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인내 (2021년 2월 14일 주일낮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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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14 February 2021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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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인내
2. 14, 2021
本文:민수기14:11-23
說敎:崔仁根牧師
[전주지법 군산지원은 2월 12일 아동학대 치사 혐의로 부모 A(24·남)씨와 B(22·여)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법원은 "도주 우려가 있다"고 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이들은 지난 9일 밤 전북 익산시 자신이 거주하던 오피스텔에서 생후 2주 된 아들을 때려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아이 얼굴 여러 곳에는 멍 자국이 선명했다. 경찰은 아동학대 흔적을 확인하고 부모를 긴급체포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A씨 등은 당초 혐의를 부인하다가 "아이가 자주 울고 분유를 토해서 때렸다"고 털어놨다. 다만 사망에 이를 정도의 폭행은 아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은 도주의 우려가 있다며 이들의 구속을 결정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의 1차 소견상 사인은 외상성 두부 손상에 의한 뇌출혈이라고 경찰은 설명했다.](중앙일보 2월 12일자에서 발췌)
오늘날 젊은이들이 아무리 참을성이 없고 생각이 짧다고 해도 어떻게 자신이 낳은 2주밖에 되지 않는 어린 아들을 때려서 숨지게 할 수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소설도 동화속의 이야기도 아닌 지난 화요일(2월9일)에 있었던 끔찍한 사건이니 사실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이렇듯 참지 못하고 이루어질 수 있는 역사는 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 부모님들이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한 둘도 아닌 자식들을 많이 낳아 얼마나 참고 수고하며 고생하셨는지 우리 자식들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저절로 태어나서 저절로 자라고 저절로 교육 받은 자식이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부모님의 사랑과 인내도 이해하고 감사치 못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늘의 하나님을 알고 섬기며 감사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오늘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위해 그 얼마나 많이 참고 기다리셨는가에 대한 사실을 공부해 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인내는 곧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전13: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오늘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인내와 사랑을 가슴으로 배우고 깨달아서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성도된 도리를 다하는 진정한 은혜의 역사가 충만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은 거역하는 백성들을 10번이나 참고 기다렸습니다
(민14:22)
나의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나의 이적을 보고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한 그 사람들은
(사30: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저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우리들이 성경의 역사를 통해 익히 잘 알고 있는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그 엄청난 이적과 기사를 두 눈으로 친히 목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틈만 나면 애굽을 그리워하며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하였고 마실 물이 없다고 원망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급기야 젖과 꿀이 흐르는 목적지인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정탐꾼들의 보고를 받고서는 그 원망이 극도에 달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으로 들어가다가 사랑하는 자녀들과 가족들을 다 죽일 수는 없다는 것이 그들의 항변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 모세를 죽이고 그들 스스로 새로운 지도자를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아우성이었습니다.
(민14:1-5)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다가 급기야는 온 백성들이 떼로 일어나서 모세와 아론을 돌로 쳐 죽이려고 달려들었습니다.
(민14:10)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하는 동시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오늘 본문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일어나시고 열 번이나 넘게 하나님을 거역한 그들을 심판하시려고 하신 것은 이와 같은 극악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과 원망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민14:11-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너로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 모두를 놀라게 하는 것은 바로 모세의 반응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그와 같은 악한 백성들을 멸하지 말도록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기 때문입니다.
(민14:13-19)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애굽인 중에서 주의 능력으로 이 백성을 인도하여 내셨거늘 그리하시면 그들이 듣고 이 땅 거민에게 고하리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백성 중에 계심을 그들도 들었으니 곧 주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보이시며 주의 구름이 그들 위에 섰으며 주께서 낮에는 구름기둥 가운데서 밤에는 불기둥 가운데서 그들 앞에서 행하시는 것이니이다 이제 주께서 이 백성을 한 사람 같이 죽이시면 주의 명성을 들은 열국이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가 이 백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에 인도할 능이 없는 고로 광야에서 죽였다 하리이다 이제 구하옵나니 이미 말씀하신 대로 주의 큰 권능을 나타내옵소서 이르시기를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과실을 사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고 아비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구하옵나니 주의 인자의 광대하심을 따라 이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되 애굽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백성을 사하신 것 같이 사하옵소서
우리는 여기에서 모세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는 그 잔악한 백성들 앞에서 온유함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뜻한 사랑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래 참는 인내심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과연 누구를 닮고 누구를 본 받아야 하겠습니까? 열 번이나 거역하는 죄인들을 용납하시던 하나님의 사랑과 인내, 그리고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용서를 구하던 모세를 본 받아야 하겠습니다. 대적을 앞에 놓고 오래 참고 사랑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과 지도자 모세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것까지도 참으라며 인내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눅22:49-51)
좌우가 그 될 일을 보고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검으로 치리이까 하고 그 중에 한 사람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오른편 귀를 떨어뜨린지라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
(마26:51-54)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에 하나가 손을 펴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 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하시더라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들에게 먼저 모범을 보여주시고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던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이와 같은 하나님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일4:10-11)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에서만 아니라 하나님의 인내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강도를 잡듯 칼과 몽치를 들고 찾아온 악당들 앞에서 바로 이와 같은 인내의 모범을 보여주시며 우리들에게 참고 견디기를 요구하셨습니다. 앞서 인용해 드린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잔인한 악당들이 강도를 체포하듯 예수님을 잡으려 하자 성미가 급한 베드로가 칼을 빼들고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베어버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것까지 참으라!”고 말리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도 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이렇게 되어야 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끝까지 참고 견디고 있다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인내의 모범을 보여주시고 인내하도록 훈계하시는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길이 참고 견뎌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늘의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우리들이 영원히 배우고 본 받고 따라야 할 예수님도 그렇게 모진 모욕과 멸시와 천대를 참고 견디시는데 우리들이 그 분 앞에서 어떻게 참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고귀한 구원도 이렇게 끝까지 참고 견디는 자에게만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던 것입니다.
