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29일 주일낮 설교 (내게로 영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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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Monday, 30 July 2012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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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로 영접하리라!
7. 29, 2012
本文:요한복음14:1-6
說敎:崔仁根牧師
우리는 한 때 유럽을 재패했던 영웅 나폴레옹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워터루전쟁(War of Waterloo)에서 패하고 대서양의 외딴섬 세인트헬레나(Saint Helena)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훗날 역사가들은 이와 같은 나폴레옹을 두고 그는 전쟁에서 패했기 때문에 불행한 자가 된 것이 아니라 마지막 재생의 기회를 놓치는 어리석음으로 인해 진정 실패자가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가 헬레나에서 외롭게 유배생활을 하고 있을 때 절친한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상아와 옥으로 만든 체스판을 들고 와 선물하였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시큰둥하였습니다. “내가 이 섬을 탈출할 수 있는 지침서라도 갖다 주지 뜬금없이 왜 이 체스판은 들고 왔느냐?”고 말입니다. 하지만 외롭던 그는 곧 그 체스판을 벗 삼아 유배생활의 외로움을 달래갔습니다. 하지만 끝내 그는 헬레나 섬을 탈출하지 못한 채 영국군의 감시를 받으며 외롭고 쓸쓸하게 유배생활에서 죽음을 맞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나폴레옹이 가지고 놀았던 체스판은 몇 번의 경매에 붙여지며 팔려나갔습니다. 마지막 그 체스판을 경매장에서 구입했던 사람이 실수를 하여 그만 그 체스판을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반쪽으로 금이 가버린 체스판 사이에 이상한 무엇이 보이기에 조심스럽게 꺼내 보니 그것은 깨알같이 쓰여져 있는 나폴레옹의 탈출방법이었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그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기에 탈출의 기회를 잃고 헬레나에서 영원한 길로 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나폴레옹은 평소에 “민첩하고 기운차게 행동하라. ‘그렇지만’이라든지 ‘만약에’라는지 ‘왜’라는 말을 앞세우지 말라. 이런 말을 앞세우지 않는 것이 곧 승리의 비결이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는 민첩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한 번 더 세계를 재패할 절호의 탈출기회를 영원히 놓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후대의 역사가들은 나폴레옹이 워터루전쟁에서의 패배보다 이처럼 소중한 탈출의 기회를 놓친 것이 그의 최대의 실패로 전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는 오늘 우리들도 꼭 가슴에 새겨 두어야 할 소중한 교훈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위해 영원히 거할 천국을 예비하러 가셨다가 다시 우리들을 영접하여 그곳 천국으로 인도해 가실 터인데 그 기회를 놓쳐버리면 영원히 지옥 불에서 비참한 세월을 보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주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말씀,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서 너희도 있게 하리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생명과 축복의 진리를 공부해보려고 합니다. 모쪼록 믿음의 귀를 열고 말씀을 받아 진정 영원을 상속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내게로 영접하리라!
이 땅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자그마치 65억 명이 넘었습니다. 실로 어마어마한 수입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100년이 지나면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이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싶지만 우리들 중에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그렇게 죽음을 맞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제한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 소중한 시간들을 거의 다 써버렸다는 사실은 참으로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우리들에게 충고하기를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계산해 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시편 90편).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흐르는 시간은 끝내 우리 모두를 죽음이라는 그 끔찍하고도 무서운 문턱으로 끌고 가고야 맙니다.
