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2021년 1월 24일 주일낮설교)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1. 24, 2021

:창세기12:1-4

說敎:崔仁根牧師

 

미국 샬럿에서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한 아들이 아버지에게 이렇게 요청을 하였습니다. “아버지, 제가 명문대에 합격하고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었으니 기념으로 자동차를 한 대 사주세요.” 그러자 능력 있는 아버지는 흔쾌히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졸업식장에 나타난 아버지는 자동차 열쇠 대신에 포장된 성경을 가지고 와서 아들에게 주었습니다. “아들아, 이 성경을 보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꼭 이 성경을 보기를 바란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약속을 어긴 아버지의 행동에 아들은 너무 실망하여 그 아버지와 의절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얼마 후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장례식에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그 성경을 펼쳐보았습니다. 성경 안에는 자동차를 사고도 남을 만큼 큰 액수의 수표와 아버지의 편지가 들어있었습니다. “아들아, 그러니까 꼭 성경을 보라고 했지 않느냐? 성경 안에는 모든 축복이 들어 있느니라.” 그 후 아들은 성경을 가까이 하며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갔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성경 안에는 모든 보화와 축복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는 자는 언제나 승리를 거두며 축복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성경 속의 최고의 인물입니다. 창세기는 이 아브라함에 관한 이야기에 엄청난 지면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그는 오고 오는 세대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의 롤 모델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복된 2021년 새해를 맞아서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도록 아브라함을 배우고 본 받기를 원합니다. 성경 속 수많은 인물들 중에서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귀한 축복을 누린 사람도 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그를 친구라고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어떻게 하였기에 하늘의 하나님께서 특별히 그를 일컬어 친구라고까지 불러주셨겠습니까?

(41:8)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대하20:7)

우리 하나님이시여 전에 이 땅 거민을 주의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시고 그 땅으로 주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영영히 주지 아니하셨나이까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오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서 과연 어떻게 살았기에 하나님의 벗이 되고 그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었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들도 그와 같은 아브라함을 본 받고 배우고 그와 같은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말씀으로 돌아가 풍성한 깨달음을 얻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르기 위해 소중한 것들을 다 버렸습니다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12: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아브라함의 시대는 씨족사회였습니다. 다시 말해 모든 삶의 영역이 가족들을 중심으로 한 사회였습니다. 그러므로 가족을 떠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바로 그러한 때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네 아버지, 가족들과 친척들 그리고 네 고향을 떠나라.”고 말입니다. 그것도 자식 하나 없는 늙은 나이 75세에 말입니다. 과연 할 수 있는 일일까요? 그 옛날 씨족사회가 아니라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문화와 물질이 만능이 되어 있는 미국에서인들 그 나이에 갑자기 떠나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다면 과연 우리는 쉽게 떠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의지할 자식도 하나 없이 조카 하나를 데리고 하나님의 그 말씀을 따라 고향을 떠났던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벗이 되고 엄청난 축복을 받는 첫 걸음이었던 것입니다.

(12:2-3)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는 말씀과 같은 너무나도 놀라운 축복을 친히 보장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축복의 근원이 되어 그가 축복하면 다 이루이지고 그가 저주하면 그대로 된다는 사실은 거의 신의 영역에 이른 놀라운 역사가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식 하나 없는 그를 통하여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는 축복은 실로 상상을 초월하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그런 놀라운 기적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선택한 이 길이 왜 이렇게도 놀라운 축복을 동반하는 행운의 길이 되었을까요? 이것이 바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우상장사나 하며 죄악 중에서 살아가던 아브라함을 하나님은 이렇게 불러내셨던 것입니다. 교회는 에클레시아입니다. 이 말의 뜻은 불러내셨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처럼 우상을 섬기며 죄악된 세상에서 살고 있던 우리들을 하나님은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선택하시고 불러내어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말로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운 천국에서 영원토록 살도록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아브라함처럼 응답하고 순종하여 나올 때만 하나님께서 친히 보장하신 엄청난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놀랍게도 아브라함은 두 말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이와 같은 부르심에 응답하고 행동하여 죄악의 땅 고향과 부모형제를 떠나 나왔으니 하나님께서 그토록 놀라운 축복으로 보상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아브라함과 같이 결단하고 떠날 것을 떠나고 버릴 것을 버릴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이 있어야 진정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도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직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한 곳에 불러 놓고 결단을 촉구하였던 것입니다.

