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15일 주일낮 설교( 동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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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Tuesday, 17 July 2012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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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同行)
7. 15, 2012
本文:누가복음24:13-35
說敎:崔仁根牧師
영국의 한 광고회사가 큰 상금을 내걸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서 런던까지 가장 빠른 시간에 갈 수 있는 방법을 묻는 퀴즈를 내 걸었습니다. 워낙에 큰 상금이 걸려 있었기에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저마다 좋은 방법을 내 놓았습니다. 어떤 이은 비행기가 가장 빠르다고 하였고 또 어떤 사람은 기차를 타고 가다가 어느 지점에서 버스로 갈아타는 것이 가장 빠르다고 하였으며 또 어떤 사람은 교통체증이 없는 새벽에 승용차로 지름길을 찾아 달리는 것이 최고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상금을 타 간 당첨자는 엉뚱한 대답을 내 놓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는 것”이 그 정답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동행하는 길은 제아무리 멀어도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이민생활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우리 인생이 너무나도 멀고 고통스럽다고 할지라도 사랑하는 사랑과 함께라면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셰익스피어도 설파했습니다. “미운 사람과 함께 걷는 것은 단 3분도 지루하고 힘들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하루 종일 걸어도 피곤하지 않다.”고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가슴 찡한 한 장면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모질고 무서운 십자가의 길을 오직 혼자서만 채찍을 맞으며 걸어가셨던 주님께서 좌절과 절망 속에서 길을 걷는 쓸쓸한 제자들에게 나타나 친히 동행해 주시는 가슴 따뜻한 사랑의 주님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3년씩이나 데리고 다니셨던 제자들은 한결 같이 다 도망가 버렸는데 단 한 마디의 원망도 하지 않으시고 절망 속에 사로잡혀 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동행해 주시는 우리 주님의 모습은 이 세상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우리들의 연약한 가슴을 찡하게 울려주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주님과 동행하지 않아도 주님은 이렇게 언제나 한결 같은 사랑으로 우리들과 동행해 주십니다. 그 이유는 사탄 마귀를 따르던 못나고도 허물 많은 우리들이 이제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죄악 많은 세상에서 친히 우리들을 불러내시고 예수님의 피를 묻혀 정결케 하신 다음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상속 받을 수 있는 엄청난 특권인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오늘 “동행”이란 주제로 풀어보려고 합니다. 모쪼록 듣고 은혜 받으셔서 남은 삶은 우리들이 적극적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그런 멋진 성도들로 거듭나시기를 바랍니다.
동행
오늘 본문 말씀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소망을 잃어버린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내려가는 이야기로 시작이 됩니다. 그 길은 절망의 길이요 그 길은 사망의 길입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예루살렘에서 재생의 길을 찾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예루살렘은 더 이상 소망의 보금자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소망이던 예수님은 악당들의 손에 의해 십자가에서 처형되었고 그 기세를 몰아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까지도 뒤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루살렘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엠마오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친히 나타나 동행해 주셨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놀라운 주님의 사랑과 따뜻한 배려를 엿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동행해 주신 그 길 끝에는 예루살렘을 향해 다시 올라갈 수 있는 소망의 축복이 묻어났기 때문입니다.
눅24:33 곧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열 한 사도와 및 그와 함 께한 자들이 모여 있어...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동행해 주신 놀라운 효과였습니다. 이미 떠났던 절망의 예루살렘이었지만 주님을 만난 그들은 지체하지 않고 “곧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처럼 놀라운 주님과의 동행으로 잃었던 예루살렘을 되찾고 잃었던 소망을 굳게 잡아 남은 우리들의 삶을 승리로 이끄는 그런 멋진 변화를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들과 함께 동행하십니다
오늘 본문을 조용히 묵상해 보면 참으로 어리석은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깨달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미련하고 어리석어도 함께 동행하며 걸어가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세상의 근심 걱정으로 눈이 가리워지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눅24:15-16 저희가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저희와 동행하시나 저희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인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이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의 놀라운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주님은 언제나 우리 곁에 머물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께서 이 땅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머물고 계시기 위하여 육신으로 승천하시고 영으로 임재 하시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과 그렇게 영원히 함께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 주님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지어 주셨던 것입니다.
