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능력 (2021년 3월 7일 주일낮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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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07 March 2021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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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능력
3. 7, 2021
本文:역대상29:10-17
說敎:崔仁根牧師
영국의 비평가이며 사상가인 쟌 러스킨(John Ruskin)이 쓴<티끌의 윤리>라는 책이 있는데, 그는 그 책 속에서 "진흙땅은 하나님이 들어 쓰실 때에 무엇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면서 결론을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모래와 흙과 불이 하나님의 장중에 붙잡히게 될 때에 사파이어가 될 수 있다. 모래가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게 될 때에 오팔이 될 수 있다. 맨 흙이 하나님의 장중에 붙잡히게 될 때에 다이아몬드가 될 수 있다."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길 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창조의 능력으로 우리의 인생을 변화시키시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능력이 한계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와 같은 하나님을 “전능자 Almighty”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룻1:20)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욥5:17)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경책을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사13:6)
너희는 애곡할지어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왔으니 전능자에게서 멸망이 임할 것임이로다
는 말씀들과 같이 말입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하늘의 하나님께서도 친히 자기 자신을 일컬어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선포하셨다는 것입니다.
(창17:1)
아브람의 구십 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그러므로 우리들이 믿는 하나님은 “전능자”이신 것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못하실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절대적인 권세와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신앙생활 하는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복 받은 사람이요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은 이와 같은 전능하신 하나님에 관한 기사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오늘의 성도들은 이처럼 위대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고통 속에서 해방 되며 절망 가운데서 기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처럼 위대하신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요, 제대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와 같은 전능자에 관한 말씀으로 하나님을 바로 알고 마지막을 살아가는 힘든 세상에서 승리하는 빌립보의 권속들이 될 수 있도록 귀한 말씀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모쪼록 마음 귀를 모아 잘 듣고 풍성한 은혜와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들을 크게도 하시고 작게도 하십니다
(대상29:12)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대상17:16-18)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가로되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작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대하여 먼 장래까지 말씀하셨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를 존귀한 자 같이 여기셨나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존귀에 대하여 다윗이 다시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주께서는 주의 종을 아시나이다
(렘49:15-16)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를 열방 중에 작게 하였고 사람들 중에 멸시를 받게 하였느니라 바위틈에 거하며 산꼭대기를 점령한 자여 스스로 두려운 자인 줄로 여김과 네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네가 독수리같이 보금자리를 높이 지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많은 사람들이 성공하고 출세하게 되면 그것이 자신의 공로인 줄 알고 眼下無人(안하무인)이 되어 교만하고 잘난 척하게 됩니다. 물론 일정 부분 남보다 더 노력하고 더 지혜롭고 더 재주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을 크게 하시고 들어 쓰시는 분은 하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사울이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다스릴 때 다윗은 들판에서 양을 치는 작은 목동에 불과하였습니다. 성경 그 어느 곳에서도 다윗이 들판에서 양을 치면서 장차 왕이 될 꿈을 꾸고 기대하였더라는 말씀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불순종하는 사울을 폐위하고 그 보좌에 앉을 다음 왕으로 다윗을 지목하시고 선지자 사무엘로 하여금 그 집으로 가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을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삼상16: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 아들 중에서 한 왕을 예선하였음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들이 주목 할 것은 이새에게는 아들이 여덟 명이나 있는데 하나님은 그 가운데 누구라고 지명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그 집으로 들어가서 큰 아들부터 인터뷰를 하는데 첫 아들 엘리압을 보고 스스로 감탄하여 즉시 왕으로 세우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만큼 엘리압은 외모가 빼어났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즉시 사무엘의 그와 같은 판단을 부정하시고 거절하셨습니다.
(삼상16:6-7)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그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고 말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다윗이 나타나났을 때 바로 그가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천하에 사무엘 선지자도 착각을 할 만큼 사람의 판단은 하나님의 판단과 달랐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어려서부터 아니 우리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부터 하나님의 사람들을 선택해 두고 계시는 것입니다.
