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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구원 계획 (2021년 1월 10일 주일낮설교)

하나님의 구원 계획

선교주일

1. 10, 2021

:요나3:1-10

說敎:崔仁根牧師

 

아버지가 한국 선교사였으므로 서위렴(WILLIAM SHOW 2)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한 아이가 평양에서 태어나 16세까지 그곳에서 자랐습니다. 그 이후 미국으로 돌아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미국 해군사관학교의 전신인 해안 경비사관 학교를 졸업해 그 학교의 교관이 되었습니다. 한 때는 한국에서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다음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 과정이던 때에 6개월을 남겨 놓고 6.25가 발발했습니다. 그는 자원해서 미 해병사단 수색대로 한국전에 참전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불행하게도 1950922일 서울 탈환 작전 중 서울 은평구 녹번리에서 적탄에 맞아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평상시 한국에서 선교사로 일하기를 원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장차 자신이 선교사로 헌신 할 한국을 위해 참전을 자원하였던 것입니다. 1992624일 은평구 응암1동 녹번 제2놀이터에 작은 기념비 하나가 세워졌습니다. 서위렴군의 아름다운 전사를 기념하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한 젊은이의 아름다운 희생과 사랑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는 것입니다. 선교란 희생이 없이는 결코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입니다. 선교는 고귀한 생명을 구하는 하나님의 최고의 관심과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놀라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려야 할 요나는 하나님의 그 고귀하신 뜻을 저버리고 자신의 뜻대로 행동하다가 뜻하지 않는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들이 함께 읽은 요나서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요나가 이토록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돌아선다고 해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흐트러지거나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루어지고 끝내는 죽어가던 불쌍한 백성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2021년 선교주일을 맞아 배워야 할 소중한 교훈이 있습니다. 오늘은 요나서를 통해 내려주시는 우리 하나님의 값진 교훈을 가슴으로 받고 부족하나마 선교의 사명을 받은 성도답게 최선을 다해 우리들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해 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웃에게 유익을 주며 살아야합니다

(5:13-16)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1:4-6)

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 폭풍이 대작하여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된지라 사공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선장이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니라

하나님은 죄악 중에서 자기들의 유익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던 우리들을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선택하시고 부르시어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이는 이 세상에서 빛과 같이 소금과 같이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가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부름 받은 성도들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소금처럼 부패한 세상을 새롭게 회복시켜야 하고 캄캄한 이 세상을 반딧불과 같이 밝히면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교회는 매년 마지막 날에 드리는 송구영신 예배 때 정성을 들여 우리교회에서 꿈을 안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장학금을 마련하기 위해 특별 예물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감사한 것은 이 종의 마음이 감동이 될 만큼 혼신을 다해 이 복된 일에 참여하신 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 종이 우리 교인들의 형편을 그 누구보다 더 잘 아는데 어떤 분은 1만 불을, 어떤 분은 1천불을, 또 어떤 분은 코로나바이러스로 장사도 못하고 무지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헌금을 해 주셨습니다. 심지어는 유학생이 3백 불을 헌금하기도 하였습니다. 환경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뚜렷하게 보였기 때문에 감동을 받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렸습니다. 하나님만이 아시는 그 귀한 손길들 위에 하나님께서 풍성한 축복을 더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도록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각용 소중한 축복들을 아낌없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요나를 보면 참으로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감히 하나님의 지상명령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피해 도망을 가는 대담한 행동도 안타까운데 남들이 죽을 고생을 하며 풍랑을 해쳐나가려고 안간힘을 다 하고 있는 동안에도 배 밑창에서 태평스럽게 잠을 자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1:1-5)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선가를 주고 배에 올랐더라 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 폭풍이 대작하여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된지라 사공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요나 때문에 일어난 광풍으로 그 비싼 배가 깨어지기 직전에 이르렀고 어떻게든 광풍을 피해보려고 배 안에 있던 값진 물건들을 바다로 던져버리는 최악의 경우를 맞게 된 모습을 바라보면서 오늘 우리들의 삶에는 과연 이러한 어리석은 모습이 없을까? 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요나의 모습이 바로 오늘 우리들의 자화상이기 때문입니다.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면 어떤 이유에서든 우리는 남에게 피해를 주고 고통과 아픔을 주며 그렇게 나만의 유익을 위하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일들이 신선한 교회 안에서도 비일비재 하는데 세상에서야 오죽 하겠습니까? 보이스 피싱을 당하여 노후자금으로 평생 모아 놓았던 돈을 몽땅 사기 당한 노인이 자살하는 경우나 직장에서 따돌림 당하고 모함을 당하여 그 억울함을 감당하지 못한 채 삶을 포기하는 불쌍한 사람들이 우리 주면에는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이렇게 선량한 이웃들에게 상처와 고통을 주게 된다면 어떻게 그들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 반대로 도와주고 위로해 주고 사랑해 주면서 지친 영혼들을 일으켜 세우고 소망을 주어야 그들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요나를 통해서 정신이 번쩍 나도록 배워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도의 대상들인 우리 이웃들에게 아픔과 고통을 주지 말고 위로와 도움을 주는 아름다운 삶으로 전도의 기초를 만들어가야 하겠습니다. 사람이 살아간 삶의 발자취에는 어떤 모양으로든지 그 흔적이 남기 마련입니다. 요나와 같이 이웃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든지, 아니면 초두에 말씀 드렸던 서위렴과 같이 가난하고 작은 한국을 위해 젊음과 생명을 다 바쳤던 희생을 남기는 것이었든지 간에 우리들의 삶에는 흔적이 남게 되어 있습니다. 부디 이웃들에게 유익과 도움을 주며 선교의 동력을 만들어 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이와 같은 놀라운 결단이 선교주일 예배를 드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에게 가득하게 차고 넘치기를 축원 드립니다.

