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섭리 (2021년 3월 14일 주일낮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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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14 March 2021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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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섭리
3. 14, 2021
本文:시편145:13-21
說敎:崔仁根牧師
어떤 할아버지가 외로이 혼자 살면서 개 한 마리를 길렀습니다. 혼자 사는 할아버지는 스모키라는 이름의 개를 아들과도 같이 또 딸과도 같이 길렀습니다. 그러다가 할아버지가 병이 나서 누워 버렸습니다. 할아버지는 병상에 누워서 이따금 개가 살고 있는 옆방의 문을 두들겨 주었습니다. 그러면 옆방의 스모키가 같은 문 저쪽에서 발로 버걱버걱 긁어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할아버지의 병세가 갑자기 악화되어서 의사가 오고 친척이 왔습니다. 할아버지는 병이 심해져서 종일 스모키를 위해 옆문을 두들겨 주지 못했습니다. 그랬더니 의사와 친척들이 듣는 가운데서 스모키가 문을 버걱버걱 긁었습니다. '무슨 소릴까?' 하고 모두들 놀랐습니다.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 있을 그때에 할아버지가 간신히 말했습니다. "저 소리는 내 개 스모키의 발소리입니다. 불쌍한 것이 내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르고 저 방에서 나를 의지하고 살지요. 저 문을 누가 한 번 두들겨 주면 안심할 것입니다.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만 알면 스모키는 만족하니까요." 그 말을 듣고 손님으로 왔던 친척이 문을 두들겨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스모키가 평안한 마음으로 조용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사는 사람의 형편이 할아버지를 의지하고 살아가는 스모키와 비슷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우주의 운행을 우리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계셔서 세상을 운영하시는 줄 압니다. 그 믿음으로써 우리는 만족하고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가장 큰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창조의 사역이고 다른 하나는 섭리사역입니다. 사실 섭리라는 말은 성경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창조하신 삼라만상을 가만히 두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그 피조물들을 일일이 보살피시고 다스리시고 통치하십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섭리, Providence"라고 합니다. 정상적인 부모라면 자식을 무의식적으로 만들지도 않고 만들어진 자식들에게 무관심하지도 않습니다. 자식을 가질 계획을 세우고 적당한 때에 자식을 만들고 그 자식이 태어나면 최선을 다해 양육하고 교육시키며 올바른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뒤를 보살피고 훈련을 합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커다란 사역에 비유를 한다면 아이를 만드는 것은 창조라고 할 수 있고 그 아이를 보살피고 키우고 훈련하여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잘 하도록 보살피는 것은 섭리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섭리에 관하여 공부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제대로 된 지식을 얻고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대하는 신앙인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말씀에 귀를 기우려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들을 보호해 주십니다
(시4:8)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신32:10)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친히 창조하신 창조자이십니다. 그렇게 만물을 창조하실 뿐만 아니라 그 만물을 단 하나도 예외 없이 친히 다스리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는 창조사역 만큼이나 다양하고 광대한 것입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특별히 성도들에게 관한 섭리에 초점을 맞추어서 말씀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는 친히 보호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참으로 위험한 곳입니다. 악한 사람들도 많고 자동차, 비행기 등 운송수단도 위험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눈에도 보이지 않는 수많은 질병들이 또한 성도들의 소중한 생명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에도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병들고 상처입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구별하여 세우신 성도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래서 성군 다윗은 비록 왕이지만 그래서 그를 지키고 호위하는 군사들이 산울로 둘러서서 자신을 지켜주고 보호해 주지만 그래서 자신이 안전한 것이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께서 안전히 거하게 해 주신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한 평안힌 잠을 잘 수가 있다고 감사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시4:8)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고 말입니다. 이는 지극히 평범한 고백 같지만 실로 하나님의 섭리를 아는 자만이 할 수 있는 놀라운 고백인 것입니다. 이는 비단 다윗만의 고백이 아니었습니다. 위대한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의 고백이기도 하였습니다. 