연봉 30만 불이나 되는 뉴욕 최대 로펌에 입사하기를 원하는 신출내기 변호사가 초조하게 인터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그에게 보스가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대는 왜 우리 로펌에 들어오기를 원하는가? “높은 연봉과 삶의 질을 높여주는 명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높은 연봉을 받아서 어떻게 살아가려는가?” “그 연봉으로 마음에 드는 예쁜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할 것입니다.” “그렇게 결혼하고 나서는...?” “자식을 낳고 그렇게 행복하게 살아야지요.” “그리고 그 다음에는?” 결국 그 젊은 변호사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늙어서 죽고 만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그 짧디 짧은 제한된 삶을 살면서 그렇게 죽으면 썩어지고 말 육신을 위해 아옹다옹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바로 오늘 우리들입니다. 하나만 더 물어보십시다. 그렇다면 그렇게 죽고 나면 모든 것이 다 끝나는 것일까요? 이에 대한 다음 성경 말씀을 한 번 묵상하며 함께 그 해답을 찾아보도록 하십시다.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로 미루어 볼 때 사람이 죽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고 나면 심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슨 심판을 우리가 받아야 되는 것입니까? 이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 남겨 놓으신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그 해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눅16:22-23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 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이 말씀을 보면 사람이 다 같이 죽는다는 사실은 히브리서 9:27의 말씀과 동일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심판은 죽은 그 두 사람에게 똑 같이 나타났는데 평소에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던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천국)에 들어가고 하나님을 부인하고 교만하고 오만하여 사람을 무시하며 오로지 자신의 배만 위해서 살았던 부자는 죽어 음부(지옥)에 들아 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죽고 나면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천국으로 가는 복된 판정을 받게 되고 믿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는 심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경고를 주십니다.
요14:1-3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 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 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 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고 말입니다. 오늘은 우리 주님의 이와 같은 말씀으로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꿈을 안고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하겠는지? 그 방도를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근심 없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단도직입적으로 우리들에게 명령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근심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6: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는 말씀과 같이 그 모든 근심 걱정 염려가 실제적으로 우리들에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하는 헛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 주님은 염려 걱정 근심하지 말라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실제로 심리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들이 매일 같이 반복하고 있는 근심 걱정의 70% 이상은 실제로 우리 앞에 닥치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미리 가상하고 상상하여 “그렇게 될 것이다.”고 하여 마음을 불안해 하고 걱정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우리 주님의 명령을 받았으니 걱정하지 말고 하루하루를 평안하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토록 주님께서 친히 명령하시고 우리 또한 근심의 결국이 백해무익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근심 걱정으로 인생을 허비하는 것일까요? 우리 속에 절대자이신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치 어린 아이가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과 먹을 것을 잔뜩 가지고 있으면서도 눈에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그 모든 것들을 다 집어던지고 엄마를 찾아 우는 것과 같습니다. 그만큼 그 아이에게는 엄마가 절대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미는 오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의 절대자는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하나님은 우리들을 자녀자고 부르시는 관계가 정립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에게는 오직 그 하나님만이 삶의 전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떠나게 되면 마음은 공허하고 삶은 무의미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 말씀에서 우리는 이와 같은 삶의 허무한 현실을 바라보게 됩니다.
요21:2-5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시몬 베드로가 나 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 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신줄 알지 못하는지 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 이다
그랬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그들에게 얻어지는 것은 공허뿐이었습니다. 헛수고뿐이었습니다. 그러한 삶에는 근심과 걱정이 밀려들게 되어 있습니다. 어둠이 있으면 빛이 없고 빛이 있으면 어두움이 올 수 없듯이 예수님께서 함께하시면 기쁨이 충만하고 예수님을 떠나게 되면 이처럼 비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근심과 걱정은 그래서 예수님을 가슴에 모시지 못한 자들의 전유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시시때때로 택하신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두려워 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사41:10 두려워 말라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43:4-5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 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두려워 말라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방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방에서부 터 너를 모을 것이며
라고 말입니다. 두려움은 곧 인생을 근심과 걱정과 염려로 몰고 가는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근심하지 않고 인생을 담대하게 살아가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역시 우리 주님은 이에 대한 대안까지 제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요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는 말씀과 같이 근심 걱정으로 가득한 우리들의 가슴에 믿음을 채우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그 해답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성군 다윗을 너무나도 잘 압니다. 이 세상에 근심 걱정을 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바로 다윗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왕이신 사울이 자기를 죽이려고 군사를 일으켰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아들이 배신하고 반역을 일으켜 군사를 데리고 그를 잡아 죽이려고 뒤쫓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믿었던 용사들과 신하들로부터 배신을 당하였습니다. 이런 지겅에서도 근심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는 결코 정상적인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가 남긴 복된 말씀은 오늘 우리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합니다.
