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복을 주심으로! (2021년 1월 31일 주일낮설교)

여호와께서 복을 주심으로!

1. 31, 2021

:창세기26:12-22

說敎:崔仁根牧師

 

우리는 복된 새해를 맞아 이스라엘의 족장들인 야곱과 아브라함의 축복에 대해 공부해 보았습니다. 한결 같이 야곱이나 아브라함은 고통과 위기의 때에 하나님을 만나 전화위복의 축복을 누렸던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때로 그 사랑하는 자들에게 고통의 때를 주시고 그 신앙을 반석 위에 세우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필요한 더 귀한 축복으로 보상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 괴테(Goethe)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의 맛을 모른다.”고 읊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다 어려움과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이스라엘의 족장들인 아브라함과 야곱과 같이 고통의 때에 하나님을 만나고 든든하게 선 믿음을 인정받아 풍성한 축복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그런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새해의 첫 달 마지막 주일을 맞은 오늘은 이스라엘의 삼대 족장들 중의 한 사람인 이삭을 통해서 고통의 때를 넘어서는 지혜를 배우고 그로 인해 받은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을 공부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삭과 같이 풍성한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이삭은 고통의 때에 사람의 방법대로 해결하지 않았습니다

(26:1-4)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 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1:1-5)

사사들의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우거하였는데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유하더니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 두 아들이 남았으며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아내를 취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거기 거한지 십년 즈음에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사람은 고통의 때를 만나면 본능적으로 행동하게 됩니다. 그래서 엄마야!”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똑 같은 흉년이라는 절박한 고통의 때를 만났던 엘리멜렉과 이삭을 비교해 보면 고통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해 나가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엘리멜렉이 본능적으로 행동하였다면 이삭은 믿음으로 행동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들이 이렇게 많은 몸과 마음과 재물을 바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나중에 천국으로 들어가 영원복락을 누릴 수 있도록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자세이지만 이 세상에서도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의 은총을 덧입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따금씩 닥치는 고통의 때에 이삭과 같이 대처하는 자세를 본 받는 것이 매우 필요합니다. 엘리멕렉은 고향에서 흉년이 들자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 비록 이방의 땅이지만 양식이 있는 모압 땅으로 이사를 갔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단 한 마디의 의논도 없이 사람의 생각대로 위기를 해결하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고통의 때를 주시는 목적은 우리들의 느슨해졌던 믿음을 회복시키시고 하나님의 은총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품을 찾도록 하시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하나님은 아사 왕에게 발에 병이 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병으로 인해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유도하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아사 왕은 단 한 번도 하나님을 찾지 아니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고통을 해결하려고 의원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와 같은 인본주의와 육신적인 판단을 미워하셔서 아사 왕이 그 병으로 죽도록 심판하시고 말았습니다. 상식적으로 발에 일어난 병으로 사람이 죽지는 않습니다. 최악의 경우 발을 잘라내더라도 목숨은 건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사 왕은 발에 생긴 병으로 인해 고귀한 생명을 잃었으니 하나님께서 심판하심이 분명하였던 것입니다. 아무리 왕이라도 다윗과 같이 어린 아이와 같이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기를 하나님은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대하16:12)

아사가 왕이 된지 삼십 구년에 그 발이 병들어 심히 중하나 병이 있을 때에 저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불행하게도 엘리멜렉도 이처럼 인생의 고난과 위기의 때를 만났을 때 그는 하나님과 의논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머리와 지혜로 양식이 있는 모압으로 이주하여 갔다가 그곳에서 자신도 두 아들들도 다 죽는 비참한 결과를 만들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의 이삭은 똑 같은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을 선택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스스로 선택하였던 애급을 포기하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땅으로 가서 엄청난 축복을 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오늘 우리들이 배워야 할 소중한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어떤 고난과 위기를 만났을지라도 손쉽게 인간적인 방법을 찾지 말고 현실성이 없어보일지라도 하나님과 의논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이삭은 싸우지 아니하는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26:19-22)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에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가로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을 인하여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는 고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가로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하나님은 다투고 싸우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이웃을 미워하기만 하여도 살인한 것으로 인정하겠다고 하신 분이 바로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 땅에 있는 모든 부모들이 한결 같이 원하는 바와 일맥상통합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서로 사랑하고 우애 있게 지내기를 원하십니다. 같은 부모를 가진 자식들이 서로 다투고 불화하며 싸우는 것은 최악의 불효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형제에게 노하거나 욕을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떨어지리라고 까지 경고하셨던 것입니다.

