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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에! (2020년 12월 27일 주일낮설교)

마지막 날에!

송년주일

12. 27, 2020

:요한복음17:20-23

說敎:崔仁

 

고아로 자라고 많이 배우지도 못한 채 시집을 간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시가에서는 독자 아들을 홀어머니가 키웠고 건물주로 제법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근본도 없고 배우지도 못하였으며 부모도 없는 그런 사람을 며느리로 맞을 수 없다고 극구 반대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끝내 그 여자와 결혼을 하였고 아들까지 낳았습니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단 한 푼도 도와줄 수 없다고 선언하고 자신의 빌라에서 신혼을 시작한 아들네에게 월세를 꼬박꼬박 받아갈 정도로 인색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신혼이지만 경제적으로 너무나도 어려웠습니다. 첫 아이를 낳고 일을 갔다 오는 길에 군고구마를 파는 포장마차 앞을 지나게 되었는데 달콤한 군고구마 냄새에 너무나도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여 들어갔으나 아이의 분유 값도 없는데 싶어 도로 나왔습니다. 잠시 후 주인 할아버지가 봉지 가득히 군고구마를 담아서 그 여인에게 건네주었습니다. 깜짝 놀라 사양하자 할아버지는 괜찮아요, 어차피 이제 일을 마감하려고 했는데 나는 이거 질려서 못 먹어요. 그러니 부담 없이 가지고 가서 먹어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따뜻한 할아버지의 뜻밖의 사랑에 감동이 되어 눈시울을 붉히며 집으로 돌아와서 남편에게도 주고 자신도 먹으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군고구마포장마차가 사라지고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걱정이 되어 수소문하여 그 할아버지 집을 찾아갔는데 몸이 힘들어서 이제 그만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여인은 할아버지, 그러시다면 군고구마기계를 저에게 파세요. 제가 한 번 해보고 싶어요.” 하니까 그렇게 하시오. 대신 팔지는 않을 테니 그냥 가지고 가서 잘 해 보시오. 그리고 고구마는 우리 밭에서 많이 나오니 나에게 와서 받아 가시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남의 집에서 아기 맡겨 놓고 일하는 것 보다 빌라 앞에서 군고구마를 파는 것이 훨씬 수입이 더 좋았습니다. 하지만 건물주인 시어머니가 알고는 고구마기계를 빼앗아 가버리고 허락도 없이 남의 집 앞에서 장사를 한다고 야단야단을 쳤습니다. 착한 여인은 할아버지가 혼자서 몸까지 병들어 계시니 감사한 마음에 정성껏 죽을 끓여 대접해 드리고 힘을 다해 챙겨드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는 이 여인에게 봉투 하나를 건네주었습니다. 그것은 그 할아버지의 전 재산목록이었습니다. “내가 이제 얼마 못 살 것 같은데 이것을 받아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잘 살아보시오. 내 땅이 수 만평은 되니 아이와 함께 살아가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거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얼마 안 되어 그 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그 착한 부부는 자신의 아버지인 냥 장례를 잘 치루어 드렸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 되어 건물주로 그렇게 독하게 살던 시어머니가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졸지에 가난뱅이 이 부부는 할아버지 재산과 어머니 재산을 상속 받아 거부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한 치 앞도 모르고 살아가는 인생 말입니다. 우리는 과연 어떻게 인생을 마감하고 그 마지막 순간을 맞아야 하겠습니까? 오늘은 올 해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이렇듯 우리 인생에도 마지막 날이 오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다가 인생의 마지막을 맞아야 하겠는지, 잘 듣고 잘 배워서 마지막 날이 행복한 그런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17:21-23)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우리들의 영원한 삶의 표준은 언제나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아무리 우리들에게 좋은 길인 것 같이 보여도 주님께서 원하지 않으시면 포기해야 하고 반대로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길이라도 예수님께서 원하시면 가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들의 삶의 주인이시고 우리는 그 분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십자가를 앞에 두고 죽음을 맞아하시기 직전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되 우리들이 하나가 되도록기도드리고 계십니다. 하나가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오늘 날 가정도 교회도 사회와 국가도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두가 제각각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랑이 메말라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남의 유익보다는 자신의 유익을 더 구하고 남의 행복보다는 오로지 자기 자신의 행복만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끈끈하게 하나가 되지 못하고 모래알처럼 흩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던 사도 바울은 극단적인 표현으로 사랑 없는 모든 것은 헛것임을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천명해 두었습니다.

(고전13:1-3)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앞서 우리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가난한 여인이 군고구마를 사먹으러 왔다가 돌아서는 모습을 본 할아버지는 측은지심의 사랑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生面不知(생면부지)의 그 여인에게 따뜻한 군고구마를 따뜻한 사랑으로 전해주었던 것입니다. 그 사랑을 알았기에 홀로 죽어가는 생면부지의 할아버지를 제 아버지마냥 정성을 다해 섬기고 장례까지 잘 치루어 드렸던 것입니다. 인생 마지막 가는 길에 이처럼 훈훈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나눌 수 있다면 이것보다 더 값진 삶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지만 건물주일 만큼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슴에 사랑이 없으니 남도 아닌 자식들을 그렇게도 힘들게 하고 혼자 쓸쓸히 죽어갔으니 그 얼마나 초라하고 비참한 인생의 마지막 모습입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깨달아야 합니다. 조건 없이 따뜻한 사랑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사랑으로 마지막 날을 맞아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사랑은 얼음장 같은 사람의 마음을 녹이는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들에게 사랑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고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들에게 사랑을 보여주셨고 지금 십자가에서 죽으심도 우리들을 사랑하시는 사랑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사랑으로 예수님을 닮고 사랑으로 예수님을 보여 주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부디 이 쓸쓸한 연말과 연시에 따뜻한 사랑으로 예수님의 향기를 발하시기 바랍니다.