시37:5-9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다윗과 같은 당당한 믿음과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대하는 삶의 확신으로 우리 앞에 도사리고 있는 근심과 걱정을 몰아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들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실 것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믿음의 이빨로 꼭꼭 씹어서 삼켜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반드시 이루어지고 해결되리라고 확신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들에게 모든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다 합하여 잘되도록 역사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 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 교회 초기 때의 이야기입니다. 악하고도 못된 사람들이 이 좋을 신학교 문 앞에도 가지 않은 가짜 목사라고 이민국에 고발을 하여 이민국에서 영주권을 박탈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의논조차 못한 채 혼자서 입안에 소태를 씹은 듯 쓴 맛을 삼키며 마음을 태우고 있을 때 우리교회에서는 각 부 부장 여름수련회가 웨스트포트에서 열리고 있었습니다. 하필이면 수련회를 떠나는 바로 그 날 아침에 변호사 사무실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이민국에서 영주권을 심사하였는데 추방하도록 결정하였다고 말입니다. 그 소식을 듣고 23명의 부장을 데리고 웨스트포트로 수련회를 떠난 것입니다. 이 종도 사람인데 어찌 마음이 편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모든 부장들은 모처럼 직장과 사업장과 아이들과 마누라에게서 해방되어 엄청 들떠 있는데 나 혼자만 가슴이 타들어가면서도 안 그런 척 해야만 했으니 참으로 지금 생각해도 온 몸에 소름이 끼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의현하게 수련회를 다 인도하고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는 우리 주님의 말씀 한 마디만 붙잡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만 의지하고 묵묵히 대처해 나갔습니다. ‘내가 가짜가 아닐진데, 내가 누구보다도 신실한 목사일진데... 그러면 그만 아닌가?’ 하는 자부심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문제를 헤쳐 나갔습니다. 악한 사람들은 이민국의 그 소식을 듣고 온 동네방네 떠들어 댔습니다. “빌립보교회 최목사는 곧 추방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니 교회가 무엇이 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공의로우시고 능력이 한이 없으신 사랑은 거짓말처럼 문제를 역전시키시고 영주권을 박탈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두 번 다시 이 문제를 거론조차 할 수 없도록 시민권을 받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최목사가 추방되지 않으면 내 손에 장을 지지라!”고 오만하게 떠들던 악한 자들의 입을 부끄럽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다윗과 같이 악한 자들에게 수 없는 시련과 고통을 당하여도, 사도 바울과 같이 악한 자들에게 사방으로 둘러싸여도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의지하고 기다리기만 하면 하나님은 공의롭게 심판해 주시고 결국은 승리의 노래를 부르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롬8: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 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 혼자만 있는 것처럼 낙심하고 근심걱정해서는 안 됩니다. 당당하게 일어나 하나님을 믿고 또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을 괴롭히는 그 무슨 문제라도 능히 하늘의 하나님께서 능히 해결해 주실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들이 믿는 것만큼 하나님은 그 믿음을 따라 역사해 주시고 해결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장본인이 바로 욥이었습니다. 그는 순식간에 그 모든 재산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10남매가 다 죽었습니다. 자신의 마지막 남은 육신마저도 병들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 이 보다 더 가혹한 고통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누구를 원망하거나 근심 걱정에 사로잡히거나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오직 그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렸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그를 긍휼히 여기시고 갑절의 축복으로 보상하시고 인류 역사에 길이 빛나는 복된 사람으로 영원히 세워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환경을 극복하고 고통을 뛰어 넘어 근심 걱정을 밟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우뚝 서야 하겠습니다. 우리 그렇게 하라고 우리 주님께서 사탄 마귀를 이기시고 십자가에서, 무덤에서 승리하시고 일어나셨던 것입니다. 그러하신 예수님께서 우리 앞에서 서서 친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요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 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고 말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소망찬 말씀입니까? 그러므로 이제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주님께서 친히 주신 이 복된 말씀을 가슴으로 받고 현실을 극복하고 크게 승리하는 하나님의 사람들로 우뚝 서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기다려야 합니다
근심 걱정 하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굳게 서는 구체적인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요? 고통을 쉽게 말하는 것은 참으로 잘못된 생각입니다. 누구나 자기가 고통을 당하지 않으면 남의 고통이 작게 보입니다. 하지만 고통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사람들의 그 힘겨움이란 참으로 인내해 내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도 이와 같은 상황을 너무나도 잘 아시고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위로 하시고 소망을 주셨습니다.