마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 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의 이름은 임마누엘입니다. 이는 우리 주님께서 친히 우리들과 함께하시고 동행하시겠다는 가장 분명한 의지요 약속인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우리들의 눈이 어두워지면 함께 동행하시는 주님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종은 이 말씀을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들과 동행하신다는 이 말씀”을 분명하게 증거해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 몸으로 스스로 깨닫기 위해 어두워진 눈을 새롭게 뜨고 신령한 눈으로 거듭나는 영적인 변화를 일으키고자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부디 깨닫고 새롭고 신선하게 변화하여 우리들과 동행하시는 우리 주님을 스스로 확인하고 감격하는 그런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눅24:31-32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줄 알아 보더니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하고
라는 제자들의 놀라운 변화와 깨달음과 같이 오늘 말씀을 받는 우리 모두도 예수님의 동행을 두 눈으로 똑똑히 발견하고 마음이 뜨거워지는 그런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변화지 않는 사람은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말씀이 해답입니다
주님께서 친히 동행하시나 눈이 어두워 알아보지 못했던 제자들이 그 주님을 인식하고 발견하게 된 동기가 오늘 본문에 자세히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눅24:25-27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제자들의 눈이 왜 어두어졌습니까? 제자들은 왜 주님과 함께 동행하면서도 그 분이 주님이신 줄 알지를 못했습니까? 우리 주님의 이 말씀이 해답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더디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성경 말씀을 자세히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위의 본문 말씀과 같이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더디 믿음을 책망하시고 그 말씀을 자세히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이로 보건데 눈이 어두어져버린 오늘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자세히 배우는 것이 필요하고 그 말씀을 부지런히 읽는 것이 필요하고 그 말씀을 깨닫는 것이 필요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좋은 2012년 올해의 표어를 “말씀이 해답입니다!”라고 정하고 부지런히 말씀을 읽고 듣고 깨달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사랑하는 여러분들에게 희망을 가지는 것은 지난 2월부터 6월까지 넉 달 동안 신, 구약 성경읽기를 시작하였는데 37명이 이에 적극 동참하고 완독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늘 경험하고 있듯이 이민생활이란 너무나도 시간에 쫒기는 생활입니다. 사업을 하든 직장에 나가든 우리는 늘 시간에 허덕이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런 시간 속에서 넉 달 만에 신, 구약 성경을 완독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7명이 이렇게 성경을 완독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대견하고 소망 넘치는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렇듯 말씀을 읽고 말씀을 듣고 말씀을 통한 신앙훈련을 지속적으로 받게 되면 우리들도 반드시 마음이 뜨거워지고 닫힌 눈을 뜨게 되어 우리들과 언제나 동행하시는 예수님을 밝히 바라볼 수 있는 신령한 성도들이 될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어떤 여인이 옷가게에서 외투 한 벌을 샀습니다. 그런데 집에 와서 보니 그 외투 호주머니 속에 값진 보석 반지 하나가 들어있었습니다. 그녀는 그 반지를 들고 한 동안 혼란에 빠졌습니다. 이 비싼 반지를 다시 돌려주어야 하나, 아니면 모른 척 그냥 가져야 하나? 하고 말입니다. 돌려주자니 너무나도 아깝고 가지려니 양심의 가책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망설이다가 말씀을 가르치는 옆집 랍비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솔직하게 상담하였습니다. 랍비는 이렇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당연히 반지를 돌려주어야 합니다. 당신이 산 것은 외투이지 반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반지를 돌려줄 때 당신 혼자 가지 말고 당신의 아이들을 데리고 가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은 보석보다 훨씬 더 값지고 비싼 교훈을 당신의 아이들에게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깨달음은 보석보다 훨씬 더 값진 것입니다. 눈을 뜨는 것은 이 세상의 그 어떤 황금보석보다 더 고귀한 깨달음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눈을 떠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예수님께서 언제나 우리들과 함께 동행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굳게 닫힌 눈과 마음을 열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엠마오의 두 제자들과 같이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이 뜨거워지고 주님께서 주시는 떡을 먹을 때 눈이 밝아지는 이런 놀라운 기적을 체험해야 하겠습니다. 그 놀라운 축복의 역사가 바로 지금 말씀을 듣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길 축원 드립니다.
동행은 사랑의 표현입니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미워하는 사람은 피하게 되고 사랑하는 사람은 함께 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사랑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그 사랑에 감복하여 일생을 그 하나님의 손발이 되어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우리들이 믿음이 있다 하고 온 몸을 불살라 바친다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단언하였습니다.
