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약속 (2021년 2월 7일 주일낮설교)

하나님의 약속

2. 7, 2021

:로마서4:18-25

說敎:崔仁根牧師

 

성도의 삶이란 약속의 바탕위에서 이루어지는 삶입니다. 성도가 가진 모든 신분은 바로 약속 그 자체입니다. 충성하는 사람은 교회와 하나님께 약속을 지킨 사람이요 게으르고 불 충성 한다면 그는 교회와 직분을 주신 하나님께 약속을 저버린 사람인 것입니다. 약속은 개인의 손익을 떠나서 지켜야 합니다. 약속이 깨어진 사회나 단체는 아무 것도 성취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이 땅 위에는 약속을 저버리고 불성실한 사람들 때문에 피해를 입고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약속의 말씀인 성경을 주시고 약속을 지키며 살도록 명령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바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약속이되 영원히 변치 않는 약속입니다. 기독교의 모든 축복과 구원도 바로 이 약속의 말씀 위에 있습니다. 성경 속에 있는 약속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구원과 축복의 약속이요 또 다른 하나는 심판과 저주의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성경이 인생에게 제시하는 확실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믿음을 바탕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인이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이 약속을 믿고 이 약속을 따라 사는 사람들입니다. 불신앙인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천국을 인생들에게 바로 주신 것이 아니고 천국의 약속을 먼저 주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산 사람들의 이야기를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의 이야기는 바로 약속에 대한 성도의 삶의 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성도는 어리석어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천국에 대한 약속을 믿고 현실에서 온갖 삶을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성도는 책임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자신의 삶에 책임을 가져야 합니다. 모세와 같은 이는 자신의 사명에 책임감을 무겁게 느끼며 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를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이 모세의 말을 믿고 그 자신의 미래를 맡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아무 것도 남기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러나 약속들을 남기고 가셨습니다. 기독교의 모든 축복들은 약속 안에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바로 이와 같은 약속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에 귀한 것입니다. 일상생활에서도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바로 왕은 약속을 어기기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주겠다고 했다가 금세 약속을 어겼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나라와 그의 가정은 하나님 앞에서 약속을 어길 때마다 무서운 심판을 받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민 이스라엘에게 약속의 땅을 주셨습니다. 가나안은 바로 약속의 땅이었습니다. 천국도 약속의 나라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없는 나라요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실체요 확실히 존재하는 나라입니다. 모든 복음의 이야기가 그러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는 허황된 이야기이지만 믿음의 사람에게는 눈에 보이는 세계보다 더 확실한 것입니다. 믿음은 이토록 확실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과연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약속을 통해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복된 새해를 맞고 두 번째 달의 첫 주일에 우리 모두도 아브라함과 같은 확실한 믿음을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를 두고 신선한 축복과 믿음의 주인공들이 될 수 있도록 오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보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고향과 부모형제를 떠났습니다

(12: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11:8-10)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하나님께서 창세 이후 처음으로 아브라함을 불러내실 때 엄청난 축복을 조건으로 제시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이끄시는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은 순종을 그 기본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순종하면 약속하신 그 축복을 주시고 반대로 거역하면 거기에 상응하는 벌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모습이 창세기 122-3절의 말씀입니다.

(12:2-3)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와 같은 약속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은 참 신자가 되고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게 되나 그 약속을 믿지 못하고 거역하게 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하나님의 약속은 곧 믿음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거의 모두가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그와 같은 약속을 믿고 의지하고 기대하며 순종하는 신자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이 되었던 아브라함이 그렇게도 위대한 신앙인이요 축복의 근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이와 같은 약속을 믿고 과감하게 정든 부모형제와 고향을 떠나는 결단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비장한 결단으로 행동하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과 은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에서 여러 해를 보낸 후 데이빗 리빙스턴은 옥스포드로 돌아가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채플 시간에 학생들에게 검은 대륙에서 보낸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아프리카에서 사자의 공격을 받아 불구가 된 한 쪽 팔을 옆구리 아래로 늘어뜨리고 있었습니다. 덥고 지루한 낮과 고독한 밤들, 그리고 백인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여러 해 동안의 이야기를 하면서 덧붙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학생 여러분! 내가 어떻게 그와 같은 환경에서 오늘까지 버틸 수 있었는지 아십니까? 지금 제가 그 비밀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를 지탱하게 해 준 것은 다름 아닌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신 예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만약 그리스도 바로 그분께서 내 곁에 서서 함께 걷고 계심을 느낄 수 없었다면 도저히 계속 버틸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제임스 힐튼이 '우리는 외롭지 않다.' 라는 작은 책을 쓴 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외롭지 않습니다. 부디 이것을 기억하세요. 우리가 처음 그리스도께 마음을 맡긴 그날부터 영광 가운데 그와 함께 안식을 얻는 그날까지 우리에겐 진실로 좋은 벗이 항상 함께 있습니다. 그분의 이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리빙스턴의 고백과 같이 우리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한 가지 소중한 약속을 하나 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너희들과 항상 함께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는 이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이 세상 그 어떤 환경 속에서도 우리는 결코 혼자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약속해 주신 그대로 예수님께서 우리들과 항상 함께 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25년을 기다렸습니다

(4:19-22)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11:11-12)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

오늘 우리들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아브라함은 자식을 낳지 못한 채 늙어가고 있었습니다. 철저하게 개인주의 사상이 팽배한 지금도 자식이 없어 자식을 가지기 위해 애타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인데 씨족사회였던 아브라함의 때에 자식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치명적인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고향을 떠났을 때 오죽하였으면 조카 롯을 데리고 나왔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손님 대접하기를 기뻐하고 즐거이 손님을 대접하다가 마침내 하늘의 천사들을 대접하고 복을 받아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게 되었습니다.

