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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긍휼 (2021년 3월 21일 주일낮설교)

하나님의 긍휼

3. 21, 2021

:로마서9:14-18

說敎:崔仁根牧師

 

유대인들에게는 중요한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우화적인 이야기를 담아 놓은 책이 있습니다. 이 책 속에는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시기 직전에 먼저 천사들을 창조하시고 그 천사들과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첫 번째 천사인 의의 천사라는 이름을 가진 천사를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을 창조하고 그 세상에서 가장 으뜸 되는 피조물로 인간을 창조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의의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하나님, 인간을 창조하지 마십시오. 그 인간들은 온갖 불의로 이 세상을 더럽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두 번째 천사인 '거룩의 천사'라는 이름의 천사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거룩의 천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 인간을 창조하셔서는 안 됩니다. 그 인간들은 이 세상을 더러움으로 가득 채워 놓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 번째 천사인 빛의 천사를 불러 또 다시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빛의 천사는 하나님, 절대로 인간을 창조하셔서는 안 됩니다. 인간들은 이 세상을 어두움으로 만들고야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네 번째 천사인 긍휼의 천사를 불러서 또 다시 질문을 했습니다. “내가 인간을 창조하려고 하는데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긍휼의 천사는 다른 천사와는 전혀 다르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 인간을 창조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면 이 세상은 불의하고 더러워지고 어두움에 잠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 이 불의와 더러움과 어두움 속에 있는 인간들에게 저는 기어이 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새로워지고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사람들이 되도록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과 긍휼로 돌보시며 아직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도저히 상대하고 싶지 않은 그 사람까지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를 향해서 다가오시고 기다리시고 기회를 주십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죄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들의 삶을 구원으로 인도해 주셨던 것입니다.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나님에 관한 진리, 일곱 번째로 오늘은 하나님의 긍휼에 관해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불쌍히 여기심, 혹은 측은하게 여기심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날카롭고 무섭지만 긍휼은 이렇듯 따뜻한 사랑이요 자비인 것입니다. 그와 같은 긍휼이 누구에게 임하는지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음 귀를 기울이시고 귀한 말씀을 들음으로 믿음을 만들고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긍휼과 같은 따뜻한 사랑을 만들어 섬기며 사랑하는 복된 영혼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72:13)

저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긍휼히 여기며 궁핍한 자의 생명을 구원하며 저희 생명을 압박과 강포에서 구속하리니 저희 피가 그 목전에 귀하리로다 저희가 생존하여 스바의 금을 저에게 드리며 사람들이 저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고 종일 찬송하리로다

가난은 결코 죄가 아닙니다. 하지만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이 세상에서 사람대우를 받지 못하고 무시당하고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무시당하고 고통당하는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깊은 연민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가슴으로 챙기시고 도우시는 것입니다.

(61:1-3)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

려 하심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행위실천의 사도 야고보도 이와 같은 가난한 사람을 무시하는 풍조가 교회에까지 만연한 것을 질타하며 다음과 같은 말씀을 성경에 남겨 두었습니다.