고전13:1-3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 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이 세상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가장 큰 문제는 복지문제입니다. 고령화 사회가 되어 노인들은 오래 사는데 그 노인들을 도울 수 있는 복지경비기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욱 문제가 심각한 것은 황혼이혼이 젊은이들의 이혼을 능가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자식을 낳고 수십 년을 함께 살아왔는데 늙어서 갈라서는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사랑입니다. 사랑이 식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는 동행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60대 할아버지가 집에서 쫓겨나서 찜질방을 전전하기에, “왜 멀쩡하게 생긴 양반이 집에 들어가지 않고 이렇게 찜질방이나 기웃거리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집에서 쫓겨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했길래 이 나이에 집에서 쫓겨났느냐?”고 물었더니 “아침밥 달라고 했다가 쫓겨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웃자고 하는 이야기 갔지만 실제로 이것이 현실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결코 수고를 하지 않고 사랑이 없으면 결코 동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짐승이 아닌 인간이 이렇게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하고 있기에 이 시대가 말세인 것입니다. 말세의 징조 중에 가장 두드러진 징조는 바로 “사랑이 식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동행에는 눈에도 보이지 않는 사랑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엠마오로 돌아가는 제자들에게 나타나 동행해 주었을까요? 요한복음 21장에는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도망 가 갈릴리 호수에서 물고기나 잡고 있는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신 이야기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와 같은 베드로에게 그물이 찢어지도록 물고기를 잡게 하시고 밤새 허기진 그에게 친히 떡을 굽고 생선을 구워 조반상을 차려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이 모든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말입니다. 무엇입니까? 그에게 사랑을 몸으로 보여주시고 그의 사랑을 확인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이 자신을 배신하고 떠나 버린 베드로지만 다시 주님의 양떼를 맡기시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새로운 기회를 허락해 주셨던 것입니다. 사랑입니다. 이것이 바로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그와 같은 주님의 사랑만이 우리들과 같이 허물과 죄악으로 가득한 죄인들과 동행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1964년 10월 일본에서 도쿄 올림픽을 치루기 위해 경기장 확장 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스타디움을 넓히기 위해 주변의 모든 집들을 사들이고 철거작업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 집들 중에는 3년 전에 지은 새 집도 있었습니다. 임부들이 그 새집의 지붕을 걷어내고 철거작업을 진행하다가 너무나도 신기하고 놀라운 한 장면을 목도하게 되었습니다. 지붕을 뜯어내자 그 속에는 못에 박힌 도마뱀이 꿈틀거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공사 중 공교롭게도 도마뱀의 꼬리가 못에 박혀 꼼짝도 못한 채 거기에 묶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공사는 이지 3년 전에 했었고 그 위에 지붕이 덮여 아무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도마뱀이 어떻게 3년씩이나 죽지 않고 거기에 묶여 있을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도 신기하여 공사를 중단하고 사흘 동안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다른 도마뱀이 거기에 묶인 도마뱀에게 음식을 물어다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도마뱀이 3년이 넘도록 죽지 않고 살아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아름다운 동행입니다. 그리고 그 동행의 근거는 사랑입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사랑 없는 동행과 사랑 없는 수고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신앙의 근본을 배우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이렇게 좋은 교회에서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는 것은 절대 우리들의 공로가 아닙니다. 죄악 중에서 그것이 죄인 줄도 모르고 살아가던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친히 찜하시고 불러주셨습니다. 부르신 그들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예수님을 주님이라 고백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녀들과 함께 영원토록 친히 동행해 주십니다. 바로 이것이 사랑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 본성이 사랑으로 가득차 계십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단도직입적으로 선포해 두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입니다. 이제 우리들은 어떻게 이와 같은 하나님을 섬겨야 하겠습니까? 이제 우리들은 어떻게 이처럼 좋으신 우리 하나님과 동행해야 하겠습니까? 오늘은 그 해답을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마음이 뜨거워지고 닫힌 눈을 열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차갑던 가슴이 뜨거워지고 세상에 머물던 눈에 주님의 십자가가 보이는 기적은 오직 하나님의 떡과 하나님의 말씀 밖에 없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말씀을 읽고 듣고 깨달아서 그 말씀대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의 사건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에서 이 마지막 때에 진정으로 복 있는 사람이 누군지를 밝혀 두었습니다.
계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고 말입니다. 우리는 진정 복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고 우리들의 자손들에게 믿음의 유산인 하나님을 물려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디 그렇게 준비된 믿음과 사랑으로 영원토록 이 험악한 세상을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진정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무더운 여름입니다. 무엇으로 우리들의 영혼을 뜨겁게 하고 세상적인 불필요를 태워버릴 수 있을까요? 오직 주님과 동행하는 길만이 이 세상을 이기고 절망을 이기고 엠마오로 가던 길을 돌려놓을 수 있습니다. 주님과 동행하면서도 주님이신 줄 알아보지 못하는 마음의 근심을 걷어내야 하겠습니다. 굳게 닫힌 눈을 밝히 떠야 하겠습니다. 낙심과 좌절의 늪에서 헤어 나와야 하겠습니다. 그 길은, 그 능력은 오직 우리 주님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떡을 먹고 주님께서 풀어주시는 말씀을 받았을 때 비로소 두 제자의 눈이 밝아져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었고 차갑던 마음이 뜨거워져 버리고 떠났던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가는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두려움과 낙심으로 무너져 있던 동료 제자들을 건져내는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그 해답은 바로 우리 주님의 동행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엠마오로 돌아가는 제자들과 다를 바 없는 낙심과 좌절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잊어버린 지 오래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들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소망도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말씀을 주시는 주님이 살아계시고 우리들과 언제나 함께 동행하시는 사랑의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희망의 끈을 굳게 잡고 말씀으로 되돌아가 사랑으로 다가서는 우리 주님을 만나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주님과 함께 다시 일어서서 떠났던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우리 그렇게 하라고 우리들에게 주의 종을 세우시고 말씀으로 먹여주시고 주님께서 친히 몸으로 우리들과 함께 동행하시는 것입니다. 모쪼록 오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이와 같은 주님과의 동행으로 남은 삶을 소망과 축복으로 승리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2년 7월 15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