그 삭막한 광야에서 한 둘도 아닌 백만이 넘는 백성들을 인도하였던 모세야말로 하나님의 섭리에 관해 그 누구보다 더 절절히 체험한 종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는 그의 다음과 같은 고백이 이를 잘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신32:10)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수도 없이 자동차를 타고 길을 걷고 비행기를 타며 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질병과 사건들 속에서 오늘날 까지 살아나왔습니다. 과연 우리들이 잘나서 지금 이렇게 평안하고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이라도 믿음이 있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그것이 바로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지켜주심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시121:7-8)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다음은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경이 프리토리아(Pretoria)에 있는 서(西)아프리카 육군 감옥에서 탈출했을 때의 경험담입니다. 처칠은 그 감옥에서 탈출한 후 2,3일 동안 프리토리아 근방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지칠대로 지친 그는 계곡 아래에서 반짝이는 불빛들을 내려다보며 마침내 저 집들 중 한 곳으로 들어가 보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자기 목에 막대한 현상금이 붙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누군가 호의를 베풀어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처칠은 하나님께 자신을 그 친절한 영혼이 살고 있는 집으로 인도해 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그리고는 계곡을 내려가 그 수많은 집들 중 한 곳의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한 남자가 문을 열고는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난……. 윈스턴 처칠입니다." 그러자 집주인은 주위를 둘러보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이 집은 이 근처 수마일 내에서 당신을 살려 줄 수 있는 유일한 집입니다." 그렇게 해서 위험에서 해방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만약 악한 집을 두드렸더라면 현상금이 걸려 있었던 그는 잡히고 말았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은 이렇듯 하나님께서 친히 돕는 천사들을 보내시어 때를 따라 도우시고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시91:2-7)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요, 보호요 지켜주심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지금까지 건강하고 안전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은총이 오늘 예배드리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과 여러분들의 후손들에게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들의 기도를 응답해 주십니다
(행9:36-40)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 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뉘우니라 룻다가 욥바에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오라고 간청하니 베드로가 일어나 저희와 함께 가서 이르매 저희가 데리고 다락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의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이거늘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가로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행12:5-7)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헤롯이 잡아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숫군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가로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우리 성도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는 모든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에 기록된 놀라운 위의 두 성구를 읽어보았습니다. 모두가 다 사람들의 정상적인 이성으로는 해석이 불가능한 놀라운 기적들이었습니다. 어떻게 똑 같은 성정을 가진 베드로가 기도한다고 죽은 도르가가 다시 살아날 수가 있겠습니까? 어떻게 감옥에 갇힌 베드로를 위해 성도들이 기도한다고 한 순간에 착고에 채웠던 쇠사슬이 풀어질 수 있으며 굳게 닫힌 옥문이 저절로 열릴 수가 있겠습니까?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믿으려 하지 않는 놀라운 기적들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었고 그것을 그렇게 행하신 이는 우리 성도들을 사랑하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은 하나님을 전능자(Almighty)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실제로 이와 같은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는 성경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주변에도 얼마든지 많이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시는 성도들에게 베풀어 주시는 놀라운 섭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다 나타나는 우연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리라고 친히 성경에 약속까지 해 두신 하나님의 섭리인 것입니다.
(요14:13-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난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와 기도 응답은 오직 하나님께서 피로 값을 주고 사신 성도들에게만 주신 놀라운 축복이요 특권인 것입니다.