(삼상16:12)
이에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이 주목 할 일이 있습니다. 이새의 아들 여덟 명 중에서 왜 하필이면 다윗이었는지 그 대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아직도 다윗은 어리고 들에서 양이나 치는 작은 목동에 불과하였는데도 말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한 사람을 작게 하시고 또 한 사람을 크게 하심이 오직 하나님의 주권이요 뜻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여기에서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작게 하실 자에게는 망하는 길로, 크게 하실 자에게는 승하는 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또한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한 평생 살아가면서 우리들도 스스로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사 성공을 한다고 할지라도 그 끝이 좋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인생도 신앙도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미디안 적군들이 무서워 숨어서 밀단을 타작하던 기드온을 불려 300명 용사로 12만 대적을 물리치는 지도자가 되게 하셨던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이와 같은 전능을 믿고 끝까지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고 기대하며 인생을 승리하도록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들을 부하게도 하시고 가난하게도 하십니다
(대상29:12)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삼상2:7)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가난과 부가 자신의 탓만으로 생각하고 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과도하게 인색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것조차도 아까와 하고 이웃들에게 나누는 것은 낭비로 여기며 살아갑니다. 이러한 자들을 보고 지혜자는 간단하면서도 강력하게 일침을 가하고 있습니다.
(잠11:24)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고 말입니다. 참으로 가슴에 새겨두어야 할 귀한 말씀입니다. 특별히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다.”는 말씀에 깊은 도전이 있어야 될 줄 믿습니다. 사람이 부하게 되고 가난하게 되는 것이 우리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하나님은 이렇게도 분명하게 성경에 기록하고 교훈하시기 때문입니다.
옛날 우리 교회에 30대 후반의 집사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렇게 짜고 인색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집에는 심방을 초대 받아 본적이 없고 그 사람으로부터 국수 한 그릇도 대접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에베렛에서 비즈니스를 하고 있었는데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이 10불을 넘겨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 10불은 주일이든, 부활절이든, 추수감사주일이든 변함이 없었습니다. 재정부를 통하여 매 주일 성도들의 헌금상황이 수요일이면 제 손에 들어오는데 그것을 볼 때마다 이 종의 마음이 그렇게 아플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결국 그 사업이 망하고 시애틀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다시 한 번 더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겨보기를 원합니다.
(잠11:24)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재물이 많으면 좋습니다. 하지만 적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보고 또한 많은 성도들의 삶을 오랫동안 지켜보니 많아도 좋고 적어도 문제 될 것이 없었습니다. 없어도 하나님께서 할 일 다 하게 하시고 많아도 별 볼일 없이 스스로만 자만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이에 대한 또 다른 진리를 기록해 두셨습니다.
(잠16:8)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
고 말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들이 하나님을 섬기며 인생을 살아가는데 소득의 많고 적음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다만 의를 겸하는 소득이냐 불의를 겸한 소득이냐가 다를 뿐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의를 겸한 것이고 또 무엇이 불의의 재물입니까? 정직하게 가지는 재물이라야 의로운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거짓과 술수로 벌어들인 재물은 불의한 재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앞에서 진실하면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필요한 재물을 충분히 주실 수 있을 만큼 능력이 한이 없다는 사실만 믿고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시112:1-3)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 그 의가 영원히 있으리로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너무 지나치게 돈의 노예가 되어 돈 때문에 사람과 원수가 되고 하나님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이 하는 고백에 우리는 깊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부와 귀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내가 가졌으나 내 것이 아니요 다 하나님의 것이니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그것으로 하나님께 다시 드렸을 뿐입니다.”고 고백하는 다윗은 정말 멋있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주권을 확실히 믿는 믿음의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대상29:14)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참으로 멋지지 않습니까? 우리들도 이와 같은 가치관과 믿음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서 다윗과 같은 풍성한 부귀영화를 누려야 되겠습니다.
몇 주 전 당회를 열고 이 종에게 자동차를 사주겠다고 장로님들이 특별지정헌금을 하였기에 그렇게 하지 말아달라고 정식으로 부탁을 드렸더니 한 장로님께서 “하나님께서 생각지도 않은 돈을 주시기 때문에 좋은 일에 써야 더 많은 것으로 주실 것이니 무조건 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려서 참으로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우리교회도 넉넉하고 이 종 또한 넉넉하니 이 종과 교회가 필요한 것을 충분히 할 수도 있는데 굳이 장로님들이 그렇게 하시겠다고 하니 감사하였고, 하지만 장로님들도 이제 겨우 사업을 시작하였고 아이들도 어려서 돈이 많이 필요 할 텐데도 그렇게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마음이 짠하기도 하였습니다. 아무튼 오늘 우리들이 꼭 배우고 알아야 할 것은 재물은 하나님께서 그 엄청난 능력으로 주실 자에게 꼭 주시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믿으시면 복이 될 줄 믿습니다.