사명을 완수해야 합니다

(17:4-5)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어야 하심은 죄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힘이 없고 연약하셨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 하늘의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도록 사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칼과 몽치를 들고 예수님을 강도를 잡듯 잡으러 왔을 때 그 악랄한 모습에 격분한 베드로가 칼을 빼들고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깎아버렸습니다. 이 얼마나 예수님 편에서 보면 속 시원한 일입니까? 하지만 예수님은 그러한 베드로를 오히려 책망하셨습니다.

(26:51-54)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에 하나가 손을 펴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 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하시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시기 위해 그 모진 십자가도 기꺼이 짊어지시고 죽으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정신으로 무장 되었던 사도 바울은 그 예수님의 가신 길을 그대로 닮아 자신의 소중한 생명이라도 다 내어 놓고 예수님께서 맡기신 사명, 곧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마치기까지 최선을 다했던 것입니다. 그는 그렇게 그 소중한 생명을 단 하루도 자신의 것이라 여기지 아니하고 날마다 그 날이 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목숨을 걸고 사명을 완수해 나갔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종말장인 마태복음 25장에서 달란트 비유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각각 나누어 주었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은 단 한 사람도 예외가 없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하시려고 우리들을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선택하시고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죽기 전에 우리는 그 사명을 완수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그 사명 감당하려고 오늘 우리는 어떻게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까? 거의 대부분의 교인들이 자신의 사업, 자신의 직장에는 목을 매지만 주님의 사명에는 관심조차 없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죽으면 그렇게 목을 매었던 세상의 사업장과 직장이 주님 앞에 섰을 때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와 두 달란트 받았던 자와 같이 사명의 열매를 들고 주님 앞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열매 없는 한 달란트 받았던 자와 같이 주님 앞에 서게 되면, “이 악하고 게으른 종을 바깥 어두운 곳에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는 엄중한 심판을 면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자신만을 위해 살고 주님의 일에 무관심한 자들에게는 더 무서운 심판도 가해지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모든 소유를 남겨둔 채 순식간에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실로 끔찍하고 무섭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을 한 번 더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2:16-21)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렇듯 사람의 마지막 순간이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모르면 담대하게 됩니다. 하지만 알면 두렵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깨달아 우리들을 부르시고 자녀 삼아주신 하나님의 속 깊은 뜻을 깨달아 부름심에 합당한 열매를 맺히는데 우리들의 삶을 투자해야 하겠습니다.

하늘상급을 기대하며 살아야 합니다

(2:5-11)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딤후4:6-8)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도 기꺼이 감당하셨던 것은 잠시 후 부활하시어 이처럼 하늘 영광가운데 계시면서 천하를 호령하실 하나님의 권능을 받으실 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이 세상에서 결혼조차도 하지 않고 온전히 생명까지도 내어 놓고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 헌신하였던 것은 이처럼 하나님께서 친히 주실 면류관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들이 마지막 날에 이 세상을 떠날 때 이처럼 하나님께서 친히 주실 상을 기대한다면 그 죽음의 순간이 얼마나 설레며 아름다운 순간이 되겠습니까? 죽는 것이 영원히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신령한 삶의 시작이기 때문에 그렇게 소중한 의미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제대로 된 믿음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상을 바라고 기대하는 것이라고 단언하였던 것입니다.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도 상을 받는 것을 기대하고 좋아합니다. 그것은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원히 지워지지 말라고 그 단단한 크리스탈에다 새겨서 줍니다. 얼마나 영광스럽고 자랑스럽습니까? 하지만 이 세상 떠날 때 그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결국 주인공이 떠난 그 모든 상패나 감사패는 땅에 남은 자들에게는 아무런 유익이 없게 되어 그렇게도 소중하게 간직하였던 그 모든 것들을 결국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의 유품들은 남은 사람들에게 더 큰 슬픔만 되기 때문입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우리는 영원히 살 하늘나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가장 소중하고 값진 투자를 바로 그곳에다 해 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하려면 이 땅에 살아 있을 때 몸도 마음도 재물도 아끼지 말고 하나님께 드리고 헌신하고 투자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들이 죽어야 하는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116:15)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

(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슬프지만 우리 모두는 단 한 사람도 예외가 없이 마지막 날을 맞아야만 하는 유한한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거의 모두가 이와 같은 엄중한 사실을 잊어버리고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어리석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성공적인 사람은 죽을 때 잘 죽어야 됩니다. 마지막 날을 앞둔 우리들은 힘을 다해 꼭 3가지는 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하는 것이고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고 하늘상급을 기대하며 사는 것입니다. 부디 믿음이 있고 지혜가 있는 성도들이 되어 이 소중한 진리를 가슴에 품고 오늘이 내 생의 마지막 날이라는 정신으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인정 받고 사랑 받는 멋진 인생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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