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는 축복입니다! (2020년 11월 29일 주일낮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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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29 November 2020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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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는 축복입니다!
11. 29, 2020
本文:시편50:23
說敎:崔仁根牧師
성경에서 가장 큰 축복은 아마도 “여호와 이레”의 축복일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들 앞서 가시면서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것을 미리 준비하시는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놀라운 축복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바로 다음과 같은 두 말씀에서 우리는 그 분명한 해답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창22:16)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창22: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두 단어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는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독자 이삭도 아끼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전적으로 순종하였다가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복 받는 비결은 이렇듯 아주 단순합니다. 아낀다는 것은 자기를 소중히 여긴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서는 양껏 쓰고, 하나님을 위해서는 아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잘못 아끼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 쓰는 것은 아끼고, 하나님을 위해 쓰는 것은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아끼는 사람입니다. 한국에 있는 어느 목사님의 목회 경험을 써놓은 것을 읽어 보았습니다. 한 번 들어보시고 과연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를 발견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난여름 휴가 때, 4가족이 일본에 있는 북해도를 다녀온 가정이 있었습니다. 5박 6일 일정으로 왕복비행기표며 숙식비며 관광비 기타 등등 여행경비가 700여만 원이 들었다고 합니다. 오랜만에 네 가족이 이곳저곳을 구경도 하고 단란한 시간도 보내고 정갈하고 맛있는 일본음식도 즐겼습니다. 토요일 돌아와 주일 예배에 참석했고 그날 그들이 드린 감사헌금은 1만원이었습니다. 그리고 헌금내용은 "여행을 무사히 마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적었습니다. 이 경우는 엄청나게 헌금을 아낀 사례입니다.
다른 가정이 있습니다. 작은 가내공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입니다. 경기도 나쁘고 시장여건도 나빠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무덥고 찌는 지난여름 1박 2일이라도 휴가를 갈까 생각했지만 마음의 여유도, 경제적 여유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4가족이 의논하고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그 대신 새벽기도를 나오기로 했습니다. 휴가를 갔을 경우 최소한의 경비를 따져보니 100만원은 들것 같았습니다. 다음 주일 그들은 감사헌금을 100만원을 드렸습니다. 헌금봉투에는 “주님, 어려워도 감사합니다.”라고 썼습니다. 이들의 경우는 자신을 위해서는 아꼈고, 주님을 위해선 한턱 쓴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언젠가는 앞의 사람보다 뒤의 사람에게 큰 복을 주실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으로" 그토록 엄청난 축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문제를 푸는 방법이 간단명료한 것처럼, 복 받는 방법도 간단명료합니다. “하라는 대로 시키는 대로” 따라 하면 됩니다. 그래서 감사는 축복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셨으니 시키시는 대로 감사하면 축복은 보장 받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시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시50:14-15)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입술로만 감사를 드리지 말고 제사를 드리라는 명령이 바로 그 정확한 해답이기 때문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는 이 말을 NIV에서는 “He who sacrifices thank offerings honors me."라고 번역해 두었습니다. 이것을 직역하면 “감사예물로 희생을 드리는 그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입니다. 더욱 오늘날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입각해서 번역을 한다면 “감사헌금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나 부모님이나 목사님을 향한 교인들의 감사표시 중에는 서너 가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마음과 생각으로 감사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지금까지 잘 지내왔어요, 부모님이 없었으면 어찌 오늘의 내가 존재할 수 있을까요? 우리 목사님께서 늘 우리 가정을 축복해 주시고 아이들을 귀한 말씀으로 잘 인도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해요…….”하면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말로서 표현을 합니다. “하나님, 너무 감사해요. 엄마 아빠 너무 감사해요. 목사님 늘 감사하고 있는 것 잘 아시지요?”하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돈으로 선물로 감사헌금으로 표현하는 경우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이 세 가지 중에 과연 어디에 해당되시는지요?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의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생각으로만 하지 말고, 말로만 하지 말고 부모님과 목사님께는 용돈이나 선물로, 하나님께는 감사헌금으로 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절기를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장자들을 다 죽이실 때 죽음을 넘기고 보호해 주신 유월절을 지키라고 하셨고, 하나님께서 햇빛과 비를 내려주시므로 추수를 잘 하였으니 맥추절과 수장절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절기를 지키러 나올 때 결코 빈손으로 나오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감사한 마음의 징표를 가지고 오라는 뜻입니다.
(출23:15)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한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칠일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지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는 그 모든 삶의 여정에 하나님께서 복을 내리시고 친히 인도하셨으니 그 하나님께 감사헌금을 드리라는 뜻입니다. 훗날 행위실천의 사도 야고보는 믿음은 행동으로 나타내 보일 때 비로소 믿음이 되는 것이지 행동하지 못하는 믿음은 그 자체로 죽은 것이라고 강력하게 경고하였습니다.