중국 내륙선교회를 설립한 허드슨 테일러 목사님은 1975년 봄 몇 군데 회의에 참석하고 런던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러시아의 바브린스키 공작이 인사를 했습니다. “테일러 목사님, 어디에 가십니까?” "런던에 갑니다." "그러면 저하고 함께 앉으실까요?” 두 분은 객차 속 시트에 나란히 앉았습니다. 바브린스키 공작이 지갑을 꺼내더니 무엇인가를 테일러 목사님께 건네주었습니다. "이거 작은 돈이지만 중국 선교에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테일러 목사님은 수표의 금액을 보고는 너무나도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이거 오십 파운드 아니야! 무슨 실수라도 했겠지?’ 당시 50파운드는 지금 미화로 몇 만 불의 큰 금액이었던 것입니다. "혹시 저에게 5파운드를 주시려고 한 것은 아닙니까? 이건 50파운드로군요?" 그러자 바브란스키 공작은 "천만에요, 제가 도로 받을 수는 없습니다. 선교사님, 실상 저는 5파운드를 드리려고 한 것인데 50파운드라고 쓰고 말았군요. 이건 하나님의 뜻입니다." 테일러 목사님이 선교본부에 와보니 기도회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중국 내륙선교회에 송금을 해야 하겠는데 49파운드 11실링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부족액을 채울 수 있는 길은 오직 기도뿐이었습니다. 바로 그 시간에 테일러목사님이 호주머니에서 50파운드 수표를 꺼내 사무실 책상 위에다 가만히 올려놓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기적같이 놀라운 섭리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도 세밀하게 우리들의 기도를 응답하시며 우리들이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나가도록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늘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귀한 말씀으로 권면하고 있습니다.
(빌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들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빌4: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마6:31-33)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의 섭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필요를 때를 따라 공급하시고 채워주십니다. 이것은 전 세계로 나가 있는 선교사들이 하는 공통적인 고백이요 간증입니다. 그들은 그만큼 오지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온 몸으로 체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는 선교사님들만의 고백은 아닙니다. 조금이라도 믿음이 있다면 주님의 일을 하면서 너무나도 절실히 체험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빌립보 교인들이 헌금을 하여서 사도 바울을 섬겼습니다. 그 선물을 받은 바울의 고백이 고스란히 성경에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그것을 묵상해 보면 하나님의 도우시고 채우시는 섭리를 온 가슴으로 절감하게 됩니다.
(빌4:15-19)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 두 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과실이 번성하기를 구함이라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 말씀 가운데 특별히 밑줄 친 곳을 한 번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홀로 감옥에 갇혀 있는 사도 바울이 어떻게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하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친히 공급하시는 은혜요 섭리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바로 제대로 된 믿음입니다. 이 종은 평생을 그렇게 체험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혼자서 그 어렵고 암울하던 1970년대를 어떻게 공부하며 생활해 나갈 수가 있었겠습니까? 또 1980년대를 혼자서 어떻게 이민사회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생활해 나갈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단 한 번도 꾸러가지 않게 하셨고 풍부하게 인도해 주셨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가지 않는 놀라운 기적이었습니다. 성경 속에서 사도 바울이 고백하고 이 땅에서 이 종이 고백하는 바는 동일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듣는 우리 모든 성도들도 우리들과 같이 고백할 수 있도록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의 섭리대로 살아가는 진정 복 받은 영혼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왕 아합을 심판하시기 위해 엘리야를 보내어 비가 내리지 않도록 선포 하시고 그 땅에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게 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말라버렸고 모든 백성들은 굶주리게 되었습니다. 그 중의 하나였던 엘리야 자신도 먹을 것이나 마실 것이 없어졌습니다. 그렇게 선포한 엘리야를 아합 왕이 잡아 죽이려 함으로 엘리야는 산 속 그릿 시냇가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누가 먹을 것을 공급해 주었습니까? 놀랍게도 까마귀였습니다.
(왕상17:2-7)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여기서 떠나 동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을 명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저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 왔고 저가 시내를 마셨더니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여기에서 우리는 까마귀들이 떡과 고기를 가지고 왔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도 극심한 흉년 속에서 떡과 고기를 어디에서 구할 수가 있었을까요? 참으로 신비롭지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우리들이 아는 대로 나중에 그릿 시내가 마르니 엘리야는 사르밧으로 나갔고 그곳에서 과부를 만나 그 집의 마지막 밀가루로 떡을 만들어 섬김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그 대가로 그 집에 밀가루와 기름이 마르지 않는 기적을 베풀어주지 않았습니까? 이 모든 것이 세상 상식으로는 말도 안 되는 하나님의 역사요 기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바로 배우고 바로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로 우리는 결단코 망하지 아니하고 흥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천지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성도들의 필요를 채우는 데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고 이것을 기대하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바로 진정한 성도들인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