(18:9-14)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그가 가라사대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는 끊어졌는지라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그 약속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불행하게도 아브라함과 사라의 나이는 점점 더 늙어갔고 몸은 더 이상의 소망이 없을 만큼 노쇠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기대하며 기다렸습니다. 그 내용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4:19-22)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친히 인정하시는 바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16세기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는 이성과 경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 믿음이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아브라함의 이와 같은 초자연적인 믿음을 본 받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의 생각을 십자가에 못 박고 우리들의 지식을 겸손히 내려 놓고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약속의 말씀을 끝까지 믿고 기다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담대함이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이삭을 품는 기적 같은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2차 대전 때에 히틀러가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하는 큰 죄를 범했는데 거기 숨은 일화가 하나 남아 있습니다. 2차 대전을 시작하기 전에 히틀러는 만반의 전쟁준비를 갖추고 먼저 유대인들을 예비 구속했다고 합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갇혀 있는 곳에 히틀러가 나타났습니다.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죽인다는 풍문이 돌았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공포에 질려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노인이 큰 소리로 고함을 치며 웃었습니다. 히틀러가 "너는 왜 그렇게 웃느냐?" 물었습니다. 그 노인은 나이 많은 유대 랍비였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벌벌 떨고 있는 상황에서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대답하였습니다. “역사적으로 유대인을 죽이려는 시도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애굽의 바로가 유대인을 멸절하려 했으며, 70년에는 디도 장군이 또한 그랬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을 멸절하려던 사람들은 다 죽고 망하였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지금도 살아있습니다. 앞으로도 살아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그렇게 기록 되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화가 난 히틀러는 즉석에서 그 랍비를 죽여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말을 무시한 채 유대인들을 죽였으며, 전쟁을 개시했습니다. 그런데 랍비가 그 예언을 한 때로부터 꼭 5년이 지나자 히틀러는 베를린의 포위망 속에서 스스로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살아남아서 주후 1948년에 이스라엘을 독립시켰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따라서 유대인들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고 하던 그 랍비의 말대로 말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는 자들은 담대할 수 있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말세로 치달으며 우리는 지금 숱한 두려움 속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과 같이 전혀 불가능한 일이라도 하나님은 가능케 하실 줄 믿고 끝까지 그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대할 때 반드시 하나님의 기적을 보는 놀라운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가장 소중한 아들을 바쳤습니다

(22:1-3)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11:17-19)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아브라함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사건을 쉽게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아무리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는 신자라 할지라도 아버지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아브라함이 그토록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 놓았는지에 대한 히브리서 기자의 기록을 보고 난 후에는 무릎을 치며 아브라함의 고귀한 믿음에 감탄을 하게 됩니다. 그는 자신이 낳은 아들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의 아들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죽으면 하나님의 약속도 무산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도 헛것이 되고 말 줄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을 통해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친히 약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은 그 아들을 죽여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아브라함의 선택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먼저 아브라함이 직접 하나님으로부터 들었던 약속의 말씀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15:1-7)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 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

이것이 실제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축복이요 약속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말씀에서 이삭이 중심이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뜻밖에도 그 축복과 약속의 중심이 되어 있는 이삭을 죽여 번제로 바치라고 하시니 아브라함이 잠시 헷갈리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형편을 히브리서 기자는 수천 년이 지난 후에 명쾌하게 풀어 설명해 주었던 것입니다.

(11:17-19)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고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놀라운 믿음을 엿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철통같이 믿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틀림이 없으니 그러므로 이삭을 죽여서 바쳐드려도 하나님은 그 엄청난 능력으로 그 이삭을 다시 살려내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그 약속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는 확신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것이 믿음입니다. 사람의 생각과 육정을 조금도 개입시키지 않는 가장 순수하고 가장 말씀 중심의 믿음이 바로 아브라함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와 같은 아브라함에게 지금까지 하셨던 모든 약속을 종합하여 다시 한 번 더 천명하여 주심으로 아브라함에게 전무후무한 놀라운 축복을 보장해 주셨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22:15-18)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그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시대를 지금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아브라함과 같은 놀라운 믿음으로 아브라함과 같은 놀라운 축복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 험한 세상을 모든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당당함으로 승리하며 이겨나가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축복이 오늘 예배드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에게 차고 넘치기를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