(마24: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예수님을 생각하며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참고 견디는 인내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120년 후에 대홍수가 날 것을 예고하신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온 세상은 120년 후에 대홍수가 나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실을 기대하고 기다리던 노아를 온 세상은 다 조소하고 조롱하였습니다. 그러나 정한 때가 되니 대홍수가 일어나서 세상을 쓸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설마'하고 불신하다가 이렇게 망하지 않도록 노아와 같이 묵묵히 인내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달려가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멸망의 홍수가 덮쳐 와도 하나님은 노아처럼 우리들을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묵묵히 참고 견디는 자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보상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즐겨 먹는 꿀 한 숟가락은 꿀벌이 4천 2백번이나 꽃을 왕복하며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영어사전 웹스터를 집필한 웹스터는 36년 동안 밤낮으로 이 일을 했다고 합니다. 작곡가 요셉 하이든은 8백 개의 작품을 작곡했는데 가장 유명한 천치창조라는 오라토리오는 66세가 되어서야, 8백 번이라는 작품을 써본 후에야 나타난 결과물이었던 것입니다. 시스턴 채플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만찬'도 8년 동안 2천 번이나 스케치해본 결과 이 세상에 태어난 걸작품이 되었습니다. 성공과 실패는 한두 번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꾸준히 찾고 구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성공의 기회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가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시도록 기다리는 인내와 겸손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출14: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것까지 참으라!”고 명령하시면서 친히 참음의 모범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들의 영원한 구세주가 되시고 온 세상 만물로 하여금 그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게 하셨던 것입니다.
(빌2:7-11)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는 길이 참고 견디며 예수님의 길을 쫓아가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거기에 상응하는 축복으로 보상하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닮아 어떤 경우에도 끝까지 참고 견디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이 낙심하지 않도록 참아주시는 것입니다
(히12: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참으로 감격스럽게도 하나님은 이렇게 죄만 짓고 사는 우리들을 오래 참으시면서 기다려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성경도 이것을 입증하듯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일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무엇이 과연 사랑입니까? 참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하면 길이 참아내지만 사랑하지 아니하면 참지 못하게 됩니다. 실제로 미국 동부지방에서 이웃하는 40대 가장들이 서로 으르렁대며 미워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번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려서 눈을 치우는 과정에서 시비가 붙었습니다. 자기 집 앞의 눈을 퍼다가 이웃의 프라퍼티로 던지는 것을 본 주인이 나타나 욕하면서 서로 싸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분에 못이긴 남자가 집안으로 들어가 총을 들고 나와서는 그대로 쏴버렸습니다. 그 사람은 그 자리에서 숨지고 살인자는 체포되어 1급살인 죄로 수감되었습니다. 몇 분 안 되는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순간을 참지 못하면 이렇게도 소중한 생명을 잃게 되고 아름다운 인생을 감옥에서 보내야만 되는 비극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을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우리들이 당연히 형벌을 받아야만 하는 죄악 중에 머물고 있지만 그 큰 사랑으로 참고 기다리시며 우리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또한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롬2: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벧후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면 이렇게 길이 참고 오래 견디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집 나간 탕자라도 밤낮으로 기다리시던 아버지와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이제는 묵묵히 참고 기다리는 미덕으로 하나님의 이와 같은 사랑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나무 한 그루를 심어도 쓸 만한 재목으로 키우려면 몇 십 년은 기다려야 합니다. 하물며 사람을 키우고 사람을 사랑함에 있어서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열매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인내를 배우고 매사에 길이 참으며 기다려서 하늘의 뜻을 땅에 이루고 멋지고 칭찬 받는 성도들로 우뚝 서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기대하는 성도들이기에 말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