(2:1-4)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더러운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돌아보아 가로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이르되 너는 거기 섰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구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와 같이 가난한 자들에게 친히 긍휼을 베풀어 챙기심으로 오늘 우리들에게 모범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진정한 신앙인이라면 가난한 자들에게 더 깊은 관심과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자동차 키를 들고 주차장으로 내려온 젊은이는 자신의 자동차 옆에서 초조하게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한 할머니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 할머니는 폐지를 줍는 분이었는데 폐지를 담은 리어카를 끌고 가다가 자신의 자동차에 부딪혀 긁힌 자국을 만들어 놓고 미안하고 죄송해서 자동차 주인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젊은이는 어려운 형편에 자동차를 사서 애지중지 애끼고 있던 새 차에 자국을 만들어 놓았으니 내심 너무나도 속이 상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 같은 할머니가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미안하다며 연신 고개를 조아리는데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할머니는 어떻게 하든지 돈을 마련하여 줄 테니 자동차를 고치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 한 마디를 하기 위해 그 할머니는 무려 3시간을 그 자리에서 자동차 주인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젊은 청년은 간신히 자신의 마음을 추스르고 그 할머니에게 말씀 드렸습니다. 자동차는 괜찮으니 마음 쓰지 마시고 가시라고 잘 말씀드리고 그 할머니를 돌려보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오히려 회사에서 나오는 모든 상자와 폐지를 모아 그 할머니에게 갖다 드렸습니다. 이런 모습을 본 동료들도 합심하여 함께 폐지와 상자를 모아 그에게 가지고 와서 할머니에게 전달해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서로 친해지게 되었고 할머니의 사정을 듣게 되었는데 그 할머니는 혼자서 두 아들을 키웠는데 하나는 변호사가 되고 둘째는 의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쁘다는 이유로 자신의 어머니에게 전혀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연을 끊고 살다시피 혼자서 그렇게 지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너무 손주들을 보고 싶어 하시나 아들들이나 며느리들은 왕래조차 않고 있다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그 할머니를 집으로 초대해서 자신들이 식사라도 대접해 드리고 자신들의 아들이라도 보여드리자고 부인하고 합의를 본 후 토요일 낮에 그 할머니를 집으로 초대하기로 하였습니다. 아내는 음식을 만들고 젊은이는 집안 청소를 하면서 기다리는데 약속 시간이 되어도 오시지 않아 집 밖으로 나가 기다리는데 저만치서 구급차와 경찰차가 모여 있는 곳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뭐지, 하고 다가가 보니 거기에 쓰러져 있는 분은 자신의 집으로 오기로 되어 있었던 할머니였습니다. 시장에서 아이들에게 줄 선물들과 과일을 사들고 급히 길을 건너오다가 자동차에 치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는 다시 회복 되지 못하고 그 길로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습니다. 급히 아들들에게 연락을 취하였으나 바쁘다면서 끝내 그 아들들은 장례식장에도 오지 않았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 젊은이가 장례를 다 치르워 주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름 없는 젊은이와 그 할머니의 두 아들들을 보게 됩니다. 우리들은 과연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는지에 대한 해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의 긍휼을 닮아 이렇게 섬기며 사랑하고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남에게 베푸는 만큼 그래서 하나님도 우리들에게 따뜻한 사랑과 긍휼로 보상하시기 때문입니다.

(2: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나님은 갇히거나 외로운 자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33:26)

내가 야곱과 내 종 다윗의 자손을 버려서 다시는 다윗의 자손 중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다스릴 자를 택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 포로 된 자로 돌아오게 하고 그를 긍휼히 여기리라

(14:3)

우리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말을 타지 아니하며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지은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고아가 주께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음이니이다 할찌니라

하나님은 기록된 말씀과 같이 포로 된 자들이나 외로운 자들에게 친히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요즘은 포로 된 자들이 거의 없으니 질병으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들로 바꾸어 생각하면 맞는 해석이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 성도들이 깊은 연민을 가지고 다가 서 주어야 할 대상은 바로 이처럼 병든 자들이나 외로운 자들입니다. 특별히 우리 이민사회에는 이렇게 불쌍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사람이 외롭게 되면 정상적인 사고와 삶을 살아갈 수가 없게 됩니다. 이것이 지나치게 되면 우울증에 빠지게 되고 급기야는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가슴에 깊은 연민과 사랑을 가지고 그와 같은 사람들에게 다가서야 합니다. 참으로 우리교회 권사님들이 이와 같은 자들을 잘 섬겨주심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입원한 환자들에게 죽을 끓여 대접해 주고 외로운 자들을 가정으로 초대하여 식사대접을 잘 해 드리는 권사님들로 인해 힘든 목회에 많은 도움과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이와 같은 사랑과 희생에 값진 것으로 보상하시고 자손만대에 복이 되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친히 해 주셨고 지금도 성지순례를 가면 이곳으로 꼭 순례객들을 인도하여 장황하게 설명도 해 주고 있습니다.