불순종한 요나를 살리신 하나님

(1:15-17)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의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삼일 삼야를 물고기 배에 있으니라

(3:17-19)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악한 자들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을 거역하였던 아담은 그 아름다운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고 결국은 죽임을 당하여 흙에 묻히는 무서운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 왕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였다가 결국은 왕위에서 쫓겨나고 아들과 함께 적진에서 비참하게 죽는 최후를 맞이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자는 반드시 저주를 받는다고 기록하여 두시기까지 하셨습니다.

(28:15-19)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또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우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도망가는 요나는 하나님께서 이렇게도 놀랍도록 기적을 베풀어 큰 물고기를 준비하시고 마땅히 죽어야 할 그를 다시 살려내셨을까요? 그 이유는 오직 하나 그가 해야 할 사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죽어가는 니느웨를 전도하여 구원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처럼 해야 할 사명이 있는 사람들은 죽지 않습니다. 반드시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보호하시고 생명을 연장시켜주시면서 친히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의료보험제도가 생겨나기 전 의료보험의 기초를 만들어 놓은 분이 부산복음병원의 장기려박사였습니다. 환자들이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바라보던 장박사는 먼저 치료를 받고 나중에 치료비를 월부로 내는 방안을 도입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청십자였습니다. 이 복된 일의 책임자로 동분서주 하던 최기채목사는 김해에서 부산으로 들어오던 중 큰 교통사고를 당하여서 사경을 헤매다가 간신히 살아난 엽기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결국 두 다리는 절단되었지만 목숨은 건졌던 것입니다. 그가 각 대학으로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데, “할 일이 있는 사람은 결코 죽지 않는다.”고 외쳤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과 함께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이와 같은 마음을 아시고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일 하시므로 나도 일한다.”고 말입니다.

(5:1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하나님과 손잡고 하나님의 일을 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건강하고 그래야 죽지 않습니다. 이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사도 바울은 오늘 우리들에게 가슴 따끔하게 권면해 주고 있습니다.

(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고 말입니다. 실로 건강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 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우리들과 같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천사도 흠모하는 거룩한 직분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함께 일하기를 원하시니 이 세상에서 이 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직분자들이 하나님의 일은 태만히 하고 자신의 일에만 열중하고 있으니 참으로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배우고 깨달아야 합니다. 더욱 부지런히 하나님의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의 일을 해야겠다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태만히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과 같이 저주를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48:10)

여호와의 일을 태만히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 자기 칼을 금하여 피를 흘리지 아니하는 자도 저주를 당할 것이로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거센 풍랑이 일어나는 바다에 던져지지 않도록 요나를 교훈삼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그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살아 있는 영혼들이 되어야만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죽을 죄인도 사랑하십니다

(4:10-11)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 이만 여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오랜 세월 교회에서 성도들을 지켜보며 목회를 하다보면 성도들의 그릇된 모습들을 많이 경험하게 됩니다. 그 중에서도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는 현상 하나를 들면 바로 스스로 복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성도들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그러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당연하게 받아 누릴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얼핏 보면 틀린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렇게 늘 들어왔고 또한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는 엄청난 착각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그 숱한 죄악을 용서 받고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구원을 받은 것이 우리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죄를 용서 받았어도 그것은 십자가의 예수님의 희생이었고,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구원티켓을 가졌다 해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주신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남들보다 더 많이 봉사하고 헌금하고 예배를 드리며 기도한다 해도 그것조차도 성령님의 도우심이었지 우리들의 능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이 복을 받고 사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인 것입니다. 이것을 잊어버리고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남보다 더 잘 하면 교만하고 못하면 좌절하며 제대로 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요나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름을 찾아야 합니다. 요나가 불성실하고 믿음이 없어서 감히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도망 간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는 잘못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니느웨와 같이 밤낮으로 죄악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그 죄 값을 받고 망해야 한다는 것이 요나의 판단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하시고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시면서 까지 그들에게 내리리라 하신 벌을 내리지 않으시니 요나가 뒤집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하나님 앞에 대놓고 항의하고 하나님과 싸울 듯이 대들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고스란히 성경에 기록 되어져 있습니다.

(3:9-10)

하나님이 혹시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로 멸망치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4:1)

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노하여

(4:3)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을 감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죄를 짓고 악을 행하였으면 거기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된다는 것이 요나의 생각이었다면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용서하시고 구원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 하나님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좁은 가슴으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나고 위대한 사랑인 것입니다. 요나서를 통해서 하나님은 이것을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가르쳐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바로 전도와 선교는 여기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무관심하거나 심판 받아 당연한 어리석은 백성들이라고 외면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그들로 인해 가슴 아파 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실 구원 계획을 세우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와 같은 사랑을 깨닫지 못하게 되면 오늘 우리들도 요나와 같이 그들을 외면하고 도망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용서 받고 구원 받은 스스로를 망각한 잘못이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시는 하나님의 명령에도 위배 되는 잘못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와 선교는 하나님의 가슴에 숨어 있는 사랑을 발견하기 전에는 결단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이와 같은 뜨거운 사랑을 보았기 때문에 자신의 동족들을 구원하는 일이라면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소원하는 바이다고 선포하였던 것입니다.

(9:2-3)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 죽어가는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을 어느 정도로 희생할 수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귀한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와 같은 심정으로 복음을 전해야 하나님의 인정과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적당하게 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무슨 일을 하던지 한 목숨 내어 놓고 열정적으로 헌신할 때 비로소 열매가 맺히고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복된 2021년 새해에도 요나를 교훈 삼고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어 하나님의 심장으로 복음을 전하여 하늘곡간을 채워가는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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