(약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약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는 오늘 본문의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진리입니다. 감사를 생각과 말로만 하지 말고 예물로 표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품고 이 분명한 행동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멋진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인간의 본분입니다
(시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롬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오늘날 교회에 다니는 성도들 중에서 “우리들이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는 가치관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는 과연 몇이나 있을까요? 아마도 매우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 이것은 고사하고 자녀들이 부모님의 수고와 사랑에 보답하며 살아야 한다는 인간 기본조차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인간 기본도 못하는 자들에게 하나님 앞에서 신자의 도리를 다하기 바란다면 그 자체가 모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세상은 지금 이렇게도 허무하게 변화되었고 오로지 자기 자신만의 유익을 위해서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배신은 기본이고 자기에게 유익만 있다면 인륜도 천륜도 헌신짝처럼 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앞서 인용해 드린 말씀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천명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들은 듣든지 듣지 않든지 무조건 하나님의 이와 같은 명령을 전해야 하고 성도들은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항복하며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듣고 순종해야 한다는 거룩한 부담을 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도 주셨던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수요일(11월25일) 세계적인 축구의 전설인 아르헨티나의 마라도나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제 겨우 60세라고 합니다. 그는 여러 여자들로 여러 아이들을 많이 나아 알려진 것만 8명이라고 하는데 자신의 본처가 나은 두 딸들과 불화가 심해 평소에도 단 한 푼의 유산도 주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하였었는데 갑자기 죽음으로 인해 유산을 놓고 치열한 법정싸움이 일어날 것이라고도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아무런 유언도 없이 죽었고 재산은 무려 9천만 달러나 된다고 하니 자녀들과 부인들이 전쟁할 것은 뻔 한것 같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우리 힘으로 돈을 벌고 천년만년 잘 살 것처럼 오만하게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돈 있고 권세 있으면 아나무인이 되어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되어 오만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 이레”의 축복이 없으면 결국 마라도나처럼 비참하고 허무하며 권세와 돈의 무의미함을 절절히 깨달으며 죽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인간의 도리를 다하며 살아야 하고 신자는 신자의 도리를 다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죽을 때 후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사는 최상의 길을 하나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어떻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섬길 수 있을까요? 그 가장 중요한 방법 하나가 바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시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이것이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선포해 두었습니다.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온갖 하나님의 축복으로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는 우리는 무조건 이와 같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려야 합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독자 이삭이라도 아끼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니 무조건 갖다 바치는 거룩한 순종을 실천해야만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도 거역하고 오직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고 돈과 권세만 있으면 행복하게 잘 살 줄로 착각한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운 마음으로 사도 바울과 같이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기 위해 범사에 감사하며 그 고귀한 말씀에 순종하는 멋진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남은 삶도 하나님의 특별하신 축복으로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감사에는 축복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시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성경을 연구해 보면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축복을 보장하시는 따뜻한 아버지이심을 알 수가 있습니다. 마땅히 성도로서,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인데도 하나님은 거기에 상응하는 축복을 주시고 그 축복을 자손대대로 보장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은밀히 주시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해 두시고 온 세상에 공포하시며 주시는 것입니다.
(출20: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린 아이에게는 엄마가 필요하듯이 오늘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행여 우리 마음이 교만하여 순간이라도 스스로 행복을 만들고 건강하게 잘 살아갈 줄 기대한다면 빨리 회개하고 어린 아이가 엄마를 간절히 찾는 것처럼 우리들도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사모하는 진정한 신앙인으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사모하는 영혼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시107:9)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들을 반드시 축복으로 보상해 주십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축복은 바로 “구원”입니다. 힘겨운 우리 인생 여정에서 크고 작은 수령과 고통에서 하나님의 구원이 없다면 우리는 영원히 망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욥의 고난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 중에서도 건강까지 잃고 잿더미 위에 앉아 기와조각으로 근지러운 피부병을 긁으며 극심한 고통으로 울부짖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구원의 여망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의 사랑하는 친구들마저도 그에게는 고통만 더해 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은 찾아와 주셨고 상상도 하지 못했던 그에게 진정한 구원의 손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욥42:12-17)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시니 그가 양 일만 사천과 약대 육천과 소 일천 겨리와 암나귀 일천을 두었고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낳았으며 그가 첫째 딸은 여미마라 이름 하였고 둘째 딸은 긋시아라 이름 하였고 셋째 딸은 게렌합북이라 이름 하였으며 전국 중에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그 아비가 그들에게 그 오라비처럼 산업을 주었더라 그 후에 욥이 일백 사십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대를 보았고 나이 늙고 기한이 차서 죽었더라
는 축복과 함께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욥과 같이 재난과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체험해야 하겠습니다. 이처럼 상상을 초월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만 하겠습니다. 우리 인생은 결코 내 힘만으로는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룻밤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너무 스스로를 믿고 의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결코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 자신의 유익만을 챙기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네가 편안해야 내가 편히 잘 수 있다는 단순 논리라도 깨닫고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 신자의 가치관을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모든 범사에 감사드릴 때 우리들의 삶은 하늘의 하나님께서 친히 챙겨주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감사하는 자들에게만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