 다 빚진 자인 것입니다. 우리들이 복음을 전하며 살아야 할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들이 지금 신앙생활을 하고 남보다 더 잘 믿는다면 그 모든 것이 예수님으로부터 거저 받은 은혜요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되갚아야 하는 빚진 자인 것입니다. 우리들이 만약 복음 전하는데 게으르거나 무관심 한다면 우리는 빚진 자의 삶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 부끄러운 것입니다. 복음 증거는 빚 갚는 자세로 반드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빚 정신을 이어 받은 사도 바울은 빚을 갚는 길을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대변해 주었습니다.
(딤후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빚을 진 자들임으로 “나를 전하라!”는 말씀을 순종하여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타이타닉호가 침몰한지 4년 후 한 젊은이가 어느 모임에서 이렇게 간증하였습니다. “저는 그때 타이타닉호에 타고 있었습니다. 파편을 붙잡고 표류하는 내 곁으로 존 하퍼씨가 표류하며 다가 왔습니다. 그는 내게 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나는 ‘아니오.’라고 대답했지요. 그는 숨을 헐떡이며 매우 갈급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오. 그러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는 말을 마치고 파도에 휩쓸렸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파도에 잠겼던 그가 물위로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다시 묻더군요.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나는 역시 동일한 대답을 했지요. ‘아니오.’ 그러나 저는 존 하퍼목사의 마지막 피전도자였습니다.” 청년은 구출된 후 독실한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간증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죽음을 앞에 두고 마지막까지 영혼을 구원한 존 하퍼목사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습니다. 참 진리는 죽음 앞에서 더욱 찬란한 빛을 발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마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고전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우리들이 복음을 전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친히 “나를 전하라!”고 명령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예수님만이 진정한 소망이시며 생명이 되심을 전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불쌍하게 죽어가는 세상 사람들이 그 소중한 예수님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을 모른 채 죽어가는 것은 우리들이 복음전도라는 의무를 다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모든 것을 다 바쳐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는 것은 부득불 할 일이었기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억지로라도 하나님께서 명령하시기 때문에 해야만 하였다는 뜻입니다.
(행9: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는 우리 주님의 뜻을 사도 바울은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이것이 순종이요 이것이 믿음입니다. 자신의 존재의 목적을 정확하게 알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진정 복이 있는 신자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던져버리고 제멋대로 사는 자는 인생 끝에 반드시 후회하고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불러 맡기신 일에 대해 계산하자고 할 때가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25:24-30)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 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인생이란 엄벙덤벙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계산하고 결산해야 하는 순간이 이렇듯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 주신 명령을 순종하여 평소에 꾸준히 주님 맞을 준비를 하면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카터 대통령은 경건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는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나는 대통령이 되기 전, 매년 300명 이상을 전도했습니다. 하루에 한 명씩 거의 전도한 셈입니다. 그러다가 내가 대통령에 출마하면서 석 달 동안 유세기간에 무려 30만 명을 만났고, 30만 명과 악수를 하면서 제가 카터입니다 하고 나를 피알(PR)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릴 때 양심에 가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는 일 년에 300명 정도 밖에는 전도를 안 했는데 내 이름을 피알하는 데는 내가 석 달 동안에 30만 명과 악수를 하고 다녔으니 내가 과연 대통령을 하나님보다 더 좋게 여기는 것인가? 하나님보다 대통령이 더 좋은 것인가? 스스로 되묻게 되었고, 내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복음 전하는데 제가 최우선으로 여기고 그것을 고귀하게 생각하겠습니다. 이렇게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그는 깨끗한 양심의 믿음의 비밀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대통령 임기동안에 단 한 번도 주일을 범한 일이 없었으며, 그는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나는 백악관 집무실에서 지내는 때 보다 선데이스쿨에 나가서 어린 영혼들을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치는 시간이 가장 행복했습니다. 교회학교 교사 노릇이 가장 보람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위대한 대통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이 권세를 잡게 되고 큰 자가 되고 나면 믿음에 대해 소홀히 하고 교만해지기 쉬운데 카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그는 대통령 때보다 그 이후가 더 아름답고 칭송 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전 세계를 다니면서 집 없는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놀라운 일을 참 많이 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섬기는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지 그는 이렇게 온 몸으로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단12: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롬10:14-15)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이상의 말씀에서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상하시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보상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것이기에 마땅히 순종하고 따라야 하는데도 하나님은 거기에 상응하는 상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이와 같은 보상을 기대하며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만 합니다. 상을 들고 기다리시는 하나님 앞에서 그 상을 포기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한 번 하신 말씀을 반드시 지시키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복음을 위해 헌신한 자들은 반드시 놀라운 축복을 받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이란 바로 하나님의 이와 같은 상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학교에서도 상을 기대하는 학생들은 그 상을 기대하고 열심히 공부하나 상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학생들은 공부에도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이 영원하지 못하고 언젠가는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데 그 때 그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상을 기대하며 최선을 다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결국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해 주신다는 축복을 기대하며 “나를 전하라!”는 말씀을 순종하여 힘닿는 데까지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미국의 한 주일학교 교사가 골목길에서 놀고 있던 4명의 어린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습니다. 이 교사의 가르침에 감명을 받은 4명의 어린이는 교회에 출석해 작은 믿음을 조금씩 키워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로부터 30년 후 이 교사는 생일을 맞아 축하 전보 4통을 받았습니다. 그 4통은 과거 자신이 가르쳤던 골목길의 소년들에게서 온 것으로, 발신자는 놀랍게도 각계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들은 중국 선교사, 연방정부 은행총재, 미국 대통령 비서관, 미국대통령 허버트 클라크 후버였던 것입니다. 이렇듯 복음 증거는 전하는 사람에게도 축복이지만 전도 받은 사람들에게도 더 큰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