(5:21-22)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리고 따뜻한 사랑과 온유로 연합하면 엄청난 축복도 보장해 주셨습니다.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이렇게 다툼과 싸움을 멀리하고 서로 사랑하고 도우며 의좋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이삭을 보면 바로 이러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직업은 목축업이었습니다. 그들은 넓은 들판에서 양떼를 이끄는 거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목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물이었습니다. 물이 없으면 가축을 기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가는 곳 마다 우물을 파서 지하수를 개발하고 물을 확보하였던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서로 싸우고 다투며 우물을 빼앗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기록한 기록을 보면 이삭이라는 사람은 매우 온유하고 싸움을 미워하며 오히려 희생하는 사람이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26:19-22)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에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가로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을 인하여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는 고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가로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은 이삭의 이와 같은 양보에 깊은 공감을 하지 못합니다. 들판에서 짐승을 키워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요, 물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곧 생존과 맛 먹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물은 사람과 짐승들에게 생명을 유지하는 가장 필수적인 요소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물을 얻기 위해 투자하는 노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합니다. 어느 곳에 물이 나올지 알지 못함으로 이곳저곳에서 수맥을 찾아 땅을 깊이 파고 물을 발견하면 돌로 벽을 쌓아 우물을 만드는 일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수고를 하고 간신히 얻은 우물을 뜻밖에도 다른 사람들이 몰려와서 빼앗는다는 것은 억울하기 짝이 없으므로 결국은 싸움이 나고 다툼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삭은 그 귀한 우물을 대적들이 빼앗으면 같이 싸우지 않고 빼앗겼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곳으로 가서 다시 파는 수고를 거듭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바보가 아니면 사랑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삭은 도수장에 맥없이 끌려가셨던 예수님처럼 저항하지 아니하고 묵묵히 고난의 길을 자처하여 예수님의 모형이라는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삭의 이와 같은 온유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다투고 싸우는 것은 자신에게 더 많은 유익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유익이란 스스로 쟁취하는 것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방법으로 쟁취하여 얻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풍족하리라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무저항주의의 신앙으로 살아가기를 종용하셨으며 예수님께서도 친히 그렇게 실천하시며 모범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5:38-45)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갈 때 이삭과 같이 기적 같은 축복을 주셔서 더 많은 것을 얻고 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상을 기대하며 이웃에게 따뜻하고 온유함을 나누는 진정한 축복을 맛보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그렇게 사랑을 베풀며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가는 성도들에게 아낌 없는 재물로 충만하게 채워주겠다고 약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8:21)

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로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 함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채우시는 축복으로 사는 삶이 바로 스스로 다투고 싸우며 얻는 것보다 훨씬 더 값지고 풍성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삭은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26:6-7)

이삭이 그랄에 거하였더니 그곳 사람들이 그 아내를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나의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곳 백성이 리브가로 인하여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나의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

이렇게도 무서운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삭은 심한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어 양식이 풍부한 애굽으로 가려고 하다가도 하나님께서 그곳에 거하라 하심으로 그곳에 거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곳에서 기적을 베푸시고 이삭으로 하여금 거부가 되는 놀라운 축복을 주셨던 것입니다.

26:9-13)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는 이삭이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자신의 사사로운 뜻을 접었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축복이었던 것입니다. 이삭은 어려서부터 이처럼 순종하는 아름다운 성품과 믿음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22:9-13)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이삭은 자신을 잡아 죽이려는 아버지 앞에서 단 한 마디의 말도 없이 아버지께서 하시려는 뜻을 순종하였고 대항하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무조건 기적 같은 축복을 주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28:1-3)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조건 없이 순종하는 사람을 매우 기뻐하십니다. 이 세상의 모든 만사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려면 순종 외에는 결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의 십자가도 예수님의 순종이 없이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듯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어야 하는 엄청난 요구를 하나님께서 하셨으나 그는 하나님 본체이신 자신을 온전히 내려놓고 순종하심으로 친히 죄인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친히 그와 같은 예수님에게 엄청난 보상으로 그 영광이 만천하에 나타나게 하셨던 것입니다.

(2:9-11)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들에게 엄청난 축복을 보장해 주시고 보상해 주시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예수님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삭을 통해서 순종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순종보다 더 큰 하나님의 축복을 볼 수 있는 길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독특한 문구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여호와께서 복을 주심으로라는 말씀입니다.

(26:12-13)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라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면 우리들이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농사하여 백배나 얻는 길은 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기적입니다. 사람이 잘 되고 거부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라는 사실을 하나님은 이와 같은 말씀으로 확인시켜 주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언제나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한계라는 것이 없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축복은 끝이 없고 상상을 초월하여 풍성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노력만으로 살아가지 말고 하나님의 은총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복된 2021년 새해를 맞아 이와 같은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드리기를 기뻐하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에게 넘치도록 채워지시기를 좋으신 우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