(10:29-36)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 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웃에게 불쌍히 여기는 연민이 있어야 이런 고상한 일을 해낼 수가 있습니다. 이 종이 신학대학에 다닐 때 부산에서 자취를 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다 불편하고 힘겹지만 특별히 추운 겨울에 빨래를 해야 하는 것은 여간 고역이 아니었습니다. 수돗가에서 손이 빨갛게 변하도록 추위에 떨며 빨래를 하고 있으면 마음씨 좋은 주인아주머니가 연탄불에 데운 뜨거운 물을 가지고 와서 총각 손 다 얼어터지겠다.”하면서 부어주시던 그 사랑이 지금도 문득문득 생각이 날 만큼 감동적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누군가에게 가슴 따뜻한 추억이 될 수 있도록 외롭고 갇힌 자들을 도우며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꼭 나를 닮아 불쌍하게 여기는 따뜻한 마음이 있구나!” 하시면서 은총을 베풀어 주실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에게 그 고귀하신 예수님을 보내 주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61:1-3)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28:13)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진실로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고 싫어하십니다. 죄는 사탄 마귀에게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와 같은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들을 매우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탕자의 비유를 통해 우리들에게 죄를 회개하고 아버지께로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탕자와 같은 자식들이 앞서도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우리 주변에는 많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들고 나가 창기와 함께 허랑방탕한 아들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와 다를 바 없습니다. 재산이란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보아서 잘 아는 바와 같이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것도 늙으신 아버지가 평생을 일구어 놓았던 것입니다. 그것을 들고나가 창기와 함께 허랑방탕 한다는 것은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자식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짓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보기 좋게 망하고 알거지가 되어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으니 아버지께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미워하기는커녕 두 손 들고 버선발로 달려 나가 맞이하고 살진 소를 잡아 잔치를 벌였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요?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의 중요한 단서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측은히 여겼다.”는 말씀입니다.

(15: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 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에서 측은이 여겼다는 말씀이 바로 긍휼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불쌍히 여겼던 것입니다. 비록 자신의 재산을 다 날려버리고 알거지가 되어 돌아와도 아버지는 그를 측은이 여겼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하나님의 마음이요 사랑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 하나 있다면 바로 이와 같은 측은지심입니다. 따지기 전에, 이론으로 날을 세우기 전에, 무엇을 잘못 했는지 가르치기 전에, 우리들의 가슴에 이렇듯 측은이 여길 줄 아는 긍휼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고 하나님은 바로 그 마음을 우리들에게 심어주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잘 했을 때만 사랑하고 이쁠 때만 사랑하고 유익이 있을 때만 사랑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없는 세상 사람들도 다 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측은지심과 긍휼의 용서를 다윗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윗은 참으로 파렴치한 죄를 범한 인물이었습니다. 성경 속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그런 몰지각한 죄를 저질렀습니다. 자신에게 목숨을 내 놓고 충성하는 신하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기 위해 그를 전쟁터로 내보내고 적의 손에 죽도록 만들어 제거하고 그 아내 밧세바를 취하였을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와 같은 다윗을 불쌍하게 여기시고 그 모든 죄를 용서하신 다음 예수님의 족보에 올려 사용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어디에 사람이 없어 이처럼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른 다윗을 하나님은 그토록 고귀한 일에 사용하여 주셨을까요? 그 이유는 오직 하나 다윗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눈물로 회개하였기 때문입니다.

(51:1-4)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이렇듯 다윗은 자신의 그 무서운 죄를 쏟아 놓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사모하였던 것입니다. 시편 51편은 이와 같은 다윗의 회개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두 말 하지 않으시고 그를 품어주셨고 문자 그대로 그 엄청난 긍휼을 쏟아 다윗을 덮어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변함 없이 오히려 더 그를 소중한 그릇으로 사용해 주셨습니다.

(13:22-23)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회개하는 영혼을 단 한 번도 내치시거나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죄를 지었다는 이유로 소중한 사람을 또한 버리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 있도록 그를 끝까지 마음에 품고 사용해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긍휼이 풍성한 사랑의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국 격언에도 귀한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Should not judge whole by a part(일부분을 보고 전체를 판단하라 말라)는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을 믿는 우리는 편협 된 마음으로 사람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됩니다. 따뜻한 가슴과 사랑으로 사람을 살리는 멋진 가치관과 믿음으로 이 험악한 세상을 정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의 그 엄청난 죄를 다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들로 구별해 주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멋진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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