(창26:12-13)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여호와께서 복을 주심으로”라는 대목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농사를 하여 100배를 거둘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이삭이 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100배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이삭과 같이 하나님의 인정과 사랑과 축복을 받으면 하루아침에 거부가 될 수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을 기대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들을 살게도 하시고 죽게도 하십니다
(행2:22-24)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대로 내어준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행5:3-5)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하나님의 능력을 다 말하려면 성경을 다 읽는 것만큼이나 크고 방대할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우리들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곳에만 국한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사람이 능히 상상도 하지 못하는 곳까지 미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람의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과연 하나님은 사람을 죽이게도 하시고 또한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하십니다. 이와 같은 능력은 사람이 믿을 수 조차 없을 만큼 놀라운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곳곳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죽이시고 살리심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다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거역한 60만 명을 한 순간에 죽이실 만큼 무서운 분이십니다. 우리는 또한 험한 세상을 살아오면서 죽을 일이 아닌 곳에서 죽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고 도무지 살아나지 못할 것 같은 사람이 기적 같이 살아나오는 경우도 경험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사화복이 진정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라 하겠습니다.
40대에 상처하고 재혼을 한 사업가가 있었습니다. 여자도 한 아들을 데리고 있었고 남자도 한 아들을 데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네 식구는 여름을 맞아 산으로 물놀이겸 캠핑을 갔습니다. 2박3일로 예정하고 갔으나 이튿날 남편의 공장에서 일이 생겨 급히 내려가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더 놀고 싶다고 해서 혼자서만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물놀이를 하던 중 남자의 아들이 급류에 휩쓸려 갔다는 비보를 듣고 남편은 경찰들과 잠수부를 동원하여 몇 날 며칠을 찾았으나 끝내 찾지를 못했습니다. 남편은 거의 실성한 사람처럼 1년이 넘도록 엄청난 돈을 들여가며 찾았으나 끝내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10여년의 세월이 흐르고 어느 날 이 부부가 은행에 볼일을 보러 갔는데 사업을 잘 하는 돈이 있는 사람이라 은행에서는 VIP로 모셨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젊은 청원경찰이 커피를 들도 왔는데 테이블에 내려놓는 순간 실수를 하여 여자의 옷에 쏟게 되었습니다. 깜짝 놀란 여자는 그 청년의 따귀를 때리면서 “이 옷이 네 한 달 월급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인데 네까짓게 이 귀한 옷을 다 망가뜨려?”하면서 엄청 갑질을 하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은행장에게 당장 저놈을 짤라버리라고 까지 항의를 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다음 남편은 자꾸만 그 청년에게서 마음이 떠나지 않는 강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은행을 찾아갔는데 정말 그 청년은 해고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인사부에서 그 사람의 주소를 찾아 그 청년을 만났습니다. 남자의 아들에게는 등에 사마귀 같은 돌귀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을 확인해 본 순간 잃어버렸던 그 아들임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그 아이는 물에 떠내려 가다가 간신이 나무에 걸려 있는 것을 지나가던 그 산속에서 살고 있던 한 아주머니가 발견하고 집으로 데리고 가 키웠던 것입니다. 아이는 불행하게도 사고의 충격으로 기억을 잃어버려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완전하지는 않지만 많이 회복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계모가 자기 아들로 하여금 남편의 사업을 인수 받도록 하기 위해 남편의 아들을 고의적으로 물에 떠내려가게 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살아서 돌아오게 되었고 그 계모는 살인미수 죄로 감옥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인생지사 塞翁之馬(새옹지마)라고 하였던가요? 우리들의 삶과 생명은 오직 만드신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눈앞에 유익만을 위해 소중한 인생을 낭비하지 않도록 전능하신 하나님께 삶을 맡겨드리고 천국까지 멀리를 내다보며 하루하루를 멋지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