(24:14-15)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새해를 맞았기 때문에 새 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고 버릴 것을 버리고 택할 것을 택하는 용단과 결단이 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여호수아와 같이 놀라운 결단으로 위대한 축복을 누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18:1-5)

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오정 즈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았다가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섰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 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가로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컨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옵시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서 쉬소서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쾌활케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가로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18:9-10)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그가 가라사대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우리는 지나치게 이웃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나누고 섬기는 자를 속된 말로 오지랖이라고 표현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할 수도 있고 또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앞서서 챙기고 돕는 그런 사람들을 종종 목격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마인드로 오늘 아브라함을 본다면 오지랖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만도 합니다. 집 앞 나무 밑에 사람이 셋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아브라함이 득달같이 달려가서 대접해 드리겠다고 머리를 조아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이와 같은 이웃사랑이 자신의 삶에 기적을 만들어 낼 줄은 스스로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해야 할 일이 생각나면 미루지 말고 바로 실천하는 습관을 길러놓아야 합니다. 오지랖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이웃을 챙기고 사랑하는 것이 몸에 배어있지 못하면 결코 아브라함과 같은 대접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앞서 아브라함이 갈데아 우르에서 부모형제들과 함께 조용히 살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그를 불러 내셨다는 사실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최초의 교회라는 사실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보면 아브라함은 인류 최초의 교인이 된 셈입니다. 그렇게 교인이 되었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교인으로 살아가며 선한 열매를 맺혀야 부르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또 다른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확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인은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단도직입적으로 명령하셨습니다.

(19: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것이 신자가 하나님 앞에서 행해야 할 가장 우선적인 사명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들에게는 이웃이 없습니다. 남이야 죽든지 살든지 오직 자신들의 유익만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이와 같은 사상이 교회에까지 팽배해 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말세이고 이와 같은 말세에는 믿음을 볼 수가 없다고 예수님께서 탄식하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오늘 우리들에게 이웃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도 위대하지만 그의 아내 사라도 엄청 훌륭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남편 아브라함이 갑자기 달려와서는 집 앞 동산 나무 밑에서 쉬고 있는 길손 셋이 있는데 그 분들을 대접해야 하겠으니 얼른 요리를 좀 해 달라고 오지랖을 떠는 남편의 말에 군소리 없이 수고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18:6-7)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에 들어가 사라에게 이르러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아브라함이 또 짐승 떼에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취하여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는 말씀을 묵상해 보면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라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 요즘 이렇게 하는 남자가 있다면 아마도 마누라에게 맞아 죽을 것입니다. 그렇잖아도 70대 노인이 눈티가 반티가 되어 노인정에 나왔길래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마누라한테 밥 달라 했다가 얻어맞았다고 하는데 어떻게 길가는 나그네까지 요리하여 대접하라 하겠습니까? 그러니 자기 노력만큼 먹고 살지 하나님의 기적 같은 축복을 받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바로 아브라함처럼, 사라처럼 조건 없이 이웃을 섬기고 대접할 때 찾아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사라는 무자하던 가정에 이삭이라는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놀라운 축복을 받아 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최고의 선물을 드려야 합니다

(22:1-2)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22:9-12)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하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22:15-18)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아브라함은 나이 백 살에 기적같이 얻은 아들 독자 이삭이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니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아들을 하나님께 돌려드렸습니다. 평생을 통해 소원하였던 아들, 이제 17살 정도가 되어 말이 통하고 사랑이 통하는 그 멋진 아들을 어떻게 다시 내 놓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정신이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할 수 없는 일이요 또한 요구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달랐습니다. 두 말 하지 않고 바로 순종하고 그 아들을 하나님께 바쳐드렸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와 같은 아브라함의 정신과 믿음만큼은 본 받고 배워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의 가장 소중하고 귀한 것 그것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그 믿음과 구 정신 말입니다. 이 땅에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하였을 때 모두가 그것의 유용함과 편리함을 알았지만 그것을 이용하여 장사를 하고 획기적으로 돈을 벌 궁리를 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가 않았습니다. 구글이나 아마존이나 마이크로 소프트 같은 회사들을 만들어 낸 인물들은 뭔가 남다른 것이 있었기에 오늘의 세계적인 기업을 만들어 놓았던 것입니다. 이는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똑 같이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며 살아가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구원을 받았지만 그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열정과 사랑에는 앞서지 못하는 우리들의 연약함이 있기 때문에 아브라함과 같은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아들 하나를 하나님께 바쳐드리고 바닷가에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들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호와이레의 축복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이제는 어제와 같은 무미건조한 삶에 익숙해 있지 말고 새해의 새로운 결단으로 아브라함을 배우고 본 받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면 하나님께서도 지상에서 최고의 축복으로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망설임 없는 결단과 순종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최고 최대의 축복은 그래서 아무나 만들어 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밭에 곡식을 심는 농부도 보릿고개 때 밥은 굶을지언정 밭에 심을 씨앗만큼은 최고의 것을 남겨 두고 보관해 두는 것입니다. 최고를 심어야 최고를 거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복을 들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 최소한의 형식만 지키고 아끼면서 어떻게 최고의 축복을 기대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 세상 최고의 투자는 바로 아브라함과 같이 이삭을 바쳐드리는 것임을 잊지 말고 최상으로 하나님을 섬길 줄 아는 신선한 변화를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손 대를 이어가면서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