요14:2-3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 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 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고 말입니다. 이는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잔인하게 처형할 이 세상 인간들 속에 남겨 놓고 갈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오죽하면 수제자 베드로가 주님께서 친히 쳐다보시는 면전에서 그 주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맹세하고 저주까지 하고 떠나갔겠습니까? 우리 주님은 이처럼 처절한 고통 가운데 남을 제자들의 형편을 너무나도 잘 아시고 이렇게 미리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고 말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오직 아버지 집에서만 진정한 평안과 안식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아버지를 떠나 있는 이 세상에서는 고통과 미움과 멸시와 천대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 영원하고도 진정한 안식과 평안을 누릴 수 있는 방도를 찾아 나섰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들을 위해 눈물과 고통과 죄악이 없는 천국을 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도록 주님께서 친히 천국을 준비하시고 다시 우리들에게 오셔서 우리들을 영접하시고 그리로 가시겠다고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 앞에 놓인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주님의 제자들은 이렇게도 구체적으로 주신 우리 주님의 약속과 축복의 말씀을 버리고 외면한 채 그 주님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요21:2-3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시몬 베드로가 나 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 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게 주님을 떠나 그들의 방법대로 인생을 새롭게 살아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아무런 소득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힘들고 어려워도 끝까지 그 주님을 기다리며 그 주님에게만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주님 없는 이 세상의 모든 재물과 명예와 권세는 참으로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생명줄을 붙잡고 계시는 분이 주님이신데 그 모든 허망한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주님은 다음과 같이 반문하고 계십니다.
눅12:16-20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 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 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 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 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들이 누리는 것 중에 주님께서 주시지 않은 것이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예수님의 어리석은 제자들처럼 스스로 얻으려고 한다면 결코 얻을 수 없게 됩니다. 주님께서 주셔야 누릴 수 있다는 이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진리를 가슴으로 깨달아 주님께서 예비하시고 준비하시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참음으로 기다리고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기다리지 않고 얻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오래 참는 것은 성령의 열매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7월 한 달 동안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리석은 우리 인생들을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차근차근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죄인된 우리들을 세상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친히 불러주시고, 부르신 그들을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게 해 주시고, 자녀들이 된 우리들과 늘 동행해 주시며, 무엇이든지 필요한 것을 구하고 얻을 수 있도록 풍성한 축복으로 채워주셨습니다. 오늘은 종말론적 측면에서 그 하나님께서 친히 예비하신 천국을 기다리는 신자가 될 수 있도록 말씀을 받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환란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고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고통 속에서도 근심 걱정을 넘어서 믿음으로 무장하고 다시 오실 우리 주님을 끝까지 기다리는 신앙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우리들이 손으로 짓지 않은 거룩한 집에서 천지만물을 다스리시는 주님과 함께 영원 복락을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받으며 하나님께 정성 모아 예배드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바로 이와 같은 믿음으로 길이 기다리고 주님께서 친히 준비하신 천국을 상속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2년 7월 29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